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3화 (3/267)

3화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원래도 작가로서의 나는 손이 느린 편이 아니었다.

모든 작가를 본 적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마감이 닥쳤을 때면 두세 시간에 한 화를 뽑기도 했었으니 글 쓰는 게 꽤 빠른 편에 속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도 이건 선을 넘었다.

소요 시간 약 5시간.

5시간 안에 완성시킨 분량 20화.

5시간에 20화라니.

다른 웹 소설 작가들이 들었다면 당장에 쌍욕을 날려도 할 말이 없는 속도다.

심지어 날림으로 쓴 것도 아니다.

“재밌어. 그냥 재밌는 것도 아니고 진짜 겁나 재밌는데?”

물론 내가 쓴 소설의 객관적인 재미를 판단하는 것.

자기 객관화가 창작자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인 건 맞다.

하지만 창작자에게도 나름의 감이 있는 법이다.

내가 쓴 게 재밌는지, 안 재밌는지에 대한 감.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감이 반드시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은 잘 맞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감에 따르면 내가 5시간 동안 쓴 작품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은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일명 안늙강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갑작스러운 괴물들의 등장으로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던 때.

조금은 특별한 헌터 한 명이 있었다.

태어나길 꽤 대단한 싸움 실력을 타고난 고아 출신 헌터.

헌터 김봉팔.

가진 재주라고는 칼 한 자루 다루는 게 전부였지만, 그 칼 다루는 재주 하나로도 멸망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했던 사내.

다른 헌터들처럼 기깔난 특수 능력 하나 없이, 늙지 않는 게 전부였던 그에게 세상은 도살자라는 이명을 붙여 줬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김봉팔이란 사내가 헌터 생활을 은퇴하고도 십수 년이 더 흘렀을 때.

‘부고(訃告). 이지스 사(社)의 서강준 헌터께서 20XX년 11월 11일 오후 8시 10분에 별세하셨기에 친지님들께 고합니다.’

김봉팔은 자신에게로 날라온 한 통의 부고 편지를 받게 되었다.

“…씨펄. 그러게 좆같은 생활 때려치고 편하게 살라니까.”]

‘그리고 이다음에는 예전 김봉팔이 아꼈던 서강준의 딸… 서하연과 다시 만나게 되고…….’

은퇴한 전 A급 헌터 김봉팔과 그와 함께하게 될 서하연이란 소녀의 이야기였다.

가족이라 부를 이를 모두 잃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 둘.

둘의 관계는 영화 레옹의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르는 헌터물.

머지않은 미래에는 흔하디흔하게 될 장르지만, 지금의 기준에서는 꽤나 신박하게 보일 것이다.

‘내가 쓴 거지만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왜 계속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거지?’

미리 짜 놓은 플롯 없이 갑자기 떠오르는 대로 쓴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내가 써 놓고 이후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궁금해 미치겠다.

“잘 먹었습니다.”

그 탓에 회귀 후 첫 식사를 하는 내내 밥 먹는 거에 집중을 못 했다.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사실 메뉴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김치찌개인 탓도 있었다.

어쨌든.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미치도록 궁금한 뒷이야기.

그게 어찌 될지 아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탁. 타다닥! 타닥!

내가 쓰는 것.

한글 창을 키자마자, 키보드 타건음 소리가 내 방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아.”

이거 뭐지?

타건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머릿속에서 영감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덕분이었다.

겉과 속 모두 까칠하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나름의 따뜻함이 있는 김봉팔.

그리고 그런 김봉팔과 함께하게 될 서하연.

계속해서 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글 쓰는 속도가 예전과 비할 수 없이 빨라졌는데,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는 속도는 그것보다 더 빠르다.

탁. 타다다닥.

…미치겠다.

내가 쓴 이야기에 내가 절로 몰입하게 된다.

내가 써 내려가고 있음에도 내 글이 너무 재밌다.

이런 기분은 나도 처음이었다.

내 여러 작품 중 성적이 가장 좋았던 한 작품의 초반부.

그걸 쓸 때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기는 했는데, 정도에 있어서는 지금과 비교할 수가 없다.

김봉팔과 서하연.

꼭 두 캐릭터가 마치 내 머릿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만 같았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스스로 이야기를 창조한다 했던가.

지금의 기분은 그 이상이다.

“후우.”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으며 몸을 뒤로 뉘였다.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식사 이후로 4시간이 더 지났다.

그동안 내가 쓴 분량은…….

“14만 자.”

속도가 더 붙었다.

이야기가 더욱 전개되고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쓸 얘기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앞서 썼던 분량들까지 합하면, 총 25만 자.

넉넉히 계산하면 50화가량이나 된다.

즉, 2권 상당의 분량.

그걸 하루 만에 써 버리고 만 것이다.

“미쳤네, 진짜 미쳤네.”

내가 한 일이지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건 진짜 미친 일이다.

하루 만에 2권을 썼다고?

다른 작가들이 들었다면 지금의 나처럼 절로 미쳤다는 말이 나올 거다.

아무튼.

그런 미친 짓을 해서일까.

집필을 멈추고 나니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지독한 탈력감이 밀려든다.

뇌가 거의 한계까지 제 기능을 수행한 듯한 느낌.

당분이 필요했다.

“으어어…….”

다행히 엄마가 저녁 식사 이후 한 번 더 갖다준 복숭아가 남아 있다.

글 쓰는 데 집중하느라 먹을 틈도 없었다.

제철 과일답게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

당분이 머리에 좀 들어간 덕분인지 머리가 그나마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복숭아를 집어들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2권 분량을 쓴다는 건 아무리 손이 빠른 작가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어딘가 모르게 예전보다 글 쓰는 실력이 월등히 좋아진 것 같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다.

회귀 그리고 회귀에 따른 특전? 주인공 버프?

뭐 그런 건가?

웹 소설 작가다 보니 아무래도 웹 소설식으로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안 외쳐 볼 수가 없다.

“상태창?”

팟-!

…하고 무언가가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한번 외쳐 봤다.

이번에는 의문문이 아니라 조금 더 단호하게.

“상태창.”

으음.

“…스테이터스.”

이것도 아니다.

“흠흠. 사용자 정보.”

이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시스템?”

오케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민망함만 뒤따랐을 뿐.

그럼 그렇지.

회귀와 갑자기 생긴 주인공 버프 같은 능력도 이미 있는데, 거기에 상태창까지 섞인다고?

만약 내가 작가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짬뽕 조합이다.

맛은 어느 정도 있을지 몰라도 누구나 아는 흔하디흔한 그런 맛이라 잘 찾지 않을 짬뽕.

뭐, 만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소설이라면, 이 정도에서 끝낸 걸 같은 작가로서 칭찬하고 싶다.

어쨌든.

잠깐의 뻘짓 이후, 나는 조아유에 들어가 회원 가입을 했다.

기존에 쓰던 아이디가 있기는 할 테지만, 어릴 때부터 쓰던 거라 부모님 명의다.

아직 내 명의로 된 아이디는 지금쯤에는 없었을 거다.

[실명 인증 완료. 회원 가입 하시겠습니까?]

예상대로 실명 인증 후 가입하겠냐는 창이 뜬다.

‘예’를 클릭한 후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다음에는 닉네임.

즉, 필명인 거다.

여기서는 잠깐 고민했다.

회귀도 한 만큼 새로운 필명을 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쓰던 필명을 쓸지.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새로운 필명이 없다.

[닉네임: 선우(仙宇)]

아무래도 원래 쓰던 필명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막 특색 있는 필명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익숙한 걸 쓰는 게 내게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선우라는 필명은 무려 철학관을 하시는 아버지 친구분께 몇십만 원을 작명비로 드리고 받아 온 필명이다.

이제는 발생하지 않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몇십만 원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쓰고 싶다.

그리고 내 본명인 ‘선우진’과도 잘 맞는 부분도 있고.

아, 내 성을 그대로 따온 건 아니다.

선우가 아니라 선이 내 성이다.

이름이 우진인 거고.

[작품명: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아이디를 생성한 다음에는 바로 작품 등록으로 넘어갔다.

제목은 원래의 가제를 그대로 쓸 생각이었다.

일견 수준 낮아 보이는 제목이지만, 그래도 어그로 면에서는 최상일 거라 생각했다.

저작권 무료 이미지 공유 사이트에서 작품에 걸맞는 표지도 하나 공수해 왔다.

김봉팔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지로.

“오케이.”

바로 업로드를 시작했다.

오늘 쓴 분량을 모두 올리지는 않고, 20화 분량만 올렸다.

괜히 첫날부터 다 올렸다가는 오히려 유입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갑자기 올라온 작품이 조회 수나 추천 수도 적으면서 50화까지 있다?

나 같아도 읽기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렇게 20화까지 업로드를 완료했다.

오랜 습관 덕분에 1화별로 이미 나뉘어 정리가 되어 있는 안늙강이다.

그것들을 차례대로 복사해서 올리기만 하면 됐다.

“좋아. 업로드 끝.”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스스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안늙강.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가 원래의 미래에서 냈던 작품들이 받았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나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니 모든 건 내 설레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성공을 확신할 정도로 나는 안늙강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독자였다면 당장에 후원금을 보냈을 만큼의 재미와 퀄리티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내가 회귀로 인해 머리가 횃까닥 돌아버리면서 감이 다 떨어졌다는 소리겠지.

둘 중 어떤 걸지는 내일이면 알게 될 거다.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이제 첫날이니 유입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으아! 이제 좀 쉬자.”

업로드를 끝낸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뇌를 거의 한계까지 쓴 탓인지 얼마 안 가 졸음이 밀려 왔다.

아, 세수라도 하고 자야 하는데…….

더 이상 못 참겠다…….

…….

우우웅- 우웅- 우웅-

“응?”

진동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깼다.

뭐지.

전화라도 왔나.

밖이 아직 어두운 걸 보면 아침은 아닌데.

머리맡 옆에 놔뒀던 스마트폰을 켰다.

아.

우웅- 우웅-

지금도 끊이지 않는 진동 소리.

전화가 아니었다.

빼곡히 쌓여 있는 조아유의 알림.

기본 설정이 그랬던 건지, 누가 내 작품에 댓글을 달면 알림이 오는 듯했다.

우웅- 우웅-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지금도 계속해서 알림이 오고 있었다.

나는 기대감과 함께 조아유 어플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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