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진짜 쪼금
웹 소설 작가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안 좋은 습관들이 있다.
매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탓에 생긴 운동 부족이라거나, 마감을 위해 생긴 밤낮의 뒤바뀜이나 하는 것들.
나는 이번 생에는 기껏 과거로 온 만큼 그런 안 좋은 습관들을 최대한 지양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나왔습니다.”
탁-
바로 아메리카노 중독.
카페에 온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주문이었다.
처음에는 캐모마일 티를 시켜 마셨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자동으로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더라.
이럴 때면 정신의 영향이란 게 참 신기했다.
과거로 돌아온 덕분에 지금의 내 몸은 카페인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몸일 텐데도,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으면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 탓에 예전보다 몇 년 빠르게 아아에 중독될 지경이다.
원래라면 19살의 나는 카페에서 제대로 주문하는 법도 몰라서 인터넷에서 ‘카페 주문하는 법’ 따위를 찾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지금은 ‘아아’라는 말도 없으려나? 뭐, 아무튼 적당량의 카페인은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니까.’
최대한 자제하고 있기는 있다.
하루에 마시는 건 아메리카노 한두 잔 정도.
커피를 마실 때 작업 효율이 높아지는 터라 이 정도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생에 담배는 꼭 시도하지도 말아야지.’
카페인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번에는 꼭 비흡연자로 살리라.
커피와는 달리 담배는 정말 백해무익하니까.
회귀 전에는 글이 막힐 때마다 머리를 환기시킨다는 핑계로 담배를 펴 댔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탁, 타다닥-
쪼옵-
아무튼.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집필을 시작했다.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172화.hwp]
불과 일주일 전에 시작했던 안늙강의 회차는 벌써 172화를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첫날에 필을 제대로 받아 앉은 자리에서 50화까지 썼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미친 속도가 따로 없다.
‘거의 하루에 20편을 넘게 쓴 거니까.’
분량을 일부러 늘려 가며 쓴 것도 아니다.
이런 속도로 써 놓고 말하기에는 조금 웃기지만, 그래도 최대한 단어나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해 가면서 써 내렸다.
실제로 글을 모두 쓰고 퇴고 과정에 들어갔을 때도 거의 수정하는 부분이 없었을 정도다.
‘매 순간마다 최선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니까. 그러니까 수정할 부분이 거의 없는 거야.’
예전에는 몇 분을 고민해야 나왔을 법한 문장들이 지금은 바로바로 떠오른다.
물론 문장만 좋아진 것도 아니다.
캐릭터나 스토리들이 내가 예전에 쓸 수 있던 것들보다 몇 배는 더 매력적이다.
그러니 안늙강이 지금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는 거다.
스토리와 캐릭터, 문장력이 모두 갖춰진 웹 소설을 싫어할 독자는 없었으니까.
탁-!
‘한 편, 끝.’
아무튼.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아직 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벌써 한 편의 집필이 마무리됐다.
나는 스크롤을 올려 172화의 첫 부분부터 글을 다시 검토했다.
“…….”
쪼옵-
‘역시…….’
고칠 부분이 거의 없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매끄럽게 잘 읽힐뿐더러, 글의 강약 조절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기껏해야 오타 몇 개 정도.
‘일단 바로 올리고.’
오타를 수정한 후 곧바로 최신화를 업로드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새로고침해서 최신화의 반응을 확인했다.
올린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댓글들이 여럿 달려 있었다.
그사이,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작품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실시간으로 댓글이 너무 많이 달린 탓에, 스마트폰 알림이 계속 울려 대서 첫날 이후로는 꺼 놨다.
-1빠!
-11111
-?? 전 편 올리고 20분 만에 한 편이 더 올라오네;
-ㄷㄷ 20분 만에 한 편 뚝딱하신 거?
-ㅋㅋㅋㅋ이 정도면 진짜 글 공장 의심해 봐야 된다.
-글 공장장 선우!
-윗분들 어그로 자제 좀요; 그 떡밥 끝난지가 언제인데.
-공장 떡밥 돌리지 마셈. 또 불타오를라.
-ㅇㅋ
-이 속도면 미리 완결까지 써 놓고 푸는 거 아니냐? 그런 거면 빨리 다음 편 내놔!
-ㄴㄴㄴ 작가의 말 보면 그건 아님.
작품의 미친 속도 때문일까.
며칠 전에 내가 작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작가 집단이라는 소문도 돌았었다.
마치 글 공장처럼 여러 명이 글의 파트를 나눠서 연재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런 헛소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내 글들은 누가 봐도 한 명이 썼다는 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가락에 지문이 있듯, 글 또한 마찬가지다.
그건 창작자만의 뚜렷한 개성을 작품에 녹일 수 있는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즉, 좋은 작가의 글에는 그 작가만이 그릴 수 있는 강렬한 지문이 남는다는 소리다.
회귀 전의 나는… 모르겠다.
아마 그런 작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내가 썼구나 싶을 법한 글을 쓴다.
재밌고, 캐릭터가 톡톡 튀고…….
지금의 나는 그런 강렬한 개성들을 내 글에 녹이는 작가였다.
뭐, 내 자랑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쨌든, 그 덕에 글 공장 떡밥은 타오른지 오래 지나지 않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총 정산 금액: 6,173,115원]
정산금은 글 공장 소리를 들었던 만큼 빠른 속도로 쌓였다.
7월이 거의 끝나갈 때 연재를 시작했는데도, 정산금 순위에서 TOP 3를 차지했을 정도다.
물론 TOP 3는 저번 달의 얘기지, 이번 달이 되고 나서부터는 쭉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내일이면 들어오니까, 바로 비트코인에 박아야지.’
과거에는 조아유에 연재했던 적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인데, 조아유의 정산 날짜는 말일이 아니라 익월 6일이었다.
덕분에 내일이면 저번 달 정산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받는 대로 다 비트코인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탁, 타다닥-
생각을 끝마친 나는 다시 한글 창을 켰다.
안늙강의 다음 화는 아니었다.
방금 올린 172화는 지난 몇십 화 동안 끌고 왔던 에피소드가 끝나는 부분이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간 에피소드였던 만큼, 곧바로 다음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내 글 실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다고 해서 막히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연재 속도만 놓고 보면 그런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때때로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지금의 안늙강이 바로 그런 때였다.
아무튼.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안늙강이 아닌 새로운 작품이었다.
‘원래 글은 쓰고 싶은 걸 써야 하는 법이지.’
사실, 엄밀히 따지면 신작은 아니었다.
내가 과거로 오기 전 연재하던 소설의 리메이크에 가까웠다.
장르는 배우가 주인공인 직업물.
‘이건 사실 내 얘기를 섞었던 거였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연기의 재능이 없는,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력이 늘지 않는 무명 배우였다.
그런 주인공이 웹 소설답게 우연히 이능력을 얻게 되면서 배우로 성공하게 되는 일들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래.
말해 뭐 하겠는가.
사실 내게 이런 이능력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하고 내가 과거의 내 자신을 주인공에 투영해 써 내려간 글이었다.
뭐, 그렇다고 배우라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때문에 썼던 작품은 아니었고.
그냥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 썼던 글이다.
그런데 회귀하는 바람에 결국 완결을 내지 못해서 미련이 남은 건지, 며칠 전부터 이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튼.
‘한 번 썼던 거여서 그런가, 안늙강보다 집필 속도가 빠른 것 같아.’
미래에 내가 썼던 작품과 지금 쓰는 작품은 재미만 놓고 보자면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틀에서는 동일한 작품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가 술술 나오다 못해 샘솟는 수준으로 글이 써진다.
캐릭터와 사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막힘없이 떠올랐다.
안늙강을 처음 썼을 때도 이런 기분이기는 했지만, 속도 면에서는 이번이 더 빠른 것 같았다.
탁탁탁-
그렇게 얼마나 써 내려갔을까.
“…으아.”
손끝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쉬지 않고 거의 몇 시간 동안 키보드만 친 것 같았다.
쓴 분량을 확인해 보니 1권 분량을 훌쩍 넘겼을 정도였다.
‘아으. 손 아파.’
나는 손가락을 스트레칭하며 최대한 지친 손을 풀었다.
‘어, 그런데… 이번 작품은 흥행만 놓고 보면 안늙강에 훨씬 못 미치겠네.’
벌써 이만큼이나 써 놓고,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주인공인 배우물은 사실 과거로 오기 전인 2021년 기준으로는 별로 마이너한 소재가 아니였다.
하지만 9년 전인 지금은 달랐다.
단순 마이너한 소재를 넘어 아예 접해 보지 못한 장르일 것이다.
‘대여점 시대에는 이런 작품이 없었을 테니까.’
지금의 웹 소설 독자 대부분이 대여점 시대의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들을 읽어 오던 장르 소설 독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대여점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르에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물도 이제 막 태동하고 있을 시기이니 말 다 했다.
배우물과 같은 직업물은 아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도 꽤 잘 쓰인 글인 만큼 어느 정도의 조회수는 보장할 수 있겠지만, 별다른 호불호 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안늙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다.
‘으음. 생각이 짧았어. 이런 글은 지금 시기에는 웹 소설보다 차라리 드라마에 어울리는… 어?’
이대로 기껏 써 놓은 작품을 아껴 놔야 하나 했는데,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직업물이 아직 생소한 웹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판에서는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심심찮게 나오고는 했다.
당장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도 그런 작품이 있었다.
‘웹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로 바꿔 볼까?’
영화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원래 최소 200화짜리 웹 소설로 쓰려했던 만큼, 호흡이 짧은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라면, 꽤 성공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재 면에서 어울리기도 했고, 내게는 드라마 대본도 웹 소설만큼이나 익숙해서였다.
‘내가 읽었던 드라마 대본이 몇 개인데.’
몇 개는 아직도 주요 대사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드라마의 작법과 웹 소설의 작법은 다르면서도 꽤 비슷했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잘 쓴 글은 그게 무엇이든 먹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글을 꽤 잘 쓴다.
게다가 내 글 쓰는 속도를 생각해 보면 드라마 대본으로 고치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공모전 같은 데에서 수상만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더 수익이 좋을 거야.’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몇천만 원 정도를 땡길 수 있었다.
장기적인 수익은 웹 소설로 내는 게 더 나을지는 몰라도 한 방은 이게 더 나았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인 만큼,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어쨌든.
“…어?”
지금 진행하고 있는 드라마 공모전이 뭐가 있나 찾아보려 했는데, 내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언제부터 있던 건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음료잔.
내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니다.
딸기 프라푸치노로 추정되는 음료.
누가 반 정도 마신 그것이 내 테이블 반대쪽에 놓여 있었다.
“어? 드디어 끝났나 보네?”
처음에는 나한테 하는 소리인 줄 몰랐는데, 옆을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막 나온 건지 정하연이 손을 허공에 털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 맞다.’
글 쓰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었는데, 얘랑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진짜 미안.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일단 사과를 하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에서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한글 창을 새로 켰을 때만 해도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이 남아 꽤 넉넉하다 생각했는데, 글에 집중하는 사이 세 시간이 지나 버린 거다.
“괜찮아. 나도 너 구경하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그런데 너 내가 앞에서 막 손도 몇 번이나 흔들었는데, 아예 모르더라.”
정하연이 자리에 앉으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나 그렇게 집중력 대단한 사람 처음 봤어. 조금… 진짜 쪼금… 멋있더라?”
그렇게 말한 정하연이, 뒤늦게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