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46화 (46/267)

46화 내가 내 무덤 파기

‘조만간 미국에 다시 와 봐야지. 배낭여행처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며칠 후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이제 스스로에게 줬던 휴가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돌아가면 다시 춥게 지내야 할 것 같아, 떠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 해변의 따듯함을 제대로 즐겼다.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마법사>가 미국도서관협회 ALA Book award를 수상했어요.”

그사이 엘레나가 전해 준 소식.

<마지막 마법사>가 도서 관련 상을 탔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상 소식은 정말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텍사스, 아칸소, 콜로라도, 켄터키… 와, 주들이 참 많기도 하네.’

이번에 알게 된 건 미국은 정말 독서의 나라라는 거다.

연간 평균 독서량이 겨우 9.6권에 불과한 한국과는 달리, 연간 평균 독서량이 거의 80권에 달할 정도로 독서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그 때문인지 온갖 주에서 수많은 도서 관련 상이 있었고, 그중 <마지막 마법사>가 수상하게 된 상들도 적지 않았다.

Iowa Teen Book Award 추천도서.

Kansas William White Award 수상.

Kentucky Bluegrass Master List 수상.

California Young Reader Medal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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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Jersey Garden State Book Award 수상.

New Hampshire Great Stone Face Book Award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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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을 떠나기 바로 전날.

나는 시간을 내서 윅슨 출판사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미국은 참 넓구나.’

내가 머무던 LA 산타모니카 해변도 그렇고, 윅슨 출판사의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같은 캘리포니아주인데.

차를 타고 왔더니 거의 8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거리가 무려 378마일(608km)에 달했던 것.

‘슈퍼카라는 건… 생각보다 엄청, 엄청, 엄청나게 불편했고.’

비행기를 타도 됐지만 굳이 자동차로 움직인 건 이번에 미국에 놀러 온 기념으로 렌트했던 포드 GT를 마음껏 몰아 보기 위함이었다.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가격이 비싼 만큼 승차감도 그 반의반 값만큼은 할 줄 알았는데… 과거로 오기 전 탔던 300만 원짜리 중고차보다 못한 승차감이었다.

그 탓에 한 50km 정도를 드라이브하다가 도중에 멈춰 서서 추가 요금을 내고 내가 있던 곳으로 승차감 좋은 SUV를 따로 요청해서 타고 왔을 정도.

예전에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살짝은 바뀌게 되는 계기였다.

아무튼.

“아! 오셨어요, 작가님?”

사무실로 들어서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엘레나.

저번에도 느꼈지만 참 밝은 사람이었다.

“아… 저분이 그 선우 작가님……?”

“으으. 그리고 우리 회사의 주인이시기도 하지.”

하지만 사무실에 있던 다른 출판사 직원들은 엘레나처럼 밝은 나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무실 곳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

내 등장에 시선이 내쪽으로 쏠려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엘레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빠짐없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서 빨리 잠에 들고 싶다고 말하는 그런 얼굴.

게다가 그들의 책상에는 다 마신 커피로 보이는 플라스틱 컵들이 가득했다.

“어… 출판사가 많이 바쁜가 보죠?”

“하하. 당연하죠. 지금 전국 각지 서점에서 <마지막 마법사>를 언제 들여올 수 있냐고 성화거든요.”

엘레나의 말이 사실인지 지금도 사무실 곳곳에서 전화가 계속 울려 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 보니, 다들 비슷했다.

<마지막 마법사>를 언제 받을 수 있냐.

지금은 힘들다, 양해해 달라 아마 OO일 후 즈음에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더 주겠다. 빨리 보내 달라.

아무리 돈을 더 주겠다고 해도 우선 배급해 드리는 건 불가능하다.

뭐, 이런 거절의 대화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재고가 다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보내 주냐는 항의 전화들이 엄청 많죠. 이게 한 서점에 사정을 설명해도, 전화를 끊으면 다른 서점에서 전화가 오고, 그걸 끊으면 또 다른 서점에서 전화가 오니까요. 게다가 해외 출판 관련 건으로도 일들이 많고요.”

“어… 음. 듣기는 들었지만, 인쇄 일정이 많이 빡빡한가 보죠?”

“후우. 그래도 다음 주 정도에는 정상화될 것 같아요. 우선 저희가 가동할 수 있는 인쇄소들의 일정을 뒤로 미루고 최대한 <마지막 마법사>의 인쇄에 집중하고 있기도 했고, 다른 출판사들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인쇄소를 빌리고 있거든요. 메일로 관련 사항을 보고드렸는데, 안 보셨나 보네요.”

“하하. 제가 좀 바쁘다 보니…….”

그렇게 답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보니 ‘진짜 바쁜 사람이 누군데!’ 싶은 표정으로 날 보는 출판사 직원들이 보였다.

흠흠.

이거 좀 민망하네.

밤낮으로 근무하는 사람들 앞에서 3주 동안 놀고먹었던 내가 바쁘다고 한 꼴이었으니.

아무튼.

“저… 직원들 월급은 잘 챙겨 주시는 거죠?”

“하하! 그럼요. 저희가 무슨 악덕 출판사도 아니고. 노동법도 철저하게 지키고 있고요.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자발적으로 특별 근무를 하시겠다고 한 분들이세요. 이번 특별 근무로 나가는 보너스가 좀 크거든요.”

괜한 걱정이 들어 소리를 낮춰 엘레나에게 물었는데,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 엘레나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중소기업들과는 달리 윅슨 출판사는 그렇지 않은 모양.

다행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으음. 그 보너스 말고도 다른 보너스를 또 지급하는 건 어때요?”

“예? 어떤 보너스요?”

“저번에 말씀하신 거로는 <마지막 마법사>의 현재 판매 부수가 210만 부라 하셨죠. 어디 보자… 500만 부? 판매 부수가 500만 부를 넘어가면 출판사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또 지급하는 거죠. 어느 정도 드릴지는 알아서 책정해 주시고요.”

왜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는 거냐 싶겠지마는, 이게 이렇게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돈다발이라도 안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른 회사도 아니고 내가 가진 회사의 직원들이어서 그런가, 마냥 남 같지 않단 말이지.

아무튼.

그러던 그때였다.

“네에? 하하하, 500만 부요?”

엘레나가 웃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내가 한 보너스 얘기를 들은 건지, 사무실 곳곳에서도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대체 왜 이런 반응인 건가 싶었는데…….

“작가님은 <마지막 마법사>가 지금 미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정말로 모르셨던 거군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계속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뒤이어 엘레나의 말이 들려왔다.

“500만 부는 이미 선주문량으로 들어와 있어요! 저희가 500만 부를 넘기기 위해 할 거라고는 인쇄소를 독촉하는 게 전부라고요.”

곧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마지막 마법사>가 이미 연재된 10권 분량까지를 한꺼번에 출판한 거라지만…….

500만 부가 이미 선주문으로 나갔다고?

“며칠 전에 210만 부가 팔렸다 하지 않았나요?”

“와우. 정말 제가 보낸 메일을 하나도 안 읽으셨군요. 그때도 선주문량을 포함하면 300만 부 정도가 나간 상황이었죠. 지금은… 애런, 지금까지 <마지막 마법사>의 주문량이 얼마지?”

엘레나가 근처에 있던 히스패닉 계열의 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놓인 컴퓨터를 조작하는 직원.

“어디 보자. 지금까지 정확히 613만 3,000부네요. 아! 방금 또 7,000부 주문이 들어왔으니 이제는 614만 부고요.”

…와우.

210만 부를 팔았으니 2주 만에 2,300만 달러를 번 거라고 좋아했던 게 딱 사흘 전이었는데.

알고 보니 2주 하고도 3일 만에 그 3배 가까이 번 거였다.

* * *

“하하. 작가님,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겨울인데도 날씨가 따듯해서 좋더라고요.”

오랜만에 찾은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촬영장.

반팔이나 긴팔 한 장으로도 지낼 수 있었던 캘리포니아의 날씨와는 달리, 한국의 2월은 후- 하고 숨을 내쉬면 하얀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였다.

“흐흐. 그래도 작가님 덕분에 지금 이렇게 야외 촬영을 해도 추위를 덜 느끼게 됐는데요. 크으, 이게 처음에는 웬 굼벵이 패딩인가 했는데, 이제 이거 없으면 어쩌나 모르겠어요.”

“다른 스태프분들도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게다가 이게 다 거위 털이라면서요? 이거 하나만 입으면 안에 반팔로도 지낼 수 있다고 다들 엄청 좋아합니다.”

양진철 PD의 말에 피식 웃으며 촬영장을 둘러봤다.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모습.

그들이 공통적으로 입고 있는 옷이 있었다.

바로 롱패딩.

‘롱패딩을 한번 입기 시작하면 다시 그 전으로 못 돌아가지. 후우, 예전엔 이거 없이 겨울을 어떻게 보냈나 몰라.’

롱패딩은 한 번도 안 입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은 사람은 없다는 마성의 아이템.

머지않은 미래에는 겨울철 필수 아이템이 된다.

하지만 그런 롱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하게 되는 건 5년 후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 롱패딩이 나오고 나서부터.

평창 롱패딩이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해에 나오니, 롱패딩의 유행까지는 한 4년 정도가 남은 거였다.

그래서인지, 지금 시점에는 겨울에도 이렇게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더라.

그나마 축구처럼 여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야외에서 뛰는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이 이동 중간에 입는 정도?

뭐, 그래도 미래에서 이미 그 편안함을 만끽해 온 나한테는 롱패딩이라 함은 겨울철 없어서는 안 될 필수템인지라.

이렇게 야외 촬영장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롱패딩을 입고 왔었는데…….

친한 배우들이나 스태프 중에서 그런 내 롱패딩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래서 저번에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시청률이 전 방송사 1위를 달성했을 때, 내가 그 기념이라는 명목으로 전 촬영 팀에 롱패딩을 사서 돌렸다.

물론 거위 털 충전재로 이루어진 최고급으로.

‘그리고 이게 때아닌 유행을 타 버렸지.’

[올겨울, 롱패딩이 유행하는 이유! 그건 바로 ‘연기 천재가 되었다’?]

[한시연과 강주원의 커플 룩! 우리 사실…….]

[2013년 겨울, 롱패딩이 유행한다!]

[올겨울은 이거 하나면 끝! 롱패딩이 좋은 이유 5가지!]

당장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롱패딩을 치면 나오는 기사들이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는 그 인기 덕에 작품 외적으로도 여러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였는데, 그런 드라마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다들 웬 이상할 정도로 길쭉한 패딩을 입고 다니니, 그게 화제가 된 거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쟤네 뭐 스포츠 팀임? 뭐 저런 걸 단체로 입고 다님?’ 정도의 반응이었다는데…….

“어? 작가님! 오셨네요! 하하.”

“미국은 잘 다녀오셨어요?”

우리 두 주연 배우 강주원과 한시연.

최근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성공으로 함께 주가가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이 두 사람이 나온 롱패딩 착용 컷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너도나도 롱패딩을 따라 입기 시작한 것이다.

왜, 어떤 여배우 한 명도 본인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단발머리로 TV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단발병자를 양산하지 않았나.

비슷하게 롱패딩도 두 대세 배우가 입고 다니면서 유행을 타게 된 것이었다.

이게 처음에만 생김새를 보고 좀 거부감이 생기지.

계속 보다 보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나름 패션 아이템 느낌도 있었다.

게다가 보온성만큼은 다른 외투와 비교 불가였으니.

‘그래서 나중에 유행이 다 끝난 후에도 방한복 느낌으로 겨울에 다들 입고 다녔었지.’

어쩌다 보니 롱패딩을 몇 년 빨리 유행시키게 돼 버렸다.

그나저나-

“작가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촬영장 한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둥-!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

그 순간이 와 버린 것이다.

“어? 이제 시작하시는 거예요? 작가님 파이팅 하세요!”

“지금이라도 저를 선배님이라 부르시면 제가 꿀팁 알려 드릴 수 있는데, 흐흐. 오늘 하루면 충분한데 안 그러실 겁니까?”

“오빠는 또 뭔 소리야. 저번에 못 들었어? 작가님 배우 지망생이셨다잖아. 어련히 잘하시겠지.”

“하하…….”

강주원과 한시연의 말에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다.

사실 뭐라고 한 건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과거로 오고 난 이후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던 탓이다.

비트코인을 고점에서 정리할 때도, 통장에 찍힌 100억이라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다.

“메이크업은 오랜만에 하시는 거죠?”

“네. 저번에 예능 출연 이후로 처음이네요.”

저번에 예능 출연했을 때, MC와 다른 두 배우의 등쌀에 떠밀려 나도 모르게 말해 버린 게 있었다.

“이번에는 아마 예전보다 과하게 들어갈 거예요. 아무래도 역할이 역할이시니까요.”

“후우. 네. 저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으로 넣고 싶었었는데.”

“어머, 그럼 안 되죠. 작가님 같은 얼굴이 지나가는 행인인 게 말이 돼요? 톱스타로 나와야지, 톱스타.”

바로 시청률 25%를 넘겼을 때의 공약.

…내 카메오 출연.

내 손으로 내 무덤을 파 버린 날이 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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