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신은 죽었다
“<라스트 게이머>를 영화화하고 싶다 했다고요?”
[네. 맞아요.]
<라스트 게이머>는 내가 이전 앤디의 집에서 써낸 가상현실 SF 소설의 제목.
영화 제작을 위해 썼던 그 작품이다.
그 이후로도 완결을 어떻게 지을지를 놓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가 몇 주 전 완결을 짓고 출판했다.
‘반응이 엄청난 수준은 아니라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는데.’
앤디나 피터의 호평과는 달리 <라스트 게이머>는 출판 이후 썩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처음 도전해 본 SF라는 장르, 그간의 장편소설들과는 달리 총 2권짜리 짧은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었던 건지.
판매량이 내 전작들 만큼 나오지 않았던 것.
뭐, SF라는 장르가 애초에 꽤 마니악한 탓도 있었고.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소재가 결합되다 보니 그런 SF 장르 속에서도 정통 SF 매니아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않는 소재였던 탓도 있었다.
물론 이게 <마지막 마법사>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마냥 나쁜 성적인 건 또 아니었다.
‘출판한 지 3주 정도 됐나? 그사이 100만 부 가까이 팔리기는 했으니까.’
권당 50만 부가 팔린 셈이니 <라스트 게이머>만 놓고 봤을 때는 꽤 괜찮은 판매량.
장르가 SF인 걸 감안하면 영화화하기에도 충분한 성적이었다.
그래서 써밋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체적으로 연출을 맡아 줄 감독을 물색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스필버그 감독의 연락이 오게 된 것이었다.
“스필버그 감독이라… 그러면 드림웍스에서 <라스트 게이머>를 제작하고 싶다는 건가요?”
[네. 그래도 배급은 써밋 엔터테인먼트에 일임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만, 제작은 본인의 스튜디오인 드림웍스에서 하겠다는 게 스필버그 감독이 내건 조건이었다.
드림웍스는 스필버그 감독과 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회장인 제프리 카첸버그 등이 함께 설립한 회사.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면 드림웍스가 제작 또한 담당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는 제작과 배급 모두 써밋 엔터테인먼트로 할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지금 영화화 제안을 한 건 다른 영화감독도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
아무리 제작과 배급을 모두 담당하는 게 훨씬 수익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스필버그라는 이름 앞에서는 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필버그 감독이라면… 확실히 좋은 작품이 나오겠지.’
써밋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체적으로 물색하고 있던 <라스트 게이머>의 감독 후보들.
전해 듣기로는 모두 실력 면에서 흠잡을 곳 없는 이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스필버그 감독과 비교한다면 없던 흠도 생길 터.
적어도 영화의 퀄리티 하나만 놓고 생각한다면, 스필버그 감독에게 제작을 맡기는 게 가장 옳은 선택일 것이다.
‘게다가 스필버그 감독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마지막 마법사>만큼 많은 팬을 보유한 작품이라면 몰라도.
아직 <라스트 게이머>는 대중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영화화했을 때의 흥행에 있어서 누가 감독을 맡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데.
스필버그 감독이면 유명세에 있어서 할리우드 전체를 뒤져 봐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써밋 엔터테인먼트에도 기회가 될 거야.’
지금까지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배급을 맡았던 건 모두 6대 메이저 스튜디오들 뿐이었다.
반면 아직 할리우드에서의 써밋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위플래쉬라는 예상외의 흥행작을 낸 게 전부인 미니-메이저 영화사.
나야 몇 년 내로 따라잡을 거라 확신하고는 있지만, 현재 규모로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즉, 써밋 엔터테인먼트가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라스트 게이머>를 배급하게 된다는 건 회사의 명성을 올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
‘…….’
덕분에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음. 우선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답신해 주세요.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이 제 개인 연락처를 원하신다 했죠?”
[네. 영화화 제안과는 별개로 작가님과 직접 대화해 보고 싶다더군요.]
“좋아요. 제 연락처를 전해 주세요.”
조만간 스필버그 감독과 만나게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꽤 기대가 되는 만남이었다.
아무튼.
엘레나와의 전화를 끊고 다시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데.
우우웅- 우우웅-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은 아니었고.
‘…드디어 터졌구나.’
비트코인 관련 커뮤니티에 몇몇 키워드를 알림 설정 해 놓고, 그 키워드가 일정 수준 이상 언급되면 알림이 오도록 해 놨는데.
그 알림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WTF???? 해킹? 해킹이라고?
-진심이야? 다른 거래소도 아니고 마운트콕스가?
-Fuck! 지금 거래소에 접속이 안 돼. 4만 달러나 저기에 들어가 있는데!
바로 마운트콕스의 해킹 사태.
일어나는 건 알지만 언제인지는 정확히 몰랐던 그것이 지금 터져 버린 것.
나는 곧바로 비트코인의 현 시세를 확인했다.
[1BTC = 720.54$]
‘생각보다는 높네, 그래도.’
내가 저번에 비트코인을 모두 정리했던 게 1,000달러 정도.
그래프를 확인해 보니 그 이후 600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요 몇 달 동안 다시 1,000달러를 회복했었다.
하지만 이번 해킹 사태의 여파로 하루 만에 700달러가 되어 버린 것.
내 예상보다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30%가 빠져버린 거니 비트코인의 시세가 급격히 무너진 거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이것도 다른 거래소에서의 가격이 720달러인 거지, 마운트콕스 내에서 거래되는 시세는 400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쭉쭉 내려가겠지.’
정확하게 몇 달러에서 바닥을 찍고 시세가 안정화되는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17년도에 있을 유례없는 코인 전성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500달러 밑에서 놀게 된다는 것.
‘한동안… 코인 생각할 일은 없겠네.’
그간 내 자산을 가장 많이 늘려 준 비트코인.
이 고마운 친구에게 한동안 안녕을 고할 때였다.
아마 코인 거래소를 다시 찾게되는 건 16년도 후반쯤이 될 터.
그때가 되면 다시 ‘비트코인은 신이다! 나는 무적이고!’라는 마법의 문장을 외칠 수 있게 되겠지.
문득, 신은 죽었다고 말하던 니체가 떠오르는 하루였다.
* * *
[스필버그 - 연말 파티에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몇 주 전 연락처를 교환하게 된 스필버그 감독에게서는 연말 파티에 나를 초대하는 연락이 왔다.
파티 초대라.
이런 걸 처음 받아 보는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줍은 얼굴로 자신의 생일 파티에 오라며 초대장을 건네던 옆 짝꿍을 시작으로.
최근 미국 출판 시장에서 성공한 이후로 뭐 자선 파티랍시고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던 초대장들까지.
사실 윅슨 출판사를 통해 들어오는 자선 파티 초대장만 해도 달에 서너 장은 됐다.
‘지금까지 그런 건 다 거절했었지.’
뭐,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그런 자선 파티에 참석해 기부를 하는 게 당연한 미덕이라던데.
나는 미국인도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는 터라 지금까지는 항상 거절하기만 했었다.
윅슨 출판사에도 출판사를 통해 들어오는 게 있으면 알아서 적당히 답신을 보내 대신 거절해 달라 말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초대장을 보낸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스티븐 스필버그.
게다가 네가 가진 돈이 많으니 와서 얼굴 비추고 돈이나 주고 가라는 코쟁이들 특유의 자선 파티도 아니라, 스필버그 감독이 지인 몇 명 정도만을 초대해서 가지는 홈 파티였으니.
‘이건 수락할 수밖에 없지.’
피터와도 그 파티에서 만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스필버그 감독과 피터가 이미 영화를 함께 제작한 적이 있던 사이인 것.
틴틴이라는 아동용 느낌의 인디아나 존스 비슷한 영화였다는데, 그런대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였다고 한다.
아무튼, 듣기로는 피터 말고도 영화계의 굵직한 인사들이 여럿 모이는 자리라는데.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 <마지막 마법사> 3부 출간!]
다음 달이 되면서 <마지막 마법사>의 3부가 출판되기 시작했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니고.
이번이 세 번째인 만큼, 윅슨 출판사에서는 무리 없이 인쇄 일정을 소화해 냈다.
미리 어느 정도 인쇄가 완료된 상태로 출판을 시작하기도 했고.
추가적으로는 각국의 인쇄 회사들과 협약을 맺어 밀려드는 막대한 주문량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책을 찍어 낸 것.
“…음.”
3부가 출판된 이후로 하루 이틀 정도 떨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관찰했는데.
-이번에도 최고야. 지금까지의 <마지막 마법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만, 그래서 더 좋았어.
-캐릭터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느낌이지. 그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특히 전쟁광 루카스가 이런 면모를 가진 놈인 줄 몰랐어. 2부에서는 그저 개새끼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왠지 모르게 4부는 비극이 될 거 같은 불안감이 들어.
-선우는 정말이지 빌어먹을 작가야! 캐릭터들에 이렇게 애정을 갖게 하다니! 이래 놓고 1, 2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최종장에서는 거침없이 죽여 버리겠지.
-죽음이 있기에 남은 이들의 삶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지.
-선우의 새로운 면을 봤어. 이런 글도 쓸 줄 알다니. 앞으로의 글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야.
반응들이 꽤 괜찮았다.
커뮤니티를 통해 살핀 독자 반응은 물론, 판타지 소설을 다루는 여러 언론에서도 호평을 쏟아 낸 것.
사실,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스스로 재밌다는 확신을 가지고 쓰는 편이지만.
이렇게 막상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게 될 때면 어쩔 수 없이 걱정이 생기는 게 작가의 마음이었다.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걸 과연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느낄지, 확신이 안 들기에 생기는 걱정.
게다가 이번 3부는 기존의 시리즈와 다른 분위기로 진행된 만큼 그런 걱정이 더욱 컸었다.
‘후우.’
그래도 직접 반응들을 확인하게 되니, 긴장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조만간 피터 잭슨이 1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지? 이번에도 반지의 제왕처럼 뉴질랜드에서 찍으려나?
-아마 그러지 않을까? 나니아 연대기도 뉴질랜드였잖아. 나도 관광 겸 촬영지 투어를 간 적이 있는데, 확실히 압도적인 자연경관이었어.
-글쎄. 촬영지는 대부분 유럽이 될 것 같은데? 2부에서 체젠 백작이 죽음을 불사르며 끝까지 지켜 냈던 리히텐 성 다들 알지? 묘사를 보면 틀림없이 호헨촐레른 성을 참고한 거라고.
-무슨 소리야, 슈투트가르트 촌놈아. 리히텐 성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따온 거지!
‘둘 다 틀렸어. 리히텐 성은 폴란드의 고성을 참고한 거라고.’
저것들 외에도 <마지막 마법사> 속 이 장소는 유럽의 어디와 비슷하다던가 하는 댓글들이 꽤 많았다.
그중에는 맞는 말도 있었고, 아닌 말도 있었다.
실제 유럽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장소들을 여럿 참고했지만 완전히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몇몇 <마지막 마법사>의 마니아들이 저런 고성들 근처에서 <마지막 마법사> 관련 행사를 열기도 한다던데.’
마니아들 사이에서 추측을 떠나 소설 속 장소의 모티브가 된 게 틀림없다 취급받는 몇몇 고성이 있는데.
그런 고성들 주위에 모여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중세 시대의 복장을 차려입고, 소설 속 전쟁 장면을 재현하기도 한단다.
뭐… 한국이나 일본식으로 설명하자면 그냥 흔하디흔한 코스프레 행사였다.
‘영화 촬영 장소는 피터와 더 얘기를 해 봐야겠지만… 실제로 저런 곳들에서 찍게 된다면, 아마 나중에 관광지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반지의 제왕이 촬영된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도 덕분에 엄청난 관광 특수를 노린다던데.
어쩌면 <마지막 마법사>의 촬영지도 그런 효과를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그러던 그때,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인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지라 곧바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
내가 작가로 성공했다는 게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나서, 내 번호를 어디서 알아낸 건지 여기저기서 금전 관련해 전화가 엄청 오던 탓에 생긴 버릇이었다.
그 탓에 한 번 번호를 바꿨는데도 가끔씩 이렇게 모르는 번호로 스팸 전화가 오고는 했다.
우우웅-
하지만 한 번 거절했음에도 재차 걸려 오는 전화.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스팸 전화는 아닐 터.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선우진 작가 핸드폰 맞습니까?”
“네. 제가 선우진인데요.”
“아,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신가요?”
“…괜찮긴 한데, 누구시죠?”
처음 듣는 목소리의 남성.
목소리만 놓고 추정해 보자면 삼사십 대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예. 안녕하십니까. 김병원 의원님을 모시고 있는 최기현 보좌관이라고 합니다.”
“……?”
국회의원? 국회의원 보좌관이 나한테 왜?
“다름이 아니라 의원님께서 선우진 작가님하고 통화를 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요. 통화 괜찮으신가요?”
그나저나 분명 가족과 친구, 지인 몇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개인용 번호인데.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건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스필버그 감독도 출판사를 통해 내 연락처를 물었었는데.’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그런 것도 없이 내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다니.
역시 대한민국은 참 신기한 구석이 있는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