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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48화 (48/267)

48화 공룡에게 꿀밤 먹이기

샌프란시스코, 윅슨 출판사.

“뭐라고요?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죠?”

“음. 2부를 다 썼다는 말이라면 제대로 들으신 거예요.”

“혹시 농담하시는 건… 아니시군요. 후, 2부가 8권이라 하셨죠. 그러면… 8권을 벌써 다 쓰셨다고요?”

엘레나는 선우진이 미국을 떠나기 전 출판사를 찾아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2부 집필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글을 쓰게 되면 보내 주겠다고 했던 말.

그때는 1권 정도가 써지면 보내 주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2부… 그러니까 총 8권 분량을 벌써 다 썼다고?

고작 몇 주 만에?

“세상에나. 혹시 집에 글 쓰는 기계라도 갖고 계세요? 버튼을 띡! 하고 누르면 글이 뽑아지는 기계 같은 거요.”

“하하. 설마요. 제가 글 쓰는 속도가 원체 빠르거든요. 그리고 최근 몇 주 간은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요.”

“아무리 그래도 한국으로 가신지 얼마나 되셨다고…….”

엘레나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메일함을 확인했다.

“우선 읽고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피드백을 원하시는 거면 권 단위로 읽고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고요.”

“음. 엘레나가 편한 대로 해 주세요. 8권까지 전부 읽고 의견을 말해 주셔도 상관없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부 읽고 말씀드리는 거로 할게요. 저 말고 편집부의 다른 사람들 의견도 취합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끝낸 엘레나가 곧바로 메일 속 첨부 파일을 열어 인쇄를 시작했다.

위이잉- 위이잉-

꽤 오랫동안 울리는 인쇄기 소리.

8권 분량이나 되는 걸 여러 부 뽑으려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뭐 뽑으시는 거예요?”

“새로 들어온 글인가? 저희 한동안 일정 잡힌 건 없지 않았나요?”

인쇄기 근처를 지나가던 직원들이 엘레나에게 물었다.

얼굴 곳곳에 피곤함이 묻어 나오지만, 분위기는 밝은 직원들.

요 몇 달간 <마지막 마법사> 1부의 출판 일정으로 엄청나게 바쁜 나날들을 보낸 그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쇄 작업도 정상화됐고, 편집이나 마케팅 등의 기타 업무도 대부분 끝이 난 터라 남은 건 회사에서 줄 보너스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

그간의 고생으로 몸은 지쳤지만 표정은 밝을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마지막 마법사> 2부요. 총 8권 분량이고, 방금 전에 작가님이 보내 주셨어요.”

“하하. <마지막 마법사> 2부요. 2부… 예에?!”

“여, 여덟 권이요? 벌써요?”

엘레나의 말에 순간 경악한 얼굴이 되는 직원들.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도 놀라서 엘레나 쪽을 쳐다봤다.

엘레나가 작게 피식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자, 여러분. 일입니다, 일. 지금 프린터에서 <마지막 마법사> 2부가 인쇄되고 있으니 1부씩 가져가져서 읽고 감상을 들려 주세요. 분량은 총 8권입니다.”

“……?”

“8권……?”

“다들 <마지막 마법사>로 여기저기서 난리인 건 아시죠? 그 기세를 몰아서 2부까지 빠르게 출판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러분들이 조금 더 고생해 주셔야겠어요. 물론 이번에도 초과근무는 자원하시는 분들만 받겠습니다.”

“으아악.”

“이건 꿈이야…….”

엘레나의 말에 사무실 곳곳에서 곡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진심으로 직원들이 슬퍼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윅슨 출판사가 초과근무를 희망하지 않는 직원들에게까지 일을 시키는 악덕 회사도 아니었을뿐더러.

캘리포니아주의 노동법에 따르면 초과근로가 12시간 이상이 됐을 때 그들이 받는 추가 수당은 시급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선우진에게 인수된 이후 책의 매출 중 일부를 따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제도가 생긴 윅슨 출판사였다.

덕분에 <마지막 마법사> 1부 출판으로 인당 최소 몇만 달러 이상씩을 인센티브로 받게 된 직원들이었다.

심지어 앞으로의 추가 판매에 따라 그 인센티브는 더욱더 늘어날 예정이었으니.

<마지막 마법사> 2부 출판은 그만큼 고생길이 훤하겠지만, 그 과실도 달콤할 터였다.

‘앞으로 몇 달 더 고생하고… 10만 달러? 안 하는 게 바보지.’

‘모기지가 얼마나 남았더라. 이번 일만 끝나면 다 갚을 수 있겠어.’

‘아버지 차가 많이 낡았던데. 이참에 바꿔 드려야겠다.’

“으으. 나 커피 시킬 건데 같이 시킬 사람?”

“나, 내 것도 하나 시켜 줘. 샷 잔뜩 들어간 거로.”

“나도, 나도.”

“탕비실 보니까 에너지 드링크가 다 떨어졌던데. 몇 박스 주문 좀 넣어 줘.”

그렇기에, 초과근무를 하지 않겠다 말하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는 윅슨 출판사였다.

* * *

[피터 - lol. 네가 나온 영상을 봤어. 네가 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한 거라며?]

[나 - 대체 누가 그걸 네게 보여 준 거야?]

[피터 - 너 말고도 한국인 친구가 또 있거든. 흐흐. 예전에 네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보여 주더라고. 요즘 네 영상이 한국에서 화제라면서 말이야.]

…빌어먹을.

피터에게 내 카메오 신을 보낸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걷다가 넘어져라.

[피터 - 확실히 화제가 될 만하더라. 나한테 연기 좀 배워야겠던데?]

피터는 자신이 찍은 영화 대부분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매 편 출연했었고, 호빗 시리즈와 킹콩 리메이크 작품에서도 본인이 나오는 장면을 하나씩은 집어넣더라.

하지만 나와 달리 피터의 연기는 꽤 수준급.

별다른 위화감 없이 배역을 소화해 내는 터라 관객 중에는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튼.

[나 - 이 얘기는 그만하자고… 안 그래도 한국에서 놀림은 충분히 받았거든.]

[피터 - 좋아. 그것보다 저번에 나한테 물었었지?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말이야.]

[나 - 그래. 드디어 생각이 난 거야?]

인터뷰에서 <마지막 마법사>의 메가폰을 쥐게 됐다며, 반지의 제왕 이후로 자신이 본 소설 중 가장 흥미로운 글이라 칭찬해 줬던 피터다.

그 외에도 <마지막 마법사>가 흥행하기 시작할 때부터 주기적으로 자신의 트위터 계정이나 TV 인터뷰 등을 통해 <마지막 마법사>를 홍보해 주기도 했었다.

그게 고마워서 뭐라도 해 줘야겠다 싶어 선물을 줄 테니 필요한 게 없냐고 피터에게 물었었는데.

친구 사이에 그런 걸 가지고 뭔 선물이냐며 내게 뭐 줄 생각하지 말라 했던 피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얘기를 다시 꺼내다니.

[피터 - 으음. 우선 사과를 해야 될 것 같아.]

[나 - 사과? 무슨 사과?]

[피터 - 그게… 아무래도 내가 워너 브라더스의 미움을 산 것 같거든.]

워너 브라더스?

거기는 또 왜?

[피터 -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피터의 이야기는 이랬다.

현재 그가 메가폰을 잡고 있는 호빗 시리즈의 제작사이자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꼽히는 워너 브라더스.

그런 워너 브라더스에서 몇 주 전 피터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는 것.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를 자기네들이 찍고 싶다 했다고…….’

영미권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이어 가고 있는 <마지막 마법사>다.

거기에 피터 잭슨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만났으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영화의 흥행이라지만 그래도 제작사들에게 있어 꽤 탐나는 목표인 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마법사>의 흥행이 시작되고 난 이후, 할리우드에서 <마지막 마법사>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 출판사를 통해 틈틈이 전해졌었다.

물론 나야 할리우드의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제작사를 차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었는데.

워너 브라더스에서 피터에게 나를 설득해 자신들에게 제작을 맡기게 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는 거다.

그리고 피터는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었고.

[피터 -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내게 협박을 하잖아! 내가 그놈들한테 벌어다 준 돈이 얼마인데!]

[나 - 그래서… 멱살까지 붙잡으며 대판 싸워 버렸다고?]

[피터 -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놈들이야. 게다가 지금 호빗 2부도 기간 내에 겨우 맞추고 있는데, 3부는 무슨 2개월 내에 찍으라고 하잖아?]

[피터 - 너를 설득하라는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촬영 기간을 늘려 달라는 내 말도 들어주지 않겠다면서! 그거 듣고 열받아서 3부는 내가 아니라 길예르모에게 다시 맡기든가 하라고 쏴 버렸지.]

호빗 시리즈의 3부, 다섯 군대의 전투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제작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7월쯤에 개봉한다고 홍보했지만 일정이 미뤄져 연말에 나왔던 미래의 기억이 생각났던 것.

심지어 촉박했던 일정 때문인지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온갖 혹평을 받았던 호빗의 3부였다.

아무튼,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고.

그래서 피터가 말하는 게…….

[나 - What? 그러면 호빗 3부를 진짜 안 찍겠다는 거야?]

[피터 - 흠흠. 설마 그러겠어. 내가 그렇게 나오니까 워너 놈들도 꼬리를 말더군.]

[피터 -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지. 뭐, 호빗이 끝나면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겠지만.]

[나 - 그나마 다행이네.]

[피터 - 그래도 이렇게 그냥 맞고만 넘어갈 수는 없지.]

[피터 - 그러니까 저번에 네가 말했던 선물을 내게 줄 차례야.]

[피터 - 제작사가 필요해. 워너 놈들 코를 단단하게 눕혀 줄 만한 제작사가.]

선물로 워너 브라더스에게 한 방 먹여 줄 제작사를 갖고 싶다 이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월트 디즈니,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콜롬비아, 21세기 폭스.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다.

일명 할리우드의 빅 6.

어디 보자.

각각 한 1,000억 달러 하려나?

정말 초거대 공룡 기업들이다.

‘<마지막 마법사>를 2,000만 부 팔고 내가 2억 달러 정도를 벌었는데.’

1,000억 달러면 대체 몇 부를 팔아야 하는 거야.

며칠 전 윅슨 출판사에서 2억 달러가 넘는 순익을 기록했다는 연락을 받고, 드디어 진짜 슈퍼 리치가 됐다고 혼자 좋아했었는데.

1,000억 달러라는 숫자 앞에서는 왠지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피터가 진짜 그만한 제작사를 사 달라는 건 아닐 거다.

저번에 피터와 <마지막 마법사> 영화화 계약을 끝내고.

내가 따로 제작사를 차릴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

‘내 회사가 그만한 제작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리겠지.’

워너 브라더스한테 한 방 먹일 수 있을 정도의 제작사가.

이거 참.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잘나가는 영화감독이랑 친구하기 어렵네. 바라는 선물 스케일이 이렇게 커서야.’

그래도 짜증이 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워너 브라더스를 향한 짜증이 나면 났지.

그만큼, 피터를 통해 <마지막 마법사>를 채가려 한 모습이 치졸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마지막 마법사>라는 황금알을 낳을 것 같은 거위.

그 메가폰을 잡게 될 감독이 자신들과 지금껏 함께해 온 피터 잭슨이었으니, 그 거위가 자기네 거위일 줄 알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 걔네도 나름 피터에게 통수 맞은 기분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워너 브라더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저번에 말한 것처럼 내년 중순이면 호빗의 촬영이 끝난다.

피터의 태도를 보면 끝나는 대로 바로 <마지막 마법사>의 메가폰을 잡을 것 같았고.

그러면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내게 있는 거다.

그때까지 워너 브라더스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 만한 제작사라…….

뭐, 1년 반 만에 워너 브라더스와 비견될 만한 회사를 차리거나 인수하는 건 회귀자인 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공룡의 코에 한 방 먹여 주는 것뿐이라면 같은 공룡만 가능한 건 아니었다.

사자나 호랑이 정도라면 그래도 한 방 정도는 때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랜만에 예전에 작성했었던 회귀자 노트를 꺼냈다.

1년 반의 시간?

‘<마지막 마법사> 영화에만 한정해서 빅 6에 밀리지 않는 지원을 할 수 있는 제작사를 차리는 거라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 않은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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