87화 테슬라와 스페이스 X
일론 머스크.
SNS 시대가 낳은 최고의 관종.
그러면서도 테슬라와 스페이스 X 등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을 설립하는 천재.
지금이야 가장 유명한 부자하면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겠지만, 내가 있던 미래에서는 그 자리를 일론 머스크가 대신했었다.
아무튼.
그런 그를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는 건 쭉 생각은 해 왔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의 투자를 결심하고 나서는 더더욱.
‘결국에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거물이니까.’
몇 년 후에는 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 순위 1위에 등극하게 되는 머스크다.
내가 앞으로 얻게 될 부를 생각하면 그와 어떤 이유로든 연루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터.
물론, 지금의 그는 그저 실리콘밸리의 주목받는 사업가에 불과했다.
실리콘밸리 내에서의 인식도 머스크를 미래에서처럼 혁신을 이끄는 희대의 사업가로 보는 게 아니라, 천재이거나 괴짜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주목받는 사업가, 일론 머스크.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희대의 사업가인가 아니면 허황된 꿈을 꾸는 괴짜인가?
뭐, 대충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페이팔을 창립 후 성공적으로 엑시트 해 억만장자가 된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와 우주 여행이라는 꿈에 빠졌다며, 그의 최근 행보를 다루는 기사였다.
그걸 보고 아직 이 시기에는 일론 머스크라는 천재를 두고 천재와 괴짜 중 어느 쪽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꽤 많았구나 생각했었는데…….
“어때요? 음식 괜찮죠? 실리콘밸리 최고의 맛집이라 했잖아요. 사실 이곳보다 맛있는 곳이 일본에 무려 프랜차이즈로 있는데… 안타깝게도 미국에는 진출을 안 했더라고요. 여긴 그 집을 따라한 아류 라멘집인 셈이죠.”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괴짜인 것도 맞는 것 같은 일론 머스크였다.
그가 실리콘밸리 최고의 레스토랑을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온 라멘집.
말이 되는가.
억만장자가 친히 안내해 준 실리콘밸리 최고의 식당이 17$짜리 라멘을 파는 곳이라니.
‘뭐… 맛있기는 하지만.’
물론 나도 딱히 음식을 가리며 먹는 편이 아닌 터라 이곳의 라멘을 꽤 즐기고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온 걸 보면 일론 머스크가 괴짜라는 건 사실에 가까운 추측이 맞는 것 같았다.
심지어 머스크는 음식 취향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마법사>는 조만간 영화로 나온다죠? 그런데 왜 언에이징 헌터는 영화화 제작 소식이 안 들리는 거죠? 혹시 돈이 부족한 건 아니죠? 그런 거면 말만 해요. 당장에라도 투자해 줄 테니까.”
대화 도중 내 작품 얘기를 꺼내기에 안늙강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도.
“혹시 우주에는 관심 없나요?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문명은 희미한 작은 촛불과 같죠. 공허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갑자기 우주 얘기를 꺼내지 않나.
“이집트에 가 본 적 있나요? 없다면 한번 꼭 가서 피라미드를 봐 보세요. 분명히 외계인이 만든 게 틀림없는 구조물이니까요.”
그러다가도 웬 피라미드 얘기를 꺼내지 않나.
종잡기 어려운 통통 튀는 화법을 식사 내내 구사하는 일론 머스크였다.
‘분명 고기능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 했지.’
예전에 일론 머스크가 SNL에 와서 제 장애를 밝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자기가 사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며, 그간 트위터에서 급발진 트윗을 올렸던 건 그 때문이었다며 이해해 달라는 말을 했었는데…….
물론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 했다.
그거랑 네가 트위터에서 개지랄한 게 무슨 상관이냐며 머스크 욕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때의 나는 상남자식 투자에서 실패한 후 모든 게 불만이었기 때문.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머스크 때문에 내 투자금 대부분을 잃었던 거야 없던 일이 되어 버렸고, 오히려 지금의 머스크는 내게 있어 내 돈을 몇백 배나 늘게 해 줄 귀인.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더 좋게 보이네. 뭐 천재의 특별한 모습 이런 거로.’
사실 일론 머스크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의 저런 성향 덕분도 없지 않아 있을 거다.
뭐, 아무튼.
“피라미드요? 이집트에 가 본 적은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꼭 가 봐야겠네요.”
나는 식사 내내 일론 머스크의 말에 적당히 맞춰 주다가.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입가심으로 음료를 마실 때쯤, 본론을 꺼냈다.
“아! 아까 우주에 관심 없냐 하셨죠? 사실 엄청 많아요.”
“와우. 정말인가요? 하긴, 우주는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죠. 특히 우진 같은 작가들에게는 더욱 그럴 거고요.”
“그렇죠. 사실 제 친한 친구가 마션이라고 화성이 배경인 소설을 쓴 작가인데, 둘이서 하루 내내 화성에 대한 얘기를 떠든 적도 있을 정도죠.”
“……?!”
순간, 일론 머스크의 눈빛이 바뀌는 게 보였다.
흥미 가득한 모습.
나는 거기에 추가타를 날렸다.
“우리가 죽기 전에 화성 여행을 갈 수 있을 건가, 없을 건가. 그 주제를 놓고 몇 시간을 토론했죠. 참고로 저는 갈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요.”
“……?!”
* * *
“보스, 우주산업은 돈 먹는 하마입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야 하는데, 그러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죠.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시그마 캐피탈의 알버트.
이전까지의 투자들에는 별말 없던 그가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나를 말리려 했다.
내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던 10억 달러 중 남은 1억 달러.
그 전부를 스페이스 X에 투자하겠다 밝힌 탓이었다.
“음. 알버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일론이 꾸는 우주여행의 꿈은 전부 몽상에 불과하다고요?”
“몽상…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머스크는 대단한 남자죠. 그는 기행으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동시에 천재인 것도 맞으니까요. 하지만 우주산업은 다릅니다. 그것도 민간 우주 기업이라뇨. 사업이 흑자로 전환되려면 수십 년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이 보고서를 보세요.”
알버트가 건넨 보고서의 적힌 건 스페이스 X의 이번 년도 추정 사업 실적이었다.
판매 실적은 10억 달러 정도, 그중 영업 이익률은 0.2%가량.
‘올해 겨우 200만 달러를 벌었다는 거네.’
게다가 이건 운영 이익이니 실제 순이익은 더욱 적을 터.
알버트의 말대로 돈 먹는 하마라는 말이 딱 알맞은 기업이 바로 스페이스 X였다.
하지만 그 돈 먹는 하마가 알버트의 말처럼 수십 년이 아니라, 8년만 지나도 황금을 토해 내는 하마가 되는 거라면?
‘스페이스 X 기업 가치가 거의 1,000억 달러쯤 됐었나.’
한화로는 120조 원가량이나 되는 금액.
올해 한국 총예산이 342조 원 정도라는데, 사기업 하나의 가치가 그 3분의 1을 넘어 버리는 거다.
그런 기업의 지분을 100분의 1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사들일 수 있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성공 확률이 낮을수록 베팅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 큰 법이죠.”
“…보스, 1억 달러는 베팅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입니다.”
“괜찮아요. 저는 절대 지는 베팅은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스페이스 X는 단순한 기업 가치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회사였다.
우주개발이야말로 최첨단 과학의 상징인데, 스페이스 X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런 우주개발을 주도하게 될 회사.
그런 회사의 지분을 상당수 갖고 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 후에 시작하게 될 스타 링크.
‘사실 스타 링크야말로 스페이스 X에 투자하는 또다른 이유지.’
스타 링크는 4만 개가 넘는 위성을 우주로 발사해 최대 1Gbps에 달하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전 세계 어디에나 공급하려는 스페이스 X의 사내 프로젝트였다.
즉,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통신 사업인 것.
내가 스타 링크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통신사가 필요해.’
한국의 콘텐츠 제공 사업자는 한국의 통신사들에 어마어마한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발생시킨 트래픽에 따라 사용료를 통신사에 내야 하는 것.
이건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미래에서도 넷플릭스와 구글 등이 이 문제를 두고 한국의 통신사와 다툼이 있었다.
스웜도 론칭 이후 인기를 얻게 되면서 발생시키는 네트워크 트래픽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그에 따라 통신사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꽤 됐다.
올해 기준 어림잡아도 50억 원 수준.
스웜이 목표하는 국내 가입자 수는 지금의 수십 배 수준이었으니, 나중에는 50억 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수십 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몇 년 후에는 한 해에 인터넷 망 사용료로 천억 원대를 지불해야 될 수도 있는 노릇.
‘넷플릭스나 구글은 미국 통신사에 냈으니 내지 않겠다고 뻐겼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지.’
물론 스웜은 영미권에 진출하기 전에 해외 법인을 따로 설립한 후 한국 법인이 그 해외 법인에 흡수되는 형태로 바꿀 예정이긴 했다.
그렇게 되면 스웜 또한 넷플릭스나 구글처럼 해외 기업이 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한국인인 내가 주인인 이상, 스웜이 다른 기업들처럼 마냥 돈을 안 내겠다고 버틸 수 있을지는 꽤 의문이 따랐다.
뭐, 법인의 주인과 법인이 서로 구분된다고는 해도…….
원래 제대로 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족속들이 바로 한국의 국회의원들이지 않나.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정치인들한테 로비하는 거에는 기존 한국 기업들을 못 따라간다.
그런 면에서는 나보다 몇 수나 위에 있는 게 한국 기업들이다.
국회의원들이 강짜를 부리며 나를 청문회에 불러 대는 그림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그런 꼴을 볼 바에는… 스타 링크 프로젝트를 예정보다 빨리 론칭시키고, 거기에 크게 관여해 한국 사업권을 내가 가져오는 거지.’
너희가 나한테 돈을 걷어?
그래, 일단 주기는 할 테니, 너희도 나한테 돈 내놔 전략.
아마 망 사용료를 한국 통신사들에 내더라도, 그보다 많은 돈을 스타 링크를 통해 걷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스타 링크를 무기 삼아 한국에 네 번째 이동통신사를 차리는 방법도 있었다.
뭐, 이 문제야 나중에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일론 머스크 - 젠장! 자네가 추천한 마션이라는 소설은 끝내주도록 재밌더군. 조만간 영화가 나온다고? 혹시 내부 시사회에 나도 초청해 줄 수 있나?]
조금 전 머스크에게서 왔던 문자를 살폈다.
저번의 식사 자리 이후 꽤 친해진 일론 머스크.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일론 머스크라 서로 편하게 대하는 관계가 됐다.
내가 그의 물음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답하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일론 머스크 - 끝내주는군! 역시 자네를 내 파트너로 택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아! 혹시 오늘 밤 내 친구들과 파티가 있는데, 거기에 올래? 꽤 즐거운 모임이 될 거야. 다들 한가락 하는 친구들이거든.]
[나 - 그래? 어떤 친구들인데?]
[일론 머스크 - 내가 페이팔에 있을 때 알게 된 친구들이야.]
“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피아들을 꼽으라면 대부의 콜레오네 패밀리의 모티브가 된 감비노 패밀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마피아는 따로 있었다.
일명 페이팔 마피아.
페이팔의 공동 설립자이자 팔란티어의 창립자인 피터 틸, 유튜브의 창립자인 자베드 카림 등.
모두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다.
[일론 머스크 - 자네가 저번에 얘기했던 테슬라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꽤 있지. 그중에는 새 비즈니스를 위해 자금을 모으려는 친구들도 몇 명 있고. 원한다면 자네한테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내가 화성 얘기를 꺼냈을 때 일론 머스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순간 눈이 저절로 번뜩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