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72화
금령검신(金靈劍神)(1)
오로지 이날만을 위해 기다려온 장운은 한껏 웃었다.
“뭐, 뭐어?”
장운의 은밀한 전음을 전해 들은 남일산은 기겁을 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것도 잠시.
“아냐, 그럴 리 없어.”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장운의 전음이 먼저였다.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얻어맞는 법이라고 했지?]
장운은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을 상기하며 전음을 보냈다.
이것은 모두 지금 웃으며 극복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르르르!
남일산은 그 전음에 사지를 벌벌 떠는 수밖에 없었다.
다 죽어가던 검신 장인랑에게 했던 말로서 그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과 장운뿐이었다.
더 한 사람을 꼽자면 광혈흑마 태상천이 있지만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불귀의 객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나는 그날 죽었고 전생인 검신 장인랑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지닌 채 황금표국 셋째 아들, 장운의 몸으로 환생했다.]
장운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비밀을 밝혔다.
오로지 태상천과 남일산에게 밝히는 이 비밀은 너무나도 짜릿하였다.
‘그래. 그럼 모든 것이 이해가 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남일산은 고개를 들며 납득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분명히 검신 장인랑을 확실히 처치하였는데 혼원무극검법의 진전을 이은 장운의 등장은 무언가 의혹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운이 곧 검신 장인랑이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래. 그런 것이었…….”
남일산은 이제야 모두 깨달았다고 자신하던 그 순간!
서걱!
장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초령검을 휘둘렀다.
그가 갑자기 일검을 날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네놈은 편히 죽을 자격이 없다.”
장운이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일갈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남일산은 지금 서서히 흩어지며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런 죽음은 악인치고 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장운은 그가 편히 죽기 전에 목이 잘리는 죽음을 선사하고자 했다.
쿠당탕탕!
장운의 냉정한 선언 아래 마침내 목을 잃은 남일산의 시신이 형편없이 처박히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장운은 내공을 끌어올려 삼매진화(三昧眞火)의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의 무한한 내공을 머금은 내력의 불꽃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남일산 시신에 붙었고.
스스슷!
일반 불꽃이 아니라 내공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그 화마(火魔)는 남일산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렸다.
혹자는 이미 죽은 망자를 왜 저렇게 다루냐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천운악검 남일산은 마공을 익힌 자요. 그것도 불사불멸(不死不滅)을 꿈꾸는 혈사교의 무공을 익혔지. 그래서 목을 베고 전신을 태웠소이다.”
장운이 놀란 군중들 앞에서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그의 행동은 백번 옳았다.
예로부터 사악한 마공을 익힌 자들 중, 목을 베어도 살아나는 자가 간혹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장운은 만약을 대비하여 남일산을 완벽히 파괴하였다.
이보다 완벽한 복수가 또 있을까?
우와아아아!
장운의 선언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쌍수를 들고 환호를 하였다.
무림의 새로운 영웅이자 맹주가 사악한 악적인 무림 공적을 처단하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금령검신 장운 맹주!”
“장운 맹주야말로 역대급 천하제일인이다!”
“진정한 우리들의 무림 맹주님!”
“이제 검신 장인랑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였도다!”
사람들은 장운의 승리에 자신의 일처럼 도취되어 연신 환호를 질러댔다.
그도 그럴 것이 검신 장인랑 이후, 시들하였던 검법이란 무학을 극치까지 끌어올린 데다 사악한 공적마저 처치하였으니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됐다, 됐어!”
“역시 맹주님이다.”
“대단해!”
최종 전투에서 장운의 완벽한 승리에 천세은을 비롯하여 본래의 황금표국 일원들은 물론, 무림맹에 속한 예천관과 제갈성천도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그들은 장운과 함께 공동 운명체나 마찬가지였으니 기쁜 것은 당연하였다.
‘드디어 복수를 완성하였다.’
기쁨에 찬 것은 장운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복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정사대전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광혈흑마 태상천을 잡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운악검 남일산을 몰아내고 무림 맹주 직위를 차지하여 완벽한 인격 살인을 하였으며 나아가 정말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처단하였으니 이보다 완벽한 복수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 시간 이후로 전생의 모든 악연을 청산하였다.’
장운은 재가 되어 흩날리는 남일산의 잔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과거에 발목을 붙잡혀서는 안 된다.
그동안에는 복수라는 것이 장운에게 있어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전생의 복수를 완벽하게 청산하였으니 남은 것은 앞만 보고, 보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것뿐이었다.
“무림 동도 분들께 고합니다.”
장운은 잔뜩 고취된 군중들에게 멋들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운의 이름과 별호, 무림 맹주를 외치며 새로 재편된 무림맹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환대 속에서 출범한 무림맹이 또 있던가?
“바로 지금 무림 공적 남일산은 처형당하였습니다. 아울러!”
장운은 초령검을 치켜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천산에 기어 들어온 혈사교의 잔당들을 모조리 멸절하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장운이 외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를 하며 칭송하였다.
복수의 완성과 더불어 남일산의 유일한 믿음이었던 혈사교 멸절까지 약속한 장운.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신임 무림 맹주로서 시험대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후련하게 복수를 이루었으니 남은 것은 맹주로서 내 실력을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장운은 생각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무림 맹주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림 공적인 남일산을 처단하고 나아가 강호무림 동도들이 모두 혐오하고 싫어하는 혈사교를 멸절한다면 그야말로 역대급 맹주의 행보가 될 것이다.
“모두들 준비하십시오.”
장운은 무림맹과 황금표국의 무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한 최후의 전투를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 * *
“천산 위가 소란스럽군요.”
천산의 은밀한 지하 동굴, 그 속에 기생하고 있는 사악한 혈사교의 인원이 혈사교주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흐흐, 실컷 즐기라고 내버려 두라지. 장운과 남일산, 누가 이기든 간에 상관없다. 우리가 취할 것은 어차피 두 사람 중 한 놈의 시신이니까.”
혈사교의 우두머리이자 교주이며 자신을 유일한 신(神)이라고 자부하는 사나이, 혈사천신(血邪天神)은 간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초에 그가 원한 것은 남일산의 득세도, 장운의 패배도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천하제일인급 고수의 시신이었다.’
혈사천신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왜냐하면 혈사천교는 예로부터 사악한 강시를 만드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일가견이 있는 집단이었다.
본래는 남일산에 붙어 혈사교를 키우는 방향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세상의 유일신이라 믿는 혈사천신에게는 달가운 방법이 아니었다.
“남일산과 장운, 둘 중 죽은 놈의 시신을 수거해서 최고의 강시를 만든다! 그리고 그 강시를 내세워서 무림을 정복할 것이다!”
혈사천신이 소리쳤다.
지금은 강호무림 활보도 하지 못한 채 쥐새끼처럼 천산의 비루한 지하에서 좀먹고 있는 신세지만 꿈은 거창했다.
실제로 천하제일인급 고수의 시신을 얻어 혈사교의 특기, 혈강시로 개조를 할 수만 있다면 천하를 제패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혈사교의 혈강시는 일류 고수의 시신으로 능히 초절정의 강시를 만들어내는 비법을 지녔다.
만약 그들에게 천하제일인의 시신이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야말로 강시 부대로 무림을 정복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를 얕잡아 보았던 무림인들부터 죄다 도륙하리라.’
혈사천신은 지하에서 아주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달콤한 꿈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가까웠다.
“교주님! 교주님!”
그것을 예고라도 하는 듯, 헐레벌떡 자신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누구인가 했더니 장운과 남일산의 대결을 지켜보라고 지시를 내린 수하였다.
“교주가 아니라 천신이라고 몇 번을 말하였느냐?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
혈사천신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심 이왕이면 장운보다 남일산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젊고 기세가 좋은 놈이 강시 재료로 제격이니까.’
그래서 남일산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는데 웬걸?
“금령검제, 아니, 이제 공공연히 금령검신으로 거듭난 장운이 남일산을 이겨 버렸습니다!”
바라던 것과 달리 남일산이 패배했다는 소식에 혈사천신은 잠깐 실망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이 필요한 것은 천하제일인급 고수의 시신이니 아쉬운 대로 남일산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절망적인 소식은 바로 지금이었다.
“한데……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
“네. 어떻게 된 일인지 금령검신 장운과 무림맹의 놈들이 우리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뭣이라?”
수하의 말을 듣는 순간 혈사천신의 동공은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그동안 체면마저 접어둔 채 천신인 자신이 하찮은 인간 무리들에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천산에 숨어들었다.
실제로 남일산의 공조가 아니었더라면 혈사교 무리들은 진즉 멸절되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데 탄로가 났다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패배한 남일산의 시신은 완전히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
이어지는 비보에 혈사천신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그게 정말이더냐?”
혈사천신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하다못해 시신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을지언정 어떻게든 기워 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불에 타버려 재가 되어 흩어졌다면 혈사교가 아니라 설령 진짜 천신이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재생은 무리였다.
“그, 그렇습니다.”
수하의 확언에 혈사천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그는 장운과 남일산의 대결을 부추기고 있었으며 자신은 그저 떨어지는 떡고물만 받아먹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젠장! 어떻게 하지?’
혈사천신은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였다.
“어떻게든 금령검신 장운을 쓰러뜨리고…… 그 시신을 얻어야 한다.”
혈사천신 스스로가 내뱉었지만 과연 그게 될까 싶었다.
솔직히 장운을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하였다면 진즉 남일산을 죽이고 그 시신을 취했으리라.
더군다나 장운과 무림맹이 혈사교의 존재를 모르면 기습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혈사천신의 고민이 깊어지는 그때였다.
“네까짓 놈이 감히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