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가기 싫다
정답! 입영 영장, 입영 영장입니다!
잘했습니다.
선우 어린이.
상으로 현역 입대를 선물로 드릴게요!
꼭 그런 대화가 머릿속에서 오가는 것 같았다.
“이게 뭔 개같은…….”
영장을 받아 들고,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욕을 뱉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입대라니… 아니, 내가 입대라니!
병무청 양반,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현역이라니!
부우욱-
그래도 혹시나 싶은 심정에.
병무청에서 보낸 우편 봉투를 뜯어 내용을 살펴봤는데.
[현역병 입영 통지서.]
그런 내 마음을 철저히 무시하는 글자가 안에 써 있었다.
심지어 입영 일시까지 적혀 있었으니.
[입영 일시: 2014년 02월 18일 (14:00)]
‘내년 2월…….’
기간으로 치면 4달 후.
일수로 따지면 120일 남짓.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코앞으로 입대가 다가온 기분이었다.
‘군대… 아니 2번이나 군대 가라는 건 너무하잖아.’
문득 떠오르는 2년간의 기억.
보급병으로 들어가 수입과 불출을 반복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군번이 잘 풀려 나름 꿀은 빨았다지만, 그래도 개고생했던 2년이었는데.
이번 생에서 그런 고생을 한 번 더 치러야 한다고?
‘면제는… 힘들겠지.’
그렇지 않아도 몇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 다 받은 정밀 건강검진이었는데.
뭐, 어디 문제 있는 거 찾아서 그거로 공익이라도 비벼 볼까 하는 마음도 살짝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행히도(?) 건강 그 자체라는 소견이 나왔었다.
“으으.”
군대를 억지로 뺄까 생각도 했었다.
왜, 돈 있는 사람들한테는 군대 빼는 것 정도야 쉬운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돈이라면 입대를 앞둔 사람 중에서 내가 제일 많을 거고.
어떻게 브로커를 수배해서 남들이 주는 돈보다 몇 배 더 많이 주면 발설 위험도 없고 깔끔할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던 게…….
-선우진 근데 군대 언제 가냐? 고졸이면 조만간 가야 하는 거 아님?
-ㅇㅇ 몇 달 내로 입영 영장 나올 수도 ㅋㅋㅋㅋㅋ
-와… 근데 선우진 군대 보내는 건 국가적 손해 아님? 국방부에서 알아서 면제 시켜 줘야지;;
└ㅇㅈ
└면제는 무슨; 뭐 돈 많이 벌면 면제 시켜 줘야 함? 그럼 재벌 아들들 다 군대 빼 주든가 ㅋㅋㅋ
└돈만 많이 버는 건 아니긴 하지… <마지막 마법사> 해외 인기 모름? 이 정도면 솔직히 국위 선양 수준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님. 뭐 국제 콩쿨이나 올림픽 메달처럼 예술 체육 요원 병역 특례도 있는데. 왜 문학은 없음?
└ㅋㅋㅋ노벨 문학상 받아 오면 ㅇㅈ
└그건 좀; 선우진이라도 노벨상은 에바지. 그건 순문학이잖아.
└ㅋㅋㅋ 근데 웬만한 국제 콩쿨급 판타지 문학상은 있긴 한데… 그건 면제 조건 아니긴 함.
└ㅇㅇ 그거라면 선우진도 받을 만함.
-법 바꿔야 하는 거 아님? 문학상도 예술 체육 분야에 포함시킬만 하지 않나?
└222222
└인정.
-솔직히 <마지막 마법사> 1억 5천만 부 팔렸던데 ㅋㅋㅋ 이 정도면 국위 선양 맞지 않냐?
└ㅈㄹ ㄴㄴ <마지막 마법사> 때문에 작중 배경인 루덴 대륙이 유명해진 거지 한국이 유명해지기라도 함? 심지어 영화 촬영지도 다 외국일 텐데.
-지금 운동 좀 잘한다고 면제시켜 주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굳이 더 늘려야 함? 나는 반대.
-뭔 또 면제냐? 돈 많이 벌고 외국에서 유명하면 면제시켜 줘야 함?
└선우진이 1년에 내는 세금이 얼만데… 면제시켜 줄 수도 있지.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간간이 나오는 내 군대 얘기.
이렇게 내 입대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면제를 놓고 서로 다투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음 같아서는 일부 댓글들처럼 장르 문학상에도 면제 혜택이 부여되도록 정치인들에게 샤바 샤바 하고는 싶지만.’
그러면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게 될 거다.
물론 반응들을 살펴보면 내가 면제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그 반대의 의견 중 굳이 따지자면 면제를 줘도 된다는 쪽이 살짝 더 많기는 했다.
5.5 대 4.5 정도.
하지만 나는 이게 진짜 여론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아이돌이나 연예인들 관련해 군대 얘기가 나올 때도 이런 경우가 많은데.
어떨 때는 이 정도면 면제 줘야지… 하다가도 다른 때에는 손바닥 뒤집듯 반응이 바뀌어서는 ‘돈으로 군대 뺐네, 어휴.’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게 바로 한국의 병역 문제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정말로 면제를 받게 된다거나 한다면, 지금처럼 5.5 대 4.5가 아니라 2 대 8 정도로 여론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
그럴듯한 면제 사유를 갖다 대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은 분명히 생길 거고, 그거로 꼬투리 잡는 사람도 분명 생길 거다.
‘억지로 군대를 빼려 했다가 걸리면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뻔하지.’
안 걸릴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내가 거짓으로 면제를 받았단 게 들켰을 때.
자칫하다가는 제2의 스티붕 유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안 그래도 국민 호감남으로 등극한 나인데.
호감이 클수록 반감이 더 커지는 법이다.
‘유 아 낫 웰컴, 우진 선.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거야.’
“씨발.”
분명 회귀하고 첫날.
절대 군대에 다시 가지 않을 거라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면 이제 군대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 * *
며칠을 밤새워 가며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가기는 무조건 가야 해.’
이번 생에도 ‘이병 선우진!’ 소리를 외치는 걸 피할 수는 없다는 것.
사실 합법적이면서도 정당하게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게 어디 없을까 열심히 찾아보기는 했는데.
…없더라.
하긴,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다들 그렇게 군대를 뺐을 거다.
‘그나마 말 타는 재능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비벼 볼 만하긴 했을 텐데.’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몇 년 후에 생기는 큰 논란의 주인공, 정 모 양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건 숫제 비싼 말 빨이라고 떠드는 글이었다.
타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
그 기억이 떠올라 승마 협회를 찾아 한번 말을 타 봤는데.
‘제대로 달리는 것도 힘들었지.’
몇 시간을 배워 봤는데도 도통 늘지 않았다.
기껏해야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게 전부.
그래도 혹시나 ‘몇 시간 만에 이 정도면 재능 있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승마를 가르쳐 주시던 강사분께 혹시 내 승마 재능이 어느 정도냐 물어보기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도 내 생각과 비슷하더라.
‘취미로 즐기시기엔 충분한 정도죠… 랬나.’
다음 날 허벅지 근육이 엄청나게 땡기던 터라 승마를 취미로 즐길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는 외국에서 한 50억짜리 말을 사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자는 계획을 파기했다.
사실 설령 승마에 재능이 있었더라도 주저했었을 거다.
괜히 말 타서 메달 따겠다고 하다가 괜히 그쪽과 얽혀 좋은 꼴 보지 못할까 봐.
어쨌든.
입대를 해야겠다고 결정은 내린 상태.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년 2월에 입대하는 건 무리였다.
‘면제나 공익으로 빠지는 건 불가능이라 치면, 일단은 입영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나.’
과거로 오기 전에도 군대를 꽤 늦게 갔었다.
배우로 데뷔해 보겠다고 계속 연기에 도전을 하던 때라, 소속사에서 알아서 연기 신청을 해 줬던 것.
그 탓에 결국 군대에 늦게 가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애들을 선임으로 모시며 살기는 했었지만…….
이번에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 정도는 군대를 연기해야 할 것 같았다.
당장 120일 뒤에 가기에는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스웜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기는 해도, 아직 국내와 중국 한정의 일.
우선은 최소 아시아권 전체로는 확대하고, 서구권 진출 발판 정도는 닦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아시아에서는 몰라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넷플릭스가 이미 진출해 있으니까. 경쟁을 넘어서 제대로 찍어 누르려면 준비가 꽤 필요하겠지.’
그 외에도 써밋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해서도 처리할 일이 산더미였다.
[써밋 엔터테인먼트, 블룸하우스 프로덕션과 배급 계약 체결?]
[트렌트 - 보스, 저번에 보고한 대로 블룸하우스 프로덕션과 배급 우선권 계약을 체결했어요. 기간은 앞으로 10년이에요.]
뭐, 그래도 대표직을 맡고 있는 트렌트가 나 없이도 알아서 잘 이끌어 나가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건 지금의 위치를 넘어 할리우드 6대 메이저 스튜디오에 들 정도로 써밋 엔터가 성장하는 것.
그걸 위해서는 내가 나서서 몇몇 대박작과 미리 계약을 맺는 게 필수였다.
“…….”
…라고 생각은 거창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다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벌려 놓은 사업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고 바로 입대해도 된다.
어차피 내가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씩 보고를 받고, 그에 따른 몇 가지 지시만 내리면 충분했다.
그 정도 일은 부대 안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어느 정도는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내 유명세가 유명세인 터라,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나는 전생보다 훨씬 더 꿀보직에 떨어지게 될 터.
사업과 관련해서 지시를 내리기에는 충분한 여유 시간이 있을 것이다.
‘혹시 알아서 꿀보직에 떨어지게 되지 않더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때는 백을 좀 써야겠지.
백으로 아예 군대를 빼 버리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야 나중에 대중에게 들켜도 이해해 줄 거라 본다.
물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병무청에서 신경 써 주겠지만.
뭐, 아무튼.
군대를 연기하려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냥 가기 싫으니까.’
가기 싫다.
그게 전부다.
뭐, 내가 가기 싫어서 미루겠다는데.
그냥 조금이라도 군인이 되는 시기를 미루고 싶은 거다.
120일 후에 가라니…….
일러도 너무 일렀다.
물론 그렇다고 1~2년 미뤘다가는 내가 벌려 놓은 그리고 벌릴 일들과 관련해서 시기가 엇갈릴 수 있으니, 내년에 입대를 하기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몇 달이나마 사회에 있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었다.
‘사실 회귀하고 나서 휴가다운 휴가를 가져 본 적도 없잖아?’
뭐, 1~2주 정도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닌다거나.
런던에서 휴식을 취한다거나 하기는 했다.
하지만 제대로 각 잡고 여행을 다니고, 슈퍼 리치들이 하는 것처럼 돈을 물 쓰듯이 쓰고 그런 적은 없었다.
군대 갈 생각을 하니, 그러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쉬워진 것.
생각해 보니 기껏 찾아온 두 번째 스무 살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떠올려 보면 대부분 글을 쓰거나, 사업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면서 지내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탁, 타닥-
본가에 있는 내 전용 작업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원래는 집에 온 이유도 느긋하게 쉬면서 신작도 좀 써 보려 했던 거였지.’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신작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마지막 마법사>의 4부를 집필하면서 떠오른 생각인데.
‘빅터 3세라는 캐릭터를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워.’
빅터 3세의 이야기를 써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 것.
<마지막 마법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기 그리고 제 모든 형제를 살해한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쓸까 했었다.
일종의 <마지막 마법사>의 외전이 되는 것.
탁… 타닥… 타다닥…….
‘그런데 전혀 써지지가 않네.’
기껏 노트북을 펴 집필을 시작해 봤지만.
몇 자 적지 못하고 금방 손가락이 멈췄다.
쓸 내용은 분명 무궁무진한데.
의욕이 솟아오르지가 않는다.
예전에 잠깐 느꼈던 슬럼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분.
글이 안 써지는 건 같았지만, 그때는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냥 쓰기가 싫었다.
“으아.”
물론,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 이유는 알고 있었다.
과거로 오기 전에도 한번 겪었던 한국 남자의 고질병.
바로 입대 전 무기력증.
…군대 가기 싫다.
진짜,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