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내 팬이 너무 많아
-신작은 판타지로 연재하실 계획이시라고요?
“예. 문제가 되나요?”
-아뇨, 아뇨, 무슨 말씀을. 하하. 저도 작가님 작품을 읽어 본 독자입니다. 장르에 구애받으실 수준이 아니신 건 잘 알고 있죠.
텐센트문학의 대표, 쑨콴.
내 연락처를 줘도 된다는 말을 하자 머지않아 그에게서 통화가 가능하겠냐는 연락이 왔었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통역사를 거쳐 말이 전달됐었는데, 내가 중국어가 가능하다는 걸 밝혀 직접 통화를 하고 있었다.
-사실, 판타지를 쓰시는 건 오히려 저희 쪽에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물론 무협이 중국 장르 소설의 대표 장르인 건 맞지만, 10대와 20대가 열광하는 장르는 아니니까요. 저희 플랫폼이 안 그래도 20대 이하 비율이 적거든요.
“다행이네요. 아, 원하신다면 초반부 원고를 보내 드릴까요? 한국어로 쓰여 있기는 한데, 아까 전문 번역가들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으니.”
-헙! 그래 주신다면 감사한 일이긴 합니다만…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찍지 않으셨는데, 괜찮으십니까?
“뭐, 텐센트에서 제 작품을 먹고 나르기라도 하겠어요?”
실제로 먹고 나른다 해도 어차피 초반부만 쓴 상태라 그거 가지고는 뭐 아무것도 못 한다.
물론, 쑨콴의 말이 맞기는 하다.
아직 계약에 대한 세부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먼저 원고를 보여 주는 건 자칫 악수가 될 수도 있는 선택이다.
텐센트 측에서 내 소설을 보고 ‘흐음, 30억을 줄 정도는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내 신작을 읽고 텐센트 측에서 오히려 몸이 더 달아오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경우가 발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보고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글이 나왔어.’
작가가 자기의 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어렵긴 하다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감은 느껴지는 법이다.
그리고 내 감은 대체적으로 잘 맞는 편이었다.
그건 과거로 오기 전부터 그랬다.
내가 써 놓고 ‘흠,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실제로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와, 이건 내가 봐도 잘 썼다’ 싶은 글은 실제로도 성적이 좋았었다.
아무튼.
“예. 그럼 그때 뵙는 거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작가님.
쑨콴과의 통화를 끝낸 나는 그에게 마지막 마법사의 초고를 보내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그와는 세부적인 상황을 논의하고 계약을 확정시키기 위해 조만간 한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엔 중간 매니지 없이 직계약이 되겠네.’
기존 작품들인 안늙강과 칼넘강은 JP미디어와 진강문학사를 거쳐 중국의 플랫폼에 연재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텐센트문학에서 내게 계약을 제안한 만큼 그런 중간 과정 없이 플랫폼과 직계약을 하게 됐다.
종이책 또한 텐센트에서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출판사를 통해 중국에 판매하기로 했다.
그만큼 같은 매출을 달성하더라도 내게 떨어지는 수익이 더 커지게 될 거다.
심지어 텐센트에서는 수수료를 떼지 않겠다고까지 했으니… 아마 이번 작품 수익은 같은 매출이더라도 내게 떨어지는 돈은 거의 1.5배 가까이가 될 거다.
뭐, JP미디어와 진강문학사에게는 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의리란 게 중요하기는 해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는 건 의리를 넘어 호구 짓을 하는 거니까.
게다가 칼넘강의 대박 흥행으로 이미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두 회사였다.
그리고 진강문학사는 몰라도 JP미디어는 조만간 꽤 쏠쏠한 수익을 얻게 될 예정이었고.
탁, 타닥-
메일을 통해 마지막 마법사의 초고를 보낸 후, 나는 받은 메일함을 확인했다.
JP미디어에서 보낸 메일 하나가 보였다.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일본 유통 및 영업 계획서.]
‘이제 슬슬 일본 쪽도 신경 써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가 선우, 한국과 중국 출판 시장 모두 석권!] 같은 기사는 멋이 없다.
모름지기, [작가 선우! 한중일 모두 석권!] 정도는 돼야지.
* * *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
[연기 천재가 되었다, 한시연에 이어 남주인공 역에 강주원 캐스팅 확정!]
[천재 작가의 화제성. 그 강주원마저 충무로행을 미루게 할 정도?!]
그곳에서는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캐스팅 관련 게시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 배우진 짱짱하네.
-이거 편성 언제임?
-2달 조금 넘게 남음. 내년 2월.
└ㅇㅎ 근데 강주원이랑 한시연이면 캐스팅에 힘 좀 썼네? SBC에서 제대로 밀어주는 건가?
-ㄴㄴㄴ 나 드라마 쪽 종사잔데 이 작품 요새 이쪽에서 난리임. 들리는 소리로는 대본이 ㅈㄴ 잘 뽑혔다던데?
└ㅋㅋㅋㅋ개나 소나 종사자.
└인증 없음 뭐다?
-근데 저게 사실이라 치면 선우 걔는 드라마도 잘 쓰는 거임? 아… 조금 싫어질라 하네;
-ㄹㅇㅋㅋ 좀 그만 완벽해라.
-솔직히 와꾸는 안 완벽할 듯 ㅋㅋ 학창 시절에 장르 소설 보는 놈들치고 잘생긴 놈들 못 봄.
└뭐래ㅋ 나 초딩 때부터 소설 입문했는데 존잘인데?
-존잘은 ㅈㄹ 자신 있음 얼굴 까든가.
-ㅇㅇ 인증함. Https://gall…….
└오; 잘생겼네;
└아, 혐짤 씨발아.
-위에 링크 클릭하지 마라.
-링크 올린 새끼랑 잘생겼다고 낚시한 새끼 둘 다 밴 때려라 ㅆㅂ
-? 저거 링크 올린 거 나 아님. 진짜 인증함. Https://gall……. 1분 뒤 지움. 빨리 확인 ㄱ
└병신ㅋㅋㅋ 또 속겠냐.
└낚시질 성의 없는 거 보소 ㅋㅋㅋ
└??????? 어, 씨발, 진짜 존잘인데? 이거 진짜 너임? 도용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 ip 바꿔 가면서 지랄을 떠네.
└어? 씨발, 이건 진짜 리얼인데?
-ㅄ들 노력이 가상해서 한번 속아 준다.
-??? 진짜잖아?
-와; 혐짤 낚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인증이었네;;
-ㅋㅋ 다 봤지? 지움.
└씨발아; 제발 키는 작아라
└넌 운동하지 마셈.
└ㄹㅇ 그 와꾸로 운동까지 하는 건 선 씨게 넘는 거다.
-헐… 이거 얼잘남 사진 아니에요? 혹시 진짜 본인이세요?
└예? 얼잘남이요? 그게 뭐임?
└얼잘남이라고 요즘 핫한 연생인데… 진짜 본인이시면 소속사 어디신지 말씀 좀요 ㅠㅠㅠ 제바류ㅠㅠㅠ
└아님 여기 얼잘남 님 팬 카페인데 가입이라도 해 주세요!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얼잘남이 머냐?
-몰라 ㅅㅂ 여초 유명인인가 본데.
-근데 쟤가 걔라고?
-댓글들 다 삭튀한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아님 걍 도용이거나.
-ㄴㄴㄴ 사진 봤는데, 자기 ip 적어 놨었음.
-시발, 근데 저런 얼굴 가진 애도 커뮤질 하는구나;
“헉, 씨! 뭐야, 나도 모르는 내 팬 카페가 있다고?”
타고나길 관종끼를 타고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팬들이 이토록 많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 * *
며칠 후.
“…허어.”
선우진이 보낸 초고의 번역본을 확인한 쑨콴이 감탄한 표정을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집중해서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었다.
분명 처음 살펴볼 때만 해도 기업가의 시선에서 냉철하게 작품의 흥행 가능성을 분석해 보고자 했었는데, 읽다 보니 그런 생각 따위는 까맣게 잊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거액의 계약금과 작품에서 오는 수수료를 전부 포기하면서까지 선우 작가를 텐센트로 끌어들이려던 자신의 선택.
그게 옳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작품이라면, 텐센트문학이라는 플랫폼 자체를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삑-
책상에 놓인 전화기의 버튼을 누른 쑨콴이 비서에게 말했다.
“마케팅 팀 팀장 올라오라고 해 봐.”
-예. 알겠습니다.
계약에 대한 의사는 며칠 전의 통화로 선우 작가도 긍정적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제 남은 건 조만간 한국으로 찾아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
그 전에 제대로 된 마케팅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이 확정되는 대로, 선우 작가의 신작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던 그때였다.
우우웅-
개인 핸드폰의 진동을 확인한 쑨콴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와 같이 텐센트 그룹 내에서 꽤 높은 직위에 올라 있는 인물이자, 그와 꽌시로 엮여 있는 친우 렌샤오의 전화였으니.
“자네가 웬일로 전화야?”
-그게 사실인가?
“뭐가 사실이라는 거야?”
-선우 작가! 그 작가를 영입하려 한다며?
“허어. 그걸 어떻게……? 아니지, 자네 그 소식, 장타오 그 친구한테 들은 게지?”
장타오 또한 렌샤오처럼 쑨콴과 오랜 기간 꽌시를 쌓아 온 이였다.
그들 셋은 텐센트 그룹 내에서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선우 작가 얘기를 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분명 사흘 전 술자리에서였다.
그런데 자기가 비밀이라고 따로 말하지 않았다고 그새 퍼뜨려?
물론 그렇다고 장타오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이에게 말한 것도 아니고, 함께 꽌시로 엮여 있는 셋 사이라면 이 정도는 비밀도 아니었으니.
어쨌든.
“뭐, 사실을 묻는 거라면 맞네. 안 그래도 조만간 한국으로 넘어가 계약을 확정 지을 생각이야. 그런데 선우 작가 얘기는 왜 묻는 건가?”
-왜기는! 자네, 내가 검객무쌍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알기는 하는가? 자그마치 8번일세, 8번!
“그래? 하긴, 재미있는 글이긴 했지.”
-허어! 자네는 소설 플랫폼 대표라는 사람이 겨우 그 정도 표현이 전부인 건가? 그냥 재미있는 글이 아니라 검객무쌍은 혁명일세! 혁명! 지금까지의 장르소설보다 몇 년은 앞서 있다고.
쑨콴이 표정을 찡그렸다.
이래서 렌샤오에게는 말하지 않으려 했던 건데.
사실, 쑨콴이 선우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렌샤오 때문이었다.
언젠가 가진 술자리에서 무협계에 대단한 작가 한 명이 탄생했다고 장장 세 시간이나 열변을 토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궁금증이 생겨 선우라는 작가에 대해 알아보다 작품의 실적을 보고 텐센트문학에 영입해야겠다 결심한 것이었다.
‘으음. 아마 여기서 이만 제지하지 않으면 몇 시간 넘게 선우 작가의 대단함에 대해 떠들겠지.’
“선우 작가의 대단함이야 나도 잘 알고 있으니 제발 거기까지만 해 주게. 아무튼, 뭔가? 왜… 사인이라도 받아 주길 원하는 건가?”
-흠, 흠흠! 사인 좋지. 하지만 그게 말일세…….
렌샤오의 얘기가 이어졌다.
그걸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자신이 사업적으로 일이 있어 조만간 한국을 찾는다.
그런데 그 시기가 쑨콴이 선우 작가와의 계약을 위해 한국에 가는 시기와 겹친다.
만약 계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선우 작가와의 만남에 자신을 불러 줄 수 있겠는가?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자신도 모그룹에서 샨다문학 인수를 생각 중이라는 정보를 전해 주지 않았나!
“그건… 확답을 줄 수는 없고 작가님께 여쭤보기는 하겠네.”
-하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역시 쑨콴 자네밖에 없네.
거절할 수는 없었다.
얘기를 전하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렌샤오가 말한 것처럼 쑨콴은 그에게 최근 도움을 받은 게 있었으니.
신세를 졌으면 그 신세를 갚는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아무튼.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한국을 찾는다고?”
-아아. 요즘 K-POP이 난리이지 않나. 그래서 회사에서도 아예 한국 연예계에 진출을 계획하고 있고. 내가 그 업무를 맡았는데, 최근 눈에 들어오는 엔터 회사가 하나 있어서. 직접 한국으로 가 살펴볼 생각이네.
“엔터 회사? 흐음. 그렇군.”
궁금해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자신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웹 소설 플랫폼의 대표인 그가 한국의 엔터 회사와 엮일 일은 없을 테니.
“그럼 한국에서 보도록 하지.”
그렇게 렌샤오와의 통화를 끝낸 쑨콴이 책상 위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마케팅 팀장 밖에 있지? 들여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