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검객무쌍 개봉
몇 시간 전.
여의도 한 국회의원실.
“자네 말이 진짜인가? 그게 그렇게 돈이 된다고?”
“예. 여기 기사를 보십쇼. 뉴질랜드 여행에는 아예 반지의 제왕 관광 패키지가 있을 정도랍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촬영지를 구경하겠다고 엄청나게 찾아오니까요.”
“허어. 영화 촬영지 하나 있는 게 전부인 시골 도시가… 한 해에 관광객이 이만큼이나?”
김병원이라는 이름의 국회의원이 제 보좌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주제는 뉴질랜드의 반지의 제왕 촬영지.
우연히 최근 호빗의 개봉으로 다시 뜨고 있는 뉴질랜드의 영화 촬영지 기사를 보고, 자신의 보좌관에게 관련해서 질문을 하고 있던 것.
“으흠. 그래. 그렇단 말이지.”
보좌관의 얘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김병원 의원.
그는 저번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하며 이제 중진 취급을 받기 시작한 국회의원이었는데.
지난 총선의 결과가 꽤 아슬아슬했던 탓에, 다음 총선에서는 4선에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사실 3~4선 때가 국회의원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시기인 게, 이쯤 되면 지역 주민들이 슬슬 피로감과 식상함을 호소하기 시작할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다음 총선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이 좋아할 무언가를 유치시킨다거나 하는 성과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 줄 거리가 하나 필요했는데 말이야.’
반지의 제왕 촬영지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니,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오른 것.
마침 그가 속한 상임위원회가 교육위기도 했다.
각종 문화 시설 관련 예산을 지역구에 유치하는 권한을 가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생각을 끝마친 김병원 의원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 지역구에도 이런 게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유권자들한테 어필도 좀 하고 말이야.”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한번 영화 제작사들에 연락을 돌려 볼까요? 촬영 들어가는 영화 있냐고 물어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보좌관.
하지만 김병원 의원이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냐는 듯 보좌관을 바라보며 타박했다.
“에라이, 이 친구야. 요즘 주민들이 얼마나 머리가 굵어졌는데, 겨우 영화 한두 개 촬영한다고 그 정도로 좋아하겠나? 찍으려면 제대로 된 거를 찍어야지. 거, <마지막 마법사>인가? 그 정도는 돼야지 않겠어?”
정치 빼고는 세상사에 그리 관심없는 이들이 국회의원이라지만.
<마지막 마법사>라는 소설은 김병원 의원 또한 알고 있었다.
물론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고, 그런 베스트셀러가 있는데 조만간 영화화가 된다 정도.
김병원 의원의 얘기를 들은 보좌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마지막 마법사>요?”
“그래. 그게 뭐 한국의 반지의 제왕인가 그렇다며?”
“…어, 음.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시리즈 전체 합쳐서 1억 부나 팔린 소설이니까요.”
보좌관의 말을 들은 김병원이 입을 떡 벌렸다.
1억 부라니.
유명한 소설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
“뭐? 1억 부? 1억 권이나 팔렸다고?”
“예. 그렇습니다.”
“허어. 그러면 대체 그게 돈이 얼마야. 작가가 엄청 어리지 않아?”
“맞습니다. 스무 살에 큰돈을 번 거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하! 세상 참 좋아졌군. 글 좀 쓴다고 그만한 돈을 벌고 말이야.”
한 부당 1,000원만 쳐도 그게 얼마인가.
자신은 선대로부터 내려져 온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국회의원이 된 이후로도 고작 두 배 불리는 것에 그쳤는데.
고작 글 하나 잘 쓰는 놈이 그만한 떼돈을 벌었다는 걸 들으니, 갑자기 짜증이 치솟는 김병원 의원이었다.
“쯧. 아무튼 그 작가 연락처 한번 알아와 보게.”
“선우진 작가 연락처요?”
“그래. 연락해서 한번 얘기 좀 나눠 봐야겠어. 왜, 우리 지역구에서 그 작가 작품을 찍으면 서로 얼마나 좋겠나? 우리야 관광 자원이 생겨서 좋고, 선우진 작가는 지역 경제 활성화 빌미로 이것저것 지원금 타 내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나?”
* * *
“예. 전화받았습니다.”
“하하. 선우진 작가님 되시죠? 반갑습니다. 나 김병원입니다.”
김병원이라.
내가 아는 사람인가 잠깐 고민해 봤지만…….
당연히 알 리가 없다.
정치에는 원래 관심이 없는 터라.
탁, 타다닥-
통화를 하면서 노트북으로 김병원이라는 이름을 쳐 봤다.
그러자 뜨는 반 대머리의 중년 남성.
아래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이라 적힌 게 보였다.
‘…문화?’
그나마 나와 관련된 걸 찾자면 저 단어인데.
왠지 모르게 드는 이 불안감의 정체는 뭘까.
‘정치랑 관련되는 건 질색인데.’
완전히 질색인 건 아니고.
미국 정치랑은 관련될 생각이 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고 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로비 행위가 합법인지라.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정치 쪽과 관련될 일이 많더라.
내게 온다던 수많은 자선 파티 초대장 중에서도 정치인들이 주최하는 모금 파티들이 많았다.
말이 자선 파티지, 기업가들 보고 와서 돈 달라는 거다.
뭐, 그런 건 굳이 내가 참석하지는 않고 있지만, 나 대신 미국 내 법인에서 고용한 로비스트가 내 이름을 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을 거다.
특히 지금은 오바마 성님이 집권하실 때라 미 민주당에 줄을 대고 있었다.
‘조만간 갈아타긴 해야겠지만.’
3년 후면 있을 미국 대선.
거기서 웬 미친 양반이 한 명 등장해 예상외의 당선을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현재는 기업가인지라 몰래 연을 놓을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부동산 기업을 운영 중인데, 거기 부동산을 몇 개 사 뒀다.
다음 미 대선이 오기 전에 몇 개 더 사 두고, 대선 때 후원도 할 생각이었다.
뭐 그렇다고 엄청 관여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게 피해만 안 끼치도록
아무튼.
“예. 김병원 의원님. 그런데 저는 어쩐 일로 찾으셨죠? 보니까 제가 사는 곳 의원님도 아니신데?”
“허허. 제가 작가님께 긴밀히 제안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제안이요?”
“예…….”
김병원 의원의 말은 이랬다.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인남시.
그 인남시에서 <마지막 마법사> 촬영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다.
자기가 소설을 읽어 봤는데 인남시의 자연 경관과 소설에 묘사된 장소들의 모습이 비슷하다며 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끼지 않고 여러 지원을 해 주겠다며 말이다.
자신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상임위원이라며, 관련 예산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소리도 하더라.
…음.
그래서 김병원 의원의 설명을 들은 후 내가 내린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로는 <마지막 마법사>를 읽어 봤다고 하지만.
거짓말인 게 틀림없다.
탁, 타다닥-
구글에 인남시를 쳐서 이미지를 봤다.
그러자 보이는 인남시의 풍경.
뭐, 자연 경관이 퍽 아름답기는 했다.
산도 있고,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고, 영화 촬영하기 딱 좋긴 하겠네.
<마지막 마법사> 말고, <마지막 도사> 이런 게 있다면 말이다.
꼭 동양 산수화 같은 풍경.
어느 모로 보나 <마지막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예?”
“우선 영화 촬영지 같은 경우는 제 소관이 아니라 영화 감독이 결정할 부분이기도 하고, 국내 촬영은 또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서요. 그리고 주신다는 지원도 제게 필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허어. 조금 찾아보니 이것저것 사업도 하고 계시던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이거 혹시 협박인가요?”
“…….”
대놓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거 진짜로 방금 나 협박했던 건가?
‘국회의원 빌런은… 좀 새롭네.’
잠깐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3선 국회의원 정도면 어느 정도 힘을 가진 거지?
여기서 내가 지랄하면 앞으로 내 일에 있어서 큰 지장이 생기려나?
몇 초 남짓한 시간 끝에, 내 머릿속 알파고가 계산을 끝냈다.
‘별 지장 없을 거 같은데?’
* * *
사소한 일이 하나 있었지만.
우선은 제쳐 두고 일에 집중했다.
[베스트셀러의 신화를 이어 가고 있는 <마지막 마법사>.]
[선우, 또 한 번 판타지 소설계의 새 역사를 쓰다. <마지막 마법사> 3부, 최단 기간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달성한 소설에 등극!]
[1, 2부가 전쟁 속 영웅들을 다룬 서사시였다면, 3부는 그 영웅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 준다.]
<마지막 마법사>의 3부는 1, 2부 때의 판매 속도를 뛰어넘고 있었다.
덕분에 내 계좌에는 차곡차곡 인세가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지.’
최근 큰돈을 쓰게 된 곳이 있는데.
이제 곧 론칭을 앞두고 있는 스웜이 바로 그것이었다.
[SW 프로덕션,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를 인수… 금액은 비공개.]
[영화, 드라마 및 예능 콘텐츠들의 판권을 사들이고 있는 SW 프로덕션.]
우주남과 프런트의 사전 제작이 끝나기까지 몇 주 남지 않은 만큼.
플랫폼의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것.
“한 달 이용 요금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넷플릭스가 현재 5.99달러니 국내 물가를 고려했을 때 5,000원이 어떨까요?”
회사 내에서는 론칭 준비를 위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 무료 정책으로 가죠. 아직 구독 경제라는 개념이 국내 소비자들한테 익숙하지는 않으니까요.”
넷플릭스도 사용하고 있는 무료 프로모션 방식.
스웜 또한 그 방식을 차용하기로 했다.
가입자 유치를 위한 전략.
아직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기 전인 터라,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꽤 신기한 방식일 거다.
‘지금도 OTT 플랫폼이 있긴 하지만, 구독 경제가 아니라 VOD별로 유료 결제 하는 시스템이니까.’
회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풀리는 콘텐츠들도 있지만, 그건 대부분이 인기가 없는 옛날 작품.
반면 스웜은 모든 콘텐츠가 구독자들에게 무료 제공되는 시스템이었다.
그 탓에 ‘기껏 비싼 돈 주고 방송사나 영화사들한테 콘텐츠를 사 놓고는 전부 무료료 풀다니 제정신이냐’라는 소리를 듣고 있기는 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콘텐츠 확보에 들어가는 비용이 컸던 만큼, 구독료로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던 것.
‘하지만 결국 승리하게 되는 건 이런 구독형 플랫폼들이니까.’
미래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
많은 이용자 수만 확보한다면, 결국 흑자로 돌아서게 돼 있다.
게다가 나에게는 스웜의 흑자 전환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왜냐.
‘중국 인구가 13억이 넘지 않나?’
그중 10분의 1만 스웜을 구독해도 1억 3,000만 명이다.
내가 기억하는 넷플릭스의 최대 가입자수가 2억 명 남짓이었는데.
그 가입자 수의 반을 채울 수 있는 거다.
아무튼.
내가 중국의 인구 얘기를 왜 꺼낸 거냐면.
[렌샤오 – 작가님, 검객무쌍의 내부 시사회 일정이 잡혔습니다.]
드디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벌써라고 해야 할지.
조만간 중국에서 검객무쌍이 개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마법사>보다 검객무쌍을 영화로 먼저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내 소설 중 검객무쌍이 가장 먼저 영화화가 되어 버렸다.
‘총제작비가 6,000만 달러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