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다가온 첫방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나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개인 번호가 어디서 샌 건지, 과거 지인들 말고 기자들의 연락도 쏟아져서 번호를 새로 하나 개통해야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번호를 업무용으로 돌리고 이걸 개인용으로 써야 할 상황이었다.
메일함도 여러 번 정리해야 했다.
‘회사가 없으니 이런 점이 불편하네.’
법인이 있기는 해도 그건 내가 대표이자 말단 직원이니 논외였다.
아무튼, 슬슬 법인에 직원을 고용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들었다.
이렇게 미디어들과의 연락 건도 그렇고, JP미디어나 진강문학사, 텐센트 등 작품과 관련해서 소통해야 하는 창구도 여럿이 된 탓에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람 몇 명을 고용해서 업무를 맡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JP미디어 담당자분 스카웃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절대적인 시간만 놓고 본다면 짧지만, 그래도 칼넘강부터 같이해 온 담당자인 터라 내 성향을 주위 사람 중 제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간 봐 온 바로는 업무 능력도 꽤 만족스러웠고.
출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개인 에이전트로 고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의 연봉보다 몇십 퍼는 넘게 인상될 거고, 내 일만 하면 되는 거니 업무도 전보다 더 널널해질 테니… 고용 제안을 거절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다.
뭐, 그 고민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메일함을 정리하던 와중에 발견한 재밌는 메일이 하나 있었다.
‘운 좋은 친구. 널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 무서운 멘트.
발신자 명에 적힌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스팸 메일인 줄 알고 바로 지워 버렸을 정도의 제목이었다.
어쨌거나.
메일의 섬뜩한 그 제목은, 정확히는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럭키 가이라는 것.
‘어떻게 이렇게 딱 나타나지?’
안 그래도 어디서 촬영 감독 하나 하늘에서 안 떨어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냥 촬영 감독도 아니고 피터 잭슨을 알게 될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내가 먼저 찾은 것도 아니라 나를 찾는 그의 연락이 내게 온 상황이다.
정말 메일의 제목처럼 내가 운 좋은 친구인 건 맞는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장담한 것처럼 내가 백만장자가 되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한번 만나 보기는 해야겠어.’
나는 피터 잭슨에게 만나서 얘기해 보자는 답 메일을 보냈다.
네 제안이 무척이나 놀라웠다로 시작해(실제로 놀람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했으니),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 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다.
피터 잭슨이 날 찾아 한국까지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화상 미팅 따위보다는 직접 만나 보고 싶었으니까.
‘피터 잭슨이 날 찾은 것도 그렇고. 슬슬 아마존에서도 반응이 오고 있네.’
만약 <마지막 마법사>가 기존의 내 전작들, 안늙강과 칼넘강과 같은 결의 작품이었다면 반응이 오는 게 더 빨랐을 거다.
일단 제목의 어그로부터 큰 차이가 있었을뿐더러.
그 두 작품들은 초반부터 강한 임팩트와 함께 독자들을 확 사로잡는 매력으로 시작하는 글이니까.
하지만 <마지막 마법사>는 그보다 호흡이 조금 느린, 천천히 불타오르는 글.
재미 면에서는 결코 떨어진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초반 임팩트 면에서는 확실히 다른 두 작품 정도는 아니었다.
그 탓에 <마지막 마법사>는 첫 화 이후 이탈률은 무척이나 적지만, 절대적인 조회 수가 적어 한동안 아마존에 있는 주간 베스트셀러에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아주 적었던 독자들이 이탈 없이 쌓이니, 며칠 전 드디어 주간 베스트셀러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최근 며칠 유입이 지난 두 달간의 유입을 다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
‘꼭 문토피아에서 연재하던 시절 같아.’
내가 처음 웹 소설을 썼던 시기.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쓴 첫 작품이 15화까지 하루 유입이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아 쭉 묻혀 있다가, 운 좋게 문토피아 투베 말석에 들어서고 나서 그야말로 떡상을 했었다.
1화 조회 수가 2주간 250이었던 게, 하루 사이에 600이 됐을 정도.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100단위가 아니라 1화 유입이 1만을 앞두고 있었을 정도였다.
지금 <마지막 마법사>가 아마존에서 겪는 상황이 딱 그랬다.
어그로 등이 부족해 적은 유입으로 연명하던 글이, 노출이 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떡상해 버리는 상황.
오랜 경험으로 미뤄 생각해 봤을 때, <마지막 마법사>의 떡상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타닥, 타다닥-
“후우-.”
피터 잭슨에게 답 메일을 보낸 걸 끝으로, 나는 노트북을 닫은 후 손가락을 쭉 피며 스트레칭했다.
손가락 구석구석이 뻐근했다.
사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지막 마법사>의 1부 완결.
제작 발표회 이후 최근 집 근처에 구한 작업실에 박혀 글만 쓰느라 엄청 바빴다.
다른 활동을 할 겨를도 없이 영감이 마구 떠오른 탓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이야기는 그때 느낀 감성이 머릿속에서 휘발되기 전에 바로 써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작업실에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었던 거다.
잠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집에 들어가서 자고, 대부분은 작업실 안쪽 침대에서 쪽잠으로 때웠을 정도다.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던 생활.
그래도 그만한 생활을 한 값어치는 하는 글이 나왔다.
‘이후 내용이 꽤 바뀌겠지만.’
<마지막 마법사>는 아주 빡빡하게는 아니어도, 그래도 대강의 플롯을 미리 짜 놓고 시작한 글이다.
하지만 요 며칠 써 내려간 내용은 그런 플롯에서 꽤나 벗어난 전개였다.
뭐,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더 좋아 보이는 장면이 떠오르는 걸 어떡해.
떠오르는 대로 써야지.
사실은 지금 시점에 1부가 완결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래는 전쟁 파트를 더욱 길게 가져간 후, 이후의 내용에서 1부를 완결 지으려 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 쓰다 보니 그런 계획에서 꽤 멀어지게 됐고, 그러다 여기서 1부를 끊는 게 아니면 더 나은 선택지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 장면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미리 생각해 놓은 이후 전개의 상당수를 날리긴 해야겠지만, 그 대신 더 좋은 글이 나왔는데.
이걸 만족하지 않으면 작가 실격이었다.
‘번역 때문에 연재까지는 꽤 걸리려나… 여튼 1부 완결 나는 날 독자들 원성이 엄청 자자하겠어.’
숨 막힐 듯 몰아붙이는 전개, 그러다 당도한 클라이맥스, 거기서 터지는 엄청난 카타르시스.
그러다가 클라이맥스가 끝나고도 주인공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으니.
이후 주인공을 둘러싼 주위 상황들이 급변하다가, ‘그래서 다음에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싶을 때쯤.
1부 완결이 나는 거다.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절단마공.
장담하는데, 이렇게 1부를 끝냈다고 욕 좀 먹지 않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딱 끊기 좋은 장면이 나온 것도 나온 거지만, 슬슬 1부를 마무리 지을 때가 다가온 거기도 했다.
앞으로 한동안 글에 시간을 쏟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으니.
달깍-
‘글에 집중하기에는 당분간 힘들 테니까.’
[1BTC = 166.73$]
메일함을 닫고 들어간 마운트콕스의 메인 화면.
그곳에 보이는 엄청난 숫자…….
비트코인이, 폭등하고 있었다.
* * *
내가 기억하는 이 시기 비트코인의 최고점은 200~210불 정도였다.
현재 가격이 160불대였으니, 최고점까지는 40% 가까이나 오를 기회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정리를 해야겠지. 더 욕심을 부리다가는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
비트코인이 7달러일 때부터 천만 단위의 투자를 했던 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의 총 수량은 약 20만 BTC.
지금의 가상 화폐 시장에서 소화하기에는 다소 많은 수량.
그만한 양을 최고점에서 팔았다가는 제대로 다 팔기도 전에 폭락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 높아 보이다 못해 내가 누른 매도 버튼이 곧 폭락의 시작이 되겠지.
지금처럼 내 매도량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비트코인 매수세가 강력할 때 서둘러 정리해야 했다.
‘그래도 수익률이 최소 1,500%는 되니까. 여기서 만족하자.’
지금 가격에 팔아도 1,500%인 거다.
비트코인 가격은 앞으로 한 달간 쭉 우상향할 테니, 최종적으로 정리했을 때는 1,500%보다 높을 거다.
아마 대충 20배 정도의 수익이 되겠지.
한화로 치면 최소로만 따져도 3~400 억의 거금을 회귀 반년 만에 꽁으로 얻어 내는 거다.
뭐, 요즘 글로 버는 돈이 하도 늘어나 월 수입이 수십 억이 된 탓에 일견 적어 보이기도 하지만…….
‘진짜 비트코인 폭등은 연말에 따로 있으니까.’
축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폭등은 그저 전야제일 뿐.
올해 연말에는 1비트코인 당 1,000달러가 넘어갈 정도로 미친 불장이 찾아온다.
그것도 10월까지는 100달러 밑을 맴돌다가, 11월 말에 1,000달러가 넘어 버리는 미친 폭등의 불장이다.
고작 60일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0배가 오르는 시기.
거래량이 종전의 몇십 배를 웃돌 정도로 막대한 자금이 가상 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시기다.
그때가 되면 수백억 단위의 투자금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비트코인으로 버는 400억. 거기에 10월까지 작품으로 벌어들일 수입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으면 한 100억 정도. 그만한 돈이 10배가 된다고 하면……!’
한화로 약 5,000억 원.
그걸 두 배 곱하면 1조다.
1조면 대체 얼마냐…….
양키들 말로는 Billionaire, 억만장자, 슈퍼 리치라고 불러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위치.
딱 그거의 반이다.
즉, 반갈죽 당한 슈퍼 리치.
그게 바로 나다.
‘1년 사이에 5,000억…….’
물론, 겨우 거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약 10년의 미래.
거기에는 저 5,000억을 몇 달 만에 5조로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 * *
며칠이 더 흘렀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촬영 현장.
컷-!
커트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양진철 PD가 오늘 촬영의 종료를 선포했다.
예정되었던 촬영을 모두 끝마친 것.
“하하. 작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고생은 PD님이 다 하셨죠. 저야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요 뭘.”
진짜로 구경만 하다 가는 거였다.
그래도 원고를 쓴 작가이니 이렇게 촬영 현장에 오고는 있다만, 매 촬영마다 느끼는 건데 내가 끼어들 구석이 거의 없더라.
기껏해야 가끔 대본 해석에 있어서 양진철 PD가 묻는 거에 답해 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게 다 작가님이 대본을 워낙 잘 읽히게 쓰셔서 그렇습니다. 작가님이 표현하시려는 게 잘 보여서, 디렉팅 하는 저나 그걸 따르는 배우들이나 다들 합이 잘 맞는 거죠.”
그렇게 끼어들 구석이 없는 것도 양진철 PD 말로는 다 내 덕이라고는 하는데…….
뭐, 강주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걸 보면 아예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대본에 의도가 훤히 보여서 해석이 쉽댔나?’
저번 촬영에서 강주원과 대본 관련된 문답을 주고받다가 들은 말이었다.
강주원과는 그사이 꽤 친해졌다.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건 아니고, 서로 배우님, 작가님 하면서 지내고 있다.
몇 번 더 작품을 같이한다면 모를까.
일적으로 만난 사람은 계속 일적으로 대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강주원이야 회귀 전의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상관없다고 쳐도, 지금의 나보다는 형이지만 원래의 나보다는 어린 사람과 나중에 편하게 부르게 되면 좀 그럴 것 같아서도 있었다.
누구는 편하게 말하고, 누구는 계속 불편하게 말하면 사람 가려서 친해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드디어 성인이 되신 작가님을 위해서, 건배!”
촬영이 끝나고 가진 회식 자리.
시끌벅적하게도 내가 성인이 된 걸 축하해 주고 있었다.
술잔을 들어 올려 화답한 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크으-
시원한 생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뭐, 오늘 연기 천재가 되었다 팀이 회식을 갖는 목적이 내가 성인이 된 걸 축하하기 위함인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더 공적인 이유.
이렇게 주조연 배우들은 물론, 촬영 팀, 조명 팀 등등 모든 스태프가 참석해 있는 이유가 있었다.
“으아! 떨려!”
“1시간 남았어, 1시간!”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
바로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첫방.
그게 지금 딱 1시간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