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런던의 거리
안토니 마샬이나 버질 반 다이크의 원 구단인 맨유와 리버풀은 원체 돈 많은 빅 클럽들인 만큼 저 둘이 없더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제이미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가 없을 레스터 시티는…….
‘어쩌면 레스터의 동화가 이번에는 없을 지도 모르겠어.’
으음.
조금 미안하긴 하네.
아마 미래의 레스터 팬이 본다면 날 죽이려 들지 않을까?
레스터가 15-16 시즌에 써내려 갔던 동화 같은 우승 스토리.
사실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나도 그때의 레스터가 써내려 간 이야기를 재밌게 봤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축구팬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지 않을까.
물론 그 당시 2위로 우승컵을 얻지 못한 아스날 팬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무튼, 뭐 어쩌겠나.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래도 레스터가 썼을 동화를 크리스탈 팰리스도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다.
[크리스탈 팰리스, 이안 할로웨이 감독 경질. 새로 지휘봉을 잡게 될 감독은 마르셀로 비엘사.]
-오, 비엘사가 내가 아는 그 비엘사인가?
└맞아. 아르헨티나랑 칠레 감독을 맡았던 그 양반
-구단주가 처음으로 제대로 일을 해냈군! 비엘사면 할로웨이보다 몇 수는 더 대단한 감독이지!
-게다가 그는 화끈한 공격 축구를 추구하는 양반이야… 그래도 이번 시즌 경기 볼 맛은 좋겠어.
└과연 그럴까? 우리의 쓰리 톱이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세 놈으로 교체됐다는 걸 잊지 말라고
└Bugger…….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 또한 새롭게 바뀌었다.
이것 또한 내 의지로 이뤄진 일이었는데.
물론 할로웨이 감독 또한 흔쾌히 동의한 일이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도중 해약 위약금에 더해서, 위로금 느낌으로 위약금을 추가 지급했기에.
그래도 감독 교체 건은 팬들이 꽤 좋아하더라.
비록 이안 할로웨이가 크리스탈 팰리스를 프리미어리그로 복귀시킨 감독이기는 했지만, 팬들한테도 할로웨이 감독의 1부 리그에서의 능력에는 미지수가 있었던 것.
사실, 할로웨이는 하위 리그의 팀을 상위 리그로 보내 주는 데에 특화된 승격전도사였지.
1부 리그에서는 자신을 증명하는 데에 여러 번 실패했던 감독이었다.
그런 만큼 팬들의 반응이 이랬던 것.
게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이가 비엘사 감독이라는 것도 있었다.
‘비엘사 감독은 전술적 능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장 중 한 명이니까.’
특히 화끈한 공격 축구로 유명한 감독.
이번에 영입한 공격진의 퀄리티가 뛰어난 만큼, 비엘사 감독이라면 저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터였다.
사실 이번에 비엘사 감독을 크팰로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도 꽤 천운이 따른 결과였다.
마침 몇 주 전, 그가 원래 감독직을 맡고 있던 아틀레틱 빌바오 구단과의 계약이 종료됐던 것.
덕분에 그의 명성 대비 적은 주급과 계약금으로 그를 데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제가 영입 지시한 선수들은 어떤 거 같아요?”
“흠.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네요. 좋습니다, 좋아요. 모두 훌륭한 퀄리티의 선수들이더군요. 괜히 구단주님이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어요.”
뚱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하는 비엘사 감독.
이번에 내가 영입한 선수 중에는 사실 그가 반대한 자원들도 있었는데.
‘리야드 마레즈와 제이미 바디가 그랬지.’
마레즈는 뛰던 리그의 수준이 너무 낮단 이유로.
바디는 지난 시즌 챔피언십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가 너무 별로였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적 후 살펴본 실력은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
“하하. 다행이네요.”
“거, 좋은 선수 또 있으면 또 추천이나 해 주시든가. 흠흠.”
툴툴거리는 말투로 그렇게 덧붙이는 비엘사 감독.
분명 내가 무조건 이 선수들을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에는 내게 불만 어린 눈빛을 잔뜩 쏴 댔었는데…….
확실히 바디와 마레즈의 실력이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중년 츤데레는 좀 오반데.’
* * *
최근 연속된 흥행으로 할리우드 최대 주가를 달리는 제작사가 된 써밋 엔터테인먼트.
위플래쉬의 성공에 이어서 존 윅, 다이버전트까지 3연타에 성공한 그들이었다.
물론 세 영화 모두 초대박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작비의 두 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데에 성공한 흥행작들.
게다가 배급만을 따로 맡았던 봉 감독의 신작도 미국에서 상당한 흥행 수익을 기록했으니.
이렇게 연속으로 모든 작품을 성공시키는 건 오랜 할리우드의 역사에도 그리 흔치 않았다.
“좋아, 회의 시작하자고.”
그런 써밋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열띤 사전 제작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우선 가장 중요한 건 배우 캐스팅이야. 잭슨 감독의 의견은 무조건 오디션이랬지?”
“예. 배우들의 기존 명성 상관없이 모두 자신이 직접 뽑고 싶다더군요.”
바로 써밋 엔터테인먼트의 최우선 과제인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 제작을 위한 회의였다.
써밋 엔터테인먼트의 최우선 과제이자 최대 과제.
그런 만큼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열의도 대단했다.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성과 안윅(Alnwick) 성은 이미 촬영 협조가 끝났어요. 답사도 이미 마쳤고요. 단,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넣어 주는 조건으로요.”
“메인 촬영 장소는 뉴질랜드로 정해진 거죠?”
“확정은 아니지만 일단은. <마지막 마법사>의 분위기를 제대로 나타낼 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으니까. 특히 4권에서 나오는 마법사의 산, 거기와 찰떡인 곳은 뉴질랜드밖에 없어.”
“뉴질랜드 관광청에서도 별도로 연락이 왔어요, 촬영에 모두 협조해 주겠다고. 문제는 워너 브라더스 쪽인데…….”
“거긴 어쩔 수 없어. 포기하자고.”
제작 회의에서 반지의 제왕과 호빗 촬영에 쓰였던 촬영지를 <마지막 마법사> 촬영에도 활용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었지만.
그건 워너 브라더스 측의 거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선우진과 워너 브라더스 간의 갈등은 써밋 엔터테인먼트 직원들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었던 건데.
곧바로 거절의 대답이 돌아왔던 것.
“그리고 제작비 건은…….”
“이건 뭐 보스께서 이미 결정하셨지. 3억 1,000만 달러. 휘유- 어마어마하군.”
“저희가 할리우드의 새 역사를 쓰는 거죠.”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 제작을 위해 산정된 총제작비는 무려 3억 1,000만 달러.
기존 역대 1위 제작비 기록을 세웠던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천만 달러 차이로 넘길 만큼 막대한 금액이었다.
물론, 천만 달러 차이는 의도한 것.
영화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됐냐가 하나의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별다른 홍보 자료를 뿌리지 않더라도, 역대 1위의 영화 제작비를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기사가 절로 생산될 터였다.
* * *
조만간 있을 EPL 13/14 시즌의 개막전.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경기가 예정되어 있는데.
구단주인 만큼 개막전까지 본 이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가 구단주라는 건 개막전이 있기 하루 전 밝힐 예정이었고.
‘반응이 어떠려나.’
내 작품의 영국 매출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라는 작가가 영국에서도 유명세가 꽤 되는 것 같은데.
그런 내가 구단주라는 걸 팬들이 좋아할는지 싫어할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 작품 팬층이 겹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뭐, 아무튼.
호텔에 누워서 <마지막 마법사> 관련 기사들을 살폈다.
[써밋 엔터, <마지막 마법사> 영화 제작을 위해 최대 3억 1천만 달러 규모의 제작비 투입.]
[총 3억 달러였던 캐리비안의 해적을 넘어서며 역대 1위의 영화 제작비! 선우진의 도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계 최대 제작비 <마지막 마법사>가 왔다!]
3억 1,000만 달러.
회귀하고 나서 가장 큰돈을 쓰는 경우가 아닐까.
물론 이만큼 쓴 것 이상으로 더 큰 수익을 벌어들일 자신이 있는 거니, 저만한 돈을 투자한 거긴 하지만.
‘살짝 속이 쓰리긴 하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 요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요즘 돈만 계속 나가는 것 같은 탓이었다.
사실 며칠 후에도 수백억 원 정도를 쓸 일이 있었다.
‘구단주가 된 만큼 런던에 올 일도 많을 테니까.’
런던 켄싱턴 가든.
그곳에 위치한 저택 하나를 계약하기로 했다.
가격은 무려 4,000만 파운드(약 650억 원) 정도나 됐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저택이라 그런가, 때깔이 참 곱더라.
사실 크리스탈 팰리스를 산 게 제일 큰 사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사치를 부려 보기로 했다.
나도 수조 원대의 부자인데, 호화 저택 하나 가져 봐야지.
‘호텔 생활이 불편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그나마 덜하지만.
이렇게 외국에 나올 때는 경호원들을 꽤 많이 대동하고 다녔다.
그 탓에 이렇게 호텔에 묵을 때면 경호 관련해서 가끔 문제가 생기기도 했으니.
개인 저택이 필수적이기는 했다.
어차피 집은 있어야 했으니, 이왕 살 때 최대한 마음에 드는 집으로 고른 것.
아. 그리고 그 옆 옆집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살더라.
바로 그 첼시의 구단주.
‘이웃에 살다 보면 오다가다 마주칠 일도 있으려나.’
되도록이면 크리스탈 팰리스의 순위가 첼시보다 높아졌을 때 마주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첫 만남부터 면이 좀 살지.
쏴아아아아-
호텔을 나와 런던 구경을 시작했는데, 첫날의 우중충한 날씨가 더욱 심해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점이 즐비한 거리.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 마법사>의 광고가 여럿 보였다.
“이 책, 재밌나요?”
“그럼요! 요즘 최고 인기작이죠. 아, 시리즈로 나온 소설이라 1부는 저쪽에 있어요.”
“그래요? 점원분도 읽어 보셨어요?”
“당연하죠! 어젯밤에도 밤새 읽느라 오늘 일하러 오는 것도 늦을 뻔했는걸요.”
이렇게 괜히 서점에 들어가 <마지막 마법사>의 인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마지막 마법사>의 장점은 우선 글의 분위기예요. 첫 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바로 글에 몰입하게 되는데…….”
사실 물어보기만 하고 사지 않고 나가려 했었다.
그런데 점원분이 신나서 <마지막 마법사>가 얼마나 재밌는지 내게 설명을 해 주시기 시작했다.
독자에게 직접 듣는 <마지막 마법사>의 장점이라.
왠지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은 경험.
그렇게 조용히 살짝은 부끄러운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어? 잠시, 잠시만요.”
“……?”
“그, 혹시 모자 좀 조금 위로 해 주시겠어요?”
도중에 점원이 내 얼굴을 알아봤다.
다행히 주위를 둘러보니 서점에 있는 손님은 나 혼자.
‘마스크를 썼는데도 알아보네.’
아무래도 외국인 만큼 한국처럼 중무장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자만 쓰고 돌아다녔었다.
그렇게만 하고 다녀도 지금껏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내 소설을 매일 다루는 서점 점원에게는 아닌 얘기였나 보다.
“런던에는 관광 오신 거예요?”
“음. 비슷해요. 축구 경기를 보러 왔죠.”
“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요? 거기에서 뛰는 지가 작가님과 같은 나라에서 왔잖아요.”
“아뇨.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요.”
사진과 함께 책에 사인을 해 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를 보러 왔다고 하니, 놀란 표정을 짓는 점원.
“와우! 저도 이글스인데! 작가님도 이글스셨다고요? 동양인이 크리스탈 팰리스를 응원하는 건 처음 봐요.”
“하하. 좋은 팀이잖아요.”
이글스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의 애칭.
서점에 와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크팰의 팬이라니.
꽤나 특이한 경험이었다.
‘비가 오는 날의 런던은 꽤 묘한 매력이 있네.’
런던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든 생각.
괜히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모두 탄생한 나라가 아닌 걸까.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날씨는 어둡지만… 전혀 우울하지 않아. 내가 <마지막 마법사>의 4부에서 그려야 할 분위기도 이런 분위기여야겠지.’
다시 촉발되는 대전쟁.
그 속에 있을 혈투.
영웅들의 희생과 죽음, 그에 따른 절망.
하지만 그 끝에는 결국 희망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모든 소설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마지막 마법사>를 통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기에.
‘글을… 써야겠어.’
“근처에 차 있죠? 호텔로 바로 돌아가죠.”
살짝 멀리서 뒤를 따르던 경호팀장에게 가서 말했다.
그러자 몇 분 지나지 않아 내 앞으로 오는 차량.
‘오늘은 밤을 새우게 되겠네.’
내일 일정이 따로 없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