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나는 무적이다!
드르륵-
“아, 오셨습니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양진철 PD가 안으로 들어왔다.
스윽 주위를 둘러본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편성 따왔다, 얘들아.”
“오! 언젭니까?”
“세 달 뒤 내년 2월. 수목 10시대로.”
“와아! 진짜요?”
양진철 PD의 말을 들은 스태프들이 반색을 했다.
수목 드라마 10시대라고 하면 따낼 수 있는 최상의 편성이다.
일단 10시라는 시간대부터 그랬고, 월화가 아닌 수목 드라마인 것도 시청률이나 드라마 화제성에서 가장 강점을 갖는다.
“으쌰, 그럼 캐스팅이 조금 더 수월해지겠네요.”
양진철 PD의 후임 AD가 말했다.
실제로 언제 방송되느냐에 따라 배우들의 관심도에도 차이가 있다.
급 높은 배우들이 가장 선호하는 건 10시대.
어떤 배우는 출연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다가도 드라마가 10시가 아닌 8시로 편성이 되자 출연을 고사한 적도 있었다.
편성 날짜도 월화보다는 수목이 더 인기가 많다.
주초보다는 주말로 갈수록 TV 시청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에, 화제성 면에서 월화 드라마보다 높기 때문이었다.
특히 트렌디 한 젊은 시청자층들이 가장 자주 찾는 게 수목 드라마였다.
그렇기에 이슈도 더욱 많이 되고, 그런 만큼 드라마를 통한 배우의 떡상도 더욱 자주 일어난다.
“캐스팅? 캐스팅은 안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네? 왜요?”
“모르셨어요? 어제부터 피디님 전화 계속 불나는 거? 그거 다 기획사들에서 자기 배우 주연으로 꽂아 넣으려고 그런 거잖아요.”
“김 작가 말이 맞아. 후우, 내가 드라마 PD 생활하면서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니까. 내가 전작 캐스팅할 때는 그렇게 콧대 높았던 양반들이 뭐 접대다 뭐다 먼저 하려고 드니, 원.”
양진철 PD가 올해 초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제작 일정이 코앞인데 주연 배우 캐스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엄청 고생했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에서 방영될 예정이었던 경쟁 드라마의 배우진이 너무 빠방했던 탓이다.
뭐, 그래도 나름 시청률을 선방하면서 꽤 능력 있는 PD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 그러면 저희 주연 캐스팅은 이미 정해진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고민 중. 캐스팅에는 작가님 의견도 중요하니까. 아무튼 수철아, 네가 보기엔 여주 자리에 누가 제일 괜찮을 것 같냐?”
“후보가 누구누구인데요?”
“일단 제일 적극적인 건 한시연, 이하나. 이렇게 둘. 뭐, 이채연이랑 정다정도 소속사 통해서 연락 왔고.”
“한시연, 이하나… 예에? 그, 그 사람들 전부요?”
후임 AD가 놀란 얼굴을 했다.
‘정말 엄청난 톱 배우다!’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요즘 대세라는 소리 정도는 가볍게 들었던 배우들뿐이다.
그런 여배우들이 이렇게 먼저 컨택을 해 온다고?
“그래. 그러니까 내가 미치겠는 거지. 후우, 아무리 드라마가 작가 놀음이라지만… 이렇게 드라마 제작이 쉬워도 되나 싶다.”
저번 작품을 찍었을 때 겪었던 어려움 대부분을 이번에는 찾아볼 수 없다.
배우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제작비, 제작 일정 등등.
특히 양진철 PD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제작비가 전보다 훨씬 넉넉하다는 점이었다.
그건 선우 작가의 중국 인기 덕에 연기 천재가 되었다가 벌써 중국 수출이 확정된 덕분이었다.
상당한 금액으로 이미 판권 계약도 끝마쳤다.
그 덕에 기존 제작비보다 더 높은 제작비를 책정받을 수 있었다.
“아아. 하긴. 대본이 잘 뽑히긴 했죠.”
“그것뿐이게요? 아니, PD님. 대체 선우 작가님은 뭐 하는 분이시래요? 진짜 19살 맞아요?”
대본 얘기에 스태프 중 한 명이 양진철 PD에게 물었다.
아직 촬영 현장이나 드라마 제작 과정에 익숙하지 않을 선우진을 위해 양진철 PD가 따로 빼 온 보조 작가 겸 스크립터였다.
그녀가 제 앞에 놓인 대본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 19살이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놀랍지만, 이거 업계 조사도 엄청 하신 것 같던데요? 아니면 부모님이 업계 관련 직종에 종사하시거나. 맞죠?”
“으음. 그냥 자영업 하실걸?”
“진짜요? 아니, 그러면 이걸 다 조사해서 쓴 건가? 으으… 그렇게 해서 나올 수 있는 현장의 리얼함이 아니던데. 아니면 아역 배우 출신?”
양진철 PD가 멈칫했다.
“어? 진짜예요?”
“아니, 그렇다고 들은 건 아닌데. 그랬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듯한 추측이다.
드라마 같은 데서 얼굴을 본 기억은 없긴 해도, 그가 모든 아역 배우 출신을 아는 건 아니었으니.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왜요?”
“작가님이… 잘생겼거든.”
“네?”
“선우 작가님, 엄청 잘생겼어. 일반인 기준이 아니라 배우라고 생각하고 봐도. 그런 얼굴이면 어렸을 때 배우 한번 시켜 보지 않았을까?”
“와! 진짜요?”
양진철 PD의 말에 여성 스태프들이 궁금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남성 스태프들은 똥씹은 표정을 했고.
양진철 PD가 유독 그런 얼굴을 한 막내 스태프에게 물었다.
“뭐야? 얼굴이 왜 그래?”
“…아뇨. 그냥… 19살에 벌써 몇십 억 버는 작가가 얼굴까지 잘생겼다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까.”
“짜증날 정도로 잘났지.”
후임 AD가 말을 보탰다.
그걸 들은 양진철 PD가 작게 웃었다.
짜증 날 정도로 잘났다라…….
‘틀린 말은 아니지.’
스태프진 중 유일하게 선우 작가의 얼굴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뭐, 작가님 얼굴이야 조만간 너네도 뵙게 될 테니 그때 확인해. 배우 캐스팅 과정에는 직접 참여한다고 하셨거든.”
* * *
“예. 마지막화 대본은 조금 전에 메일로 출판사에 보냈어요. 아마 조만간 번역된 버전을 받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하하. 알겠습니다. 역시 선우 선생이십니다. 그런 퀄리티로 대본을 이렇게 빠르게 뽑아 내시다니.]
나는 오늘부로 검객무쌍의 드라마 대본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남은 건 배경이나 장소 관련해서 틈틈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수정하는 것 뿐이다.
배우 캐스팅 과정에 나도 참여할 예정인 연기 천재가 되었다 하고는 달리, 검객무쌍은 전권을 채널 CHIN에 맡겼기에 벌써 제작이 한창이었다.
“뭘요. 아, 촬영은 잘되고 있나요?”
[네! 물론이죠. 중국에서도 작가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서 방송국에서 저희를 엄청 밀어주는 덕분에 찍을 맛이 납니다. 하하핫.]
내가 19살이라는 게 언론에 밝혀지고 나서, 중국에서도 꽤 파장이 컸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한국인 작가가 쓴 무협지가 중국 출판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해서 선우라는 이름이 꽤 유명해졌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 고등학교도 졸업 안 한 19살이라더라, 하는 소식이 퍼지며 난리가 난 것이다.
물론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천재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는 것 똑같았던 것이다.
사실 그건 전 세계가 전부 비슷할 거다.
불세출의 천재로 유명한 모차르트가 괜히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모차르트 정도의 천재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그냥 천재라는 키워드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한국과 중국에서 한층 더 유명해졌다.
예전처럼 장르 소설에 대해 아는 사람들만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선우라는 작가는 ‘어? 걔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 뉴스 나왔던 천재 소설가 아니야?’라고 대부분 말할 정도의 유명세를 한국과 중국 두 국가에서 얻었다.
그 덕에 생긴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가 검객무쌍 드라마도 그렇고 연기 천재가 되었다도 양국에서 서로 앞다투어 수입하려고 했다는 거다.
실제로 이미 계약도 끝났고 내게도 판권 금액 중 일부가 조만간 떨어지게 될 거다.
뭐, 한국에서 중국으로 파는 것과는 달리, 검객무쌍의 국내 판권 금액은 그리 크지 않기는 했지만.
[그런데 작가님, 중국어는 날로 느시는군요!]
“듣고 말하기만 조금 되는 것뿐인데요.”
[에이, 거의 중국에서 몇 년은 사신 수준이신데요.]
아무래도 내가 저번에 했던, 어쩌면 내가 전반적인 외국어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사실인 것 같았다.
최근, 내 중국 내의 인기를 고려해서 중국어 회화를 틈틈이 익히는 중인데 발전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영어는 이미 프리 토킹은 물론 전공책 수준으로 읽고 쓰기도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고 중국어는 적어도 회화에 있어서는 대부분 마스터한 것 같았다.
물론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려는 생각은 없다.
내가 중국어를 익히는 건 나중에 중국에서 초청 행사가 있거나 할 때에 써먹기 위해서지, 뭘 읽으려거나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몇 분 더 통화를 이어 가던 마룽 PD는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것 같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유명세라는 게 참 대단하단 말이지.’
요즘 어째서 사람들이 유명해지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지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일 정산 금액: 16,486,232원]
[일 정산 금액: 12,380,435원]
[일 정산 금액: 21,701,070원]
지난 3일간의 조아유 정산 금액이었다.
여러 언론에 내가 보도된 이후로는 아예 단위 수가 달라졌다.
저번에 하루 정산 금액 3,000만 원을 찍고 놀랐었는데, 그 기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덩달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수입도 엄청 뛰었다.
내 글을 보기 위해 새롭게 유입된 독자 대부분이 내 글만 보고 사라지지만, 그중 몇은 조아유에 있는 다른 글들도 보는 것이다.
그 덕에 나 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나황족과 메모라이제이션의 수익도 원래보다 4, 5배는 뛰었다.
물론 제일 이득을 보는 건 조아유 회사일 거다.
아마 나 덕분에 급증한 영업 이익에 엄청 좋아하고 있겠지.
‘뭐, 그것도 잠깐이지.’
안 그래도 슬슬 조아유를 떠나 문토피아로 연재 플랫폼을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다.
아무리 지금 내 조아유 수익이 크다고는 해도, 정액제 시장에 언제까지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조아유가 빠르게 편당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플랫폼을 옮길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원역사에서 봐 온 조아유라면, 절대 편당 결제를 먼저 도입할 리가 없다.
‘기존 작가들 다른 플랫폼으로 다 떠나고… 한참 지난 나중에야 부랴부랴 편당 결제 시스템을 만드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렇게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도 어떻게 그렇게 망했던 건지 신기한 회사다.
뭐, 그래도 지금은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곳이니, 플랫폼 욕은 여기까지 하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은 이런 고뇌를 토로한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고민을 지금 하는 중이었다.
‘사느냐, 더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BTC = 12.87$]
그래.
나는 지금 비트코인을 얼마나 살지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비트코인의 가격은 1BTC당 약 13달러.
그리고 내게 주어진 돈은?
‘21억 2천만 원.’
이것저것 다 합쳐서 이번 달 정산받은 금액이 약 21억 원.
정말로 월20억킥 작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튼 이중 어느 정도의 금액을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할까?
21억을 모두 때려박아?
그런다고 치면 대충 14만 BTC쯤 된다.
내가 지금껏 모은 비트코인의 10배나 되는 수량.
전부 비트코인을 사는 게 맞는 것일까?
물론, 고민은 길지 않았다.
‘21억 전부 풀매수 가즈아!’
햄릿과는 달리 나는 물음의 정답을 알고 있으니까.
물론 이제는 예전처럼 무지성 풀매수를 때리지는 않을 거다.
가상 지갑의 수도 여럿으로 늘려 놨고, 한 번에 다 사는 게 아니라 다음 정산금이 들어올 때까지 한 달에 걸쳐서 나눠 매입할 생각이다.
다루는 금액이 커진 만큼 내 코인 거래에 비트코인의 가격이 크게 영향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뭐, 대충 회귀물 소설들에 자주 나오는 나비효과 방지.
그런 거다.
어쨌든.
나는 무적이다!
비트코인은 신이고!
이 희대의 개소리는 적어도 회귀자인 나에게는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