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바늘 도둑은 아니고, 금송아지 도둑
“작가님, <솔로 플레이어>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편집부에서도 난리예요. 빨리 출판해야 한다고요. 특히 게임 좋아하는 남자 직원들한테서 반응이 엄청 좋더라고요.”
엘레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번에 보냈던 <솔로 플레이어>의 감상을 말해 주기 위한 것.
<솔로 플레이어>는 최근에 썼던 게임 빙의물을 말하는 거였다.
게임 속으로 빠져 버린 주인공을 다뤘던 그 작품.
무슨 제목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최근에 <솔로 플레이어>로 결정한 것이다.
웹 소설식 제목으로 치자면 나 혼자만 플레이어 같은 것.
뭐, 하지만 한국 버전의 제목도 솔로 플레이어로 갈 생각이었다.
내 작품이 웹 소설 독자 이외에도 수요가 많은 만큼, 웹 소설식의 제목을 자제한 것.
“그런가요?”
“네. 진짜 <마지막 마법사>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게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정말로 게임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때요? 안 그래도 출판사로 게임 회사들의 연락이 오고 있는데.”
“으음. 그러면 한번 제안을 정리해서 보내 주세요.”
게임화라.
이건 나도 게임을 좋아하는 만큼 솔직히 구미가 당기기는 했다.
아무튼.
“물론 게임화도 그렇고, <솔로 플레이어>를 책으로 내려면 먼저 <마지막 마법사>가 완결 나야겠지만요.”
<솔로 플레이어>는 <마지막 마법사>의 100년 후 세계관을 그린 작품.
그런 만큼, 먼저 <마지막 마법사>를 완결 내고 난 후에야 작품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자체 스포일러가 되는 격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3부 집필을 시작할까 생각 중이에요.”
“와. 정말이신가요? 으음… 그러면 당장 일정을 잡아야겠네요.”
“당장이요? 아직 첫 문장도 안 썼는데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어차피 한 몇 주 뒤에 3부를 다 썼다면서 들고 오실 거잖아요?”
엘레나하고도 일을 같이한 지 꽤 돼서 그런가.
이제 나에 대해 슬슬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뭐, 사실 3부를 빠르게 집필하려고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출판사를 향해 <마지막 마법사>의 3부가 언제 나오냐는 연락이 엄청 오고 있다던데.
그런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빠르게 쓰는 게 옳지 않겠나.
아무튼.
엘레나와의 통화를 끝낸 후, 나는 노트북을 폈다.
‘몇 주나 걸릴 필요도 없지.’
그렇지 않아도 <솔로 플레이어>를 쓰면서 <마지막 마법사>에 대한 영감들이 꽤 많이 떠올랐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것들을 풀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
탁, 타다닥-
그 때문인지 오랜만에 쓰게 된 <마지막 마법사>였지만, 오히려 글이 더 쉽게 써졌다.
‘결말을 확실히 정하고 쓰니까 <마지막 마법사> 3부는 1, 2부 쓸 때보다 빠르게 써지네.’
그전까지는 어렴풋이나 정해 놨던 게 전부였던 <마지막 마법사>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솔로 플레이어>를 쓰면서 <마지막 마법사>의 결말을 제대로 구체화했다.
캐릭터들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정해 놓은 것.
그 때문인지 글 쓰는 속도가 꽤 빨랐다.
이미 결말이 정해졌으니, 그 최종 지점까지 차근차근 단계만 밟아가기만 하면 됐다.
‘3부는 그동안의 <마지막 마법사>와는 달라. 2부에서의 전쟁이 끝나고 그 이후의 이야기니까.’
지금까지의 1, 2부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3부를 쓰고자 했다.
그 전까지는 전투와 전쟁, 심장을 뛰게 만드는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가 쭉 진행됐다면.
3부에서 주가 되는 건 2부에서의 전쟁이 끝난 후, 주인공과 여러 캐릭터가 겪는 일상이었다.
희생된 영웅을 추모하고, 찾아온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마냥 평화로운 이야기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주가 되는 건 일상의 얘기지만, 그 속에서도 정체 모를 긴장감이 흐르도록 하고자 했다.
결국 3부는 최종장인 4부에서 등장할 통일 전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였으니까.
그 탓에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분위기가 이야기 내내 흐르고 있었다.
‘일상에만 집중하다가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사실 이런 일상 파트를 쓰는 게 더욱 어려운 법이다.
전투나 전쟁은 그걸 쓰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시킬 수 있지만, 이런 일상의 얘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
하지만 집필이 어려운 만큼 마음에 드는 장면을 썼을 때 오는 쾌감도 더욱 컸다.
‘확실히 글을 쓰는 게 제일 재미있긴 해.’
최근 몇 주는 내 글을 쓰기보다는 남들의 글을 보는 걸 더 많이 했다.
대본들을 읽으며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고르고, 박은지 작가나 이신형 작가하고 글 관련 얘기를 나누며 조언을 하기도 했고.
물론 그런 것들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해 보면서 스스로 재능이 있다 느끼기도 했다.
내가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를 했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글을 쓰는 것만큼 재밌는 게 또 없어.’
탁, 타다다닥-
글을 집중해 쓰다 보면 가끔씩 찾아오는 순간.
마치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장면을 내 문장과 단어로 옮겨 적는 것.
이렇게 글을 쓸 때면, 조금의 막힘도 없이 내용이 쭉쭉 써진다.
그러다 보면 여러 고심 끝에 떠올린 재밌는 장면보다도, 그냥 이야기가 흐르는 대로 쓴 장면이 더욱 좋게 나오기도 한다.
쭉쭉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가 또 새로운 이야기로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에 나 자신이 가장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후우.”
탁-
집필을 끝내자 탈력감이 몰려들었다.
이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건 작가라는 직업이 피로한 직업이라는 것.
육체적인 피로야 적겠지만, 정신적으로는 꽤 고단했다.
아니,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육체적인 피로도 상당한 게 맞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밖을 살펴 보니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분명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필을 시작했는데.
거의 하루를 통째로 글만 쓴 것.
‘배달이나 시킬까.’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단 걸 의식하니, 엄청난 허기가 느껴졌다.
* * *
상암동에 위치한 SW 프로덕션의 사무실.
꽤 큰 고층 빌딩의 층을 세 층이나 빌렸는데, 아직 자리가 모두 차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간 PD를 비롯한 여러 인력을 영입해 한 층은 모두 채워진 상태.
공고를 통해 채용한 인력들 말고도, 드라마 제작 분야에서 유명한 이들로 따로 섭외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그간 자신들이 이끌던 제작 팀들을 함께 데려온 것.
‘앞으로 촬영할 대본들이 산더미가 될 테니까.’
우선 제작이 확정된 건 총 세 작품이었다.
우주남과 프런트 그리고 전생형사라는 이름의 범죄 수사물.
하지만 세 작품으로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한창 잘나가던 넷플릭스가 휘청이게 된 것도 자체 제작 콘텐츠가 부족해서니까. 스웜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스웜(swarm)은 이번에 정해진 OTT 플랫폼의 이름.
뭐, 떼 혹은 대중 등의 의미를 갖고 있을뿐더러 내 필명인 선우의 이니셜인 SW로 시작하는 단어라 정해졌다던데…….
내가 정한 건 아니었고, 회사 차원에서 회의를 통해 나온 이름이었다.
아무튼.
“아… 작가님, 오셨어요.”
“네. 어후. 여기 커피라도 한잔하세요.”
“감사합니다…….”
어제 밤을 새기라도 한 건지, 피곤해 보이는 양진철 PD와 다른 PD들.
나는 사 온 커피를 그들에게 돌리며 물었다.
“괜찮은 대본들 있어요?”
“예. 신인 작가가 쓴 것 중에서도 번뜩이는 게 많더라고요. 그리고 확실히 돈을 제대로 풀어서인지 기성작가들도 엄청 많이 참여했고요.”
양 PD의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대본들이 보였다.
모두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양 PD를 비롯한 다른 PD들이 한번 걸렀음에도 수가 저만큼이나 됐다.
‘뭐, 그만큼 상금이 크니까.’
이번에 OTT 플랫폼을 차리면서 깨닫게 된 건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작가들이란 사람들이 엉덩이가 엄청나게 무겁더라.
엄청나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작들이 평범 이상의 성적을 거둔 덕에 이미 지상파 방송국들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드라마 작가들.
PD들과는 달리 그런 작가들은 꽤 큰돈을 판권 금액으로 제시해도 쉽사리 넘어오지 않았다.
아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박은지 작가 같은 경우는 작품이 한번 망해도 전작들의 위엄이 있으니 별다른 노력 없이 방송국으로 돌아가 이름값만으로 편성을 따낼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작가에게 그런 건 꿈 같은 얘기였던 것이다.
즉, OTT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게 작가들에게는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진다는 것.
실제로 드라마 작가 커뮤니티의 여론을 살펴봤는데, 선우진이 만든다는 OTT에 작품을 팔 바에는 지상파 PD나 찾아가서 아부나 열심히 하라는 댓글이 대부분이더라.
‘게다가 방송국에 찍힐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도 있고.’
거기에 지금 시기는 TVM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케이블 방송국들이 없는 터라 지상파의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시기.
심지어 TVM도 이제 막 ‘응답하라’를 비롯한 드라마 몇 작품 정도만 성공했을 정도이니.
그나마도 지상파 시청률과 비교하자면 형편없었고.
아직까지는 상황이 그러니, 굳이 방송국에서 눈치를 주지 않아도 작가들이 알아서 눈치를 보게 되는 거다.
‘TV 채널을 인수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을 인수해 스웜과 그곳에 동시 방영 한다면, 드라마 작가들의 거부감이 덜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채널 인수는 지금 당장 마음먹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우선 작가들의 작품을 스웜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렇게 드라마 공모전을 연 거다.
그것도 총상금 20억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상금의 공모전을.
[총상금 20억… SW 프로덕션, 지상 최대 드라마 공모전 열다!]
[선우진이 직접 찾는 제2의 선우진? 대상 상금 무려 5억 원. 세 작품을 뽑는 최우수상의 상금도 3억 원에 달해…….]
[상금 + 별도의 회당 고료 지급 약속한 SW 프로덕션, “분명 여러 기성작가님이 실망하지 않는 금액이 될 것.”이라 밝혀 화제.]
[선우진의 넷플릭스 대항마? OTT 플랫폼, 스웜이란?]
덕분에 공모전 관련 기사가 수십 개가 쏟아지기도 했다.
회사 홍보 팀이 나선 것도 있지만, 의뢰한 기사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사가 나온 것.
이것 외에도 여러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스웜 또한 홍보가 되고 있었다.
‘이런 걸 생각하면 20억 원은 사실 엄청 적은 돈이지.’
내가 있던 미래에서는 넷플릭스가 한 해 제작비로만 10억 달러를 넘게 투자했었는데.
거기에 비교하면 20억 원은 정말로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내 기준으로도 푼돈이 맞았다.
생각해 보면 총상금을 다 합쳐도 위플래쉬 제작비의 반도 되지 않는 금액.
위플래쉬도 엄청 저렴하게 찍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작품당 최대 5억 원의 판권 금액이면 거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
어쨌거나.
양진철 PD와 함께 1차 심사를 통과한 대본들을 훑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익숙한 이름의 대본 두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전기 그리고 옥토퍼스 게임.’
하나는 TVM, 하나는 넷플릭스.
아마 미래 두 회사들의 CEO가 알았다면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