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0화
유지이리(誘之以利)(2)
“부탁이네. 좀 조용히, 그리고…… 장운 소협께 안내를 좀 해주시게나.”
응운곤과 두길준이 어찌나 소란을 떨던지 당호륜조차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애처롭게 말했다.
머리털이 난 이후, 아랫사람들에게 이렇게 공손히 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푸후훕!’
‘그 기고만장하다는 십보즉사가 이런 꼴을 보일 줄이야.’
그 모습에 두 사람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하였으나 애써 억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더 가지고 놀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알겠소이다.”
“운이 좋은 줄 아시오.”
두 사람은 목에 잔뜩 힘을 주며 마지막까지 당호륜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확 그냥 하독을 해버려?’
당호륜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독주머니에 손까지 가져가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약초와 약재를 다루는 이들이 많은 이상, 중독의 증거를 찾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큰 협상을 앞둔 와중에 당문의 인원들이 와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불길함은 주고 싶지 않았다.
“고, 고맙소이다.”
당호륜은 억지로 웃는 바람에 눈이 웃지 않은데 입만 웃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두고 보자. 황금표국과 계약 체결이 완료되는 순간, 네 두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독에 절여주겠다.’
십보즉사는 애써 복수를 다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진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오오, 오셨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금옥관 내부까지 들어가 그곳의 주인, 금령공자 장운과 만나게 된 당호륜과 독암당의 주요 인물들.
‘이자가 바로 금령공자?’
당호륜은 예상과 달리 무척이나 뛰어나고 번듯한 모습에 당황하였다.
본래 그는 강호의 소문은 십중팔구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 치부하는 인물이었고 기껏해야 표국의 무인 주제에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냐는 주의였다.
한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독암당주 당호륜이라 합니다.”
그래서 맨 처음 먹었던 마음가짐과 달리 존대를 하며 부드럽게 대하였다.
“십보즉사의 명성은 멀리 떨어진 이 섬서 땅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장운은 마음에도 없는 말로 금옥관 입구에서부터 큰 상처를 입은 당호륜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 수하들은 머저리더라도 이 금령공자는 쓸 만한 놈이군.’
적어도 사람 볼 줄 아는 인물이라 판단하며 당호륜은 내심 웃고 있었다.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이랑은 다르다고 믿었다.
“오오, 그런가요?”
당호륜은 반색을 하며 기뻐했고.
“물론입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귀 사천 당문의 영광과 성세는 다 독암당주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장운은 수하들과 달리 그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하였다.
물론 이는 더 낭떠러지까지 추락시키기 위함이었다.
“으하하하핫! 장운 소협께서는 뭘 아시는군.”
금옥관 경비 무인들 때문에 상처 입은 마음이 어느 정도 아물어졌는지 당호륜은 연신 호탕하게 웃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거…… 잘만 하면 일이 쉽게 풀어질지도 모르겠는걸?’
독암당의 부당주인 벽독수 당리정도 웃음꽃이 피었다.
솔직히 철암당이 먼저 움직인 것 같아 승산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장운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철암당주께서 방문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당호륜은 장운에게 다가가 친한 척을 하며 슬쩍 떠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들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기에 궁금했던 것이다.
“네, 물론입니다.”
“외람된 말이오나 혹시 협상은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되려나?”
내친김에 한 발자국 더 내지른 당호륜.
“흐으음, 그것이…….”
장운은 흡사 연인끼리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처럼 슬쩍 끌고 있었다.
‘당희령이 어떻게 되었냐고? 이미 죽었지 뭘.’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꾹 눌렀다.
일부러 그가 안달 나고 감질나게 굴었다.
“상세하게 말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도대체 그쪽에서 무엇을 얼마나 제시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더 잘해드릴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당호륜은 물론이고 당리정마저도 안절부절못하며 한마디를 보태었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에서 갑은 황금표국이오, 을은 이 독암당 일원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솔직히 말해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장운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하였다.
이는 물론 사전에 짜여진 각본이었다.
“네에?”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에 당호륜과 당리정은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으나 속마음은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정말이고말고요. 철암당주께서는 너무…… 아! 같은 세가 분 앞인데 제가 너무 실례를 했나요?”
장운은 그들의 속마음을 훤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괜찮습니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데요, 뭘.”
독암당은 오히려 반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럼 내 두 분을 믿고 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철암당주께서는 너무 완고하시고 무엇보다도…… 탐욕과 야심이 대단하셨습니다.”
으하하하핫!
장운의 말에 독암당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특히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협상을 체결해야 하는 당사자인 장운의 입에서 당희령 험담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그래, 그 불여시 같은 것이 본색을 감출 리 없지.’
특히 당호륜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당문의 가주에게나 잘 보여야 하는 자들 앞에서 살랑살랑 눈웃음치며 좋은 사람인 척 흉내를 내던 당희령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조건보다도 인성의 문제가 더 커서 일단은 거절한 상태지요.”
“암요. 무릇 같이 일을 하는 동업자 입장에서 인성은 그 무엇보다도 중대한 문제죠. 장운 소협께서 뭘 좀 아시는군요.”
이야기가 잘 풀릴 듯하자 당호륜은 이제 안도를 할 수 있었다.
마음의 빗장이 풀어졌을 때 방심이란 놈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어 올리는 법.
장운은 바로 그것을 노렸다.
“먼저 당문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울러 당문의 모든 일원들이 철암당주와 같은 사람들은 아니니 오해 말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저와 차분히 약재, 영약 등 독점 계약과 협업에 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도록 할까요?”
이제 다 된 밥이라 생각한 당호륜은 본론에 들어갔다.
그러자 장운도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아! 그전에…… 괜찮으시다면 우리 금옥관의 자랑인 만철당을 견식해 보시겠습니까?”
“마, 만철당?”
만철당이라는 말에 당호륜과 당리정의 눈빛이 변하였다.
제아무리 독을 다루는 사람들이라고 하나 이들의 본분은 무인이었다.
만철야장 공야월의 솜씨를 견식할 수 있고 잘만 하면 하나 얻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나왔기에 탐욕을 가릴 수 없었다.
“당연히 봐야죠!”
“그래 주시면 감사드립니다.”
눈에 불을 켠 채 욕심을 드러내는 독암당의 무인들.
장운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손자병법 유지이리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네, 그럼 안내를 해드리지요.”
장운은 밝은 얼굴로 그들을 만철당 내부로 이끌었다.
독암당의 숫자는 당호륜을 더하여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그 뒤를 금옥관의 표두들이 뒤따랐다.
언뜻 보면 예우를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혹시라도 눈치채고 도주할까 봐 미연의 방지를 하기 위해서였다.
씨익!
당호륜은 자신이 절반쯤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 다리를 얹고 있는 것을 모른 채 연신 웃고 있었다.
‘만약 귀섬옥수 당희령을 누르고 황금표국과 독자적인 계약을 이끌어낸다면 부당주 직위도 꿈은 아니다.’
어쩌면 오늘이 자신의 인생 최고의 날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끼이이익!
그렇게 만철당 내부로 도착한 당호륜과 독암당의 인원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미묘했다.
“음?”
당호륜의 예민한 오감에 포착되는 것은 알싸한 향과 더불어 미세하게 느껴지는 혈향이었다.
“아, 인근에서 환단 제조에 열을 올리느라 그런 것이니 오해 마십시오.”
장운이 차분히 설명하였으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코를 찌르는 비릿하면서 알싸한 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혈향은 왜 나는 것일까?
“킁킁, 어딘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소?”
당호륜은 만철야장의 솜씨를 견식하는 것조차 잊은 채 말을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투욱!
만철당 내부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비옥수 천세은이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허억! 허어어어억!”
철암당주 당희령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더불어 이미 개죽음을 당한 철암당의 무인들이자 당문의 혈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
당호륜이 곧바로 포착한 혈향은 바로 이들의 것이었다.
“장운 소협!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오?!”
당호륜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뒤집어지는 것조차 모른 채 다급하게 그를 호명하였다.
“어찌 되긴.”
당황하여 동공이 흔들리는 독암당 인원들에 비해 장운은 너무나도 침착했다.
쿠웅!
장운은 차분히 만철당 내부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출구를 본인과 금옥관의 뛰어난 표두들이 점거했다.
이로써 저 머저리 같은 놈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네놈들도 곧 철암당주를 따라 지옥으로 간다는 소리지.”
장운은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그렇다면…… 철암당주도 나와 같은 수법에 당했단 말인가?”
당호륜은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눈치를 채었다.
“그래. 당희령도 마찬가지였지. 우리 황금표국의 재산을 탐내 침을 줄줄 흘리며 아무도 몰래 이곳까지 오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아! 그러고 보니 똑같은 덫에 걸려든 멍청한 무리들이 또 있었지?
장운은 너스레를 떨다가 돌연 정색을 하면서 당호륜을 지목하였다.
“바로 사천 당문의 독암당, 네놈들이다!”
그 말에 당호륜과 당리정, 그리고 독암당의 무인들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을 느꼈다.
“도대체 왜?!”
“왜 그러는 것이지?”
“본 세가와 황금표국은 은원 관계도 없는데, 왜?”
은원 관계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웃는 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희령의 원수인 천세은이었다.
“내 사부가 바로 천수관음 나화연이시다.”
흠칫!
그 말에 당문의 일원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제일의 여고수이자 사천 당문마저도 뛰어넘은 암기술의 달인 천수관음 나화연.
그녀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살해한 사람들이 바로 사천 당문 아니던가?
“나화연 여협은 비단 천 표사의 사부님일 뿐만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무인의 절친이기도 하셨다.”
장운이 말했다.
이유는 또 하나 더 존재했다.
“그리고…… 사천 당문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언젠가 우리 표국의 재산과 재화를 노리려고 덤벼들 것이 아닌가?”
그는 진정 현명하였다.
“삭초제근(削草除根)하여 유비무환(有備無患) 하는 것이 성미에 맞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