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5화 (15/267)

15화 지가 스타 작가야?

“허어……! 허!”

마룽 PD가 연신 탄식을 뱉었다.

감탄만 나온다.

인당 1,000위안이 넘어가는 고급 한정식 코스가 나오고 있는데도, 수저를 들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재밌다. 너무 재밌었다.

검객무쌍을 최신 번역 내용까지 5번이나 읽은 마룽 PD였기에, 분명 다 꿰고 있는 스토리에서 약간의 지루함이라도 느껴져야 하는 게 맞는 건데…….

대본을 읽는 내내 그런 지루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 했다.

그 정도로 대본이 잘 뽑혔다는 뜻이었다.

‘대체… 뭐 하는 분이신 거지?’

그래. 인정하겠다.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의심했었다.

아무리 상대가 검객무쌍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쓴 작가라지만, 그래도 이건 드라마이지 않은가!

분명 소설에서만큼의 완성도는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마룽 PD는 대본을 읽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소설과 드라마 모두 이야기를 쓰는 거라는 공통점이 있다지만, 그건 큰 틀에서의 얘기일 뿐이다.

세세한 부분들까지 따지고 보면 차이점이 무수히 많았다.

괜히 각색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 소설을 쓰던 사람이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되면 어느 정도의 어색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가 쥐고 있는 대본에는 그런 어색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완성도가 엄청나게 탁월한 대본이었다.

검객무쌍의 소설 버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드라마적인 메커니즘, 연출 기법 등이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었고, 심지어 방송 제작 환경을 아주 잘 꿰고 있는 것인지 방송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이해까지 아주 탁월했다.

‘원래 드라마 작가를 하셨던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대본의 완성도였으니.

하지만 그런 거라면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분명 18세라 하셨는데…….’

18세면 중국 기준으로 치면 이제 갓 성년이 되는 나이였다.

그런 나이에 검객무쌍 같은 대작을 쓴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드라마 작법까지 따로 공부했다고?

겨우 18세의 나이에?

[혹시 따로 드라마 공부를 하셨던 겁니까?]

마룽 PD의 물음이 통역을 거쳐 전달됐다.

“아뇨. 대본을 써 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닌데, 어디서 배우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독학으로 잠깐 정도?”

대답을 들은 마룽 PD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라마를 공부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런 퀄리티의 대본을 가지고 온다.

그 말이 뜻하는 건 무엇이겠는가?

‘소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쓰는 것에 있어서 천재……!’

작가 선우가 그런 수식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

마룽 PD는 다른 방송사 놈들이 먼저 채가기 전에 한국까지 오겠다는 생각을 한 며칠 전의 자신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킨 마룽 PD가 다 읽은 대본을 덮으며 앞을 바라봤다.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선우가 보였다.

그제야, 마룽 PD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본을 보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됐었는데.’

신입 PD 때에나 했을 법한 실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원래도 검객무쌍의 엄청난 팬이었던 마룽 PD였다.

그런 그에게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영상화된 모습이 절로 그려질 정도의 완성도 높은 대본이 주어진 것이다.

어찌 그걸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계약 조건에서 손해를 조금 보게 될 수는 있겠지만…….’

마룽 PD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오늘의 계약.

반드시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 * *

“양 PD님, 오셨어요.”

“하암, 아! 좋은 아침입니다.”

양진철 PD가 마주친 시큐리티 직원과 인사를 나누며 방송국 안으로 들어섰다.

피곤이 가득한 모습의 그였다.

‘어제 잠을 너무 늦게 잤어.’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날이라 푹 자려 했건만, 새벽 3시 반까지 잠에 들지 못해 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업무가 바빠 한동안 읽지 못 했던 그의 최애 소설 칼넘강이 어제부로 완결되고 말았으니.

묵혀 놨던 칼넘강을 보느라 제때 잠에 들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는 했어.’

작품 내내 주는 재미가 엄청났던 만큼 대체 어떤 끝맺음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했는데…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마무리였다.

톡. 토도독-

양진철 PD가 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너네 칼넘강은 다 읽고 갤질하냐?’

그는 벌써 활동한 지 10년은 되어 가는 한 사이트의 갤러리를 들어가 막 이런 게시글을 남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 하나가 있었다.

[ㄷㄷㄷ 님들 칼넘강 소식 들음?]

올라온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추천 수가 20을 돌파하고 있는 한 게시글.

양진철 PD가 그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러자 보인 건 포털 사이트 기사로 추정되는 한 링크와 그 밑으로 달린 ‘ㅅㅂ 진짜 돈 쓸어담는 거 조오오온나 부럽네’라는 내용.

양진철 PD가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K-무협지, ‘칼잡이가 너무 강함’. 중국에서 드라마 제작 확정! 총 제작비 100억 원 추정!]

“어?!”

칼넘강의 애독자면서 드라마 PD인 그로서는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기사였다.

그가 홀린 듯 기사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진짜 칼넘강이 중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잖아? 심지어 채널 CHIN? 제작비도 100억 원이나 쓴다고? 대륙 스케일 보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기사였다.

하지만 의문도 함께 생기는 기사이기도 했다.

칼넘강이 요즘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제일 잘나가는 웹 소설이라지만, 그게 드라마화까지 될 정도였나?

궁금증에 손가락을 놀려 스크롤을 내려 보니 관련 기사가 몇 개 더 있었다.

[K-콘텐츠에 중국이 놀라 발칵 바로 드라마 제작을 확정 지은 이유! 한국의 무협지, 中 도서 시장에서 종이책 100만 부 판매 달성?!]

[…최근 한국 무협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칼잡이가 너무 강함’이 중국 종이책 시장에서 100만 부 판매를 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내에서는 ‘검객무쌍’이라는 제목으로 유통되고 있는 ‘칼잡이가 너무 강함’은…….]

“와. 미친.”

기사를 읽다 순간 놀라 탄성을 뱉은 양진철 PD였다.

‘100만 부?’

양진철 PD의 뇌 내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중국 내에서 무협지가 권당 얼마에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5~6천 원은 할 것이다.

그럼 5천 원이라 치고 거기서 10%만 작가가 가져간다고 하면 500원.

거기에 100만을 곱하면 5억이다.

그런데 5억도 약과였다.

또 다른 관련 기사를 본 양진철 PD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기사의 제목은 ‘한 달 동안 중국서 100만 부 판매한 한국 무협지, 추정 수익 약 7억 원!’이었다.

‘…와, 심지어 5억보다 더 커? 그리고 그걸 한 달 동안 벌었다고?’

그걸 보니 양진철 PD도 링크를 무협 갤러리에 올렸던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칼넘강 작가 진짜 존나 부럽네.’

진짜 개부러웠다.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7억, 7억이라니.

게다가 평소 칼넘강의 애독자였던 그는 선우라는 작가가 웹 소설로도 대략 얼마를 버는지도 알고 있었다.

최소 월 1억.

거기에 종이책 수익을 더하면 8억이었다.

그리고 아까 본 기사대로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돈을 또 더 쓸어 담겠지.

‘내가 지금까지 한… 3억 모았나?’

KY 중 하나를 나와 그 어렵다는 SBC에 취직, AD 생활 5년 끝에 드라마 PD가 됐고, 그 생활도 벌써 4년차다.

직장인 생활을 한 게 근 10년이 된 것.

그런데 모은 돈이라고는 겨우 3억 조금 안 되는 게 전부다.

원래는 이 정도면 그래도 나름 잘 아껴서 모았다 생각했는데… 방금 그 기사를 보고 나니 겨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에서 2, 3등 할 정도의 수재였던 양진철 PD의 10년은 누군가에게는 몇 주치에 불과한 거였으니.

‘…어휴. 이런 생각을 해서 뭐 하냐.’

쪼롭-

그래도 부러운 것은 잠시였다.

양진철 PD는 믹스커피 한잔을 타 마시며 부러움을 떨쳐 냈다.

사실 드라마 PD로 일하면서 배우들과 출연료 협상을 하다 보면, 회당 출연료로 자신의 연봉을 받아 가는 배우들도 흔하게 보게 된다.

회당 몇천만 원의 고료를 받아 가는 스타 작가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그에게는 이렇게 연봉으로 현타 오는 게 꽤 익숙한 일인 것이다.

아무튼.

‘그러고 보니 우리 미래의 스타 작가님은 언제쯤 답을 주려나?’

양진철 PD가 선우진과의 톡방을 열어 훑었다.

며칠 전, 부모님과 상의는 끝났냐는 물음에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선우진의 답장을 끝으로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부모님과 얘기가 끝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역시 그때 짧게 언급했던 고료 때문인가?’

처음 계약을 위해 선우진과 만났던 것이 일주일도 더 전의 일이었다.

사실 그 기간이면 부모님과 계약 관련 상의가 한참 전에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아직 연락이 없다는 건… 단순히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고 못 받고를 떠나서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

양진철 PD는 그 다른 이유가 그때 선우진이 언급했던 회당 고료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5장까지는 가능하긴 한데…….’

저번 만남에서는 회당 400만 원이 최대라고는 했지만, 거기서 100만 원 정도는 더 인상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그의 힘으로는 조금 힘들었다.

아무리 그가 방송국 내에서 꽤나 괜찮은 연출 감각으로 인정받는 PD라고는 해도, 주어진 권한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

그 이상의 금액을 신인 작가에게 고료로 지급하려면 윗선의 허락이 필요했다.

“어. 왔냐?”

가령, 드라마국 팀장 중 한 명인 최진섭 CP와 같은 이의 허락이.

“예. 일찍 오셨네요?”

“아아, 국장님하고 얘기할 게 좀 있어서. 그런데 너, 아직도 그 고딩 애한테 연락 없어?”

“아, 선우진 작가요? 예. 아직 연락이 없네요.”

“스읍… 초장부터 네가 너무 착하게 나간 거 아냐? 새파란 신인한테 그렇게 휘둘려서야 되겠어? 연락 없으면 수상 취소하고 그냥 다른 대본 잡아, 인마.”

“하하. CP님도 대본 보셨잖아요, 기깔나게 나온 거. 저 그거 꼭 할 겁니다. 그리고 재능 있는 신인인데 조금 더 기다려 봐야죠.”

양진철 PD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최진섭 CP가 불만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쯧. 꼭 하겠다면야 믿고 맡기겠는데… 너, 명심해라. 싹이 괜찮긴 해도 입봉 작가야. 네가 주도권 제대로 못 잡아서 얕보이면 그 버릇 평생 간다? 요즘 고딩들 얼마나 영악한지 알지? 너, 걔 데리고 쭉 키워 볼 생각이잖아. 처음에 단추를 잘못 꿰면 10년 후에도 그런다고.”

최진섭 CP의 말에 양진철 PD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뭐, 최진섭 CP의 말이 꼰대 기질이 조금 섞이긴 했어도 영 틀린 말인 건 아니었다.

PD와 작가 간의 주도권 싸움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꽤 흔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드라마를 그리는 건 작가이고, 드라마를 만드는 건 PD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없다면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둘 간의 불협화음이라도 생길 시 제대로 된 드라마가 나올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양진철 PD는 예전 막 입봉했을 시절, 중견 경력의 작가에게 제작 내내 휘둘려 드라마 하나를 말아먹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선우진 작가가 그럴 성격으로는 안 보였는데.’

한 번의 만남뿐이었지만 첫인상은 꽤 괜찮았다.

딱히 최진섭 CP가 말한 것처럼 영악한 요즘 애들 같지도 않았고.

그리고 뭐, 조금 정도는 영악하다 해도 상관없었다.

양진철 PD는 최진섭 CP가 말한 대로 선우진이라는 작가와 꽤 오래 가고 싶었으니.

오히려 최진섭 CP의 생각과는 달리, 선우진 작가라면 어느 정도 그가 굽힐 생각도 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대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

“…….”

“안 그래도 그때 고료 더 받을 수 있냐 했다며. 지가 스타 작가야? 방송국에서 이렇게 주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알겠다 할 것이지. 어린 놈이 벌써부터 겉멋 들어서 말이야.”

최진섭 CP는 계속해서 불만 가득한 말을 뱉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우우웅-

회의실로 들어오며 진동으로 바꿔 놓은 양진철 PD의 휴대폰이 울렸다.

[선우진 작가님]

“어? 뭐야. 선우진이면 내가 말하고 있던 고딩 맞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최진섭 CP가 물었다.

양진철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저 그러면 선우진 작가랑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양진철 PD가 회의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최진섭 CP가 떠나는 그를 잡았다.

“잠깐, 잠깐만.”

“……?”

“전화 스피커폰으로 한번 받아 봐. 뭐라고 하는지 좀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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