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34화 (34/267)

34화 선우, 등장

언젠가 재밌게 봤던 만화영화의 주제가가 떠오른다.

왕바우라는 다리 짧은 경주마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룬 만화영화.

초등학교 시절, 매일 아침 그 만화영화를 챙겨 보느라 학교에 여러 번 지각하곤 했었는데.

아무튼.

그때의 주제가가 떠올라 다시 찾아보니, 지금 들어도 흥겹기 그지없는 컨트리 송이었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생강맨-.’

마지막 부분을 살짝 개사한 버전을 한번 불러 본 후, 나는 제이슨에게서 온 연락을 확인했다.

[제이슨 - 현재 데브브라더스와는 최대 200만 주(24%의 지분율) 정도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상장 후 6개월 의무 보유 확약을 맺기를 원하고 있고요.]

‘24%? 생각보다 많네.’

시기가 좋았다.

원 역사대로라면 <달려라, 쿠키>가 출시되는 건 내년 3~4월 즈음일 거다.

내가 그렇게 추측하는 건 내가 20살이 되고 5월에 카페 알바를 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알바생과 열심히 쿠키를 주고받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월에는 <달려라, 쿠키>의 ‘ㄷ’자도 들어 본 적은 없으니… 대충 3~4월 출시인 게 맞을 거다.

아무튼, 출시가 그때쯤이면 지금은 한창 출시 전에 산적해 있는 여러 버그를 제거해야 하는 시기다.

그리고 버그 수정 외에도 홍보 플랜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돈 들어갈 구석이 산더미처럼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제이슨을 통해 들은 바로는 데브브라더스의 현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더라.

‘기존에 투자받았던 투자금은 거의 다 소진했는데,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서 있는 개발자들도 자르고 있다 했지.’

괜히 내가 데브브라더스라는 이름을 꺼냈을 때, 제이슨이 반대 의견을 표한 게 아니었다.

게임 회사가 신작 출시를 앞두고 기존 개발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누가 봐도 곧 망할 회사가 따로 없다.

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런 데브브라더스의 상황이 이렇게 들렸다.

빨리 안 사고 뭐 해? 서둘러, 어서!

원래 상황이 좋지 못하면 못할수록 성공에 따른 보상은 더욱 달콤한 법이다.

실제로 데브브라더스가 그런 암울한 상황이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 같은 내 투자금에 저만한 지분을 주겠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래도 의무 보유 확약? 이건 안 되지.’

데브브라더스가 상장을 언제 하더라.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내가 데브브라더스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조만간 출시할 <달려라, 쿠키>가 국내에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다는 점과 그 기세를 몰아 상장 첫날 종가가 엄청 높게 형성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로는 <달려라, 쿠키 : 왕국>이 나오기 전까지는 쭉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달려라, 쿠키 : 왕국이 나오기 전까지는 커뮤니티에서 온갖 조리돌림을 당했었지.’

처음에는 [흔한 게임 회사의 복지]로 올라와서 데브브라더스의 개쩌는 복지를 홍보하던 글이었는데, <달려라, 쿠키> 이후의 차기작들이 모두 망하고나서는 조롱 글로 바뀌더라.

저렇게 복지를 퍼 주니 차기작들이 망하지… 뭐 이런 식으로.

그러다가 <달려라, 쿠키 : 왕국>이 대박 나고 여론이 또 뒤바뀌기는 했지만.

아무튼.

내가 원하는 건 데브브라더스의 주식을 오랫동안 들고 있다 최고가에 엑시트하는 게 아니다.

짧게 치고 빠지기.

지금 시점에 샀다가 <달려라, 쿠키>가 대박을 치고 한창 잘나갈 때, 적당한 가격의 구매자를 찾아 모두 넘겨 버릴 거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수익금으로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나서는 거다.

뭐, 새로운 투자처라 해 봐야 대부분 가상 화폐로 가게 되겠지만.

그때쯤에는 비트코인 말고도 이더리움 등의 알트 코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될 테니, 투자해야 할 곳이 많았다.

톡, 토도독-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이 더 적어도 좋으니, 의무 보유 확약 조건은 제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제 지분에 대한 우선 인수권을 줘도 좋습니다.]

나는 그런 의견을 제이슨에게 전달했다.

* * *

얼잘남의 팬 카페.

한창 시끌시끌했던 그곳은 요즘 꽤 식어 버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일주일 전 얼잘남의 정체가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선우진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 그녀가 우연히 이 팬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정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었다.

덕분에 현재 19살이며, 이름은 선우진이고, 한때 STR엔터에서 배우를 준비했었다는 정보가 공개됐다.

사실, 이상한 일이다.

원래라면 정체가 공개된 후, 열기가 식기는커녕 더욱 불타올라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니.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우진이가 잘생기긴 했는데 말이지…….]

-뭔가 미묘하게 처음 인터넷에 뜬 사진이랑 다르단 말이야.

└ㅇㅇ… 괜히 배우 준비했던 게 아니긴 한데… 처음 사진에서처럼 확 잡아채는 느낌은 없지.

└성형한 거 아님?

└성형이라고 하기에는 또 엄청나게 바뀐 데는 없음. 진짜 진짜 미묘한… 뭔가 분위기라거나 인상에서 달라 보이는 거라…….

└자게에 누가 성형외과 코디 10년차라고 얼굴 변화 분석한 걸 올렸는데, 성형은 아닐 거라 함. 좌우대칭이라거나 전체적인 인상이라거나… 뭐 그런 게 아주 살짝살짝 바뀐 거라 지금 기술로는 수술이나 시술로 가능한 게 아니래. 그거 가능한 의사 있으면 100년 후에도 성형의 신일 거라고 ㅋㅋ

└근데 같은 학교라던 애 말에 따르면 최근 갑자기 얼굴이 열일하기 시작했다던데… 나이 먹으면서 정변한 거 아님?

└그 말을 믿음? 저번에 보니까 올해 초 사진도 있던데, 얼마나 됐다고 그 사이에 정변?

지인의 SNS에서 퍼 온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 선우진의 사진이라거나 연예계 관계자가 어디선가 구해 온 선우진의 STR엔터 시절 프로필 등.

곳곳에서 등장한 선우진의 모습들이 미묘하게 처음 얼잘남의 사진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근 공개된 사진들 속 선우진의 얼굴도 잘생긴 건 맞았다.

배우치고도 꽤 생겼다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외모.

하지만 처음 그들이 사진을 보고 느꼈던 어마어마한 충격.

그 정도의 임팩트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또 막상 두 사진을 놓고 보면 엄청나게 큰 차이는 없었다.

동일 인물인 것도 맞고, 없던 쌍커풀이 생겼다거나 하는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성형은 또 아니라는 건데…….

때문에 그런 의견도 있었다.

얼잘남 사진 말고는 다른 사진들은 모두 그보다 과거의 사진들이었으니.

나이를 먹어 가며 젖살이 빠짐에 따라 얼굴이 정변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의견을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십수 장은 풀린 과거 사진과는 달리, 선우진에게 얼잘남 소리를 붙여 준 사진은 끽해야 2장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정변했다는 설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게다가 최근의 사진 중에서는 찍힌 지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사진들도 있었고.

그래서 첫 사진이 아주 우연히 선우진의 얼굴을 최적으로 보여 주는 각도에서 찍힌 거라는 결론이 팬 카페에서 나올 때쯤…….

[대애애애애애박!! 떴다 떴어-!!!!!]

-미쳤다아어어오ㅓㅗㅓㅓㅓ 내가 말했지. 나는 믿고 있었다고 허류ㅠㅠㅠ

└????

└미친년임?

└뭐가 떴단 건데;;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별다른 설명 없이 웬 괴성들만 잔뜩 적어 놓은 게시글.

하지만 몇 분 후, 그 글의 작성자가 링크 하나를 댓글로 달았다.

└지금까지 나 까던 년들아 ^^ 다 덤벼 https://…….

└뭐임?

└뭔 링크? 클릭해도 돼?

└드라마 메이킹 필름 예고편? 아니 요새는 메이킹 필름의 예고편도 있음? ㅋㅋㅋㅋ

└ㅋㅋㅋㅋㅋ그러겤ㅋㅋ 원래 메이킹 필름이 영화나 드라마 홍보 겸 예고편 느낌도 있는 거 아냐? 그럼 예고편의 예고편인 건갘ㅋㅋ

└들어가서 잠깐 봤는데 이거 가지고 뭐 어쪄란 거;;

└닥치고 들어가서 4분 34초 틀으셈 ^^

작성자의 당당한 태도에 게시글을 읽은 대부분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작성자가 말한 4분 34초를 틀었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한 것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메이킹 필름 우진이 캡쳐 짤.jpg]

-이래도 뭐? 저번엔 각도 빨이었다고??

[정변 설이 사실이었다고?!?!?]

[ㅋ각도 빨? 프레임 단위로 캡처 한 우진이 얼굴 보고 그 소리 해 보든가.]

열기가 식어 가던 팬 카페의 화력을 순식간에 다시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웬 드라마 메이킹 필름(정확히는 5분짜리로 편집한 선공개 영상)에 등장하는 선우진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처음 보고 얼잘남이란 별명을 붙였을 만큼, 얼굴이 열일하는 얼빡 숏들로 구성된.

게다가 인물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담아 내는 나머지, 일부 아이돌 팬들에겐 악명 높은 드라마용 카메라 속 모습이었으니.

이전의 사진이 각도 빨이었다는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배우 그만두고 소속사 나왔다고 썰 돌더니, 아니었네]

└소속사 나온 건 맞음… STR엔터에 전화했던 후기 올라왔었는데, 계약 해지된 배우랬음.

└그러면 다른 데로 이적한 건가?

[아니 그래서 저 드라마에서 무슨 역? 무슨 역?]

└몰라, 그건 공개 안 됨.

└sbc 사이트 가서 드라마 정보 보고 왔는데, 출연진 목록에는 선우진이라는 이름이 또 없네? 뭐지?

└신인이라 안 껴 줬나?

└근데 그런 것치고는 메이킹 필름 속 비중이 좀 커 보이는데?

└저거도 근데 5분밖에 공개 안 됐잖아… 처음에 외모로 이슈시켜서 어그로 좀 빨고… 알고 보니 그냥 단역인 거 아님?

└아;; 그런 거면 sbc 게시판에 엄청 ㅈㄹ할 거 ㅡㅡ

덕분에 처음 팬 카페가 만들어졌을 때처럼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선우진에 대한 관련 글은 물론, 그가 출연하는 것 같은 드라마인 연기 천재가 되었다에 대한 글들도 마구 쏟아졌다.

[저거 그래서 뭔 드라마?]

└저번 달인가 저저번 달인가 이슈됐던 19살 소설가 앎? 걔가 쓴 거임.

└재밌대?

└몰라, 소설은 잘 쓰던데?

└ㅇㅇ… 특히 이번 신작이 미쳤음. 전 거는 무협이라서 취향이 아니라 손 안 댔는데… 이번 건 엄청 남성향인데도 개 잘 읽혀.

[저거 근데 출연진 짱짱하네… 내년 1분기 sbc 기대작인가 봄]

[1화 나오자마자 본방 사수 간다 ㅡㅡ 거기에 선우진 안 나오기만 해 봐. 바로 sbc 항의 전화 때릴 거.

그리고 그런 여러 글 중에는.

[헉;; 대박 나 소름돋는 거 찾음;]

-선우진 보면 메이킹 필름에는 나오는데 출연진 목록에는 없음. 대체 왜?

근데 알고 보니 배우가 아니라면?

그냥 배우 같이 생긴 거지, 배우가 아니라 다른 일로 드라마에 참여한 거라면?

선우진, 선우. 우연이라기엔 너무 겹치지 않아?

게다가 둘 다 19살 현재 고딩…….

…이거 둘이 동일인물인 거 아님?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하는 글도 있었다.

* * *

[하하. 작가님, 기사 확인하셨나요? 안 그래도 연예부 기자들한테서 엄청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신인 배우 정보 좀 달라고요. 일단은 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몇 명 믿을 만한 기자들로 골라서 내일쯤 배우 아니고 작가님이란 걸 밝힐 예정이고요.]

나는 양진철 PD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제작 발표회는 2주 뒤.

하지만 그 전에 예고편 느낌의 5분짜리 영상을 푼 건, 제작 발표회 전부터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 위함이란다.

뭐, 나름 은둔 생활이라면 은둔 생활이었던 그간의 정체 숨기기가 이제 곧 끝난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어제자 반응부터 좀 확인해 주고.’

한국과 중국의 웹 소설 플랫폼을 켜 <마지막 마법사>의 댓글 반응들을 확인했다.

내일이 되면 내 정체? 얼굴?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글 외의 다른 거로 꽤나 시끌해질 댓글 창이다.

그 전에 뭐 특별한 댓글은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간혹 댓글 중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글의 헛점을 지적해 주는 댓글이 있곤 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반응들.

다음 편, 아니 다음 권을 달라는 말과 함께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는 류의 댓글들이 전부였다.

쭉쭉 댓글들을 훑은 후 이번에는 아마존에 접속했다.

‘아마존에는 어디 뭐 없나… 어? 이건 뭐지?’

그래도 아마존에서는 꽤 시선을 잡아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판타지지만 작중 배경을 중세 시대에 기반해 적으신 것 같은데, 그 모습이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좋네요. 그런데 작가님… 혹시 괜찮다면 이 작품을 제가 필사해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어조로 쓰인 영어 댓글 하나.

나는 곧바로 답글을 달았다.

└좋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필사요?

오래 지나지 않아 답 댓글이 달렸다.

└예. 제가 조만간 참석하는 모임이 있는데, 이 작품을 그 모임 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어서요. 아! 물론 상업적으로는 절대 활용하지 않겠습니다.

└프린트가 아니라 필사를 말씀하시는 거 맞나요?

└예. 그 모임이 조금 특이해서… 프린트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거든요.

└상업적으로 쓰지 않으신다면 좋습니다. 사실 구매한 작품을 필사하는 건 아무리 작가라 해도 막을 수 없는 소비자의 권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프린트가 허용되지 않는다니… 하하, 양피지에 필사라도 해 가야 하는 곳인가요?

마지막 말은 내 나름의 유머였다.

대체 어떤 모임이기에 요즘 시대에 프린트를 해 가면 안 된다는 건지.

꼭 중세 코스프레하러 왔다가 드론이 있어 창으로 부순 그 썰 같잖아.

└와우! 어떻게 아셨죠? 아, 물론 양피지만 되는 건 아닙니다. 파피루스 같은 종이는 그보다 한참 전에 발명됐으니까요!

……?

뭐야,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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