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51화
절반의 완성(2)
낙오자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태상천의 말에 광표는 화들짝 놀랐지만 돌이켜 보니 나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가 시키는 대로 일은 진행이 되었다.
배가 반파된 일행은 육로로 돌아갔으며 추후 합류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어찌 됐건 태상천의 무리한 진행으로 산서수로채의 배가 부서졌으니 미안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이.
“어서 가도록 하지.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니.”
빨리 가자고 종용하였다.
광표는 내심 이를 갈며 어디 두고 보자고 다짐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배를 몰아 마침내 섬서 인근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곧 도착입니다.”
태상천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그 말에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풍덩!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알리던 광표가 돌연 수면 아래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게 무슨……?!”
그 행동에 좀처럼 평정심이 깨지지 않는다는 사흑천주 태상천은 기겁을 하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더 놀라운 광경은 바로 지금부터였으니까.
풍덩, 풍덩!
광표에 질세라 그의 수하들도 하나둘씩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태상천의 배를 제외한 나머지 배에 다시 탑승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태상천이 타고 있던 배에는 그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게 되었다.
“푸우우.”
다른 배에 올라와 강물을 내뱉은 광표가 몸을 닦으며 태상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광표 채주.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태상천은 예기치 않은 일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모르던 그 순간!
쿠궁!
태상천만 타고 있던 배의 아래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배의 바닥이 파괴되거나 찢어지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의 출처는 다름 아닌 화물을 적재하는 곳이었다.
‘응? 누가 있었나?’
태상천은 그제야 그곳으로 시선을 주었는데 그 끝에는 웬 준수하게 잘생긴 젊은 청년이 어마어마한 명검을 들고 차분히 걸어 나왔다.
태상천은 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보자마자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설마…….”
화들짝 놀라는 태상천을 바라보며 화물 속에서 오랫동안 기척을 지우고 있었던 금령검제 장운이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죠. 저는 금령검제 장운이라고 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마주하는 장운.
그 모습만 보자면 불구대천의 원수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벗을 만나는 것처럼 보였다.
“장운!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네놈의 계략이었단 말인가?”
태상천은 펄쩍 뛰며 외쳤다.
그의 시선은 광표에게로 향했다.
“그렇소. 여기 광표 채주님은 나와 절친한 관계이자 우리 황금표국의 오래된 지인이기도 하오.”
흔들!
장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광표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동 내내 자신의 속을 긁어놓았기에 복수를 하리라 벼르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쥐새끼들!”
태상천은 자신이 완벽하게 속았음을 깨닫자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부르르 떨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비검술(飛劍術)을 펼쳐 광표의 목을 따버릴 기세였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소? 본 수채에 번번이 지랄발광을 떨 때는 언제고…… 우리가 도움을 줄 줄 알았나?”
광표의 복수는 통쾌했다.
평소라면 감히 겸상하기도 힘든 사흑천주를 농락하며 웃었다.
푸하하하핫!
통쾌한 것은 산서수로채의 수적들도 마찬가지였다.
광표의 복수를 보며 그야말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마저 받았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치지 않고!”
태상천은 함부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이 배에는 자신 혼자뿐이었고 맞은편에는 금령검제 장운이 있었다.
그에게 집중하기도 모자를 판국에 광표에서 시선 분산될 필요는 없던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배에는 자신이 직접 뽑은 사흑천 고수들이 있었기에 수적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것이라 관망했다.
“태상천이.”
바로 그 순간에 장운이 그를 불렀다.
“뭐? 태, 태상천이?”
그래도 명색이 무림을 양분하는 사흑천의 수장인데 푸줏간 주인을 부르는 듯한 언행에 태상천은 수염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래. 상천아. 너 최근에 망나니 아들놈 한 마리 잃어버렸다지?”
장운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사실 모두가 그의 아들인 태원평을 망나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언감생심 감히 그리 부를 수 없었다.
한데 장운은 달랐다.
태상천은 푸줏간 주인 정도라면, 태원평은 그 푸줏간에 걸린 고기 정도로 취급을 하였다.
“……?”
갑자기 실종된 아들마저 들먹이자 태상천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싶은 찰나!
“읍! 으으읍!”
어느새 광표에 옆자리에는 사지가 억압되고 혈도마저 완벽하게 짚어진 태원평이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부터 태상천을 제외한 사파의 버러지들은 가만히 있어라!”
표두 감우량과 금옥관의 무인들이 어느새 나타나 여러 배에 올라타 점거를 하였다.
그렇다.
장운은 무결단주 무주용으로부터 태상천이 황금표국을 노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다음, 그날부로 곧장 산서수채와 광표를 찾았다.
필시 수로를 사용하리라 관망했고,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보답을 받았다.
그리하여 장운과 광표는 공조를 하기로 맹세를 한 다음, 장운은 화물의 자리에 숨어들었고 다른 배에는 태원평과 금옥관의 무인들이 숨어 있던 것이다.
장운이 먼저 모습을 보이면 그다음 태원평을 빌미로 사흑천 병력의 발을 꽁꽁 묶을 계획이었다.
“평아!”
그 모습을 확인하자 태상천의 두 눈은 급격히 흔들리고 말았다.
아무리 무정(無情)하고 사악한 위인이라고 하나 제 새끼는 귀한 법이었다.
특히 몇 날 며칠을 헤매며 찾아댄 하나뿐인 독자(獨子)였으니 얼마나 애가 닳았을까?
“으으읍!”
오로지 입만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입에는 재갈을 물린 상태라 태원평은 제대로 말하지 못하였다.
대신 표정은 선명하게 보였는데 이제 아버지가 왔으니 황금표국이고 나발이고 다 죽었다는 느낌이었다.
현재 기세가 불리하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바퀴벌레도 제 새끼는 이쁘다고, 쯧쯧. 아주 난리가 났군.”
그 모습을 한 차례 한심한 눈으로 지켜본 장운은 혀를 찼다.
“무어라?”
가뜩이나 열 받는 와중에 놀려대고 있으니 태상천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구나! 내 아들을 인질로 삼아 나를 억압할 셈이로군.”
태상천은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장운은 코웃음을 쳤다.
“너를 억압해?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너 같은 놈이 백기 투항할 것 같나?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장운이 비웃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는 정말 그런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던 때도 있었다.
아무리 사악한 악인이라고 해도 하나뿐인 아들이니 목을 내주고 바꾸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깊게 생각해 본 결과, 장운은 고개를 저었다.
“네놈은 아들이 아니라 설령 돌아가신 부모가 나타나도 제 안위가 더 귀중할 놈이다. 내 말이 틀렸나?”
부들부들!
적나라하다 못해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말에 태상천은 미칠 지경이었다.
장운이 태원평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애초에 하나뿐이었다.
“태원평은 그저 사흑천 벙력의 발을 묶는 용도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광혈흑마 태상천, 너와 나의 대결이 끝나야 종료되니 말이다.”
장운이 위풍당당한 음성으로 외쳤다.
태원평은 그저 수하들의 발을 멈추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태상천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이득을 보기 위함이었다.
“오냐, 좋다. 나랑 한번 제대로 붙고 싶다 이거지?”
태상천은 두 눈에 새파란 안광을 발하며 그와 마주했다.
장운의 예상이 옳았다.
자신의 안위 앞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실제로 아들을 희생하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다면 수백 번도 더 그럴 위인인 것이다.
장운이 판을 제대로 깔아주었겠다, 명분이 있으니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그래. 아들이 인질로 잡혔다고 해서 기죽을 리는 없으니…….”
장운은 그 잠깐의 순간에 전생의 기억을 회상했다.
무림맹주 천운학검 남일산과 더불어 사흑천주 광혈흑마 태상천이 비정하게 자신을 죽이는 그 순간을!
현생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다 하더라도 그 끔찍했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오늘은 그 전생의 복수를 이루는 날이 될 것이다.
“전력으로 와라!”
그렇게 외친 장운은 자신 역시 이례적으로 전력의 내공을 발출하였다.
-천허심법(天許心法)!
태상천과 같은 세기의 무인과 대결할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달아날 수 있다.
하여, 내공을 끌어올린 다음 호신강기를 다지는 편이 나았다.
콰아아아앗!
금령검제 장운이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뿜자 분노에 가득 찬 태상천은 놀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금령검제가 이토록 강했는가?’
그 원초적인 놀라움과 더불어 이상하게 익숙한 이 내공, 이 기분.
“그래. 소문에 듣자 하니…… 네놈은 검신 장인랑의 뒤를 이었다고 그랬지?”
그 더러운 입에서 장인랑의 이야기가 나오자 장운은 더더욱 분노를 했다.
“맞아. 이 검을 보면 모르나?”
초령검을 보여주며 장운은 서슬 퍼런 미소를 지었다.
흠칫!
초령검의 등장에 태상천은 약간 움찔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흐흐흐, 좋다. 내 평생의 한이 된 것 중 하나가 검신을, 그 장인랑을 혼자서 처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태상천은 오래 묵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세상 어느 누구도 겁나거나 무섭지 않았다.
천운학검 남일산이 고고한 기세를 자랑한다 해도 일대일 비무로 붙으면 무조건 자신이 이긴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정사대전에서 밀리고 있는 와중, 남일산에게 일대일 비무를 제안하여 전세를 뒤집을 생각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자신이 유일하게 이긴다 단언하지 못했던 장본인.
그가 바로 검신 장인랑이었다.
“입과 대가리는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장운은 무시무시한 안광을 발하며 그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혼자서 처치해? 감히 네까짓 것이? 일대일로 싸우기 두려워 이런저런 핑계를 대었지 않은가?”
장운이 말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로지 단 두 사람.
태상천과 검신 장인랑만이 아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허억! 헉! 네가, 네가 그것을 어떻게……?”
둘만이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태상천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은밀한 이야기였는데 태상천은 젊은 시절부터 검신 장인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인랑은 기질은 정파보다 사파에 더 가까워 고고한 늑대였기에 그를 추종하는 사파인들이 적지 않았다.
사파의 수장을 자처하며 사파의 하늘이 되겠다는 사흑천주 태상천에게 있어 그것은 가장 위험한 독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인랑에게 감히 시비를 걸지 않았다.
왜냐하면…….
‘놈은 나보다 강하다!’
검신 장인랑은 자신이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더 알 필요 없다. 오늘이 바로 네놈의 제삿날이 될 터이니.”
장운의 말과 동시에 검신 장인랑을 상징하는 무공이 날아들었다.
-삼식(三式) : 진천검(振天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