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대박 흥행
무대 인사가 끝나고.
렌샤오의 요청으로 후싱루이의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려고 하고 있는데.
‘…음.’
과거로 오기 전부터 쭉 작가로 살아왔던 터라.
내 사회 경험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남들보다 확실히 낫다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은 귀신같이 잘 알아보지.’
타고난 외모 덕에 어릴 때부터 남들의 호의를 쉽게 사던 편이라 자연스레 길러진 능력.
그리고 그런 내 촉으로 판단하자면…….
“하하. 이거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저희 선전시의 자랑인 텐센트와 선우 작가님의 합작이라니.”
이 후싱루이라는 광둥성 서기라는 양반은 내게 무척이나 호의적인 게 틀림없다.
게다가 별다른 정치적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고.
사실 광둥성 서기 정도 되는 사람이 외국인 작가에게 뭐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아까 몰래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광둥성 서기가 어느 정도인지 검색하고 왔는데.
괜히 렌샤오가 놀라 자빠졌던 게 아니더라.
‘광둥성 인구가 1억 명이 넘는다던데. 거기 서열 1~2위쯤 된다는 거잖아.’
행정을 맡는 성장(省長)이 있지만, 성장은 당 부서기이기 때문에 성 최고 권력자는 당서기란다.
지역 공산당의 책임자인 위치.
물론 여기서 내 사상 검증을 하자면, 당연히 나는 공산주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뭐가 됐든, 결국 내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 최고인 법.
“왜, 운남성에 있는 천룡팔부의 촬영지도 무협인들의 성지로 기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종의 테마파크 역할도 하고 있고요. 제가 예전부터 저희 광둥성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한번 추진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행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오오. 정확하시군요. 실제로 저희 텐센트에서도 이번 검객무쌍 촬영지를 관광 명소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세트장 이외에도 작품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여러 모형을 만들 생각이고요. 호텔, 비즈니스 센터, 온천 등도 들어서게 할 생각입니다.”
“오, 그런가요? 텐센트가 확실히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군요.”
렌샤오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미쳤다고 당서기 앞에서 그냥 빈말을 뱉겠나.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이미 나와 렌샤오가 논의했던 사항이었다.
전부터 텐센트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던 사업의 일환이었던 것.
그래도 그때는 논의 단계에 불과했었는데, 후싱루이 앞에서 저렇게 말을 꺼낸 걸 보면 확실하게 추진하려는 듯했다.
‘테마파크 사업이라.’
그런 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테마파크를 만들게 된다면 당연히 <마지막 마법사>일 거라 생각했지, 칼넘강으로 만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나야 가만히 누워서 떨어지는 떡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니.
나야 좋은 일이었다.
세부적인 건 나중에 논의해 봐야겠지만, 지금껏 텐센트가 내게 보여 준 태도를 보면 꽤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후싱루이 당서기]
어쩌다 보니 중국 권력자의 개인 번호도 알게 됐다.
이 아저씨도 재밌는 게 영화가 끝나고 기립 박수까지 치더라.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다 따라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치고.
으음. 좀 무섭기까지 한 광경이긴 했다.
뭐, 그건 넘어가고.
‘조만간 한국에 온다 이거지?’
무슨무슨 시하고 투자 유치 협약을 논의 중이라면서.
경제사절단과 함께 방한 일정이 잡혀 있다던데, 그때 꼭 식사를 함께하자더라.
지금은 원래 예정된 스케쥴이 있어 함께하지 못 하니 아쉽다면서 말이다.
예정된 일정이 있는데 영화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걸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거려나.
* * *
개봉 행사 일정이 끝나고 며칠 뒤, 한국에 돌아와서도 쭉 반응을 살펴봤는데.
중국 내에서 검객무쌍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꽤 많은 상영관에서 개봉을 했는데도, 매일같이 매진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
[선우진, 또 한 번 성공하다? 중국에서 일주일 만에 관객 수 1,000만 명을 기록한 검객무쌍!]
[검객무쌍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칼잡이가 너무 강함, 대흥행 조짐?!]
[선우진이 이번 영화를 통해 벌게 될 수익은? 최소 100억 원 이상!]
이럴 때마다 대륙의 스케일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게.
관객수의 수준이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대흥행 영화로 취급받는 천만 명이라는 관객 수가, 중국에서는 그저 그런 영화가 기록하는 관객 수인 것.
실제로 검객무쌍 또한 개봉 일주일 만에 1,000만 명을 넘겨 버렸다.
흥행 수익만 벌써 3억 위안(한화로 약 550억 원)에 달할 정도.
게다가 일주일이 지났다고 기세가 줄어들거나 하지도 않고 있어, 제작사 측에서는 최종적으로 5,000만 명 이상 가는 관객 수를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흥행 수익이 2,500억 원 이상이 되는 것.
거기서 내 몫으로 떨어지게 될 금액은 기사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몇 배 더 많았다.
‘거기에 검객무쌍이 한 편으로 끝나지도 않을 거고.’
이번의 흥행으로 텐센트와 검객무쌍 관련해서 추가 계약을 맺었다.
영화 2편을 추가적으로 더 제작한다고 한 것.
애초에 이번 검객무쌍 영화는 장편 시리즈인 칼넘강의 내용 중 한 에피소드만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었는데, 이후 내용 중 영화로 쓸 만한 부분을 추가적으로 제작하기로 한 것이었다.
-검객무쌍이 그렇게 재밌나? 소설은 재밌게 보기는 했는데… 한국에는 개봉 안 하려나?
-일단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은 없음. 아무래도 짱X 영화라 다들 꺼리나 봄.
└ㅋㅋㅋㅋㅋ그건 사실 나도 꺼려지긴 함… 칼넘강 ㄹㅇ 전권 소장할 정도로 팬인데,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는 한 편도 손 안 댐; 그것도 인기 엄청 많았다던데…….
-본 사람 있으면 후기 좀.
└나 중국 사는데 어제 보고 옴. 나도 짱 영화들 싫어하는데, 이건 괜찮더라. 별로 중국 냄새 안 남.
└ㅇㅇ 나도 동의. 드라마는 확실히 중국 향기 ㅈㄴ 났거든? 근데 영화는 말만 중국어다 뿐이지 연출은 별로 안 그럼.
└기사 보니까 감독도 해외파 중국인이더만 ㅋㅋㅋ CG 팀도 한국 회사고. 아마 선우진이 신경 좀 썼나 봄.
-댓글들 보니까 한번 보고 싶어지네… 한국에 안 들어오려나?
└스웜인가 뭐시긴가 조만간 나온다며? 거기서 볼 수 있을 듯?
└그것도 요새 광고 엄청 때리던데… 예고편 나오는 거 보면 확실히 다 재밌을 거 같긴 하더라.
검객무쌍 영화의 흥행으로 한국에서도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덕에 자연스레 스웜의 홍보도 되고 있었다.
실제로 영화 흥행 소식이 퍼지고 스웜의 검색량이 30% 정도 늘었다고 하더라.
어쨌든.
‘텐센트와 이래저래 엮일 일이 많아졌네.’
영화 제작 말고도 텐센트와 함께 진행하는 사업들이 더 있었다.
일단 후싱루이가 언급했던 테마파크 사업.
그것 또한 텐센트가 보유한 제작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꽤 수익성이 있어 보여 내가 직접 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바이트댄스를 사들였던 것처럼 IT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관광사업처럼 중국과 깊게 엮이는 사업을 한다는 게 뭔가 모르게 꺼려져서 그냥 수익 쉐어만 받기로 했다.
그리고 텐센트와 함께하는 사업은 또 하나 있었는데.
[선우진의 검객무쌍, 게임으로 제작될 예정! 게임사는 리엇 게임즈!]
[레전드 오브 레전드(LOL)에 이어 리엇 게임즈의 새 게임이 나온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선우진의 칼넘강!]
바로 검객무쌍을 중국 내에서 게임으로도 출시하게 된 것.
제작을 맡은 게임사는 무려 엘오엘의 그 리엇 게임즈였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알고 보니 리엇 게임즈는 한참 전부터 텐센트의 회사였다고 한다.
애초에 엘오엘의 제작부터 텐센트의 투자를 통해 이뤄졌던 것.
심지어 이미 텐센트가 확보한 리엇 게임즈의 지분이 93%가 넘었는데, 남은 7%도 1~2년 내로 텐센트가 전부 인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계획은 조금 달라지게 됐는데.
‘남은 7%는 내가 인수하게 됐지. 그리고 거기에 텐센트가 갖고 있던 13%를 더해서 총 20%.’
이번에 검객무쌍을 게임화하게 되면서 리엇 게임즈의 지분 중 상당수를 내가 취득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엘오엘 K-POP 그룹 센터에 중국 캐릭터가 들어올 일은 없다.’
그러려고 한다면 강력하게 항의할 생각.
비록 20%의 지분뿐이지만, 모그룹인 텐센트와 내 우호적 관계를 생각하면 발언권은 그 이상일 거다.
‘텐센트와 여러 관계로 엮여서 나쁠 건 없지.’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그런 중국에서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인 텐센트와의 관계는 좋을수록 좋은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여의도.
김병원 의원의 의원실.
“자네, 내가 저번에 말한 건은 다 처리했나?”
김병원 의원이 뚱한 표정으로 제 비서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비서관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목적어 없이 묻는 건 김병원 의원의 오랜 습관.
여기서 단번에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떠올리지 못하면 곧바로 타박이 시작될 터.
아니나 다를까.
“쯧.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그 왜 선우진, 그놈 말이야. 공무원들한테 전달해서 그 작가가 한다는 사업에 위법 사항 같은 거 없는지 철저하게 검사하라고 전달했냐고. 어? 세무조사도 좀 하고 말이야.”
“…아, 예. 관련 공무원들에게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자네는 항상 이게 문제야. 한번 말하면 바로 척 하고 알아들어야지, 꼭 설명을 해 줘야 하나?”
김병원 의원의 호통이 이어졌다.
짜증 가득한 김병원 의원의 표정.
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비서관의 굼뜬 모습이지만, 선우진 생각을 하니 더욱 짜증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 통화로 자존심을 단단히 구긴 그였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이후로 그런 굴욕은 처음.
통화가 끝나고 나서 분을 견디지 못하고 책상 위 물건들을 마구 던져 댔을 정도였다.
‘어린놈의 새끼가 말이야.’
사실, 마음 같아서는 공무원 몇 명 보내서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비서관들의 만류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선우진이란 놈의 인기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책 팔아서 운 좋게 돈 좀 번 작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조금 번 수준이 아니라고 극구 만류하더라.
이야기를 들어 보니 미국에서는 아예 연 매출 수억 달러짜리 출판사를 인수해 운영 중이고, 웬 미국의 영화 제작사까지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거기에 방송 쪽에서도 이름을 알려 개인 팬 카페까지 있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괜히 제대로 건들였다가 벌집 쑤시는 꼴이 될 테니,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 위안 삼아야지.’
자칫하다가는 선우진이 제 인기를 활용해 자신을 저격하거나 할 수도 있는 노릇.
그렇게 되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4선이 힘들어질지도 몰랐다.
결국, 김병원 의원이 택한 건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복수하는 것.
이렇게 되면 선우진 측에서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원래 공무원이 위법 사항이 있는지를 조사한다거나, 세무조사를 받는다거나 하는 건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공무였으니까.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녀석이 뭐 그거 가지고 불평이라도 하겠어?’
물론 그저 이렇게 조금 귀찮게 하는 것에서 끝내야 한다는 게 여전히 분통 터지기는 했다.
그래도 질로 안 되면 양으로 승부 보라고.
속 좁기로 유명한 김병원 의원은 이번 한 번에서 끝내지 않고 자신의 임기 내내 선우진을 괴롭힐 생각이었다.
“흐흐.”
그런 생각을 하니, 그제야 조금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의원님!”
“……?”
“양형필 의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음?! 양 의원님이? 어쩐 일로……?”
다급히 들어온 비서관의 말에 놀란 김병원 의원이 양형필 의원을 맞이할 채비를 했다.
양형필 의원은 5선 이상의 원로급 의원.
당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김병원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자네! 미쳤나?!”
“…예?”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겐가? 나와 지금 싸우자는 거야? 어?!”
그런 양형필 의원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병원 의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