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상남자식 투자
[크리스탈 팰리스, 첼시와 접촉 중? 이적 대상은 벨기에의 케빈 더 브라위너.]
[주제 무리뉴 감독, “더 브라위너의 팰리스 이적? 구단에 들은 바 없다.”라고 밝혀.]
[첼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케빈 더 브라위너 이적 유력! “계속된 출전 기회 부족으로 선수의 마음이 확고해 져.”]
아직 겨울 이적 시장 기간까지는 몇 달 남았지만.
구단에 케빈 더 브라위너를 영입할 것을 지시했다.
덕배의 영입을 원했던 비엘사 감독도 더 브라위너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던데.
그런 감독의 적극적인 태도가 잘 먹혔다고 한다.
케빈 더 브라위너 측에서도 꽤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했다.
‘제이미 바디에… 양쪽 윙은 마레즈와 마샬, 중앙에는 덕배, 수비진에는 반 다이크라.’
이 정도면 웬만한 우승권 구단 부럽지 않은 스쿼드였다.
물론, 여기서만 영입을 끝낼 건 아니었다.
‘기왕이면 살라도 영입하고 싶은데.’
지금은 FC 바젤에서 뛰고 있는 모하메드 살라.
아직은 22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의 선수였다.
하지만 그 잠재력은 메시와 호날두는 아니어도 바로 그 아래 단계까지는 오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걸 알고도 영입하지 않는 건 바보나 할 만한 짓이었다.
‘살라의 포텐이 터지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그건 파라오 소리를 듣던 살라 기준의 얘기였고.
당장 EPL에서 써먹을 만한 자원으로 쓸 거라면 지금의 수준으로도 충분했다.
실제로 현재 속한 구단인 FC 바젤에서도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고 있는 살라였으니.
‘아마 원 역사대로라면 몇 달 뒤에 첼시로 이적하게 되던가?’
톡, 토도독-
핸드폰을 열어 구단 관계자에게 연락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아직 첼시가 살라에게 막 접촉했을 때일 텐데.
도중에 끼어들어 살라를 채 갈 생각이었다.
살라는 첼시로 이적한 이후, 더 브라위너와 비슷한 이유로 출전 기회를 거의 받지 못하게 된다.
윙어 자리 경쟁자가 에덴 아자르, 윌리안, 안드레 쉬얼레 등의 쟁쟁한 자원인 것.
이런 첼시의 현 2선 상황을 들어 살라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괜히 단번에 EPL 최상위권 팀으로 갔다가 경기에서 뛰지도 못할 바에는, 크리스탈 팰리스로 와서 넉넉하게 출전 기회를 받으며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우리 구단은 이번 시즌에 유로파리그에 진출하게 될 거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이적료보다 더 낮은 금액의 바이아웃을 설정해 팀을 나갈 수도 있게 하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헤이, 우진. 모레 돌아간다고? 오늘 맥주나 한잔할까?”
“나쁠 건 없지.”
로버트와는 며칠 지나지도 않아 꽤 친해졌다.
EPL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나를 로버트도 꽤 궁금해했다더라.
나이대도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비록 서로 응원하는 팀은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축구 팬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맞았던 것.
“이번 시즌은 느낌이 꽤 좋아. 우승을 노릴 만한 시즌이라고.”
“다음 경기가 맨유랑 있는 원정 경기였나?”
“응. 빌어먹을 Manure(거름) 놈들을 때려잡고 1위 자리를 확고히 할 기회지!”
‘이번 시즌 아스날 최종 순위가… 6위였나?’
비록 헛된 꿈을 꾸는 친구였지만 말이다.
개집의 우승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일단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록 그럴 일은 없는데 말이지.
뭐, 어쨌든.
“어, 음… <마지막 마법사>를 원래 읽어 본 적 없었다고?”
“그래. 캐스팅 오디션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읽었지. 뭐, 그래도 재미는 있더라. 트와일라잇보다 몇십 배는 더 훌륭했어.”
친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원작의 팬이었다고 밝혔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로버트는 오디션에 지원하기 전까지 <마지막 마법사>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더라.
광고는 오며 가며 몇 번 보기는 했다던데, 그냥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비슷한 소설인가 보다 하고 넘겼었다는 것.
<마지막 마법사>의 오디션에 지원하려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많아지자, 그때서야 대체 무슨 소설이기에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읽어 본 것이라 했다.
그러고는 작품의 재미와 유명세, 피터 잭슨이라는 감독, 3억 1,000만 달러라는 역대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주인공 역에 지원한 것이라고.
‘트와일라잇보다 몇십 배는 더 좋았다라… 칭찬 맞겠지?’
로버트가 원작의 팬이 아니라고 해서 불쾌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원작을 읽은 것임에도 지금 이렇게 주인공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는 로버트의 재능에 감탄만 들었다.
“물론 지금은 더없이 만족 중이야. 네 작품의 팬이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기는 했고. 시나리오로 바뀐 내용도 마음에 들어. 특히 보통의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막무가내로 부수고 다니는 배역이 아니라는 점이.”
이런저런 대화를 더 나누다 마무리된 술자리.
나는 그 이후로도 촬영장에서 이틀을 더 묵었다.
“즐거웠습니다. 촬영 마지막까지 힘내 주시길.”
떠나려는 날 배웅하기 위해 나온 배우진들.
그들과 인사한 후 마지막으로 피터와 얘기를 나눴다.
“뉴질랜드 촬영은 언제까지 계획되어 있는 거야?”
“아마 4개월 정도? 더 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
“좋아, 적당하네. 다음 촬영지가 독일이지? 독일에서 보자고.”
“오! 그때도 찾아올 생각인 건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고성가도.
<마지막 마법사>의 다음 촬영지였다.
촬영을 위해 그곳에 위치한 고성을 몇 군데 대여했는데, 써밋 엔터에서는 자체적으로 고성 중 하나를 사들일까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
해리포터의 호그와트가 팬들의 관광 명소가 된 것처럼 고성을 사들여 내부까지 개조를 해 활용하려는 생각.
“응. 아무래도 그때 시간을 안 내면 한동안 못 보게 될 것 같거든.”
“음? 그게 무슨… 아! 하하. Private 선우진이 되는 게 머지않았댔지?”
내 말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피터.
그러면서 내 머리카락 쪽을 바라보는 게, 빡빡이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았다.
* * *
뉴질랜드를 떠나 도착한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였다.
올해 연말까지는 미국에서 보낼 예정.
‘연말에 스필버그 감독의 초대도 있고 하니까.’
영화계의 여러 유명 인사가 온다는 스필버그 감독의 연말 파티.
생각해 보니 그 자리에 피터도 오기로 했었는데.
독일에서 다시 보자던 말에 아무런 말이 없던 걸 보면 피터도 깜빡 잊고 있었나 보다.
‘<라스트 게이머>도 슬슬 제작에 들어간댔지.’
저번에 스필버그 감독의 연락이 왔던 <라스트 게이머>.
몇 달 전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은 채, 스필버그 감독과 <라스트 게이머>의 판권 계약을 맺었다.
판권에 따른 로열티를 받기로 한 형식.
이왕이면 제작비에도 투자를 하고 싶었는데, 그건 드림웍스 측에서 완강하게 거절을 하더라.
사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면 이미 황금 알을 낳는 게 확정된 거위인 거나 다름없는 터라.
나도 더 욕심을 부리지는 않고 로열티를 받는 정도에만 그쳤다.
‘출연진은 누가 캐스팅되려나.’
간간이 관련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는데, 소설의 내용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작업이 이제 막 끝났다고 한다.
지금은 배우 캐스팅을 진행하는 단계였다.
‘조만간 그럼 제작 확정 기사도 나오겠고.’
그렇게 되면 원작 소설인 <라스트 게이머>의 홍보 효과도 있을 것 같았다.
<라스트 게이머>의 성적은 출판 두 달 만에 300만 부를 찍은 후 살짝 내려와 있었는데, 현재까지 팔린 건 340만 부 정도.
장르가 SF인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마지막 마법사>와 비교하자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를 하게 된다는 게 알려지면 상황은 달라질 터.
<마지막 마법사> 정도야 당연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배는 더 팔리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작가님, 추가 대출을 원하신다고요?]
호텔에 도착한 이후 짐을 풀고 제이슨과 통화를 했다.
“네. 받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대출을 받고 싶은데요. 써밋 엔터나 윅슨 출판사, SW 프로덕션까지 모두 담보로 걸어서요. 물론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의 권리도 포함이고요.”
[…예? 그렇게나요?]
내 말에 순간 놀라는 기색이 통화 너머로도 느껴지는 제이슨.
[저, 혹시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꼭 군대에서나 들을 법한 극존칭의 의문문이 제이슨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입대가 다가와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어떤 말을 들어도 자꾸 군대랑 연결지어지는 느낌.
“아, 투자를 조금 해 보려고요.”
[그 많은 금액을요? 이미 기술주들에 투자하신 금액도 적지 않으신데… 음. 아닙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했군요. 어련히 작가님께서 알아서 결정하셨을 텐데.]
저번에 제이슨을 통해 내가 투자했던 IT 기술주들의 현재 평균 수익률이 30%를 넘고 나서부터일까.
언제부터인가 내게 투자 관련해서는 아무런 조언을 하지 않기 시작한 제이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제이슨마저도 순간 놀라 벙찔 정도.
뭐, 그럴 만한 일이기는 했다.
저것들 이외에도 제이슨이 알고 있는 내 자산에는 여러 IT 회사의 주식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몇 차례의 대출로 담보로 잡았던 상태.
즉, 나는 지금 내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땡기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상남자가 된 거 같군.’
회귀하기 전 기억이 떠오른다.
소설로 벌었던 돈에 신용 대출로 땡긴 돈까지 영끌 해서 개잡주에 박았던 상남자의 기억.
참으로 오랜만에 승부사의 피가 들끓었다.
‘물론 이번에는 배팅 확률 100% 승부사지만.’
“하하. 아무튼 그렇게 담보를 맡기면 대출금이 어느 정도나 나올까요?”
[우선 심사를 넣고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제 예상으로는 적어도 30억 달러 이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 그 정도나 되나요?”
[네. 써밋 엔터나 윅슨 출판사, SW 프로덕션까지 세 회사의 가치야 20억 달러 안팎이겠지만, 작가님의 소설에는 최소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미 <마지막 마법사>를 포함한 전작들로 벌어들인 수익이 10억 달러를 넘었는데.
제이슨은 앞으로도 그만한 돈을 추가로 더 벌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과대평가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 마법사>의 4부만 해도 출판 이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았는데.
그 기세가 지난 3부까지의 흥행보다 대단했을 정도였다.
[금액이 금액인 만큼 스탠다드 차타드에서 전부 소화하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대출이면 한 곳을 미리 정하기보다는 여러 은행과 동시에 협상하는 게 더 나을 거고요.]
“음. 뭐 제이슨이 알아서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저야 은행 쪽은 문외한이니.”
어쨌거나.
통화를 끝내고 관련 자료를 정리해 제이슨에게 보냈다.
이제 제이슨이 이 자료를 가지고 은행들과 협상에 나설 차례.
그가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해 오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 아니면 지금처럼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받는 관계로 남을지.
물론 내가 결정한다고 제이슨이 내 사람이 되는 건 아니고.
그 또한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면 대출금이 최소 30억 달러라는 건데…….’
누군가 그랬다.
시간은 금이라고.
그 의미가 나하고는 살짝 다르겠지만.
내게 시간은 금이 맞았다.
입대 전 반년 + 군대에서 보낼 1년 9개월.
27개월 동안 묵혀 놓을 투자 대상을 고르는 쇼핑 타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