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2화
소탕하다(5)
장운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않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모조리 폭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네놈은…… 누구냐?!”
장운의 기습으로 인해 처참한 모습으로 넘어진 용진산은 크게 당황하며 물었다.
이제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오늘 밤, 달콤한 연회만 끝나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리라 믿었다.
그런데 차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악몽과 같은 일이 벌어지니 당황할 수밖에.
“몰라서 묻느냐,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이냐?”
장운은 차분히 내공을 끌어모으면서 답을 하였다.
확실히 혈월극마 용진산은 대단한 존재였다.
허를 찔러 완벽한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공은 대단했다.
같은 초절정 고수라도 용진산이 한 수 더 높다는 방증이리라.
실제로 용진산은 장운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얕은 상처를 입었다.
장운은 거의 반쯤 죽여놓기를 원했는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혈월문의 비기인 혈월음천신의 호신강기 때문이었다.
“설마 황금표국의 놈들인가?”
용진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마침내 실토를 하였다.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금령공자 장운이다.”
장운은 마침내 완전한 정체를 밝히며 초령검을 고쳐 잡았다.
그사이, 적마방의 별관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혈월비악대와 장운 일행 간에 피 튀기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왔지? 내 일 처리는 완벽했을 테고 적마방도……. 설마! 적마방주가 배신했단 말인가?”
장운은 그의 질문에 마지막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눈앞의 이자는 곧 죽을 자이니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적마방주는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입을 다물어 죽어버렸지. 본 표국에 생존자가 있었다.”
“그때 그 표두 놈!”
설명을 듣자마자 용진산은 탄식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쩐지 내내 불안하더니 그것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렇군, 그랬어.”
용진산은 자조 섞인 말을 하면서 주위를 살피더니 이윽고 많은 무구와 갑옷들이 장식이 된 적마방 별관에서 기다란 창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쓸 만하겠군.’
혈월극마가 사용하는 본래의 무기는 별호답게 창극, 즉 찌르기 전용의 평범한 창이 아니라 베는 용도의 날이 달린 특별한 창이었다.
창극이 없을뿐더러 손에 익은 애병이 없었기에 혈월극마가 극도로 불리한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진산은 자신이 패배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 장운을 우습게 보고 있어서였다.
“네놈이 저지른 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용진산이 외쳤다.
사실 그 말은 장운과 황금표국 측에서 해야 마땅할 텐데 주객전도(主客顚倒) 된 상황에 장운은 실소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혈천월파(血天月波)!
용진산은 여러 악조건을 가졌음에도 자신을 사파에서 손꼽히는 고수로 만들어 준 회심의 무공, 혈천만파창극법(血天萬派槍戟法)을 시전하였다.
진정한 명필가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용진산도 그러하였다.
파바바바밧!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성정, 오만불손한 태도를 떠나 혈월극마 용진산이라는 고수는 자신의 분야, 창극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의 창법은 정통파적인 기질마저 내뿜을 정도였다.
‘과연 대단하구나.’
장운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핏빛의 창강을 보여 전율하였다.
그 모습이 흡사 망국(亡國)에서 내리는 서러운 피의 비와 같았던 것이다.
하나 장운의 기습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손에 익은 애병도 아니고 허리에 중한 부상을 입었기에 그의 공격은 기민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를 심판하겠다고?”
이에 장운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너무나 깔끔하게 피해서 합을 짠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하아압!”
바로 그때였다.
-혈사쌍아(血蛇雙牙)!
장운이 피하자마자 용진산의 창은 절묘하게 휘더니 독사의 독니처럼 두 개의 맹렬한 창강이 분출되는 게 아닌가?
‘사실 첫 초식은 유인책이었다.’
슬그머니 용진산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는 혈월극마가 자주 꾸미는 함정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을 펼친다.
그럼 적은 그 공격을 피한 다음 안도를 하여 마음에 방심이 생길 것이고 용진산의 날카로운 창은 그것을 관통하였다.
그것도 양쪽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노린 공격!
휘이이익!
정말이지 그 순간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장운조차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방심을 한 것은 부상을 입고 여러 악조건에 시달린 용진산이 아니라 장운일지도 몰랐다.
이제 다 된 밥이라는 생각에 안도를 한 장운이 일찌감치 축배를 들고 만 것이다.
서거걱!
아슬아슬한 차이로 독사의 두 독니와 같은 용진산의 혈사쌍아 초식은 장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천만다행인 것은 부상의 경도가 그리 깊지 않았으며 초식의 이름과 달리 독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쯧! 운이 좋았군. 내 애병이었다면 네놈은 사독(邪毒)에 중독되었을 것이다.”
용진산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탄식하였다.
거짓말이 아닌 것이 용진산이 평소 들고 다니는 창극에는 여러 마비독이 발라져 있었기에 이 상황에 반드시 필요하였다.
정파 무인들은 비겁하다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독 사용이 묵인되는 곳.
그곳이 바로 이 사파 무림과 사파 무림인이었다.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정답인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였다.
“아, 그러셔?”
장운은 탄식하는 그를 지나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그 와중, 스스로에게 화가 났지만 애써 표현하지 않은 채 새로운 마음으로 초령검을 움켜쥐었다.
-금령운무지검(金靈雲霧之劍)!
장운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금령풍운검법의 상승 초식을 펼쳐들었다.
장운은 기습으로, 용진산은 반격으로 각자 한 수씩 득수하였으니 다시 장운의 차례였다.
솨아아아아!
장운의 검이 순간 자욱한 운무를 내뿜는 듯한 기시감을 연출하였다.
이 금령운무지검은 운무 속의 검이라는 초식의 이름답게 적을 속여 순식간에 숨겨진 일검을 찌르는 초식이었다.
여태껏 한 차례도 펼친 적이 없었지만 솜씨는 완벽하였다.
장운은 초절정 고수였고 이를 갈며 완벽한 초식을 펼쳐든 것이다.
채쟁!
용진산의 창이 이리저리 휘며 그 운무를 걷어내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미 장운은 모든 조건에서 용진산을 압도하고 있었고 특히 내공 부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오늘의 장운은 잔인했다.
콰지직!
용진산이 부상을 입었던 부위, 허리를 노리며 그곳을 집중 공략하였다.
“끄으윽!”
많은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겪어왔던 용진산이었으나 부상을 후벼파는 공격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이놈! 이노오오옴!”
상처를 입은 야수가 무섭다고 누가 그랬던가?
용진산은 어리고 하수라 여겼던 장운에게 한 방 먹은 것에 이어 아픈 곳을 당하니 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혈광난창(血光亂槍)!
-혈천무화(血天武花)!
혈월극마는 사력을 다한 채로 혈천만파창극법을 휘저었다.
아수라장이 된 장내에서도 단연 돋보일 정도였다.
파아앗!
그 공격이 어찌나 사납고 서슬 퍼랬는지 장운도 상반신에 깊은 자상을 입을 정도였다.
‘됐다! 이것으로 조건은 동등해졌다!’
장운이 끝끝내 부상을 입자 용진산은 기뻐하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무렵!
반짝!
깊은 자상을 입은 장운의 상반신 사이로 눈부신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당연히 금룡린갑으로 장운의 목숨을 빈번히 구해주는 신물이기도 했다.
“아니,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에 용진산이 당황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음의 파동은 신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독과도 같았고.
-이식(二式) : 분광검(分光劍)!
그때 장운은 승부수를 띄웠다.
지금 적마방 별관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장운은 용진산을 등진 채 구석으로 몰고 있었기에 혼원무극검법을 펼치기 아주 제격이었다.
서거거걱!
장운의 초령검은 완벽한 검로를 자랑하며 순식간에 용진산의 오른쪽 팔을 잘라 버렸다.
“아악! 아아악!”
한쪽 손이 날아가 버리는 고통에 초절정 고수고 나발이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특히나 창극처럼 양손을 다 사용하는 고수들에게 있어 한쪽 팔의 부재는 절반의 힘을 덜어낸 것이나 마찬가지.
-금령풍천비류(金靈風天沸流)!
장운은 호흡이 달리고 내공과 체력의 소모를 느꼈지만 그럴 때마다 사천성 이름도 없는 산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황금표국 동료들을 생각했다.
장건 휘하의 파벌로 친분은 없었어도 그들은 황금표국의 일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복수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런 울분은 장운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다.
콰지직!
그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오른팔에 이어 용진산의 남은 왼팔마저 잘라 버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승부는 완전히 기울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악!”
흡사 지옥도처럼 난장판을 연출하였던 내부는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게 식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혈월비악대들이 진심으로 무서워하고 존경하며 따르던 장본인, 혈월문주 용진산이 비참한 몰골로 울부짖고 있었으니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억, 어어억! 내, 내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사파제일인! 사흑천주 광혈흑마 태상천 형님의 하나뿐인 의동생이다! 형님께서 네가 나를 죽인 것을 알게 된다면…….”
결국 용진산도 똑같았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다 비슷해지는 법이지 않은가.
그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열심히 피력하였다.
어떻게 보면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알게 될 건데?”
장운은 휘청거리는 그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뭐, 뭐어?”
용진산은 주춤거리며 그의 두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본 표국을 건드렸다는 물증도, 내가 이 적마방을 찾아왔다는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장운의 말은 간단했다.
오늘 네놈들을 모두 쳐죽여 완벽하게 묻히게 만들 것이니 태상천이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뜻이었다.
혈월문 일행들이 황금표국 표물을 완벽하게 강탈한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었다.
“그건…….”
“설령 알아도 상관없다.”
“뭐?”
장운은 당황하는 용진산을 완벽히 압도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놈 역시 머지않아 내 검에 죽을 것이니 의형제가 나란히 저승에서 만나겠구나.”
장운은 그 말을 남긴 채 방점을 찍었다.
파아아앗!
예리한 초령검이 용진산의 머리를 내려쳤다.
어디 그뿐인가?
장운은 너무 놀라 두 눈을 감지 못한 그의 머리를 전리품처럼 치켜 든 다음, 아직도 분투를 하고 있는 혈월비악대원들에게 고하였다.
“본 표국을 잔인하게 공격하여 표사들을 도륙하였으며 무림을 좀먹던 빌어먹을 악적, 혈월극마 용진산은 내 손으로 죽였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
평소의 장운이었더라면 적장의 목을 베었으니 이제 투항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똑똑히 보거라. 혈악비악대들이여! 네놈의 최후도 이러할 것이다. 아니, 이보다 더 참혹할 것이다! 그러니 투항하지 마라. 잔인하게 모두 목을 쳐서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버러지처럼 땅에 처박을 것이니…… 죽는 그 순간까지 후회를 하도록 만들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