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재밌네, 진행시켜!
확실히 며칠 전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거래량 자체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늘었다.
기존 비트코인 시장에 참여하지 않던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가상 화폐의 의미는?]
[법적 회색 지대에 살고 있는 비트코인.]
[가상 화폐란? 법정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 미래 화폐? 혹은 인터넷 공간에서나 쓸 수 있는 사이버 머니?]
비트코인과 관련한 기사들도 여럿 나와 있었다.
물론 수는 많지 않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검색했음에도, 그저 오늘 십수 개의 기사가 발행된 게 전부다.
하지만 기사가 나왔다는 게 중요한 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은 철저한 ‘미래의 자산’이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자산 취급도 받지 못하는… 그저 ‘그게 뭔데? 비트 동전? 왓?’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던 자산.
하지만 요 며칠, 그런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lol. Wtf is happening(씨발, 뭔 일이 일어나는 거지)?
-자고 일어났더니 내 비트코인의 가치가 35% 올랐어. Am I tripping now(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벌써부터 패닉하지 마. 비트코인의 상승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언젠가 1BTC가 수 만 달러나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Bro. 이제 겨우 18$일 뿐이야. 여기서 1,000배는 올라야 그 가격이라고.
└차라리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할 거라 말하지 그래?
└글쎄. 누가 맞고 틀린지는 시간이 증명해 주겠지.
-아무튼. 무슨 일이야 대체? 오늘 갑자기 왜 이런 상승장이 온 거지?
└Well, 내 생각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링크: https://…….
└키프로스? 그 조그마한 섬나라하고 뭔 상관인 건데?
└기사를 좀 더 읽어 봐, 친구. 그다음에는 목 위의 그걸 좀 활용해 보고.
└Fuck… 읽어 봤는데도 모르겠는데?
└워… 그래. 친구. 불쌍한 너를 위해 첨언해 주자면… 키프로스에서 빠진 러시아발 자금이 어디로 흐를 것 같아?
비트코인과 관련된 영어권 커뮤니티.
그곳에서도 며칠간 코인 가격의 상승에 대해 한창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었다.
여긴 내가 있던 미래에서 대부분의 반응이 ‘가즈아!’, ‘떡상 오냐?!’, ‘무지성 풀매수 드가자!’ 따위에 불과한 가상 화폐 커뮤니티하고는 조금 달랐다.
지금 이 시점에서, 비트코인이라는 미래 자산에 투자할 정도로 IT에 관심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비트코인의 이번 상승의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추측을 하는 이도, 심지어 꽤 놀랄 만한 예측을 하는 댓글도 있었다.
‘지금 시점에 비트코인이 몇 만 달러 가는 걸 예측하는 사람이 있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허황된 가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오직 나만은 알고 있었다.
저게 정말 몇 년 내로 다가올 미래라는 걸 말이다.
‘ID가… Satoshiisgod? 사토시는 신이다?’
아마 비트코인의 최초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비트코인이 수 만 달러가 나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의 ID를 클릭해 그간 올린 게시글들을 확인했다.
‘가상 화폐 관련 매거진에서 연재까지 하고 있고… 어디 보자. 10년 후 블록체인의 미래?’
궁금증이 들어 그 사람이 올린 기사를 읽어 봤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의 블록체인 시장에 대한 전망을 예측한 글이었다.
‘이거 뭐야… 꽤… 정확하네?’
읽으면서 놀람을 금치 못했다.
기사에 써진 것 중 상당히 많은 내용이 내가 알던 미래의 가상 화폐 시장과 겹쳤다.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 예측, 수많은 알트 코인의 탄생, 탈중앙화를 노리는 코인의 등장 등.
‘마지막 게 ‘defi’인가 그거지?’
Defi, 탈중앙 금융.
잘은 모르지만 내가 과거로 오기 전 시점의 코인 시장에서 그런 게 한창 유행이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런 10년 후의 미래를 지금 내다보다니…….
물론 정확하게 탈중앙 금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건 아니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제시에서 그치지만, 그것도 충분히 대단한 거였다.
‘ID를 기억해 놔야겠어.’
ID를 팔로우 해 두고 종종 어떤 기사를 쓰는지 살펴봐야겠다.
물론 당장은 이 사람과 함께 뭘 한다거나 그런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직 가상 화폐 시장은 내가 알던 미래처럼 제대로 여물지도 않았고, 내가 아무리 미래에서 왔다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코잘알이라거나 그런 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게 전부였다.
어쩌면 내가 아는 유명 알트 코인의 창시자라거나 그럴 수도 있었고.
아무튼.
‘이 사람 말고도 흥미로운 견해들이 많네. 아예 반대의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딸각-
비트코인 커뮤니티 내 반응들을 여럿 더 살핀 후, 나는 마운트콕스에 내 지갑을 연결했다.
기존 비트코인을 구매했던 지갑이 아닌 다른 지갑들이었다.
가상 화폐의 특성상 지갑의 거래 내역을 쉽게 추적당할 수 있었다.
그걸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여러 지갑을 통해 투자를 분산하려는 것이었다.
‘우선 거래량이 말라 버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비트코인에 투자하자.’
아직 비트코인의 채굴이 내가 알던 것만큼 원활하게 되지 않는 탓에, 하루에 거래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수량은 한정적이었다.
지금은 여러 외부 자금이 가상 화폐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
이런 상승 추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거래되는 모든 비트코인을 독식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칫 모든 자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는, 몇 달 후 비트코인 폭락이 왔을 때 전부 수익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떨어지더라도 그때의 비트코인 가격마저도 앞으로의 최저점인 건 맞다.
하지만 내 회귀자 노트에는 코인 말고도 투자해야 할 미래 정보가 한가득이었다.
한곳에 많은 돈을 묶어 놓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어쨌든.
‘며칠에 나눠서 투자를 해야겠어. 되도록 내가 기억하는 비트코인의 상승 추세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 * *
다음 날.
SBC 방송국.
“어우, 죽겠네.”
양진철 PD가 숙취 가득한 얼굴로 들어섰다.
대체 어제 몇 시까지 달린 건지,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그였다.
“아, PD님 오셨어요?”
“어어. 어제 잘 들어갔어?”
“네. PD님은요?”
“나? 후우. 말도 마라. 어제 집 가는 길에 누구한테 붙들려서는… 더 마시고 눈 좀 붙였다 이제 출근하는 거야.”
“예? 거기서 또 드셨다고요? 누구랑요?”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덕분에 죽겠다, 죽겠어. 암튼 나 안에서 좀 쉴게.”
어제의 기억을 떠올린 양진철 PD가 인상을 찡그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술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은 기억이었다.
마지막에는 비싼 양주를 마시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다른 주종들을 섞어 마신 탓에 숙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쨌든.
‘으음.’
드라마 팀과의 회식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거부할 수 없는 누군가가 불러 찾게 된 술자리.
거기서 듣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걸 들으니 적당히 구색만 맞추고 떠날 생각이었던 그 자리에 몇 시간이나 더 있게 됐던 것이었다.
자신이 아닌, 요즘 양진철 PD가 그 자신보다 더욱 중히 여기는 어떤 사람과 관련된 얘기였기에.
‘빨리 알려 드려야겠어.’
톡, 토도독.
양진철 PD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우진이었다.
[작가님, 어제는 잘 들어가셨죠?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서 그런데, 통화 괜찮으실 때 연락주세요.]
드르륵-
[네. 지금 전화 괜찮으니 연락주세요.]
오래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답장을 확인한 양진철 PD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하! 작가님,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요?”
-예. 저야 뭐 술도 안 마셨는데요. PD님은요?
“어우. 저는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제가 드라마국 내에서 유명한 술고래인데도, 어제는 좀 무리하게 달렸네요.”
-자리가 재밌으셨나 봐요. 저도 함께 했었어야 했는데…….
“하하. 몇 달 뒤에 함께하시죠. 아, 그것보다 제가 아침부터 연락을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이야기는 어제의 회식 자리 막바지부터 시작이었다.
어디선가 걸려 온 그를 찾는 전화.
드라마 회식 중이라 오늘은 힘들 것 같다는 완곡한 거절에도, 계속해서 그를 찾던 이가 한 명 있었다.
그것도 같은 라인은 아닐지라도 그의 상사이기는 한 방 CP의 부름이었다.
결국 잠깐 얼굴만 비추고 빠르게 떠나자는 생각으로 방 CP가 부른 곳으로 간 양진철 PD였다.
그러다 거기서 그를 부른 방 CP와 함께 있던 한 사내를 보게 됐는데…….
-기획사 접대 자리요?
“예. 연예 기획사 이사가 함께 있더라고요. 아, 작가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 평소에 접대받으러 다니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 자리가 접대 자리인 걸 보고 바로 떠나려고 했었어요. 지금 저한테 그러는 거면 분명 연기 천재가 되었다 캐스팅 때문인 건데, 아시잖아요. 저도 이 작품에 엄청 진심인 거.”
-잘 알죠. 그런 오해는 처음부터 안 했으니 걱정 마세요.
“하하.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냐면요…….”
그 사내가 밝힌 자신이 속한 연예 기획사.
그 기획사의 이름이 상당히 익숙했던 게 아닌가?
STR엔터테인먼트.
양진철 PD가 얼마 전 후배 PD에게 넌지시 알려 줬던 학폭 배우가 속한 소속사이자, 선우진이 한때 속해 있었다는 바로 그 회사.
그런 회사의 이사가 자신을 찾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준환을 드라마에서 하차시킨 것 때문인 줄만 알았었다.
게다가 매니저와의 마찰 등 다른 일로도 얼굴을 붉혔으니 이번 자리를 통해서 사과드리겠다, 뭐 이런 류의 자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자리였던 게 아니었던 거다.
아니, 오히려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자리를 주선한 목적이 애초에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이었던 걸 알 수 있었다.
-저를 보고 싶다 했다고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그 회사에 있었던 건 모르고요?
“예. 제가 아닌 척 그때 방송국에서의 일도 꺼내 봤는데, 아무런 언급 없이 그때는 부하 직원의 실수였다고 죄송하다 얼버무리더군요. 작가님과 그 일을 아예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하. 그런데 저는 왜 찾는 거래요? 드라마에 자기들 배우 꽂아 넣으려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선우진이 그렇게 묻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가기 시작한 양진철 PD였다.
자신이 어디 보통 눈치냐.
작가님이 그때 STR엔터 싫어하시던 티를 얼마나 내셨는데.
그래서 작가님께 알려 드릴까 싶어 뭔 속셈인지 알기 위해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런데 태 이사란 놈이 아닌 척 양진철 PD와 작가 선우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떠보더라.
선우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계속 물어보고.
그래서 술에 잔뜩 취한 척을 하면서 약간의 허세를 부렸다.
선우 작가가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자기 말이라면 아주 죽고 못 산다고.
뭐, 선우 작가에게 부탁할 일 있으면 자기한테 말만 해라!
내가 초장부터 기를 제대로 잡고 들어가서 아주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정도니까!
“물론 제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시죠? 오히려 작가님이 시키시면 제가 죽는 시늉이라도 할 겁니다.”
아무튼.
그랬더니 머지않아 제 속셈을 술술 불기 시작하더라.
선우 작가에게 큰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고, 아주 작은 도움을 바랄 뿐이다.
자신들과 현재 투자 협약이 오가는 중국의 높으신 분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자기들 회사와 관련해서 좋은 소리 몇 개만 전해 주면 된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양 PD님은 물론, 선우 작가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챙겨 주겠다.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한다면 다른 거로도 좋고.
-다른 거라면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건가요?
“으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맞을 겁니다. 생각하시는 그거. 이 바닥이 마냥 깨끗한 곳은 아니거든요.”
안타까운 연예계의 뒷모습이다.
실제로 양진철 PD도 예전 드라마들을 찍으면서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모두 거절했었고.
-쯧. 더러운 놈들. 그나저나… STR엔터와 투자 얘기가 오간다는 회사가 텐센트라고요?
“예. 아, 텐센트가 어떤 회사냐면요. 중국의 IT 대기업인데요…….”
-아뇨, 아뇨. 뭐 하는 곳인지는 잘 알고 있어요.
“아, 그러시군요.”
양진철 PD가 놀란 얼굴을 했다.
자신은 이름을 듣고도 무슨 회사인지 몰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고 알았었는데.
소설로 중국 진출도 하셨어서 그런가?
한국 대기업도 아니고 중국의 대기업까지 알고 계시다니.
그러던 그때였다.
피식-
통화 너머로 피식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온 것은.
“…작가님?”
-아… 아뇨. 돌아가는 상황이 꽤 재밌어서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들려오던 웃음 소리가 끊기고.
반 박자 정도 뒤,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오늘 거기 사람을 한 명 만나기로 했거든요. 덕분에 오늘 할 얘기가 많아질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PD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