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8화
대리 검수(劍手)(6)
‘절대로 질 수 없다!’
각기 다른 검강이 서로 뒤섞이기 직전, 회검문주인 회인검랑 동방백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버려진 고아였던 자신이 사흑천에 팔려온 일.
사흑천에서 무공 병기로서 길러진 일.
태상천이 회검문의 일을 기획하며 대주로 뽑혀 단룡검결까지 익힐 수 있었던 기억까지 모두 차례차례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는 이유는 명확했다.
동방백은 오로지 정파 진출의 교두보이자 회검문을 위해 키워졌다는 것.
무려 수십 년 동안 이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어린 애송이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 없다고 느꼈다.
콰가가가가강!
금령풍운검법과 단룡검결의 예리한 초식이 서로 맞부딪쳤다.
공교롭게도 첫수는 동수(同手)를 이루었다.
서로 손해도, 이득도 없으니 동등한 입장인 것이다.
“으으으음.”
손해를 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방백의 입에서는 신임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나이는 삼십 대 후반으로 장운과 비교하자면 한 세대 차이가 났다.
한데 동수를 이루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치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짜증 나는 것은 장운의 표정이었다.
‘감히 나를 상대로 동수를 이뤘으면서 무던한 표정이라니.’
어릴 때부터 사흑천에 흘러 들어가 산전수전 모든 것을 다 겪은 동방백이지만 이상하게도 장운의 저 침착한 두 눈을 보자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남을 흔들어야 한다.
“하아아압!”
마음의 동요를 느낀 동방백은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흡사 자신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부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단룡비천(斷龍飛天)!
동방백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고수였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다는 평가에 걸맞게 기본기는 물론이고 상승의 검강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노련한 전투 경험부터 승부에 대한 탁월한 감각까지, 표현하자면 그는 이른바 완성형에 가까운 검객이리라.
장운의 실력이 만만찮은 것을 감지한 그는 맹렬하게 회전하는 단룡비천의 초식으로 그의 허점을 노렸다.
피할 수밖에 없는 공격으로 이동을 유도한 다음.
‘그때 완전히 끝장을 내리라!’
젊은 장운의 장점인 체력과 혈기왕성한 도전 정신이 발휘되기 전에 날개를 꺾으리라 다짐하였다.
-금령풍천비류(金靈風天沸流)!
그러나 장운도 경험이라 하면 전생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질리고 물릴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하였다.
특히나 검술 대결은 그의 전문 분야나 마찬가지라는 말씀.
채재재쟁!
회피를 노린 동방백의 의도와는 달리 장운은 맞부딪치는 것을 선택했다.
왜 이런 방법을 노렸냐면은 동방백의 눈치를 읽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장점인 내공을 십분 살리리라 생각하였다.
-사괴단신심법(邪怪丹身心法)!
동방백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전력을 다해 내공으로 밀어내려 하였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휘청!
순식간에 내공 찍어 누르기 싸움으로 화한 비무의 방향은 동방백의 신형을 흔들어 놓았다.
적어도 내공에 있어서는 장운이 동방백보다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맙소사!’
내공에서 밀린 동방백은 내적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만약 보는 눈들이 없고 비공개 비무였다면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내질렀을 터.
그가 놀라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린 장운의 내공이 자신을 훌쩍 상회하였기 때문이다.
씨익!
놀라는 동방백과는 달리 장운은 이런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실력이 우월한 것에서 오는 자부심 따위가 아니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패도적이고 사악한 기운!’
장운이 내공 싸움으로 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동방백이 펼치는 단룡검결에는 사파인지, 아니면 다소 냉정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가미된 정파의 무공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반면 그의 내공심법은 달랐던 것이다.
장운은 사파의 고수와 셀 수도 없이 많이 싸워온 전생의 생생한 기억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펼친 내공심법은 매우 강렬한 사기(邪氣)를 가진 무공이다!’
장운의 추측은 정확했다.
조금 전, 동방백이 펼친 사괴단신심법은 사흑천 내부에서도 선택받은 자들이 배우는 최상급의 사파 내공심법이었다.
십이대성하지 않아도 위력이 너무나 고강한 반면, 하나 단점이 있었는데 사악한 내공심법의 특징들이 존재하였다.
예를 들자면 미간 사이 희미한 빨간 점이 존재한다거나 손바닥에 몽고반점처럼 희끗한 반점이 보이는 그런 특징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동방백은 영웅건으로 이마를 가렸고 양손에 천을 휘감아 손바닥도 가렸다.’
겉으로 볼 때는 그저 검술에 치중하는 복장 차림새였지만 실상을 알고 보니 달리 보였다.
장운은 짧은 순간에도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렇군. 어찌하여 회검문이 이리도 빨리 성장했는지, 구태여 항산파를 노리는지 그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동시에 이 정도 규모의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은 장운의 전생, 검신 장인랑의 주된 원수 중 하나인 광혈흑마 태상천과 사흑천이 있음을 직감하였다.
-금령초월휘검(金靈超越揮劍)!
그런 생각이 들자 장운은 이전에는 없던 힘마저 솟아날 지경이었다.
원수가 꾸민 개수작이란 것을 알았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크으윽!”
한편 동방백은 죽을 맛이었다.
내공 겨루기에서도 밀린 것이 고역이었는데 어마어마한 검강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초식들을 보자니 눈앞이 깜깜할 지경이었다.
“흐아아앗!”
그럴수록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사괴단신심법을 전력으로 운용하였다.
그 순간 사악한 무공의 특징인 미간의 붉은 점이 크게 달아올랐고 손바닥의 희끗한 반점도 마찬가지였다.
장운은 그 틈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이식(二式) : 분광검(分光劍)!
찰나의 순간에 검신 장인랑의 초식을 교묘하게 끼워 넣어 그의 영웅건을 잘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서걱!
그러자 동방백의 머리가 망나니처럼 쏟아져 내리며 동시에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말았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지금이었다.
“동방백의 미간을 보십시오! 붉은 점이 흉흉하게 빛나고 있으니, 이는 사악한 무공을 배웠다는 증거입니다!”
장운은 기회다 싶어서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소리를 내질렀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에이~ 설마!”
사람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크윽!”
크게 일그러진 채 흉흉하게 미간 사이로 빛나는 붉은 점을 바라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보이는 그것은 사악한 무공을 익혔다는 증거였다.
“사악한 무공의 증거!”
“사파의 무공을 익혔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고 패도적이며 그릇된 내공심법을!”
“이럴 수가! 회검문주가 사파의 인물이었다니.”
곧바로 모든 사실을 알아차린 좌중들은 엄청난 충격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검문이 지지를 받고 커온 배경이 바로 정파와 사파, 그 어느 곳에 속하지 않아서였다.
알게 모르게 중도에 위치한 자들이 응원 및 후원을 하였고, 정파도 사파도 경쟁자가 아니니 내버려 두어 비어버린 시장을 독점한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알고 보니 회검문주 회인검랑 동방백이 사파의 무인일 줄이야.
“이자는 사흑천 소속의 내공심법을 익혔으니 사파의 인물이 분명하오!”
장운은 거기에다가 쐐기를 박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공이 뛰어나며 불과 조금 전에 손속을 나눈 상대가 확신한 채 외쳤다.
더욱이 사흑천 하면 일반 사파 수준이 아니라 과장을 조금 보태어 무림 초창기 시절 존재한 최악의 집단, 마교(魔敎)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기에 혐오감은 대단했다.
“사흑천이 왜…….”
“뻔하지. 정파 진출 및 뒤로 세를 확장하기 위해 저런 광대 짓을 한 거야.”
“어쩐지 잠잠하다 싶었더니 이 더러운 악적 놈들!”
이 중에는 회검문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진상을 알게 되자 싸늘한 얼굴로 돌변하였다.
부르르!
그들의 변화에 놀란 것은 동방백을 비롯하여 회검문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 이들은 비무에 참가할 인원 외 소수만 대동하였기에 순식간에 화난 군중들 사이에 포위되고 말았다.
“젠장할!”
꼼짝없이 외통수에 걸리게 될 위기에 직면하자 동방백은 비겁하게도 도주를 시도했다.
파아아앗!
항산파와 운명을 건 비무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홀로 도망가려던 그때였다.
-금령운무지검(金靈雲霧之劍)!
오히려 무방비 상태가 된 그의 등 뒤로 장운의 매서운 공세가 쏟아내렸다.
어디 그뿐인가?
-혼령운행공(魂靈雲行功)!
장운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빠르기를 지닌 경공술이 존재했다.
동방백의 등 뒤에 무시무시한 검강을 쏟아부은 다음, 곧바로 그를 추격한 결과!
그의 앞을 막아서는 데 성공했다.
“이 더러운 사흑천의 끄나풀 같으니. 감히 내 눈을 속일 수 있다고 믿었나?”
장운은 이례적으로 사나운 면모를 보이며 눈을 부릅떴다.
다른 놈도 아니고 사흑천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절대로 살려 보내줄 수 없었다.
사흑천은 현 무림에 있어 악의 축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나, 나는…….”
당황한 동방백은 뭐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이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해오던 일이 물거품이 되었으며 무림의 동도들을 상대할 때 쓰던 가식의 가면이 벗겨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동방백은 알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채재쟁!
썩어도 준치라고 경황없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장운을 상대로 수십 합의 경합을 벌였지만 썩은 나무는 결코 성장하지 않는 법이다.
이미 마음이 흔들리다 못해 죽어버렸으니 결과는 자명했다.
서걱!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백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장운의 초령검을 내려다보며 경악에 물들고 말았다.
설마 이렇게 죽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평생을 회검문의 계획에 바쳤건만 이리 허망하게 죽을 줄이야.
‘내가…… 이 내가…….’
동방백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현 무림에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아무리 방심하고 경황이 없었다고 하나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청년의 손에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놈은 물론이고 사흑천과 회검문의 야욕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장운은 싸늘히 죽어가는 동방백을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직 회검문의 나머지 문원들이 있다고 하지만 성난 정파의 여론과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자멸할 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리라.
이미 온 무림과 세상은 장운의 편이 되었다.
이것은 장운과 황금표국에 있어 엄청난 이득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사흑천주 태상천도 같이 보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장운은 한 번 더 확인 사살을 하기 전, 그에게 은밀한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억!
그 놀라운 전음에 동방백이 고개를 쳐들려는 그 순간!
콰지지직!
금령공자 장운은 이 비무의 방점을 찍어버렸다.
혼비백산하여 놀란 동방백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