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44화
혼란스러운 무림(武林)(1)
그날 이후로 강호무림은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사흑천 휘하의 사파 문파들이 구파일방과 본격적으로 전면전을 일으키는 등, 사상자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아들의 실종과 더불어 정파 무림과의 전쟁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사흑천주 태상천.
그는 더 이상 서강 상단의 후계자인 강여월에게 신경이 쓸 여력이 없었다.
“자, 이로써 귀하의 혼담은 완벽히 종료가 되었소이다.”
금령검제 장운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 다시 강여월과 독대하며 웃었다.
“정말 믿을 수 없군요. 이렇게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뿐더러…….”
강여월은 뒷말을 생략하였으나 하고 싶은 말은 간단했다.
정파와 사파까지 분쟁을 일으키며 목적을 달성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으니, 강 단주께서도 약속을 지키리라 믿습니다.”
장운이 차분한 음성으로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처음부터 약속한 바가 있었다.
의뢰 대금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대신, 골칫덩이 태원평을 완벽히 처리해 준다면 황금표국 금옥관으로 서강 상단이 들어오기로 하지 않았나.
“물론이에요. 아니,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거예요.”
장운의 말에 강여월은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최고의 상단주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여인이었다.
‘황금표국, 아니, 금령검제는 기필코 천하를 호령할 위인이다!’
강여월은 진정으로 그리 판단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소리를 하였다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았겠지만 천만의 말씀.
강여월은 장운이 정사대전을 일으킨 것을 이렇게 보았다.
거대한 두 집단의 분쟁은 결국 새로운 난세의 영웅을 탄생하게 마련이고, 그 새로운 시대의 적임자로서 황금표국과 금령검제가 아주 딱이었다.
어쩌면 새 시대의 판도를 다시 짤 위인일지도 모르기에 그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억만금을 지불하고서라도 가치가 있었다.
“분부만 내리신다면 언제든지 금옥관을 향해 이동하겠어요.”
강여월이 말했다.
이미 서강 상단은 이주 준비가 분주했고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아니, 아직은 금물이오.”
한데 이게 웬걸?
장운이 아직 때가 아니라서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죠?”
강여월이 묻자.
“태상천은 의외로 교활한 작자요. 자신의 아들이 실종되었는데 곧이어 그와 연관이 있는 서강 상단이 자취를 감춘다? 알고 보니 황금표국 내부로 이전을 하였다? 그렇다면 삼척동자라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않겠소?”
장운은 아주 논리적인 이야기를 설파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강여월은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뜨거운 가슴으로는 약간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장운과 한 시라도 떨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알았어요. 그럼 언제가 괜찮을까요?”
그 질문에 장운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돌아오는 초봄에 전갈을 주겠소.”
너무나 냉정하고 사무적인 태도의 장운을 보며 강여월은 서운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먼 친척 관계이기에 이런 감정으로 엮여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실수를 범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만…….”
장운이 일행들과 함께 짐을 꾸려 다시 황금표국으로 떠나려는 그때였다.
“자, 잠깐만요!”
강여월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가 떠난다고 하니 짧은 시일 동안 함께 했던 날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신경전을 벌인 순간부터 그의 신들린 무위에 경악했던 나날까지 모두.
“그…… 태원평은 어떻게 처리할 셈이죠?”
강여월이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으리라.
씨익!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운은 특유의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놈은 여전히 미끼요. 그것도 아주 탐스러운 미끼.”
“네?”
장운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자 강여월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난 이놈으로 대어(大魚)를 낚을 셈이오.”
그전에 미끼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가둬놔야 할 터.
장운은 곧바로 그를 악명 높은 황금표국 지하에 처박아두었다.
곧 꺼낼 날을 기다리면서.
* * *
사흑천을 위시로 사파 무림과 무림맹을 위시로 한 정파 무림과의 치열한 대전은 백중세를 띄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겁하게 먼저 기습을 가한 사흑천과 광혈흑마 태상천이 승기를 잡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떻게 보면 이 정사대전의 시발점이 된 화산파의 인물들, 소요자와 일검매향 예천관이 나서며 점점 더 우위를 끌어오고 있었다.
그 폭풍과 같은 전장의 바람은 황금표국도 피해가지 않았다.
“무림맹으로부터 드디어 협조 서신이 내려왔군.”
모처럼 간만에 열리는 황금표국 총 회의에 금령검객 장천호 국주를 필두로 장운까지 모든 인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지난번 회의의 화두는 정사대전에 대한 황금표국의 입장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무림맹에서 필참을 요구하는군요.”
장운을 여러 대표두와 대집사들과 함께 서신을 상세하게 읽으며 웃었다.
웃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정파란 놈들은 어찌 하나 같이 예상대로 움직일까?’
별 필요도 없는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요약한다면 이러했다.
-이번에 사흑천 지부를 급습할 계획이니 황금표국의 완만한 협조를 바라오.
본맹의 정예, 무결단(武結團)과 함께 조우하여 사흑천 지부를 섬멸하는데 있어 힘을 보태주시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웃긴 내용이었다.
“여태껏 우리에게 의뢰 한 번 맡긴 적이 없으면서 참전을 요구한단 말인가?”
성격이 좋고 호인이라는 첫째 집사, 다정검 인천수마저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상점으로 따지면 여태껏 물건 하나 팔아준 적이 없으면서 사정이 어려우니 금자를 보태 십시일반(十匙一飯) 해달라는 말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더 웃긴 것은 장운 부국주께서 활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표국의 무인이니, 표사는 진정한 무인이 아니라 장사치라 폄하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도와 달라고?”
화가 나는 것은 넷째 집사이자 이제는 추영객 영사춘이 아니라 진정한 실체를 밝힌 무영문주, 무영신투 장유백도 화를 내고 말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장유백은 표사가 아니라 도둑이었지만 그 차별 대우를 바로 옆에서 생생히 경험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만큼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들뿐만 아니라 오늘 모인 황금표국 수뇌부 대부분이 화를 내며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흐으으음.”
국주인 장천호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을 한 차례 빤히 지켜본 후, 가만히 있다가 아들을 바라보았다.
“장운 부국주. 부국주의 생각은 어떤가?”
장천호가 물었다.
이 자리는 아비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국주 대 부국주의 자리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 엄격했다.
“저는…… 응당 무림맹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장운이 거침없이 의사를 밝혔다.
오오오오!
예상을 상회하는 기상천외한 답변에 많은 이들이 놀라는 중이었다.
이치로 보나 이득으로 보나 황금표국 입장에서 정사대전에 참전할 의무는 없었다.
아니, 참전하게 된다면 필수적으로 표행을 멈추게 될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 곧 금자인 표국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무림맹의 요구에 따르자고?
도대체 금령검제는 무슨 생각인가, 하는 눈빛들이 모두 모였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이 다 놀라고 있을 때 오직 단 한 명, 금령검객 장천호는 달랐다.
오히려 남다른 장운의 시선을 주목하고 있었다.
“요지는 대의명분(大義名分)입니다.”
“대의명분?”
장운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자 장천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들은 표국이라는 한계에 벗어나 성장의 동력이 필요합니다. 무림맹을 도와 정사대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고 무명(武名)을 떨친다면!”
장운은 흡사 여기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듯 열변을 토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본 표국이 무림 활동하는 데 있어 표국이라는 제약은 없어질 것입니다. 다른 문파와 동등하게 피를 흘렸으며 나아가 더 큰 공을 세웠다는 명분이 생기니까요.”
그의 말은 실로 설득력이 있었다.
“호오오.”
장천호조차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당연히 반대의 시각도 존재하였다.
“부국주님. 무림맹의 출전 요구에 응하려면 표행 활동마저 모두 접은 채 총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 적자만 하여도 자그마치 금자 수백에 달할 겁니다.”
오대 대표두 중 다섯 번째인 폭풍권 철대종이 지극히 표국스러운 이야기로 반대의 뜻을 표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생각대로 단순히 손익 계산만 한다면 참전하지 않은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득만 따진다면 본 표국은 영원히 표국으로 머물 뿐, 그 이상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장운은 가벼운 답변으로 논파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한다면 참전을 거부하고 더 높은 곳을 보겠다면 참전이 옳다는 소리였다.
이 건에 대한 결정은 장천호와 장운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국주는 어떻게 하고 싶나?”
장천호가 한 번 또 물었다.
그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이제 태상 장로나 태상 문주와 같은 직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앞서 장운이 오늘의 일을 어찌 처리하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지켜보고 싶었다.
“앞으로 강호무림은 전례 없던 대혼란을 겪을 겁니다. 그리고…….”
장운은 확신하며 웃었다.
“무림의 혼란은 우리 같은 비주류 집단에게 있어 곧 기회지요.”
그의 뜻은 여전히 확고하였다.
“이 기회를 발판삼아 우리의 전력이 어떤지 확실히 보여주고 공을 세우며 나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무림의 주도권을 찾아와야 합니다.”
오오오!
그의 원대한 포부에 다시 한번 황금표국이 술렁였다.
회의도 때마침 막바지에 들어설 무렵, 마침내 황금표국의 국주는 용단을 내렸다.
“부국주 장운에게 명한다. 부국주가 이번 일을 책임지고 완벽하게 완수하도록!”
장천호는 장운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결과가 되었든 그는 아들을 믿었다.
‘마음껏 비상하려무나, 장운아. 반대 여론은 이 못난 아비가 온 몸으로 막을 테니.’
그저 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훨훨 비상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비로서 아들이 더 잘되었으면 하는 그런 평범한 생각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국주님!”
그것으로 완벽히 결정되었다.
금령표국은 이번 정사대전에 참여한다.
아울러 금령검제 장운의 진정한 무림 활동이 예고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황금표국을 널리 알리는 것도, 그리고 무림맹주와 사흑천주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