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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55화 (55/267)

55화 불길한 예감

<마지막 마법사>의 신드롬이 시작되는 걸 가장 먼저 파악한 건 당연 윅슨 출판사였다.

특히 각국에서 쏟아지는 주문량의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

“영국 총판에서 연락이 왔어요. 1부와 2부 모두 권당 50만 부씩을 추가 주문하고 싶다고요.”

“그렇게나요? 으음. 지금 영국에 투입할 물량이 없는데… 영어판은 며칠 전 동부에서 싹쓸이해 갔다고요.”

지난번 <마지막 마법사> 1부의 출판 당시.

인쇄소 일정이 몇 번이나 밀리는 경험을 했던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2부 출판에는 그런 일이 다시 없도록 제대로 준비를 했었는데.

그런데도 주문량에 비해 인쇄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하고 만 것이었다.

그들이 2부의 출판 계획을 잡을 때, 얼마나 많은 인쇄소와 계약을 맺었는지를 생각하면 <마지막 마법사>의 흥행 돌풍이 정말로 상상 이상이라는 뜻.

“인쇄 계획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분명 저번 회의에서 이번 2부는 기세가 심상치 않을 거 같으니 넉넉하게 준비하자고 하지 않았어?”

“했지. 했는데도 부족한 거고. 며칠 전에 할리우드 스타들의 언급도 있었잖아.”

“후우. 나도 트위터에서 봤어. 젠장. 내가 맡은 작품이 잘 팔리는 게 이렇게 두려울 수도 있다니.”

트위터에서의 언급을 처음 시작한 건 맷 데이먼이었다.

몇 주 전, 선우진과 마션 출연 계약을 마친 그가 <마지막 마법사>를 칭찬하는 글을 자신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것.

물론 그때의 반응들은 그저 그랬다.

자신이 출연할 영화와 관계된 이가 쓴 소설인 만큼, 배우가 일종의 홍보성으로 게시글을 올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맷 데이먼의 언급 이후.

그를 따라서 자신들의 계정에 <마지막 마법사>를 추천하는 할리우드 배우가 여럿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액션이나 SF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단골로 출연하는 남자 배우들이 많았다.

<마지막 마법사>에서 표현되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 피를 들끓게 하는 혈투 등이 그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

심지어 출판사 측에서 따로 홍보성 게시글을 의뢰 넣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 올린 것.

물론 맷 데이먼이 한번 읽어 보라며 추천했다는 말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도 모두 정말로 자신이 읽고 재밌어서 여러분께 추천하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시기만 해도 아직 이런 셀럽을 통한 광고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

그 덕인지 할리우드 배우들의 추천에 바로 구매로 이어 가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후우. 이번에도 다른 출판사들한테 부탁해야 하나? 가용 가능한 인쇄소를 빌려 달라고 말이야.”

“음. 이제는 수락하지 않을 거야. 저번에야 우리 출판사가 그리 큰 위협이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말이야.”

“맞아. 내가 사이먼에서 이직해 왔잖아? 사실 저번에 윅슨에서 협력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어. 굳이 경쟁사 배를 부르게 해 줄 이유가 있냐고 말이야. 그때도 그랬는데, 요즘 출판업계에서 우리 별명이 뭔 줄 알아? 생태계 교란종이래, 생태계 교란종.”

한 직원의 말이 맞았다.

최근 출판업계에서는 윅슨 출판사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고 있었다.

1부가 흥행할 때만 해도 가끔씩 있는 돌풍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2부의 판매량이 그들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고 있는 탓이었다.

“동양의 작가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이렇게나 사로잡을 줄이야.”

“운이 좋았던 것도 있어. <마지막 마법사>에 나오는 룬델 왕국의 독립 전쟁이 꼭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오르게 하잖아? 그리고 작품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방랑하는 파트는 서부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고. 작가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키워드를 제대로 작품에 섞어 냈어.”

“그 정도면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봐야지. 게다가 미국인들 마음만 사로잡은 거면 다행이게? 해외 판매량도 엄청난 수준이라고.”

어떻게 하면 최근 출판계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윅슨 출판사를 견제할지에 대한 회의가 출판업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회의를 해 봤자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마지막 마법사>보다 더 좋은 작품을 발굴해 내는 것 외에는 딱히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땅에서 저절로 솟아 나올 리도 없었고.

결국 회의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언젠가 해리포터 돌풍이 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비는 것.

“신드롬이 시작된 건 맞지만,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지. 3부가 바로 나올 것도 아니고. 그냥 몇 달만 기다리면 돼.”

“2부는 1부가 완결되고 나서 거의 바로 출판되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예전에 집필을 끝냈던 거겠지. 아마 2부 집필에 몇 년은 걸렸을걸?”

“맞아. <마지막 마법사>를 읽어 봤으면 알겠지만 그 정도 몰입력의 글이면 한 권 한 권 쓸 때마다의 피로감이 엄청날 거야. 3부가 나오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게다가 작가가 이제 막 성인이 됐다며? 돈도 엄청 벌었을 테니, 이제 슬슬 돈 쓰는 맛을 알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작품 집필도 소홀해질 거고.”

몇 달만 참으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원래부터 준비하던 소설들의 론칭 일정을 뒤로 미루는 출판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정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따로 있었다.

“…조만간 시리즈 전체 판매량 1억 부를 달성할 것 같답니다.”

“1억 부? 정말로 1억 부라고?”

바로 워너 브라더스의 본사.

몇 주 전 그들이 놓쳤던 <마지막 마법사>다.

당연 2부가 어느 정도 흥행하는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억 부라니.

시리즈 통산 1억 부 판매면,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같은 몇몇 대작을 빼고는 달성하지 못한 수치였다.

그들이 놓쳐 버린 원작이 그만한 반열에 들어선다고?

“그 작가가 아니라 우리가 오만했던 건가? 이렇게까지 성공한다고?”

“저번 협상 때만 해도 전체 판매량이 고작 2,300만 부였지. 2,300만 부를 고작이라 말해야 한다는 게 웃기지만… 1억 부는 얘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피터 잭슨이 엄청나게 뛰어난 선견지명을 가졌던 거였어, 우리가 바보였던 거고.”

소설을 실사화한 영화가 대부분 그랬듯.

원작의 팬들은 궁금해서라도 실사화된 영화를 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1억 부를 팔 정도로 팬이 많은 소설이라면… 그 말은 곧 영화화만 되면 몇 억 달러의 수입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소설이 1부에 이어 2부까지 성공했다는 건, 큰 문제만 없다면 영화 또한 그럴 거라는 소리였다.

워너 브라더스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

세상은 때때로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

개인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든, 세상이 그 손을 들어 주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지금의 내 상황도 그랬다.

“…추가 시간 동점골에 이어서, 역전 골이라고?”

이런 걸 두고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 하는 걸까?

91분에 골을 먹히고, 93분에 또 먹혀 버렸다.

그것도 그냥 리그 경기가 아니라 최근 내 일주일을 불태운 끝에 도달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우우.”

깊은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며칠 전 백화점에서 직접 사 온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채, 한 손에는 전술 노트를 들고 준비했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그런 경기에서 이런 억까를 당하다니.

심지어 이기기만 했다면 승격 최초 트레블이라는 기록의 달성이었는데!

“게임은… 한동안 쉬자.”

일주일 동안 엄청 집중해서 불태웠던 만큼, 허탈감도 컸다.

그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재밌었던 FM을 다시 붙잡기가 싫어졌다.

뭐, 몇 주가 지나면 뜬금없이 그때 가서 FM이 엄청 마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FM을 바로 끈 후, 나갈 준비를 했다.

‘저번에 본 이후 처음인가.’

오늘은 약속이 있었다.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STR 엔터의 어쩌고 이사 놈.

그놈을 내 부탁으로 처리해 줬던 텐센트의 렌샤오와의 만남이었다.

나와 긴히 얘기할 게 있다고 만날 수 있겠냐는 연락이 며칠 전에 왔었는데, 오늘 보기로 한 것이었다.

‘쑨퀀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저번 일을 통해 일종의 꽌시를 맺게 된 쑨퀀에게서는 종종 연락이 오고 있었다.

한국의 명절 때도 그렇고, 중국의 명절 때도 그렇고.

무슨 경축일 같은 게 있을 때마다 잘 지내냐는 연락과 함께 나한테 각종 선물을 보내더라.

계속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언젠가는 나도 답례 선물을 보냈었는데,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하더라.

‘하긴. <마지막 마법사>가 서양에서 엄청 잘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칼넘강이 더 위일 정도니까.’

장르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검객무쌍의 드라마가 중국 내 시청률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 드라마에 등극해서일까.

<마지막 마법사>의 엄청난 돌풍 속에서도 중국에서 떨어지는 정산금은 칼넘강이 제일 높았다.

물론 <마지막 마법사>가 중국에서 인기가 시들시들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칼넘강의 중국 내 인기가 너무나도 대단한 것일 뿐.

이미 완결이 난 소설임에도 일 매출 1위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아! 오셨군요, 작가님!”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영하는 렌샤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내 작품의 엄청난 팬이라는 그였다.

그 때문인지 한동안은 <마지막 마법사>도 잘 보고 있다, 검객무쌍의 드라마도 매주 챙겨 보고 있다는 식의 대화가 식사 내내 계속됐다.

하지만 코스 요리가 전부 끝나고, 차로 입가심을 할 때쯤.

본론으로 들어가는 렌샤오였다.

“작가님, 최근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할리우드 진출을 계획하고 계시다고요?”

“아… 네. 맞습니다.”

“그리고 또 영화 제작사를 인수하려고도 하신다고요.”

으음.

예상치 못한 주제인데, 이건.

갑자기 드는 이 불길한 예감은 뭘까.

설마 내가 알던 미래에서 차이나 머니가 대거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한발 걸치려는 그런 건 아니겠지?

막 많은 돈을 투자할 테니 내가 차릴 제작사의 지분을 갖고 싶다거나, 그런 거.

“아… 그렇긴 한데요. 어떻게 아셨나요?”

“하하. 저희도 최근 영화 제작 쪽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거든요. 할리우드 쪽에도 관심이 많고요. 아무래도 작가님이 저희와도 연관이 있으시다 보니 관련된 소식이 몇 개 들어오더라고요.”

“아아…….”

“흠흠. 그래서 말입니다…….”

아아…….

안 돼, 하지 마, 돌아가.

불길한 예감이 더욱 커졌다.

“사실 저희가 작가님께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다소 무례하게 들리실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이거 진짜로 내 예상이 맞는 거 같은데.

내가 아무리 지금까지 차이나 머니 덕을 좀 봤다지만, 내 영화에 중국 향을 묻히는 건 좀 오바였다.

한 10억 달러에 1% 주는 거면 몰라도.

아무튼, 뭐라고 거절하지?

…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저희도 작가님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렌샤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바로 거절하려고 했는데.

“검객무쌍의 영화화! 저희에게 허락해 주십쇼!”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렌샤오였다.

“물론, 작가님께서 검객무쌍도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계신 건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작가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의 금액을 지불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아니, 무협이라서 그건 생각도 안 했는데요?

그리고 이미 드라마도 있고 해서 또다른 실사화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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