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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32화 (32/267)

32화 신작, 출격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에게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도, 누군가에게는 코 푼 휴지를 치우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렇게 새삼 실감하게 된 건 또 처음이었다.

[쑨콴: 작가님, 저번에 말씀하셨던 건은 알아서 잘 처리했습니다. 조금 알아보니 회사의 정보를 일부러 왜곡시켰다거나 하는 문제들도 있더군요. 아마 앞으로 그놈이 작가님께 거슬릴 일은 없을 겁니다.]

[쑨콴: 앞으로 작가님 눈앞에 띌 일도 없을 거고요.]

텐센트문학의 CEO 쑨콴과 만나 계약을 마무리 짓고 며칠 후인 오늘.

쑨콴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그가 말한 저번에 말했던 건이라 함은 STR엔터의 태기훈 이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전 쑨콴을 만난 자리에서 태 이사와 관련된 얘기를 꺼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정하연을 통해 STR엔터의 소식을 들어 보니, 거기는 요 며칠 동안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한다.

회사를 함께 설립했던 대표와 태 이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서로 죽이네 살리네 마네, 그런 말다툼 끝에 결국 소송 얘기까지 나오고.

실제로 대표가 태 이사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파다하단다.

아무튼.

참 재밌지 않은가?

STR엔터의 연습생, 로드 매니저, 실장급 매니저 등에게는 누구보다 무서웠을 사람이 바로 태 이사다.

내가 연습생이었던 시절에도 그랬다.

당시 내게 있어서 회사의 이사라 함은 부모님보다도 무서운, 내 인생을 말 그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쑨콴에게 있어 태 이사란 존재는, 처리하는 데 고작 며칠 정도가 필요한 게 전부인 하찮디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한테도 그렇지.’

내가 쑨콴에게 태 이사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정확히는 쑨콴에게 태 이사의 처리를 부탁한 대가로 치러야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별게 없었다.

내 팬이자 쑨콴의 형제나 다름없는 친우라는 렌샤오와의 만남, 그게 전부였다.

즉, 이제는 나 또한 그런 위치가 됐다는 거다.

태 이사 정도의 존재야 별다른 힘을 쓸 것도 없이, 그냥 작은 부탁 하나로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사람.

사실 그게 내가 태 이사의 말로를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이유다.

이제 태 이사 정도의 빌런은 나랑 급이 안 맞는다, 급이.

굳이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나: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네요.]

[쑨콴: 신세는요. 저희는 하오펑요우 사이 아닙니까? 하하]

심지어 내 부탁을 들어 준 쑨콴 측에서 오히려 나와 하오펑요우(好朋友, 호붕우) 관계를 맺으려 이렇게 애쓰고 있다.

하오펑요우는 직역하자면 좋은 친구.

하지만 단순히 좋은 사이인 친구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중국에만 존재한다는 독특한 인맥 관계.

꽌시의 시작 단계를 뜻하는 용어였다.

즉, 쑨콴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네 부탁도 이렇게 쉽게 들어주잖아. ㅎㅎ 우리 앞으로도 좋은 친구 사이 하면 안 될까?’

대충 이런 속뜻이 쑨콴에게 있는 것이다.

물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쑨콴은 앞으로 내 작품의 중국 내 유통을 책임질 플랫폼의 대표.

더욱이 그는 텐센트라는 거대한 그룹에 갖고 있는 인맥도 상당하다.

앞으로도 내게 적잖은 도움이 될 인물이었다.

* * *

콰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허공을 날았다.

솟구치는 화를 감당하지 못한 태 이사가 제 스마트폰을 던져 버린 것이었다.

“이 좆같은 새끼들!”

그간 받아 처먹은 게 얼만데!

자신이 약을 칠 때는 역시 태 이사가 최고다 어떻다 떠들던 놈들이건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제 연락을 받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씨바알!”

태 이사가 거칠게 욕설을 뱉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제 자신에게 화를 푸는 게 전부였을 뿐.

‘빌어먹을 짱개 새끼들이…….’

으득-

요 며칠간 텐센트의 행보를 떠올린 태 이사가, 아니 이제는 그냥 태기훈이 된 그가 이를 거세게 갈았다.

갑자기 철회된 투자 계획.

그와 함께 전해진 텐센트 측의 STR엔터를 향한 유감 표현.

무엇을 들은 건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대표이사의 모습.

그의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았던 지난 며칠이었다.

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몇 번이나 고민해 봤지만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텐센트의 대행사에서 일하던 후배 놈?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지금 태기훈이 그런 것처럼, 그의 후배 또한 지난 며칠 동안 회사와의 온갖 분쟁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대체 누굴까?

STR엔터의 대표인 선 대표?

그가 텐센트 측에서 투자가 들어오면, 텐센트 측의 지분과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을 활용해 선 대표를 몰아내려던 그의 계획을 눈치라도 챈 걸까?

아니, 그건 더 말도 안 된다.

선 대표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간 꽁꽁 숨겨 놓았던 제 마음을 어떻게 눈치챘겠는가.

그럼 대체 누구……?

“…….”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고민해 봤자 답을 찾을 수 없는 건.

“…후우.”

결국, 조금 전보다 늙어 보이는 얼굴의 태기훈이 제 스마트폰을 다시 집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였다.

이미 좆될 대로 좆된 상황을 최대한 더 좆되게 하지 않는 것.

물론 그래 봐야 달라지는 건 많이 없겠지만.

* * *

몇 주가 더 흘렀다.

드디어 오늘이 신작, <마지막 마법사>의 출격 날이었다.

[ㄷㄱㄷㄱ 큰 거 오냐?]

[오늘 선우 신작 나오는 날 맞지?]

-ㅇㅇ 2권 분량까지 바로 푼다던데

-이번엔 판타지라던데… 판타지도 잘 쓰려나?

└잘 썼는지는 미지수지만 돈은 ㅈㄴ 쓴 건 일단 확실함. 나 중국에서 대학 다니는데 요새 선우 신작 광고 인터넷에서 ㅈㄴ 때림.

└중국에서 돈 오지게 벌었다더니; 성공한 작가라 그런가, 엄청 밀어주나 보네.

-이번에 중국 연재 플랫폼 바꿨던데? 원래 연재하던 데가 1위 플랫폼이었는데 이번에 좀 작은 데로 감… 근데 거기 모기업이 돈 ㅈㄴ 많은 데인 거로 봐서 계약금으로 몇 억 땡긴 듯.

└겨우 몇 억이겠냐 ㅋㅋㅋㅋ 선우면 몇십 억은 줬겠지.

└몇십 억 ㅋㅋ 밖에 좀 나가라.

└……?

└몇십 억이 좆으로 보임? 뭐 소설 하나 연재한다고 그만한 돈을 주게?

‘몇십 억이면 ㅈ은 아닌 게 맞긴 한데… 그만한 돈 주던데.’

커뮤니티 반응을 보다 보니 든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간 내가 쓴 <마지막 마법사>의 분량은 6권 정도.

중국어와 영어로의 번역은 2권 분량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오늘 한국과 텐센트문학 그리고 아마존에 2권 분량까지를 업로드할 예정이었다.

‘반응이 어떠려나.’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꽤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프롤로그 웹툰.’

사실 번역이 되는 대로 바로 올리지 않고 몇 주를 기다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프롤로그 웹툰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프롤로그 웹툰은 텐센트에서 보여 준 웹툰 샘플 컷을 보고 내가 제안한 거였다.

미래에서는 웹툰화가 확정된 소설을 론칭할 때 자주 쓰이는 프로모션 방식.

지금 시기라면 그 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터였다.

‘계약 때 잠깐 봤을 때도 놀라기는 했지만… 확실히 퀄리티가 엄청나네.’

계약 때 봤던 건 고작해야 <마지막 마법사>의 웹툰 샘플 컷들이었다.

계약에 앞서서 빠르게 준비했던 거라 컷 몇 개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건 제대로 만들어진 프롤로그 웹툰.

프롤로그지만 거의 한 화에 달하는 분량이다.

그런데 그런 분량 모두가 보통의 웹툰보다는 일러스트에 가까운 고퀄리티로 채워져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만화가들을 갈아 넣은 건지 짐작하기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물론, 프롤로그 웹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미 웹툰화까지의 2차 계약을 텐센트와 맺었고, 프롤로그 이후의 내용도 웹툰화를 준비 중이었다.

‘원래는 내 글을 웹툰화한다면 한국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을 만한 그림을 텐센트가 준비한 프롤로그 웹툰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림의 수준이 한국의 것보다 뛰어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림에 쏟아부은 노력의 양을 말하는 거다.

‘단순히 따서 붙여 넣은 게 아니라, 병사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다 그려 넣었어.’

생각해 봐라.

<마지막 마법사>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것도 대규모의 전쟁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수천, 수만의 병사가, 그것도 중세 시대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즉, 만화로 그린다면 컷 하나에 수천의 병사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여기서 갑옷은 기사들이 입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판금 갑옷이 아니라 병사들이 입던 갑옷.

심지어 작중에서는 중세 시대의 실제 병사들이 그런 것처럼, <마지막 마법사>의 병사들도 자비로 자신들의 장비들을 부담한다고 묘사된다.

통일된 복식을 갖추는 게 아니라 하드 레더나 갬비슨, 사슬 갑옷 등 가지각색의 장비를 입는 거다.

병사들을 수천 명이나 그려 넣어야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서 또 그 병사들의 복장이 통일된 게 아니라 중구난방이다?

그걸 그림으로 다 묘사해야 한다고?

1인 체제나 1인 + 몇 명의 어시가 전부인 한국의 웹툰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중노동이다.

그래서 그걸 텐센트가 어떻게 해결했냐 하면…….

‘고대로부터 내려온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방법을 썼지.’

무려 4,000년 전부터 내려온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평균 무게 2.5톤짜리 석재 250만 개를 쌓아 피라미드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정답, 사람을 많이 쓴다.

그걸로도 부족하면? 더 많이 쓴다.

정말 간단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방식.

심지어 역사가 증명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식.

그게 바로 텐센트가 내 눈앞에 있는 웹툰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쓸 방식이었다.

‘이집트야 파라오의 권력이 그만큼 어마어마하니 가능한 거였을 텐데… 중국은 다른 방법으로 그걸 엇비슷하게 따라할 수가 있네.’

왜냐, 중국은… 사람이 싸니까.

몇 년 후만 돼도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지만, 아직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노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고?

그럼 노력×100을 하면 된다고!

텐센트가 바로 그걸 보여 주고 있었다.

어쨌든.

‘이 정도 웹툰 퀄리티면… 한중일 말고 서양 쪽에도 제대로 어필이 가능하겠어.’

가끔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그런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양의 중세 덕후 클라스.jpg]

그런 걸 보면 알 수 있는 건 덕 중의 덕은 바로 양덕이라는 거다.

아예 측량, 건축자재, 이동 수단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시대 기술만 써 실제 중세시대의 성을 재현해 내는 덕후들부터 시작해(심지어 건축 과정 내내 복장도 중세시대 복장을 입는다), 중세시대 코스프레한다고 모였는데 그걸 드론으로 촬영한다고 어디서 현대 물건이 들어오느냐 소리치며 드론에게 창을 날리는 덕후들까지.

그야말로 중세에 제대로 미친 덕후들이 서양에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그런 중세 덕후들이 제일 환장하는 게 바로 전쟁이다.

총화기가 아니라, 냉병기와 냉병기 간의 대격돌.

그런데 그런 양덕들 사이에 <마지막 마법사>의 웹툰이 등장한다고 해 보자.

수만 명의 병사가 들판을 뒤덮으며 전쟁을 벌이는데, 그런 병사들이 복사-붙여 넣기를 한 게 아니라 개개인이 다르게 그려진다고?

그걸 본 양덕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아이, 이래도 안 볼 거야?

웹툰 퀄리티가 이런데?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겠지.

그리고 웹툰을 통해 소설에 유입되게 된다면?

장담컨대 꽤 많은 이가 소설에도 빠져들게 될 거였다.

심지어 <마지막 마법사>는 마법이 등장하니 완전히 중세와 동일한 세계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사나 병사들, 세계관 내 인물들의 생활상 등에서 최대한 실제 중세와 비슷하게 고증을 지킨 글이다.

‘이건… 무조건 먹힐 거야.’

그런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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