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6화
대리 검수(劍手)(4)
“좋소이다. 약속대로 순번은 항산파 측 마음대로 하시길.”
회인검랑 동방백은 부글부글 끓는 속마음과 달리 흔쾌히 권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찰나의 순간에 눈빛이 바꾸면서 말이다.
‘금령공자 장운,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쓰러뜨리겠다.’
표국의 무인이 제아무리 잘나고 뛰어나 봐야 진짜 고수에게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설령 대장전을 제외하고 앞서 네 판에서 연거푸 이기더라도 장운을 도발하며 구경을 온 무림동도들을 위해서라도 한번 붙자 제안할 요량이었다.
[다른 항산파 놈들은 몰라도 황금표국의 표두들은 확실하게 쓰러뜨리도록. 팔다리 하나가 부러져도 상관이 없다.]
동방백은 화사하게 웃는 얼굴과 달리 악독한 전음을 수하에게 보내었다.
그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운과 일행들은 여전히 여유가 많았다.
“계획대로 첫 번째 순서는 응 표사가 나서주세요.”
장운 또한 이미 전날부터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왔기에 걱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오 대 오 단체 비무전 첫 번째로 나설 인물은 다름 아닌 반골 응운곤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전력을 쏟아부을 상대가 필요했다.’
응운곤은 천세은 만큼이나 최근 들어 가장 발전하고 강해진 무인 중 하나였다.
어찌나 일취월장하였는지 이제 감우량 표두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치열한 실전의 대결을 하고 싶었는데 회검문 단체 비무전에 참가하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항산파 측은 대리 검수이신 황금표국의 응운곤 표사를 보내겠습니다.”
항산파의 장문인 진호충이 외쳤다.
“음? 누구?”
“응…… 운곤?”
“들어본 적이 있나?”
“글쎄. 나는 금시초문인데 말이야.”
응운곤이 나서자 사람들의 반응은 초라하였다.
특히나 응운곤이라는 인물 자체가 투박하고 겉으로는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실망감은 더하였다.
반면, 회검문에 나서는 상대는 그와 정반대였다.
“우리 회검문은 옥면준검(玉面俊劍) 백인하가 나설 걸세!”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응운곤의 등장에 동방백은 기다렸다는 듯이 회검문에서 가장 잘생긴 미남자이자 뛰어난 후기지수라 정평이 난 옥면준검 백인하를 내보내었다.
회검문은 사흑천이 정파 진출 교두보를 위해 만든 곳이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정체를 감추고 호감을 사야 했기에 백인하나 동방백 같이 겉으로 멀쩡한 자들을 많이 뽑았던 것이다.
-유선보(柳宣步)!
백인하는 자신을 호명하자 곧바로 유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신법을 자랑하며 순식간에 비무대 위에 뛰어올랐다.
우와아아!
뛰어난 미남이 환상적인 신법까지 선보이자 일대는 완전히 난리가 나고 말았다.
특히나 새하얀 얼굴에 매끈하게 잘생긴 얼굴이 더해져 여러 소저들의 마음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거 완전 극과 극이군.”
“황금표국의 표두는 투박한 반면 저 백 소협은 이미 명성이 자자한 고수니 상대가 되겠어?”
“이거 첫 대결은 시시하게 끝나겠군.”
이에 사람들은 시작도 전에 백인하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실제로 응운곤은 황금표국 내부를 제외하면 큰 명성은 없었고 이곳은 항산 인근이었기에 아는 사람이 드문 까닭이었다.
씨익!
백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응운곤을 향해 보란 듯이 도발한 것이다.
“…….”
그에 비해 응운곤은 여전히 투박하고 조용하였다.
특유의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과묵한 표정으로 말이다.
“비무 시작!”
마침내 비무 선언이 떨어졌다.
항산파와 회검문의 운명을 건 첫 번째 대결이 막을 올렸다.
“하아아압!”
시작과 동시에 옥면준검 백인하는 생김새만큼이나 아름다운 검기를 선보였다.
-유려만화(流麗滿花)!
무수히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다변(多變)을 중점으로 하는 검이었다.
그의 검은 꽃봉오리가 퍼지는 개화(開花)를 상징하며 짧고 새카만 응운곤을 압박하려던 순간!
-남해격랑(南海激浪)!
응운곤의 거센 검기가 엄청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흔히들 반골 응운곤하면 수공에만 능통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천세은의 발전과 더불어 뛰어난 고수이자 호적수, 일검일섬 두길준의 합류는 묵묵한 것처럼 보이나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반골 응운곤의 재능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채재재재쟁!
응운곤의 변화가 적되 묵직한 검이 순식간에 백인하의 검을 깨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허어억!”
단 일검에 뒤로 거칠게 밀려나자 잘생긴 얼굴에 뛰어난 검 솜씨를 지녔다는 뜻의 옥면준검 백인하는 기겁을 하였다.
본래 이렇게 한 번에 물러날 정도로 실력 차가 크지 않았으나 백인하는 응운곤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였다.
퍼억!
뒤로 물러나자마자 여러 표행과 풍파로 다져진 응운곤의 노련함이 빛났다.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뛰어들어 백인하의 명치에 무릎을 꽂아 넣은 것이다.
“그르, 그르르륵!”
그러자 순식간에 백인하는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주르륵!
심지어 바지에 작은 실례까지 하고 말았다.
가끔 예기치 못한 기절이나 혼절을 할 경우 대소변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백인하가 그러했다.
“우우욱!”
“꺄아아아악!”
바지에 실금을 지리는 모습에 백인하를 응원하던 이들은 물론이오, 그를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러 처자들마저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두 눈은 흰 자로 가득한 채 바지에 지리는 모습이 적나라하였으니 이보다 더 추락은 없었다.
“쯧쯧, 하필이면…… 회색의 의복을 입었어.”
장운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회색은 젖은 것이 너무나 티가 많이 나는 색상이었다.
회검문의 고수들은 문파 이름에 걸맞게 모두가 다 회의(灰衣)를 입고 있었는데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회검문에 걸맞게 회의를 입자고 제안한 태상천조차 몰랐을 것이다.
“……억!”
눈 깜짝할 사이에 첫 번째 대결이 끝나자 회인검랑 동방백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기립하고 말았다.
솔직히 백인하는 회검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였다.
한데 이리 허망하게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바보 같은 놈!’
더군다나 패배는 그렇다 쳐도 너무나 추한 모습을 보인 탓에 앞으로 회검문 하면 실금하였다는 조롱이 뒤따라올지도 몰랐다.
본래 큰 비무를 앞에 둘 경우 용변을 미리 보며 비우게 마련인데 저 백인하는 자신의 승리를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까닭이었다.
“항산파의 대리 검수, 응운곤 소협의 승리!”
마침내 응운곤의 승리가 호명되자마자 장운을 비롯하여 진호충과 항산파 제자들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씨이이익!
이겨도 너무나 호쾌하게 이기지 않았나?
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회검문을 납작하게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오오, 오오오오!
놀라는 것은 좌중들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게 잘생긴 백인하 대 투박하고 다소 못난 응운곤의 대결.
사람들은 백이면 백 백인하의 승리를 예견하였다.
그런데 반의반 각도 지나지 않아 응운곤이 압도하다 못해 초살을 시켜버렸으니 누가 감히 이견을 달 수 있으랴?
“종호! 종호는 어서 준비를 하라!”
회검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인 백인하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패배하자 동방백은 다소 흐트러진 모습과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그 종호란 인물은 이 회검문에서 첫 번째로 강한 문도였다.
대외 활동은 잘생기고 인기가 많은 백인하가 하고 실질적인 제일고수는 종호였던 것이다.
“넵!”
크고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종호는 거의 태도(太刀)만 한 거대한 검을 쥐고 나아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양손을 들고 사용해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검이었다.
“대검투귀(大劍鬪鬼) 종호!”
“회검문에서 가장 뛰어난 문원!”
“정사 중간 고수들 중 가장 무거운 중검(重劍)의 묘리를 다루는 사나이지.”
대검투귀 종호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본래 종호는 특급 낭인 출신으로 거대한 검과 함께 우뚝 솟은 인물이었다.
실상은 무론 사흑천 출신의 고수지만 세상 사람들은 특급 낭인인 대검투귀 종호가 회검문주 동방백에게 패배하여 그의 수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종호라면 믿을 수 있지.’
동방백은 우람한 종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물론 종호와 자신은 하늘과 땅 정도의 큰 차이를 자랑하지만 적어도 초일류 사이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고 알려졌다.
동방백이 종호라는 패를 내어놨다는 것은 어지간히 위축되었다는 뜻인데 이쯤에서 슬슬 일 승을 챙기려는 의도였다.
“두 표사. 준비하지.”
장운도 다 계획이 있었다.
두 번째로 나설 상대는 놀랍게도 일검일섬 두길준이었다.
“네.”
체구가 커다란 종호에 비해 위로나 옆으로나 그보다 훨씬 작고 아담한 두길준.
그러나 반응은 응운곤의 경우와는 달랐다.
“어? 어디서 봤는데?”
“일검일섬 두길준이잖아!”
“용봉지회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둔 두길준!”
“어마어마한 쾌검을 가진 사나이!”
상대적으로 무명(無名)인 응운곤과 달리 두길준은 이미 유명인이었다.
용봉지회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빠른 쾌검 대 무거운 중검끼리의 이색적인 대결은 여러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번만큼은 황금표국, 아니, 항산파 측에서도 쉽게 승리를 가져가지 못할걸?”
이번에는 승패 예측이 절반 대 절반으로 나뉘었다.
“흥! 용봉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그런 애송이들이 참가하는 대회 따위, 헛된 명성일 뿐이다.”
비무대 위에 올라선 종호가 한참 아래의 두길준을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용봉지회에 자격지심이 있는가 보군.”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두길준은 장운과 만남 이후 소심하고 순진한 성격을 많이 고쳤다는 사실이었다.
“뭐?”
“네놈의 느린 검 따위, 전혀 겁나지 않는다.”
두 고수의 팽팽한 신경전 아래 마침내 비무 선언이 떨어졌다.
“비무 시작!”
앞선 첫 번째 대결만큼이나 두 번째 대결 또한 급박하게 시작이 되었다.
“이노오오옴!”
두길준의 말에 잔뜩 흥분한 종호가 거칠게 검을 휘두른 것이다.
-대검압산(大劍壓山)!
위에서 아래로 강력하게 찍어누르는 단순한 초식은 대검투귀 종호를 상징하는 초식이기도 했다.
상대를 절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찍어 눌러 터뜨려 버리는 호쾌한 초식은 특급 낭인인 그를 유명세로 이끌었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두길준의 말대로 속도가 느렸다.
-분광회천(分光回天)!
두길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회전시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빠른 신법, 분광회천을 시도하였다.
파아아앗!
두길준의 신형이 한순간 점이 되어 날아가더니 이윽고.
-섬광일섬(閃光一纖)!
번쩍!
무언가가 번쩍하였다.
일반인이 볼 때는 이 번쩍거림도 쉽사리 느끼기 힘들었으리라.
반면 장운의 두 눈에는 느린 장면처럼 명확하게 보였다.
두길준이 신형을 회전하여 느리고 무거운 중검 초식을 회피함과 동시에 반격에 나선 것이다.
서걱!
두길준의 빠른 극한의 쾌검이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 종호의 어깨를 가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