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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1화 (11/267)

11화 이거 버근가?

‘이건 통한다, 무조건……!’

검객무쌍의 번역본을 덮은 쑹타오가 그렇게 확신했다.

아니, 그냥 통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으리라.

최소 대박… 잘하면 초대박.

20년 가까이 출판사에서 일해 온 쑹타오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뭐, 내가 아니라 이걸 읽어 본 누구나가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에 20년의 경험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검객무쌍을 읽었더라도, 단번에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았을 테니.

적어도 그가 일하는 진강문학사에는 보물을 눈앞에 두고 알아보지 못할 바보는 없었다.

그만큼 평범한 제목과는 사뭇 다른, 파격적인 내용의 글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무협이 나왔다고?’

한국의 장르 소설이 중국보다 뒤쳐져 있다고?

조금 전까지 한국의 장르 소설을 무시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뒤쳐져 있기는커녕 오히려 몇 단계는 더 앞서 있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흡입력, 주인공의 캐릭터성 등.

그것만 놓고 생각해 보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몇몇 대작들도 충분히 검객무쌍과 견줄 수 있다.

하지만 속도감에 있어서는 중국의 소설들과 차원이 달랐다.

중국의 소설이라면 몇십 편을 우려먹었을 에피소드가, 검객무쌍에서는 겨우 몇 화 만에 끝이나 버린다.

꼭 숨 돌릴 틈 없이 펀치 세례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스토리 진행이 빠르기만 한 건 아니다.

정확히는 완급 조절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이리라.

중요한 임팩트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힘을 빡! 주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에서는 물 흐르듯 넘어가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매 화의 마지막에서는 꼭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해 소설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단순히 스토리와 캐릭터가 재밌는 게 아니야. 기술적으로도… 엄청나게 뛰어나.’

글 쓰는 것에 있어 기술이란 단어를 들먹이는 건 꽤나 웃긴 얘기겠지만, 검객무쌍을 읽고 있으니 절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쑹타오였다.

당장 자신도 10분만 읽어 보려던 것을 시간 지나는 줄도 모르고 3시간 내내 붙잡고 있지 않았는가.

아마 자신뿐만 아니라 검객무쌍을 읽는 독자라면 모두가 비슷한 일을 겪게 될 터였다.

“이봐, 가오린!”

쑹타오가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 하나를 불렀다.

참으로 고맙게도,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검객무쌍을 프린트해 그의 책상에 올려놓은 그 직원이었다.

“JP미디어 측에 바로 연락해. 이 작품 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어, 작품이 꽤 괜찮았나 보죠?”

“뭐? 꽤 괜찮아? 그런 수준이 아니야! 아니, JP미디어 측에는 자네가 아니라 내가 직접 연락하는 게 낫겠어. 가오린 자네는 그 대신 빨리 한국어 번역가를 섭외하게.”

“예? 번역가요?”

“그래. 꼭 업계에서 가장 실력 좋은 번역가로 구하도록.”

‘다른 소설들은 별 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출판시켰었지만… 검객무쌍을 그렇게 취급하는 건 안 될 일이지.’

JP미디어 쪽에서 진행한 번역이 별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쑹타오의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을 뿐.

JP미디어가 고용한 번역가가 중국을 떠나산 게 오래된 건지, 일이십 년 전에나 쓰였을 어색한 표현들이 간혹 보였다.

원래라면 그 정도의 어색함이야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출판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전에 JP미디어에서 보낸 소설들도 그렇게 해 왔고.

하지만 검객무쌍을 그렇게 홀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쑹타오는 이 작품에 조금의 흠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공장에도 빨리 연락해야겠어. 이건 웹 환경은 물론, 종이책으로도 엄청나게 먹힐 작품이야.’

쑹타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JP미디어 측에 보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진강문학사가 기존에 JP미디어로 보내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 계약서였다.

원래는 한국에서 넘어온 소설에는 신인 기준의 인세 비율을 적용하는 진강문학사다.

한국 내에서의 작가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쑹타오는 이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객무쌍이 출판되는 순간, 다른 출판사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야. 어떻게든 차기작까지 계약에 성공하거나,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해.’

쑹타오의 편집자로서의 오랜 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미 대작을 쓴 작가들에게만 적용하는 최고 대우까지는 무리더라도, 자신의 권한 내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대의 계약 조건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탁, 타다닥-

‘그런데 왜 1권 분량만 번역해서 보낸 거야? 다음 권 궁금해서 대체 어떡하라고!’

계약서를 작성하던 쑹타오의 원망이 괜히 JP미디어 쪽으로 향했다.

* * *

“작가님! 중국 쪽에서 작품을 엄청 좋게 봤나 봅니다. 하하. 계약 조건을 아주 후하게 제시했어요.”

오늘 아침에 편집자가 연락이 왔다.

꼭 직접 찾아뵙고 말하고 싶은 좋은 소식이 있다며 말이다.

그게 대체 뭔가 했더니.

원고를 보낸 지 며칠이 넘었는데도 중국에서의 피드백이 없어 내 글이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건가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편집자가 건넨 서류 뭉치를 받아 살폈다.

“이게 그 계약서인가요?”

중국어로 된 계약서 1부와 그게 한국어로 번역된 계약서 1부, 번역에 대한 공증 서류 1부가 함께 있었다.

“예. 괜찮으시면 제가 천천히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아뇨. 일단 제가 혼자서 한번 살펴볼게요.”

내가 진짜 신인 작가도 아니고.

출판 관련 계약서를 보는 건 예전에도 여럿 해 본 경험이 있어 익숙했다.

이번에는 해외 출판이니 경우가 살짝 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골자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아무튼.

나는 천천히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중국이라 양아치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상해 보이는 건 딱히 없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계약 조건들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독소 조항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인세 비율이 조금 짜긴 하네.’

다만, 웹 연재도 그렇고, 출판본의 인세 비율도 한국의 표준보다는 적었다.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중국에서는 보통 저 정도를 준다는데, 내가 어쩌겠는가.

그래도 JP미디어한테 듣기로는 이 정도 인세 비율이면 중국 측에서 내게 해 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하는 것이라 했다.

차기작까지 함께 계약하면 지금의 인세 비율에서 더 높여 주겠다고도 했지만, 그건 내가 미리 거절해 놨다.

‘차기작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야지.’

지금도 충분히 좋은 계약이라고는 해도, 칼넘강이 흥행하고 나면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흥행에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차기작 계약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맞았다.

어쨌든.

‘보장 인세를 준다는 건 좋네.’

종이책 출판이 같이 들어가는 덕분에 1권 분량을 쓸 때마다 지급하는 보장 인세가 계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건 책 판매와는 상관없이 작가에게 별도로 지급되는 돈이었다.

[권당 보장 인세: 1만 위안]

금액은 한화로 200만 원이 살짝 안 되는 돈.

현재 칼넘강의 화수가 150화가 조금 안 되니, 약 6권 분량.

보장 인세만 쳐도 거의 1,200만 원이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인세 비율뿐만 아니라 보장 인세의 액수도 JP미디어에서 기존 중국에 진출시켰던 다른 작품들보다 후한 액수라고 했다.

계약을 맺는 즉시 돈이 입금된다는 점도 좋았다.

‘괜히 예상에 없던 꽁돈이 생긴 기분이네.’

물론 보장 인세는 받는 대로 족족 비트코인으로 바꿀 예정이었다.

“좋아요. 계약 내용은 마음에 드네요. 그래도 집 가서 검토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 작가님 편하신 대로 하시죠.”

* * *

삼 주 후.

탁- 타다닥!

‘업로드 완료.’

나는 오늘치 칼넘강의 분량을 조아유에 업로드했다.

JP미디어에 메일로 연재분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번역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써지는 대로 연재분을 보내야 했다.

[칼잡이가 너무 강함 - 284화(new!)]

그사이, 칼넘강의 연재는 꽤 진행되어 있었다.

이번 작품의 완결은 350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이제 슬슬 후반부에 들어선 것이었다.

작품이 후반부에 들어선 만큼 조아유의 연재 수익 또한 더욱 상승했다.

매일 조회 수 1위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이제는 심심찮게 안늙강의 연재 당시 수익을 넘어서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잘 팔리고 있으려나?’

간간히 소식을 듣기는 했다.

예상과는 달리, 종이책의 판매는 생각보다 저조하다고 한다.

칼잡이가 너무 강함이라는 제목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이 ‘검객무쌍’이었는데, 제목에 별다른 특색이 없어서인지 책이 많이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

안 그래도 출판 전 JP미디어를 통해 중국 출판사가 내 국적을 숨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었다.

필명이야 선우(仙宇)를 그대로 쓰니 별로 티가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종이책에 들어가는 작가 소개란에서라도 한국인이라 적는 걸 빼자고 말이다.

서점에서 일부러 노출이 적은 매대에 책을 배치한다거나, 독자들이 작가 소개란의 국적을 보고 다시 책을 내려놓는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물론 나는 곧바로 거절했다.

굳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국적에 상관없이 통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웹 연재에서는 잘나가고 있지.’

종이책과는 달리 웹 연재는 사정이 훨씬 낫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몇 주 전부터 중국 웹 소설 최대 연재 플랫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연락이 왔었다.

아무튼.

우우웅-

나는 진동음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JP미디어의 내 담당 편집자에게서 온 문자였다.

[편집자: 작가님, 이번 달 정산서 메일로 보내 드립니다.]

‘…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JP미디어의 정산 날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열어 정산서를 다운로드 받아서 켰다.

‘그래도 웹 연재에서만 잘나가는 거니까 엄청 큰 수익을 기대하면 안 되겠…….’

그런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

내 두 눈이 한 번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여전히 그대로.

뭐지?

“이거 버근가?”

어딘가… 통장에 찍힌 액수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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