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65화
천룡거사(天龍居士)(1)
응운곤과 응천산의 결판 이후, 해남의 주인을 자처하던 해남파 무인들은 그들에게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무인들은 그들에게 호감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서슬 퍼런 문주의 전언에 몸을 사렸을 뿐.
그에 따라 해남 토박이들의 도움이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곳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응운곤이 자신을 하며 호언장담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응천산이 풀어주어 해남 땅을 탈출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해남 토박이조차 모르는 길을 돌아다니며 빠져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해남 땅에 빠삭하게 깨닫게 되었다.
“수왕 사유혼 총채주께서는 해남도(海南島)의 하부를 가리키셨습니다.”
응운곤은 당시 사유혼이 지도를 향해 손가락을 찍었던 부근을 가리켰다.
그의 말마따나 해남의 땅은 거대한 하나의 섬 해남도를 위시로 인근의 자그마한 수십 개의 섬이 존재하였다.
“안타깝게도 해남의 하부는 여러 섬들로 분열이 된 곳입니다.”
응운곤은 아쉬워했지만 장운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룡거사가 당연히 인적 드문 곳을 선택하리라 생각해서였다.
‘천룡거사께서는 나의 전생, 검신 장인랑의 실종을 체험하며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었을 터.’
본래도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천룡거사였지만 중원을 벗어나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 말인즉슨 검신 장인랑의 실종과 죽음으로 인해 몸을 사리기 위해 피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몸을 숨기는 데 있어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몸을 은신하기에 가장 좋은 곳부터 가지.”
그런 결론에 도달한 장운이 응운곤에게 부탁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응운곤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있었다.
* * *
장운 일행이 해남의 하부를 떠돈 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언제 천운학검 남일산이라는 적이 부활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하루하루가 귀중했다.
-흥, 꼴 좋다!
그들이 헤매는 것을 지켜보며 응천산이 코웃음을 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 일행은 답습 상태를 반복하였다.
“이곳에도 없다니……!”
연이은 실패에 응운곤은 언제 자신감이 있었냐는 듯 많이 위축된 모습이었다.
실제로 지난 일주일 동안 응운곤이 지목하는 모든 섬을 돌아다녔으나 천룡거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천룡거사는 없을 수 있다고 쳐도 그를 목격한 목격자 한 명도 없다니.’
목격자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장운은 그게 이상하였다.
오죽하였으면 응천산과 해남파 무인들이 주민들을 입단속 시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마 진짜로 아닐 겁니다. 해남의 주민들은 본 맹에게 커다란 호감이 있어요. 구태여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요.”
똑똑한 머리로 보탬이 되는 경천지낭 제갈성천이 말하였다.
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장운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였다.
“아!”
응운곤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감을 잡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합니다.”
그의 말에 장운은 몹시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곳이 어디인가?”
“해남에서도 죽음의 섬이라 불리는 사구도(死具島)입니다.”
해남에는 여러 금기 구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을 꼽자면 단연코 사구도였다.
해남 하부에서도 특히 자그마한 이 섬이 죽음의 섬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으로 가는 조류가 무척이나 사나우며 거센 파도가 빈번하기에 노련한 해남의 뱃사람조차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천룡거사님은 필시 죽음의 섬이라는 사구도에 가신 게 틀림없습니다.”
응운곤은 그런 결론을 도출하였다.
하나 의문은 존재했다.
“어째서 그런 험한 곳을 갔을까요?”
장운을 도와 열심히 보좌를 하고 있던 부맹주 일검매향 예천관이 의문을 표했다.
해남에서도 사구도에 가지 않으며 심지어 갈매기들이나 바다 생물들조차 죽음을 준비할 때 사구도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설마……!”
이번에는 장운이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죽음을 준비하시기에 그곳에 간 건 아닐까?”
해남의 바다 생물들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떠나는 곳, 사구도.
그 소름 끼치는 곳을 스스로 간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천룡거사는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가 보죠!”
무언가 확신에 찬 장운과 응운곤, 일행들은 서둘러 타고 온 호화 객선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강수로채에서 지원해 준 이 배가 무척이나 튼튼하고 거대하여 죽음의 해류를 건너기 안성맞춤이라는 점이었다.
“다들 긴장하십시오.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겁니다.”
사구도로 떠나기에 앞서 응운곤은 일행을 앞에 두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최남단인 해남에서도 가장 남측에 위치한 섬이 바로 이 사구도로 그곳의 조류(潮流)는 유달리 험했기 때문이다.
까딱하다간 절정 고수조차 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다였다.
그래서 장운은 응운곤을 선장으로 생각하고 출항을 떠났다.
그렇게 어느 정도나 이동했을까?
파아아아앗!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파도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름답던 해남의 전경을 사라지고 어느새 무시무시한 죽음의 바다로 돌변하고 있었다.
자각하지 못했는데 하늘에는 갈매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격심한 풍랑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파도와 풍랑에 응운곤은 크게 놀라며 직접 배를 몰았다.
까딱하다간 모두가 침몰할 수 있는 위기 속에서 그는 집중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돌연 장운이 입을 열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저 파도 때문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응운곤은 의문을 느꼈지만 워낙 시간이 없고 다급했기에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파도의 크기나 방향이 일정해야 하는데 이 사구도로 향하는 길은 대중없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기에 난제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 미친 풍랑과 파도를 보며 아름답기만 한 바다의 새로운 이면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가 놀란 와중.
스윽!
돌연 장운이 나섰다.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장운이 천하제일인에 너무나 고강한 것은 잘 아는 사실이었으나 초령검을 들고 바다 앞에 서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데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였다.
“일단 한번 해보자고.”
장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행위를 시도하였다.
-오식(五式) : 천하제왕검(天下帝王劍)!
장운은 사력을 다해 바다에, 그리고 파도에 혼원무극검법의 절초를 시전하였다.
그렇다.
그가 노리는 것은 파도의 방향을 돌리고 위력을 죽이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응운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퍼버버버버벙!
장운이 검강을 불러일으키며 거센 파도와 풍랑과 싸우자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나 자연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 위력을 여실히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장운의 검강을 이겨내며 여전한 위력을 선사했다.
“오냐. 한 번 더!”
이에 악에 받친 장운은 재차 초령검을 움켜쥐었다.
단타로 최강급이라 할 수 있는 오식 천하제왕검이 통하지 않는다면 무수히 많은 검강을 난사하는 초식이 제격일 터.
“하아아아압!”
장운은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불러일으키며 현재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을 선보였다.
매번 강호무림의 최고수들에게 사용했던 기술들인데 허허벌판, 아니, 거대한 바다와 파도에 사용하려니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일 뿐.
마음을 다잡은 장운은 노련하게 초식을 펼쳐내었다.
-육식(六式) : 무궁무형검(無窮無形劍)!
바다를 향해, 끝도 없이 높게 펼쳐진 집채만 한 파도를 향해 무궁무진한 검강을 펼치는 장운의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일당백을 넘어 혼자서 거센 파도를 잠재우고 싸우는 장운은 가히 일당천, 일당만의 기세를 자랑하였다.
콰앗, 콰아아아아아아아앗!
초령검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절정의 검강들.
그것들은 무수히 뿜어져 나와 파도를 때렸으며 나아가 파도의 방향을 바꾸고 바다를 뒤엎으려 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기세였다.
우와아아아아!
장운의 실력과 검강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거센 풍랑과 조우하여 힘에 빠진 일행들조차 경악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 역사를 통틀어 자연과 싸우며 급기야 이겨내는 무림인이 어디 있던가?
이것은 무림의 오랜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는 일대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콰가가가가강!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장운은 한참 동안 검강을 퍼부은 끝에 드디어 그 결실을 수확할 수 있었다.
“됐다!”
응운곤이 양팔 높이 만세를 펼치며 외쳤다.
처음에는 도저히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웬걸?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장운의 미친 검강과 맞물려 파도가 잠잠해지는 것은 물론, 방향마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그 결과, 장운 일행이 타고 있는 호화의 객선은 파도와 풍랑에 반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기세를 역으로 타고 쑥쑥 나아가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된다고?”
이 말도 안 되는 미친 광경에 뱃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응운곤이 혀를 내둘렀다.
그는 여태껏 많은 배를 타고 수공을 해왔지만 단언컨대 이런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느 누가 감히 검강으로 파도를, 자연을 굴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검매향 예천관도 다가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가 되기로 한 두 사람은 아무도 없을 때 편하게 말을 하지만 수하들이 있을 때는 서로 존대를 하였다.
“아닙니다. 그저 자연이 허락해 준 것이죠.”
장운은 겸손을 떨며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장운의 도움 아래 호화 객선은 파괴된 부분 없이 쾌속 전진을 할 수 있었고 한참을 이동한 끝에 해남의 최남단이자 죽음의 섬이라 불리는 사구도에 도착을 하였다.
‘드디어 왔다!’
마침내 사구도의 새하얀 모래사장에 도착하자 장운은 기뻐하며 가장 먼저 나섰다.
다행히 사구도는 그리 넓지 않은 섬이었고 뛰어난 고수인 장운은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엇?!”
장운은 사구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구도 해안 절벽 끝에서 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고 해안 절벽에서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기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장운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도인의 풍모를 자랑하며 새하얗게 새어버린 긴 머리와 수염.
사실 누가 보더라도 비범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틀림없어.”
그는 확신했다.
이전부터 잘 알던 모습이었다.
‘천룡거사님이 확실하다!’
어찌 그를 몰라볼 수 있겠는가?
전생의 은인이자 무공적으로 가장 가까운 지인이며 고독한 늑대였던 검신 장인랑이 유일하게 곁을 내어주었던 장본인이 바로 천룡거사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