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중국 방문
‘일등석이란 게 이런 곳이구나.’
중국의 국책 항공사, 에어차이나의 일등석.
내가 에어차이나를 택한 건 아니고, 채널 CHIN에서 보내 준 비행기표였다.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편이라 비행기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일등석만큼은 넓고 아늑했다.
‘예전엔 이코노미만 타 봤었는데.’
15시간 내내 그 좁은 좌석에 앉아 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작 몸 조금 편하자고 몇십만 원을 더 내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퍼스트 클래스는 오죽했을까.
돈 낭비 of 돈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퍼스트 클래스를 타 보니 알겠다.
‘이래서 타는 거구나.’
시트 옆에 준비되어 있는 프랑스 모 명품 브랜드의 어메니티 키트, 자필로 쓰여진 환영 손편지부터 시작해서.
우우웅-
1인용 리클라이닝 시트.
이게 진짜 편하다.
작업실에 비슷한 걸 하나 들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였다.
으음.
이런 걸 알게 된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어.’
꼭 그런 대사를 해야 할 것만 같다.
한번 퍼스트 클래스의 편안함을 알아 버린 이상, 이제는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비즈니스석이나 이코노미석을 탈 수는 없을 것 같다.
돈이 부담되는 것도 아니니까.
뭐, 그렇다고 일등석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완벽한 건 아니었다.
우선 식사.
고작 2시간 남짓의 비행이지만 비행시간이 식사 때와 겹쳐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주는 건지 기내식을 주던데…….
‘밥은 일등석치고는 그저 그렇네.’
이코노미와 다른 점이라면 코스 요리처럼 죽과 전채 요리, 메인 요리 순으로 음식을 내주는 것 정도?
메인 요리는 코리안 핫팟이라고 해서 대체 뭘 말하는 건가 궁금해 시켰더니, 그냥 비빔밥이었다.
평범하게 맛있는 비빔밥.
앞으로 한동안 중국 음식만 먹을 것 같아서 시킨 거라 만족하긴 했지만, 그냥 나쁘지 않다 정도였다.
일등석 기내식이라 기대한 것치고는 그저 그런 느낌.
그래도 배는 꽤 고팠기에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와인도… 그냥저냥이고.’
뭐, 프랑스 샤또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이라는데, 솔직히 맛은 잘 모르겠다.
비즈니스석 이상부터만 제공된다 해서 시키긴 했지만, 몇 번 마셔 보고 나머지는 남겼다.
물론 이런 감상은 내가 원래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도 있을 거다.
그래도 고급 와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지.
‘이 정도 급의 와인 말고 한 병에 수천만 원 하는 진짜 고급 와인은 좀 다르려나?’
그건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원래 제대로 된 걸 마셔 봐야 그 주종의 참맛을 알게 되는 거니까.
내가 위스키를 좋아하게 된 것도 친구가 자기 아버지께 선물로 들어온 발렌타인 40년산을 몰래 가져와서 그걸 마시고 나서부터였다.
한 병에 천만 원짜리, 그걸 말하는 거 맞다.
통이 얼마나 큰 건지, 친구 놈은 천만 원짜리 위스키를 우리 먹이겠다고 몰래 갖고 온 것이다.
뭐, 그런 위스키를 선물로 받은 거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금수저 집안 친구 놈이라 크게 혼은 안 나긴 했다지만.
여하튼.
그걸 마시고는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던 위스키에 그때부터 빠지게 됐던 것처럼, 와인도 그런 순간을 겪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돌아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비싼 거로 몇 병 사 보자.’
넉넉하게 사 가서 부모님께도 드려야지.
내 입만 호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면 가족이 함께 수천만 원짜리 술을 마셔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가족이 함께 술을 마신 건 아직 한 번뿐이었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야 훨씬 더 많다지만, 그건 나만 아는 기억이니까.’
그때 마셨던 건 평범한 소주와 맥주였다.
술은 부모님께 배워야 한다며 아버지께서 소맥도 말아 주셨다.
내가 잔을 받고 나서 자연스럽게 숟가락으로 탁! 치는 걸 보고 조금 놀라시더라.
아무튼.
수천만 원짜리 술이라.
평소에 주당 소리 들으시는 두 분이시니까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그 피를 물려받은 누나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아니면 ‘한 잔에 이게 얼마야… 아까워서 못 마시겠다, 난.’ 이러실 것 같기도.’
어쩌면 돈 아깝게 뭘 이런 걸 사 왔냐고 그러실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환불해 오라고 등 떠밀면서 말이다.
우리집은 어릴 때부터 별로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족하게 살았던 건 또 아니었지만, 부모님 두 분은 젊었을 때 엄청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분 다 모두 검소한 편이셨다.
왜, 안 쓰는 전자기기가 코드 꼽혀 있으면 빨리 뽑으라고 나무라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셨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 싫기도 했다.
그거 아껴 봐야 얼마나 한다고.
백날 아끼고 살아 봐야 몇백 원, 몇천 원 아끼는 거 아니냐고 짜증을 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많이 어렸었지,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이 없었다.
우리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내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 건 다 부모님의 그런 검소함 때문이었을 텐데.
그런 과거가 떠올라서일까.
앞으로는 두 분 다 최대한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수천만 원이 아니라 수억 원짜리 와인이라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시도록.
본인들이 좋은 걸 드시고, 좋은 걸 입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시게 만들고 싶었다.
회귀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그런 마음을 그저 마음으로 끝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 거다.
‘…그래도 왠지 전기 코드는 항상 뽑고 다니실 것 같지만.’
피식-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도 시켜 드릴 거다.
당연 가전들도 최고급으로만 채울 거고.
그런데 최고급 가전들로 가득한 집에서, 정작 두 분은 외출하시기 전에 전기 코드를 뽑으실 것 같았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 * *
“작가님, 편안한 비행 되셨나요?”
“예. 신경 써 주신 덕분에요.”
짧은 비행을 끝내고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니 알게 된 일등석의 장점이 또 있었다.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릴 수 있다는 것.
내리자마자 마룽 PD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웬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도 네 명이나 함께 있었다.
“어… 이분들은 누구시죠?”
“아! 경호원입니다.”
귀에 뭘 끼고 있어서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그런데 웬 경호원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오히려 마룽 PD가 놀라며 묻는다.
“설마 작가님… 잘 모르시는 겁니까?”
“예? 뭘요?”
“작가님 인기요! 지금 작가님 때문에 중국이 얼마나 시끄러운데요.”
인기?
그거야 듣기는 했다.
출판사들로 선물이 엄청 쏟아지고 있다고…….
와아아-!
…정도로 끝낼 수준이 아니었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보이는 수많은 팬.
족히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여성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손에 내 책처럼 보이는 걸 들고 있는 남성들도 보였다.
기자들인 건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룽 PD가 괜히 경호원과 같이 온 게 아니었다.
“작가님, 이쪽으로 오시죠.”
“어… 음. 저분들이 제 팬들이시란 거죠? 어떻게 인사라도…….”
“헉! 무슨 소리십니까. 그러다 큰일 납니다. 중국 팬들이 얼마나 극성인데요. 자, 빨리 가시죠.”
마룽 PD가 손사랫짓을 하면서 나를 한쪽으로 이끈다.
미리 공항 차원에서 준비를 해 둔 건지, 입국장 한쪽에 몇 명 정도가 따로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네 명이 끝이 아니었는지 열 명은 되는 것 같은 경호원 무리들이 그 통로 옆에서 사람들을 제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보자 달려들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니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후우!”
그렇게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마룽 PD가 안내한 리무진 안에 들어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꼭 한류 스타라도 된 기분이네.’
아니, 상황을 보니까 진짜 한류 스타가 된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그런 소리를 중국에 오기 전에 듣기는 했지만, 과장하는 거거나 날 띄워 주기 위한 입발림 말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순도 100%짜리 진실이었다.
‘한국은 내 정체가 공개되고 나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모자나 마스크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기는 해도, 이렇게 달려드는 사람들까지는 없었다.
기껏해야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는 정도.
사람 많은 곳으로 가면 인파가 꽤 모여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막 달려드는 정도는 아닐 거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가.
정말 나를 연예인 보듯 보는 중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래도 나를 유명 작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여하튼.
‘어쩌다 보니 경호원한테 경호도 받아 보네.’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론 앞으로는 익숙해져야겠지만.
‘마크 주커버그가 한 해에 경호원 비용으로 수백 억을 쓴다지.’
예전에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뭐, 주커버그야 이슬람 과격 테러 단체 IS의 표적이 돼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거기는 했다.
그래도 주커버그 말고 다른 슈퍼 리치들도 대부분 개인 경호원을 고용해 대동하고 다닌단다.
아마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그럼 예약된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마룽 PD가 안내한 곳은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었다.
일등석 항공권에 이어서 리무진과 이런 호텔까지.
귀빈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그만큼 채널 CHIN이 검객무쌍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작품이 잘 뽑히기도 했으니까.’
이미 끝까지 사전 제작이 완료된 검객무쌍이다.
나 또한 당연히 전 회차를 모두 시청했다.
무협 드라마는 역시 중국이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뽑혔더라.
가끔가다 중국 특유의 감성이 조금씩 보이는 신들도 있긴 했는데… 그런 것들만 제외하면 대만족이었다.
게다가 중국 특유의 감성이야 내가 싫은 거지, 중국 시청자들은 오히려 좋아할 장면들이다.
아무튼.
“그러면 편히 쉬십쇼. 내일 아침 10시 30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마룽 PD님도 편히 쉬세요.”
호텔만 5성급인 게 아니었다.
준비한 객실도 스위트룸.
문을 열자마자 널찍한 거실이 보이고, 안쪽으로는 킹사이즈 베드가 놓인 침실이 있었다.
“으아.”
침대에 누웠더니 나도 모르게 요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일등석을 타고 왔다지만, 아침부터 공항 가랴, 출국 수속 밟으랴.
이래저래 고생을 한 탓에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아까의 리클라이너도 그렇고, 비싼 건 비싼 값을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침대도 가격이 꽤 되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가족들 침대도 싸그리 다 바꿔야겠어.’
계속 누워 있다 보니 바로 잠에 들 것만 같았다.
매트리스가 나를 폭 감싸 주는 게 여간 편안한 게 아니었다.
우우웅- 우우웅-
하지만 그런 나를 깨우는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보니 오늘 만나기로 한 이의 연락이었다.
“반갑습니다. 장이밍입니다. 쯔제탸오둥(字節跳動)이라는 인공지능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쯔제탸오둥(字節跳動)은 중국어로 ‘오늘의 헤드라인’이라는 뜻이란다.
뭐, 회사의 주력 상품이 인공지능 기반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거라는데, 아마 그래서 회사 이름도 저것인 듯싶었다.
아니려나? 아님 말고.
사실 장이밍의 회사가 중국어로 어떤 이름을 갖고 있건 말건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탁-
“아, 저는 명함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오기 전에 관련 기사를 몇 개 봤습니다. 얼굴이 곧 명함이신데요.”
장이밍이 건넨 명함.
거기에 적혀 있는 영어 알파벳 몇 글자.
CEO라는 것 말고 그 앞의 것.
‘Bytedance.’
바이트댄스가 무슨 뜻이냐고?
나도 모른다.
뜻을 알 필요는 없다.
이것만 알면 됐다.
‘틱톡의 모회사.’
그러니까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
이상한 광고를 엄청 내놓는 바람에 자린고비인 사람들마저도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게 만든 바로 그 사람.
1,000억 달러짜리 SNS 틱톡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