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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22화 (22/267)

22화 그쪽은 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명함은 받아 둬요. 나중에라도 배우 생각 있으면 꼭! 이 번호로 연락하고. 아이돌 관심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안 그래도 우리 회사에 최근 데뷔 준비 중인 팀이 있는데, 거기 끼워 넣으면 되니까. 알겠죠? 진짜 그냥 버리면 안 돼요! 아으, 일정만 아니면 더 얘기 나누는 건데.”

사람액터스의 한 팀장은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계속 날 설득하고 싶었던 눈치였지만, 빠질 수 없는 일정이 있었나 보다.

명함은 받아 놓기는 했다.

뭐, 연락할 일은 아마 없겠지만, 굳이 버릴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그 말은 꽤 무서웠지.’

일 년에 수십 억을 벌게 해 주겠다니…….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피식-

나중에 소설 쓸 때 이런 장면을 넣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몇백 억을 버는 주인공한테, 누군가 다가와 몇십 억을 벌게 해 주겠다며 꼬드기는 거다.

주인공은 그 말에 진저리치게 되고.

꽤 웃긴 장면일 것 같았다.

아무튼.

“아쉽네요. 아까 그 아저씨 말처럼 배우 하시면 잘하실 것 같은데.”

점원이 커피를 내밀며 말한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이었다.

“여기서 일하다 보면 연예인들도 자주 보거든요. 아까 그 매니저 아저씨가 말한 황재욱이랑 이우림도 봤었고요. 그런데 걔네보다 손님이 훨씬 잘생겼어요. 진심, 레알.”

“하하. 그런가요?”

“네! 아까도 카페 문 열고 들어오시는데 뒤에서 무슨 후광 비추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 그런 취향인 건 아니니까. 진짜 이건 순수한 감탄.”

꽤 수다스러운 점원이다.

심지어 나중에 연예인 되시면 자랑하게 사진까지 같이 찍어 달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대충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 주고 나왔다.

‘황재욱하고 이우림이라… 걔네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둘 다 톱 배우들.

그것도 연기력보다는 얼굴파 배우로 이름 높은 톱 배우들이다.

물론 연기력이 비주얼을 따라가지 못 한다 뿐이지, 나하고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연예계에서 비주얼파 배우 하면 심심찮게 언급되는 둘보다 내가 더 잘생겼단다.

그것도 훨씬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예전엔 이 정도 칭찬까지는 못 들어봤는데.’

물론 잘생겼단 소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잘생긴 것도 맞다.

내 입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낯부끄럽기는 해도, 그거 하나 믿고 배우를 준비했었던 거니까.

내가 보기에도 배우치고 썩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답 없는 연기력을 가졌던 나를 소속사가 몇 년이나 붙들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어쨌든 결국에는 소속사가 나를 포기하기는 했다는 소리지.’

오래 데리고 있기는 했지만 도통 연기력이 늘려고 하지를 않으니, 재계약을 해 주지 않았었다.

그 말은 곧 내 외모에는, 결국 내 허접한 연기력을 커버할 만큼의 가치는 없었다는 뜻이다.

한 팀장이 내게 보인 태도나, 카페 점원이 말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만약 내가 카페 점원이 말한 것처럼 황재욱이나 이우림의 실물보다 훨씬 잘생겼다면, 과연 소속사가 나와 계약을 해지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연예계에서 압도적인 외모라는 건 허접한 연기력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는 무기니까.

대충 황금 시간대 드라마나 예능에 끼워 넣어서 인지도를 올리고, 그 이후로는 CF 모델로만 돌려도 웬만한 톱 배우 못지 않은 돈을 뽑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즉, 회귀 전의 나는 배우 기준으로도 꽤 괜찮은 비주얼이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비주얼까지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팀장이 내게 보인 태도는 달랐다.

한 팀장은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저 내 얼굴만 보고 캐스팅 제의를 했다.

그것도 정말 스케줄이 없었다면 떠나려는 나를 계속 붙잡았을 정도의 열의를 보이면서까지 말이다.

‘어쩌면…….’

회귀로 인해 강화된 내 재능을 하나 더 발견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외모도 재능이라면 말이다.

‘재능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모습이 살짝 비치는 유리창을 봤다.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이목구비가 조금 더 시원시원해진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눈도 더 깊어진 것 같고, 코도… 흠흠.

왠지 샤워 끝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보고 감탄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내 얼굴 보는 걸 그만뒀다.

아무튼.

“어? 야! 선우진! 너 선우진 아냐?”

커피를 들고 걸어가고 있는데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봤다.

한 남자가 나를 찌릿 노려보고 있다.

꽤 익숙한 얼굴.

“맞네. 참나! 야, 너 여기서 뭐 하냐?”

이게 누구야.

김대훈 따까리 1.

여기서 또 보네?

* * *

남자가 거친 발걸음으로 내쪽으로 걸어온다.

내가 STR엔터에서 나왔을 때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내 이전 담당 매니저.

그동안 잘 처먹고 살았는지 저번 기억보다 살집이 붙은 그가 내게 다가왔다.

“여기 SBC 제작 센터에 네가 왜 와 있어? 하! 이거 지금 내가 상상하는 그거 맞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뭔 개소리야 이건 또.

자기 혼자 뭘 상상하는 거야.

“그게 뭔데요?”

“뭐긴.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야? 아, 됐다. 너는 빠지고, 어딨어?”

그러고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꼭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

얘, 지금 뭐 하는 거지?

“뭐 해요?”

그때, 따까리 1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나와 따까리 1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러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친다.

“누구예요?”

내 얼굴을 보더니 팍! 하고 얼굴이 굳는다.

짜증 어린 기색의 20대 중반 남자.

메이크업을 한 걸 보면 연예인이 분명하다.

과하지 않은 걸로 보아서 아이돌 보다는 배우 쪽.

STR엔터에 이런 놈이 있었나?

자세히 보니 기억이 날락 말락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놈은 누군데 나보고 똥 씹은 표정이야?

“아. 저희가 예전에 데리고 있던 앤데, 연예인 준비 이제 그만둔다고 나갔었거든요.”

“흐음. 그러면 연예인 지망생?”

매니저 놈 말을 듣더니 얼굴이 펴진다.

그렇다고 좋게 바뀐 건 아니고.

지망생이란 말을 듣더니, 이제는 아예 사람을 내려다보듯 본다.

“예. 연예계 뜬다고 해서 저희 회사에서 선의로 계약 해지해 줬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네요.”

“아아. 다른 회사에서 채간 거구나.”

…아하.

다짜고짜 내가 뭐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나오기에, 뭐 잘못 먹었나 했는데.

내가 지금 방송국에 있는 걸 그렇게 생각한 거였구나?

왠지, 누구를 찾는 건가 했는데, 내 매니저 어딨냐고 한 거였나 보다.

아무튼.

“딱 보면 알잖아요. 아, 나 진짜. 그때 나갈 때는 뭐 이제 연예인 그만둔다 그런 소리를 하더니, 이제 보니 완전 개소리였던 거네. 야, 선우진. 너 그때 내가 했던 말이 구라 같았냐? 내가 너 다른 회사 들어가면 위약금도 물릴 수 있다 했지. 왜, 그때 변호사인지 뭐시기인지가 그건 말 안 해 주디?”

“흐음. 변호사요? 그건 뭔 얘기?”

“예. 뭐, 계약 해지할 때 자기 삼촌이 변호사라고 다 확인받았다 어쨌다 하더니 알고 보니 쌩구라였던 거 있죠? 씨발, 나중에 김 팀장이 네 인적 사항 확인하고 얼마나 핀잔 먹인 줄 알아?”

어이고? 그게 들켰어?

그러고 보니 원래 연습생 계약할 때 집안에 전문직은 있는지 뭐 그런 것도 조사하고 그랬었지.

뭐, 말로는 나중에 홍보 기사 돌릴 때 쓸 만한 게 있나 해서 조사하는 거라지만, 다 집안에 돈 빼먹을 구석 있나 살펴보려는 거다.

아무튼.

“그래? 쯧. 난 이렇게 약삭빠른 애들 싫더라.”

배우 놈이 그렇게 말하면서 날 보며 이죽거린다.

이거 참.

멍청한 매니저 놈도 그렇고.

그놈이 데리고 다니는 배우 놈도 그렇고.

쌍으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다.

“뭐, 저는 신경 안 쓰고 구경만 할 테니, 매니저님 하던 거 마저 하세요.”

특히 나를 자기보다 아래인 것처럼 보는 배우 놈 눈이 은근슬쩍 사람 성질을 건든단 말이지.

…어?

그런데 잠깐만.

어디서 본 것 같았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겠다.

여기서 코 좀 더 높이고, 턱도 좀 깎고.

눈도 살짝 손대면…….

“고준환?”

“어? 뭐야. 너 나 알아? 아아, 내가 나온 드라마 봤구나.”

맞네.

얘 얼굴에 손 많이 댔었구나.

나중에 바뀌는 얼굴만 알고 있었어서 못 알아봤네.

이때는 이슈가 아직 안 터졌을 때였나 그랬지?

그나저나 끼리끼리 논다고.

배우 팀이 아닌 매니저가 고준환이랑 있는 걸 보면 다른 팀 지원 온 건가 본데, 꼭 만나도 이런 놈들 둘이서 짝이 되다니.

환상의 콤비다.

“어? 작……! 아니, 우진 님, 여기서 뭐 하세요?”

양진철 PD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지나가다 나를 발견한 건지, 나를 부르면서 내게 다가왔다.

고준환과 그 매니저가 양진철 PD를 돌아봤다.

참고로 양진철 PD의 인상은 꽤 험악한 편이다.

운동선수처럼 덩치도 좀 있다.

눈썹도 별로 없고 눈도 약간 가로로 길게 째진 눈이라 꽤 성깔 있어 보인다.

대화를 나눠 보면 그런 겉모습과는 다르게 친절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건 대화를 나눈 후의 얘기고.

그냥 첫인상만 놓고 보면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다.

“네가 이놈 매니… 흠! 흠흠!”

기세 높게 나섰던 매니저가 양진철 PD와 눈이 마주치더니 멈칫거린다.

“이놈? 허, 당신들 누구예요? 누굽니까, 작가님?”

뒤엣것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한 양진철 PD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헛기침을 하던 매니저가 손을 뻗어 나와 양진철 PD의 사이를 막는다.

건들거리는 자세로 인상을 일부러 잔뜩 쓰며 분위기를 잡는다.

“이봐요. 누구냐니. 그걸 물어야 할 사람은 우리 쪽 같은데. 거, 어디 사람입니까?”

“예?”

“상도덕도 없는 그쪽 회사 이름 좀 들어 보자고. 우리는 STR엔터인데, 그쪽은 뭐요?”

“……?”

어리둥절해하는 양진철 PD.

그런 양진철 PD의 모습에 기세를 제대로 잡았다 생각한 건지 더 위협적인 태도로 나온다.

“어디 회사냐고-! 어?”

“…참나, SBC입니다. 왜요. 그러는 그쪽은 뭐 어디라고? STR엔터?”

휘유-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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