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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51화 (51/267)

51화 공룡과의 갈등

-우진, 지금 워너 놈들을 만나러 갔다고?

“응. 나와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다던데.”

-대체 그놈들이 뭔 생각으로…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지금 당장 LA행 비행기를 예약할 테니까.

“하하. 뉴질랜드에서 여기까지 오겠다고? 하루는 족히 걸릴 텐데? 괜찮으니 걱정 마. 뭐 잡아먹기야 하겠어?”

-그건 네가 할리우드 놈들이 보통 놈들이 아니란 걸 몰라서 그래. 돈이라면 진짜로 사람을 잡아먹을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괜찮아.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니거든.”

얼마나 보통 사람들이 아니건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이다.

아무튼.

피터와의 전화를 끊으며 약속 장소로 들어섰다.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 내 바.

다운타운의 전경이 창 너머로 한눈에 보였다.

그 안에 있는 건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양복 차림의 백인 남자.

“Hey, Mr. 선?”

“예. Mr. 니콜스?”

“맞습니다. 반가워요.”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며 악수를 건넨다.

그 손을 맞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니콜스라는 이름의 워너 브라더스 이사.

그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보였다.

내가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결말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오늘의 만남에서 나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뭐, 후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작년 워너 브라더스의 매출은 280억 달러.

한 해에 한화로 30조 원을 버는 회사 앞에서, 총판매 부수 2,000만 부를 판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리 자랑할 게 되지 않을 테니.

“빠르게 용건으로 들어갈까요? 절 꼭 만나 뵙고 싶으셨다고요.”

“하하. 성격이 급하시군요. 글로 접했을 때는 조금 더 느긋하신 분이 아니실까 했는데.”

“그래요? 제 글을 보셨으면 제가 답답한 걸 싫어하는 편이라는 걸 잘 아실 텐데요.”

내 말에 니콜스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음, 그렇게 기분 좋게 느껴지는 웃음은 아니었다.

나를 보는 게 꼭 철없는 어린아이 보는 눈빛 같아서.

“좋습니다. 그러길 원하신다면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저희랑 같이하시죠,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 제작.”

“그게 끝인가요? 이미 그 제안은 여러 번 거절한 거로 아는데요.”

“예. 그래서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거죠. 작가님께서 저희의 제안을 왜 거절하셨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왜 질척여?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그걸 아는 입장에서 굳이 나와 만나고 싶다고 한 데에는 또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니콜스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 워너 브라더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실 테고. 최근 작가님이 할리우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는 걸 들었습니다.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시려는 거죠? 그럴 경우 수익을 온전히 챙기실 수 있으실 테니까요.”

최근 피터를 통해 할리우드의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닌 나다.

할리우드라면 자기들 손바닥보다 더 훤히 알고 있을 워너 브라더스가 그런 내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어쩌면 내가 제작사를 차리려는 게 이미 이쪽 업계에 전부 소문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내가 너무 급히 움직였나?’

내 실수라면 내 실수였다.

어떻게 보면, 내가 여러 제작사의 영화화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기저기에 광고하고 다닌 거나 다름없는 일.

약간의 자책감이 들었지만 빠르게 떨쳐 냈다.

후회해 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러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드리려고요. 5 대 5. 작가님의 투자를 50%까지 받겠습니다. 세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러닝 개런티 비율도 최고 조건으로 챙겨 드릴 거고요. 어떠십니까?”

니콜스가 말을 잠깐 멈춘 후 어떠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이래도 거절할 거냐고 묻는 듯한 얼굴.

그래 뭐 자신하는 것처럼 나쁜 조건은 아니다.

‘아니, 나쁘다 못해 엄청나게 좋은 조건이라 봐야겠지.’

사실 워너 브라더스와 같은 메이저 제작사가 아무리 원작자라 해도 50%에 달하는 외부 투자를 허용한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몇억 달러의 제작비가 들건 말건 얼마든지 그만한 금액을 조달할 수 있는 워너 브라더스였기에.

‘로열티 비율도 마찬가지고.’

이번에 <마지막 마법사>를 향해 들어온 영화화 제안들을 통해 알게 된 건데, 할리우드에서 소설들의 영화화 계약을 할 때, 제작사들이 원작자에게 수익을 쉐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기껏해야 판권 계약금으로 거액을 쥐어 주는 게 대부분.

그 대단한 해리포터도 겨우 2백만 달러에 영화 판권을 넘겼고, 반지의 제왕은 심지어 100달러도 되지 않는 금액에 판권을 넘겼을 정도였다.

물론, 해리포터가 영화 판권 계약을 한 건 전 세계적인 대흥행을 하기 이전이었고, 반지의 제왕도 그런 판타지 소설의 영화화가 불가능할 거라 여겨지던 시기의 계약이라 경우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서도.

‘출판사에 영화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먼저 러닝 개런티를 주겠다고 한 곳이 몇 군데 없었지.’

메이저 제작사는 물론 중규모의 제작사들까지도 전부 계약금만 제시했고, 그나마 규모가 작은 제작사들만이 러닝 개런티 조건을 넣어서 제안을 넣었었다.

아무튼.

대충 정리하자면 워너 브라더스의 방금과 같은 제안은 그들이 정말로 내게 한 수 접어 주겠다는 뜻이라는 것.

‘이 정도까지 말하는 거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려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거절 쪽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차라리 진작에 이 정도 조건이 들어왔다면 또 몰랐을 거다.

그랬다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워너의 제안을 수락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이미 칼을 뽑아 버린 후다.

스스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영입하고 이러는 것에 재미를 느껴 버린 지금.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나도 이왕 시작한 일을 그냥 끝내 버릴 생각은 없었다.

돈이야 뭐… 나한테 필요 없는 걸 꼽으라면 가장 먼저 나올 게 돈이니까.

뭐 그렇다고 돈이 진짜로 필요 없다는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어찌 됐든 내게는 킹갓제네럴 무적 방패 갓트코인이 있으니까.

‘이래서 2010년대 재벌물들이 그렇게 다 사라졌던 건가?’

회귀자에게는 참으로 꿀 같은 시대다.

‘응, 아무리 망해도 코인 사면 그만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때니까.

아무튼, 피터의 건 때문에라도 워너 브라더스와는 별로 같이 일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원작자라도, 내 소유가 아닌 제작사에서 제작을 맡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거야.’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그저 내 작품을 영화화해 돈을 벌 생각뿐이었다면, 워너 브라더스의 제안을 마지못해 수락했을 수도 있다.

혹은 다른 메이저 제작사를 찾아가 비슷한 조건으로 역제안을 넣든가.

하지만 내가 그리는 미래는 그저 단순히 돈을 벌고 끝나는 게 아니다.

OTT 플랫폼.

그것도 넷플릭스를 훨씬 뛰어넘는 OTT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 나였다.

거기에 <마지막 마법사>는 빠질 수 없는 조각.

그런 조각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워너 브라더스는 머지않아 자기들만의 OTT 플랫폼을 차리기도 하니까.’

어차피 지금은 함께한다 해도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내 의견을 고려해서라도 내가 차릴 OTT에 판권을 넘길지라도, 언젠가는 워너 브라더스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빠르게 고민을 끝낸 후, 입을 열었다.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제 손으로 직접 제 글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겁니다. 안타깝지만 제안은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거절을 예상하지 못한 건지 살짝 놀란 듯한 니콜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저희가 작가님의 편의를 얼마나 봐드린 건지도요.”

이제는 꽤 공격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 예상이 맞았던 거다.

사람 좋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던 것.

물론 그런 공격적인 말에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대답이 변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

“혹시 이야기는 그게 전부이신가요? 더 하실 얘기가 없으시다면 여기서 일어나는 거로 하겠습니다.”

“…허.”

나는 니콜스가 뱉는 탄식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워너 브라더스 본사.

니콜스는 본사로 돌아가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이거 참. 우리 모두의 예상이 틀렸더군. 선우 작가가 제안을 거절했어.”

니콜스의 말에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 직원들.

그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저희 조건을 제대로 이해한 게 확실하답니까? 아니, 그걸 듣고도 거절했다고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아니면 미국인이 아니라서? 할리우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군!”

“어쩌면 어린 나이의 성공이 괜한 헛바람을 불어넣은 것인지도 몰라. 출판사도 본인이 가지고 있다며? 매출이 몇 억 달러는 될 텐데 그걸 고스란히 가져가는 거잖아.”

“흠. 그래 봐야 그건 출판계에서의 얘기지. 영화 제작은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아니면 자기가 정말로 조앤 롤링인 줄 착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아니, 롤링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 착각하는 거야. 그 조앤 롤링도 앞선 시리즈를 성공시키고서야 러닝 개런티를 받아 갔는데 말이야!”

물론 그리 좋지 못한 반응이었다.

대부분 선우진이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게 어이없다는 듯한 모습.

워너 브라더스의 직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마지막 마법사>의 판매 부수는 며칠 전 기사에 따르면 현재 총 2,300만 부.

그만한 기록이 물론 대단한 건 맞다.

하지만 그건 한 직원의 말처럼 출판계에서의 얘기일 뿐, 영화 제작으로 가지고 오면 얘기가 달랐다.

당장 E.L.제임스가 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미국에서만 3천만 부를 팔았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더욱 많았고.

그런 E.L.제임스도 영화화 계약을 맺을 때 선우진에게 제안한 조건보다 더욱 낮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었다.

그만큼 할리우드의 공룡들은 자신의 파이를 남들에게 쉽게 내주지 않는 탐욕적인 이들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한 수 접고 들어간 것인데.

감히 제안을 거절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콜롬비아나 파라마운트, 그쪽 분위기 아는 사람 있어? 혹시 이미 다른 곳이랑 계약을 논의 중인 거 아냐?”

“그건 아닐걸. 제안은 했더라도 우리보다 조건이 좋지는 않을 테고. 그리고 여러 제작사 사이에서 간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제작사를 차리려는 거잖아. 어느 스튜디오가 그걸 반기겠어?”

“그러면 뭐야. 진짜로 자기가 제작사를 차릴 생각이라고? 참 나. 소설 하나 성공시켰다고 할리우드를 아주 우습게 보는군!”

활발하게 말을 이어 가는 직원들.

물론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한 선우진을 비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들로서는 그런 후한 조건을 제시하고도 일개 작가에게 거절당했다는 게 굴욕적으로 여겨진 것.

“너무 성공을 자신하는 거야. 영화 제작이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아니면 피터 잭슨과 함께했다고 뭐든지 술술 풀리는 줄 아는 건가?”

“<마지막 마법사>에 한정해서는 성공할 수도 있겠지! 좋은 원작에, 좋은 감독. 성공에 대한 보증수표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런 조건을 제시한 거고. 하지만 그 이후엔 어떻게 하려고?”

“헛바람이 든 거지. <마지막 마법사>를 성공시켰다지만 다음 글도 성공할지는 모르는데 말이야. 모든 게 그저 플루크였을 수도 있다고!”

“평생 자기가 쓴 글만 영화화할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 볼 줄은 안대? 아니면 영화 제작에 한번 실패하면 그게 얼마나 큰 타격인지를 모르는 건가?”

영화 산업은 흥행작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이 엄청나게 큰 분야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제작에 한번 실패했을 때 입는 손해도 무지막지했다.

몇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수익은 정작 몇천만 달러 남짓밖에 얻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그러면 고스란히 그게 다 손해가 되는 거다.

심지어 그런 실패가 드문 것도 아니다.

10편의 영화를 낸다치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경우는 그중 소수였다.

영화 업계에서 수십 년을 있던 이들도 작품의 흥행을 장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산업에, 기존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던 것도 아니고 그저 글만 쓰던 작가가 뛰어든다고?

“심지어 처음 만들려는 게 스페이스 무비라지? 종이책으로도 아직 나오지 않은 글이라며?”

“보나마나 훤하구만. 된통 깨져서 제작비만 날리고, 그제서야 우리에게 굽히고 들어올 게.”

“그렇게 되면 그때는 조건을 제대로 후려치자고.”

당연히 선우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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