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마지막 마법사> 열풍
다음 날.
피터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피터 - lol. 사람들은 이 마법사가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억만장자 마법사라는 걸 알긴 하려나?]
이런 말과 함께 링크 하나가 딸려 있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한 신문사에서 낸 <마지막 마법사>에 대한 서평이었다.
[피터 잭슨의 성공 가도는 지속될 것인가?]
어제 반지의 제왕의 영화감독 피터 잭슨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테메레르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소설,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화 계약을 맺었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마법사>는 대체 어떤 소설일까?
아직 종이책으로 출간도 되지 않은, 그저 개인 출판을 통해 아마존에 팔리고 있을 뿐인 소설이 대체 얼마나 재밌기에 그 피터 잭슨을 사로잡은 것일까?
본 기자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어제 밤을 새면서까지 <마지막 마법사>를 읽어 보았다.
‘…마법사라는 게 작가 본인이 마법사라는 소리였나?’
현재까지 연재된 분량을 모두 읽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이게 대체 뭔 소리냐고?
글쎄, 궁금하다면 당장 구글에 <마지막 마법사>를 치고 1화를 읽어 봐라.
몇 시간(분량이 꽤 되는 탓에 아마 십수 시간일 거다) 뒤, ‘다음 화가 없습니다’라는 알림 창에 화를 내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분명 선우라는 작가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게 틀림없다.
<마지막 마법사>를 읽는 사람들의 시간을 훔치고 삭제시켜 버리는 그런 마법.
매 화 다음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마법사>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내일 일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심해라.
‘자기 전에 한번 읽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는 뜬눈으로 밤을 샌 채 <마지막 마법사>의 다음 화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피식-
톡, 토도독.
아무래도 이런 문자를 보낸 게 자기의 노력을 알아봐 달라는 이유인 것 같아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 내 모습을 본 제이슨이 물었다.
그는 윅슨 출판사와의 인수 협상을 위해 오늘 아침 일찍 미국에 와 있었다.
“친구 한 명이 깜짝 선물을 보내 줘서요. 고맙다고 답장하고 있었습니다.”
“오, 그런가요? 좋은 친구네요.”
“예. 좋은 친구죠.”
비록 나이 차이는 엄청나게 났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 저기 오는군요.”
제이슨의 말에 앞을 봤다.
윅슨 출판사에서 온 사람이 도착한 것이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하하. 매번 이런 일만 있었음 싶었을 정도였는데요. 윅슨 출판사 쪽에서도 매각 의지가 강력해서 수월하기만 했는걸요.”
윅슨 출판사와의 인수 협상을 끝낸 후 나는 제이슨과 악수를 나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래도 제이슨의 도움이 컸어. 내 돈을 거의 안 들이고 인수할 수 있었으니까.’
윅슨 출판사를 인수하는 데에 들어간 돈은 이것저것 다 합쳐서 560만 달러 정도.
하지만 거기에 내 돈이 들어간 건 거의 없었다.
모두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에서의 대출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그것도 엄청나게 좋은 조건의 대출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앞서 대출을 알아봤었는데 홍콩 스탠다드 차타트에서의 조건이 훨씬 더 훌륭했다.
물론 거기에는 한때 스탠다드 차타드에서 근무했던 제이슨의 도움이 있었다.
뭐, 홍콩에서 내 작품의 인기가 상당해서 대출이 잘 나왔던 것도 있었지만.
‘홍콩에서도 매출이 꽤 나오고 있지. 대만 쪽도 그렇고.’
두 곳 모두 같은 중화권인 만큼 감성 등에서 비슷한 면들이 있었다.
덕분에 아직 반응이 제대로 오지 않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홍콩과 대만의 매출은 꽤 쏠쏠하게 나오고 있었다.
‘일본 시장은… 음.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이려나.’
안늙강과 칼넘강이 일본에 진출한 지도 벌써 두 달 정도가 지났다.
하지만 초기 예상과는 다르게 일본에서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진한 편이었다.
1, 2권의 판매량과 완결권의 판매량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걸 보면, 한번 본 사람들은 대부분 끝까지 읽는다는 뜻이기는 했는데…….
‘애초에 1, 2권 판매가 그리 많지 않단 말이지.’
일본은 섬나라여서 그런가, 여러모로 특이한 나라였다.
특히 소설과 같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규모가 커서인지, 자기들만의 감성이나 문화 같은 것들이 발달해 있다.
괜히 문화계의 갈라파고스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끈 소설이 일본에서는 그리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안늙강과 칼넘강도 그런 케이스였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초반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계속 우상향하고는 있었지만 그 증가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존 유명 출판사들과 계약을 맺은 게 아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처음에는 나도 유명 출판사들과 계약을 맺고 일본에 진출하려 했다.
막강한 자본과 유통망을 갖춘 출판사들.
하지만 일본에 진출하려고 보니 그런 출판사들은 다 조건을 너무 후려치더라.
이미 한국과 중국에서 상당한 판매 부수를 기록한 소설인데도, 무슨 신인 작가에게 제안할 법한 인세 조건을 들이민 것이다.
심지어 담합이라도 한 건지, 좀 괜찮다 싶은 출판사들은 전부 다 그런 열악한 조건을 제시했었다.
‘그거 듣고 열받아서 그냥 다른 데랑 해 버리라 했지.’
그 탓에 반발 심리가 들어 유명 출판사가 아니라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한 소규모의 출판사와 유통 계약을 맺었는데.
배급력에서 밀리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일본에서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뭐, 그래도 입소문이 퍼지면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린 것이었다.
아무튼.
“후우. 한시름 덜은 기분이네요. 이제 어떻게 불러 드리면 될까요? 작가님? 아니면 대표님?”
“원래 부르시던 대로 작가님이 좋겠네요. 제가 출판사를 인수한 건 맞지만 대표를 맡으려는 것도 아니고요. 대표는 저번에 논의했던 대로 그전까지 부사장 직을 맡으셨던 분이 해 주셨음 합니다.”
“예, 알겠어요. 클레이 아저씨께 전달해 놓을게요.”
엘레나 윅슨.
조금 전까지는 윅슨 출판사의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편집자가 된 그녀가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특이한 사람이야.’
처음에 윅슨 출판사의 얘기를 듣고는 그녀가 물려받은 가업을 팔고 그 돈으로 여생을 즐기려는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괜한 내 지레짐작이었다.
그녀가 출판사를 매각하려는 건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의 대표가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글이 아니라 돈이 되는 글을 다뤄야만 할 것 같아서… 가 매각 이유라니.’
얼마나 편집자라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는 걸까?
심지어 자기 자신의 고용 승계를 인수 협상에서도 특약 조건으로 집어넣더라.
“좋아요. 그러면 계속 작가님이라고 부를게요. 사실 저도 이쪽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온 기사 내용이 사실인가요? 피터 잭슨이 <마지막 마법사>의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는 기사요.”
“아, 보셨군요. 예. 맞습니다. 피터와는 원래 친분이 있었거든요.”
“와우. 피터 잭슨 그 양반이 운이 참 좋네요.”
“하하. 제가 아니라 피터의 운이 좋다고요?”
재밌는 말이었다.
반지의 제왕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하면서 A급 감독의 반열에 오른 피터 잭슨.
그리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꽤 성공한 작가이기는 했지만, 영미권에서는 이제 막 뜨고 있는 작품의 작가에 불과한 나.
그런 둘을 놓고 내가 아니라 피터보고 운이 좋다고 하다니.
“예. 반지의 제왕에 이어서 이렇게 대박작을 잡았으니까요.”
“하하. 대박작이요?”
“물론 아직은 종이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조만간 대박작이 되겠던데요, 뭐. 제가 작품 보는 눈은 꽤 좋거든요.”
“<마지막 마법사>를 읽으신 건가요?”
“당연하죠. 저는 작가님의 인수 제안을 듣기 전부터 <마지막 마법사>의 독자였어요. 덕분에 윅슨 출판사를 인수하고 싶으시다는 게 작가님이란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내는 엘레나였다.
“특히 5권의 중반부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그간 캐릭터들이 쌓아 올린 서사가 대폭발하는 그 장면이요. 제가 마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 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마지막 마법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설 속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력을 갖고 있죠.”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으으. 마음 같아서는 작가님을 붙잡고 <마지막 마법사>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몇 시간이라도 떠들고 싶지만… 그래도 일이 먼저겠죠?”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 마법사>의 출간 일정을 서두르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고용 승계처럼 특약 조건으로 집어넣은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인수 협상 과정 동안 몇 번이나 부탁한다며 말한 게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직접 <마지막 마법사>의 담당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한 명의 훌륭한 편집자이기도 했으니까.
지금까지의 경력을 살펴봤는데, 윅슨 출판사에서 최근 5년간 출판했던 히트작 중 반 가까이가 모두 그녀의 담당작이었다.
‘인쇄까지는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댔지.’
그것도 원래는 몇 주가 필요한 걸, 엘레나가 미리 표지는 물론 인쇄소 일정까지 잡아 놓은 덕분에 일주일밖에 안 걸리는 거였다.
윅슨 출판사를 인수하려는 게 나라는 걸 알고 <마지막 마법사>를 종이책으로 내겠구나 싶어 미리 준비해 놓은 거란다.
‘다행인 일이지. 피터의 인터뷰 때문에 생긴 마케팅 효과를 썩히지 않아도 되니까.’
* * *
3주 후.
‘캘리포니아는 참 좋은 곳이야.’
한국에서는 2월이면 아직 추운 늦겨울인데, 캘리포니아의 2월은 그리 춥지 않았다.
추위를 그리 타지 않는 사람이라면 반팔 한 장으로도 충분한 정도.
한국으로 치자면 꼭 봄가을의 날씨 같았다.
덕분에 나는 지난 3주간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푹 쉬니까 제대로 재충전한 기분이네.’
생각해 보면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사흘 이상 글을 쉰 적이 없었다.
<마지막 마법사>의 1부를 완결 내고 비트코인을 정리하느라 쉬었을 때도, 이틀에 한 번씩은 한글 창을 켰었다.
즉, 나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가.
그 때문인지 지난 3주 동안 글 생각이 아예 나지가 않더라.
우우웅-
‘오늘부터는 다시 글을 써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엘레나였다.
“작가님, <마지막 마법사>의 지금까지 판매 부수를 알려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출판된 지 2주가 지났죠. 어느 정도인가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전화해서 판매 부수를 물어볼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쉬는 동안에는 최대한 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생각보다 덜 팔린 건가?’
엘레나의 목소리가 꽤 담담했던 탓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JP미디어나 진강문학사, 텐센트 등에서 이런 전화가 올 때면 항상 담당자들의 텐션이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번 ‘작가님! 대박입니다!’ 같은 멘트로 전화를 시작하고는 했었으니까.
그런데.
“음. 어제 자로 210만 부 정도가 팔렸어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은 대답이 돌아왔다.
210만 부?
중국에서 인기가 그렇게 대단한 칼넘강도 한 달에 가장 많이 팔렸을 때가 100만 부였다.
그런데 출판된 지 겨우 2주 지난 <마지막 마법사>가 210만 부?
내가 놀고 먹고 싸고 자기만 했던 3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심지어 이어서 들려온 엘레나의 말은 더욱 놀라웠다.
“후우.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릴게요. 저희가 동원할 수 있는 인쇄소를 모두 동원했지만 역부족이더라고요. 그 탓에 겨우 200만 부밖에 못 넘겨 버렸어요.”
…겨우?
지금 겨우라고 한 건가?
‘이게 바로 웨스턴 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