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천재라는 게 다 저런 건가?
나는 장이밍과 마주 앉으며 그를 살폈다.
‘나중에 몇천 억 달러짜리가 되는 기업의 창립자여서 그런가? 지금 자금 사정이 꽤 어렵다고 하던데… 그런데도 비굴함은커녕 태도에서 자신감이 보이네.’
바이트댄스가 현재 자금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건 제이슨을 통해 얻은 정보였다.
홍콩의 투자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중국 관련 기업들에 대해서도 빠삭했다.
‘운이 좋았어.’
지금 이렇게 장이밍과 마주 보고 있는 데에는, 여러 운적인 요소가 겹쳤었다.
우선, 바이트댄스가 자금난을 겪고 있던 것도 그렇고.
바이트댄스라는 사명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이 새끼들은 모회사 이름이 바이트댄스여서 ㅈ같은 춤만 춰 대는 거냐? ㄹㅇ 광고 볼 때마다 기획한 새끼 개패고 싶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런 공격적인 어투의 댓글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한창 틱톡 광고로 시끄러울 때였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바이트댄스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또 하나의 행운이 겹쳤다.
“사실 원래는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
“유명한 소설가이신 건 저도 뉴스를 통해 보긴 했습니다만, 오히려 소설가라는 직업 때문에 선입견이 있었던 거죠. 인공지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투자하려는 거 아냐? 뭐, 이렇게 지레짐작을 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마이크를 통해서 얘기를 전해 듣고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선 그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놀랍게도 장이밍은 <마지막 마법사>를 통해 알게 된 마이크 마틴과 아는 사이였다.
마이크도 인공지능 관련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 포럼에서 장이밍과 몇 번 마주쳤던 사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바이트댄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
덕분에 마침 내가 중국에 왔을 때 이렇게 만날 수 있던 것이었다.
“하하. 이해합니다. 제가 SF 소설을 쓰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장이밍이었다.
‘사실 틱톡이 출시되려면 꽤 시간이 있어서 나중에 투자할까 했는데.’
틱톡이 16년도에 처음 나왔으니, 무려 3년이나 남았다.
내가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해 그 시기가 앞당겨진다 하더라도 1년 정도 당기는 게 전부일 거다.
그래서 바이트댄스는 일단 위시 리스트에만 넣어 두고 나중에 투자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제이슨을 통해 듣게 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현재 바이트댄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얘기를 들으니 지금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시 리스트라고 하니까 꼭 쇼핑몰에서 물건 고르는 것 같네.’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 몇 년 후 최소 수천억짜리가 될 기업들이라는 것만 빼면 쇼핑할 때의 기분이었다.
아무튼.
바이트댄스의 현 주력 상품은 진르터우툐(今日头条)라는 서비스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성별이나 연령과 같은 기본적인 건 물론 주로 읽는 뉴스의 종류나 매체, 분야, 읽는 시간 등 사용자의 뉴스 소비 패턴을 분석해서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를 추천 형식으로 띄워 주는 방식이었다.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서 좋아할 만한 걸 추천해 준다. 어디서 많이 본 방식이잖아.’
유저들의 행동 정보를 분석해 관심사를 예측한 후, 그 관심사에 따른 뉴스를 추천해 주는 서비스.
거기서 뉴스 대신 영상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바로 떠오르는 기업이 하나 있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유저 행동을 분석해서 좋아할 만한 드라마나 영화를 추천해 준다.
나도 예전에 꽤 오랜 기간 동안 넷플릭스를 구독한 적이 있는데, 추천 알고리즘이 꽤 정확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뭐, 그러다가 금방 볼 게 떨어져서 결국 구독을 해지했었지만.
아무튼 추천 알고리즘이야말로 넷플릭스가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넷플릭스보다 더 큰 OTT 서비스를 만들 거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역량이기도 했다.
‘바이트댄스의 인공지능 기술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게다가 인공지능 기술 말고도 틱톡이라는 성공이 이미 보장된 바이트댄스였으니.
내가 할 일은 누워서 가만히 과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다.
즉, 이런 개꿀 투자도 또 어디 없었다.
* * *
“허어.”
선우진과의 만남이 끝나고, 호텔을 나서자마자 장이밍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흥미로운 인물이야.’
마이크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선우진이 온갖 뉴스나 기사에 나올 정도로 성공한 작가라거나, 웬만한 연예인보다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다거나 하는 점은 다 제쳐 둔 후에 봤을 때에도.
선우진이란 사람은 정말로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진르터우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진르터우툐에 대해 그가 얘기한 관점이라거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전망 등.
투자와 관련된 얘기를 하기 위한 만남이었는데, 선우진이 하는 얘기들이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대화의 대부분을 투자가 아닌 다른 얘기들로 떠들어 댔을 정도다.
꼭 마이크와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식견 있는 전문가와 얘기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진짜 전문가는 아닌 만큼 관련 지식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에 있어서는 그가 그간 만나 본 그 어떤 이보다 위에 있었던 선우진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가 SF 작가인 것도 아닌데…….’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면 꼭 한 편의 SF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것도 10년 정도 후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소설을.
물론 고작 10년 후를 예측하는 게 별거냐 싶겠지만, 그건 뭣도 모르는 놈들이나 할 법한 무식한 소리다.
과학기술의 가속적 발전으로 하루하루 단위로 달라지는 세상이다.
특히 모바일 시장이라는 전례 없던 시장의 발달로 그 어떤 전문가도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달랐다.
꼭 직접 그런 세상을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확신 있는 태도.
게다가 단순한 공상을 떠들어 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럴듯한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선우진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 그럴 것 같은데……?’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
‘천재라는 게 다 저런 건가?’
중국 나이로 고작 18살에 그 정도로 성공했을 정도니.
그가 천재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미래 산업에 대한 통찰을 갖출 수 있는 건가?
심지어 글이라는 분야와는 전혀 동떨어진 부분들에 대해서도?
나름 머리 좋다는 소리를 인생 내내 듣고 살아왔던 장이밍으로서도 순간 질시의 감정이 들게 할 정도였다.
만약 내게도 저렇게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었다면!
선우진과의 대화 내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이크가 좋은 인연을 소개시켜 줬어.’
저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투자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선우진의 투자금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과도 같은 상황이었으니.
천운도 이런 천운이 따로 없었다.
“여기요!”
장이밍이 그런 생각을 하며 택시를 잡았다.
* * *
“으아.”
장이밍이 떠나고.
거의 몇 시간 동안 나눈 대화에 지친 나는 소파에 깊게 몸을 뉘였다.
‘오늘의 만남을 위해 팔자에 없던 공부도 해야했지.’
장이밍이 마이크를 통해 내 얘기를 들은 것처럼, 나도 마이크를 통해 장이밍이란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대략적으로나마 들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이끌어 갈 미래를 확신하고, 그 미래에 자신이 일조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
단순 투자자로 접근하는 것보다 나 또한 비슷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그래야만 투자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논문을 여럿 읽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마이크에게 물어 공부하는 등.
요 며칠 평생 잘 하지도 않던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게 됐었다.
뭐, 그 덕분인지 대화 중간부터 날 보는 장이밍의 눈빛이 엄청 바뀌더라.
꼭 드라마 대박 나고 난 이후 양진철 PD가 날 보는 얼굴 같았다.
‘으음.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어.’
처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대화 도중에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별로 대단한 말도 안 했는데 내가 뭐 말만 하면, ‘오오 그렇군요! 작가님께서는 그런 견해시군요!’ 이러는데… 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실수한 건 없었겠지?’
잠깐 동안 장이밍과 나눈 대화를 반추해 봤다.
혹 내가 말실수한 게 없는지 생각해 봤는데, 다행히 크게는 없는 것 같았다.
도중에 틱톡에 대한 힌트를 넌지시 줄 겸, ‘한 5년 후에는 이렇게 되지 않겠어요?’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장이밍의 눈빛이 얼마나 뜨겁던지.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말을 좀 조심할 수 있었다.
혹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떠들다 나만이 알고 있는 미래 이야기를 떠들어 댈 수도 있었으니까.
미래에 대한 개념 같은 건 누구와 함부로 얘기할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장이밍처럼 차후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인물이라면,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몰랐다.
‘음. 크게는 없는 것 같네.’
그래도 처음 틱톡 얘기 이후로는 조심해서 그런지 큰 실수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장이밍과의 이야기는 잘 끝났다.
구체적인 조건을 논의하고 그걸 수락한 건 아니었지만, 구두로 내 투자 제안에 대한 긍정적인 의사를 확인했다.
남은 건 조만간 미국에 갔을 때 투자 법인을 설립하고 세부 조건을 협상한 후, 정식 투자 제안을 넣는 것뿐이었다.
‘데브브라더스의 투자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미국 투자 법인을 통해 투자하는 걸 말하는 거였다.
그때는 잘 몰랐던 터라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문득 며칠 전에 떠오른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 재벌물 주인공들은 다 미국에 투자 법인을 차리지 않나? 왜 그런 거지?’
뭐, 이런 의문이 떠올라 관련해서 좀 찾아봤었다.
그런데 재벌물 주인공들이 다 그랬던 이유가 있더라.
세금 관련 문제도 있고, 나중에 투자 법인의 덩치가 커졌을 때 그에 따른 한국 정부의 압박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더라.
괜히 재벌물 작가들이 그렇게 쓴 게 아니었던 거다.
이게 확실히 웹 소설도 나름 고증을 꽤 지킨단 말이지.
그나저나-
[강주원 - 작가님! 조만간 봬요!]
[한시연 - 중국 잘 다녀오시고요!]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단톡.
거기서 한국에 오면 보자는, 두 주연배우들의 연락이 와 있었다.
양진철 PD를 통해 출연하기로 한 예능.
결국 나 혼자 출연하는 토크쇼가 아니라, 강주원과 한시연과 함께 나가는 단체 예능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