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0화
소탕하다(3)
“일은 잘 마무리 지었겠지?”
사천성에서 가장 크게 말을 전문적으로 사고 파는 상단, 적마방(赤馬幇) 어느 밀실에서 은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천성에서 손꼽히는 거부이자 적마방의 주인인 적마방주 단비군이 고개를 숙이며 설설 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동년배뻘의 인물에게!
본래 단비군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를 자랑하며 사천성의 마시장은 자신이 꽉 잡고 있다고 호언하는 호쾌한 인물이었다.
그런 오만한 사람이 극진히 모시는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내 한 놈을 놓치긴 하였으나…… 지금쯤이면 어디선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상인으로 이루어진 적마방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인물은 그는 차분히 수염을 쓸어내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 놈을 놓쳤다는 것인데 찝찝하긴 해도 시간이 해결했으리라 믿었다.
“네, 입수한 물건은 물량이 워낙 큰 탓에 한꺼번에 사드릴 흑방의 상인들과 조율하고 있습니다.”
“좋다. 그 물건들이 팔리는 대로 내 떠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라.”
적마방과 손을 잡은 그는 합작하여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일을 훌륭히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물건들이 팔리는 대로 손을 털고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는 일만 남았다.
“알겠습니다.”
단비군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방에서 이탈하였다.
‘얼른 물건이 팔려야 나도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텐데.’
내심 단비군도 그들이 떠나기를 바랐다.
적마방의 배후에 그들이 있는 것은 무척이나 이득이 되고 든든하지만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단비군으로서는 몹시 피곤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방주님, 방주님!”
돌연 외부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단비군은 펄쩍 뛰며 소리를 지르는 수하에게 달려갔다.
“조용! 그분들이 쉬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더냐!”
혹시라도 그 무시무시한 자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만전을 기하는 적마방이었다.
“아차차! 하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하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길일(吉日)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단비군도 과하게 추궁을 하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로 그리 난리를 떠느냐?”
수하는 자신이 헐레벌떡 달려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말을 사겠다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뭐어? 당분간은…… 말을 팔지 않으니 사람들을 돌려보내라 하지 않았나?”
생각과는 달리 의외의 말을 하자 단비군은 이내 괄괄한 성정을 보여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적마방 내부는 지난 일로 몸을 사리며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말을 사고파는 일마저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제 얘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방주님. 평범한 손님이었다면 당연히 돌려보냈을 테지만…… 북방(北方) 쪽에서 소규모 상단이 우리 적마방을 찾았습니다. 그 상단의 주인이 급하게 말이 필요하다며 자그마치! 준마(駿馬) 팔백 필(匹)을 사겠다고 요청하셨습니다.”
“뭐, 뭣이?”
수하의 말에 단비군은 하마터면 뒷 목을 잡을 뻔했다.
그냥 일반 말 팔백 필이었다면 그냥 꽤 많이 사가는구나 싶었을 것이다.
한 번에 그 정도 사가는 정도는 드물어도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준마 팔백 필은 황실이나 관이 아니면 거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게 정말이더냐?”
단비군은 기쁨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네, 신분은 확실하게 증명하였고 계약 대금을 치를 수 있는 금자와 전표도 확인한 참입니다. 그리고…….”
상세히 보고하던 수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슬쩍 낮추었다.
“상단의 주인으로 보이는 어린 도련님이 있는데 생긴 것과 달리 어리바리한 것이 잘하면 더 크게 한몫 챙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요.”
목소리를 낮춘 이유는 제대로 된 호구를 물었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렇게나 어리다고?”
“네, 잘 쳐줘야 스무 살 정도였다니까요.”
“후후후, 그거 잘 되었구나.”
단비군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탕 해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과연 누가 호구이고 누가 한탕 해먹을 수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당장 팔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단비군은 혹시라도 그들이 돌아갈세라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 이분들인가?”
수하의 안내를 받아 단비군은 북방의 상단과 조우하였다.
물론 이들은 장운과 그 일행들이었다.
그들은 짧은 시일 내에 완벽한 분장은 물론이오, 황금표국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북방의 한 상단의 명패를 가져와 흉내를 낸 것이다.
이는 당연히 장운과 노련한 상수 노관의 번뜩이는 계략이었다.
“그래, 준마가 필요하시다고?”
“그렇습니다.”
장운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스읍~ 팔백 필이면 쉽사리 구하기가 힘든데…….”
이에 장운은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당장 품속에서 금자와 전표 다발을 꺼내 들었다.
“금자는 얼마든지 들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 주 북방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니 시일만 맞춰주십시오.”
안절부절못하며 거듭 부탁을 하는 장운.
그 모습이 영락없이 상단을 갓 물려받은 애송이처럼 보였다.
씨익!
시작하자마자 주도권을 손쉽게 가져온 단비군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구 중의 상호구가 왔다고 여긴 것이다.
동시에 장운의 품에서 엄청난 양의 금자를 보았기에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물론 이 금자는 장운이 그동안 여러 일을 해결하며 모은 금자로 급하게 융통한 것이기도 했다.
“한데…… 매우 먼 곳에서 오셨다지요? 북방에도 말이 많이 날 텐데 구태여 여기까지 오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이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였다.
단비군은 닳을 대로 닳은 상인으로 특히나 의심이 많았다.
게다가 장운 일행이 등장한 시점이 단비군과 적마방으로서는 무척이나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이제 막 상단을 물려받았습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은 저로서는 가까운 곳에서 말을 구할 수 없더군요. 더군다나 저는 서자 출신인지라 아버님의 인맥과 지인들마저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장운은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기질이 험하고 사나운 북방일수록 적통을 더 따지는 경향이 있었다.
“호오, 저런.”
“그럼 이 많은 준마는 어디에 쓰려고?”
“아실지 모르지만 북방은 언제든지 오랑캐들과 전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말만큼 이문을 남길 수 있는 종목도 없지요.”
그 말을 들으며 단비군은 장운을 다시 보았다.
세상 물정을 완전히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다면 제법 그럴싸한 상인이 되리라 예상되었다.
‘그러니 이 몸께서 경험을 쌓게 만들어주지. 함부로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경험을 말이야.’
단비군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슬슬 가격 흥정에 나섰다.
“팔백 필은 최소 금자 천 개 이상을 주셔야 하고 계약 대금으로 이 할인 이백 개를 선납해 주셔야 하오.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장운은 호쾌하게 대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이런 나쁜 놈을 봤나. 뭐? 금자 천 개? 몇 배를 불려 먹는 거야?’
단비군의 욕을 엄청나게 하였다.
분노를 애써 눌러 담은 채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했다.
“아! 그리고 준마보다 더 빠른 명마 열 필도 필요합니다.”
“아하, 장수들 전용으로 쓰시려고 그러는구나.”
“맞습니다.”
“명마는 정말 구하기 힘든 것은 아실 텐데…… 우리들은 원하는 물량을 맞춰드릴 수 있지요. 손님께서는 운이 좋으신 겁니다. 명마가 이렇게 모이는 것이 드물다니까.”
단비군은 척하면 척이라는 얼굴로 웃으며 명마들이 모여 있는 마구간으로 안내했다.
마침 그날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명마들이 많이 있었으니 몇 마리 더 판다고 해도 무리는 없었다.
“스읍~ 근데 명마는 두 당 금자 칠십 개는 주셔야 할 텐데…….”
“가격은 상관없으니 일단 보고 결정합시다.”
장운의 말에 명마들이 모인 마구간으로 들어와 말의 면면을 확인하였다.
장운은 들어가자마자 무영신투에게 눈짓을 하였다.
말들의 다리를 확인하라는 신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들에게서 오래되지 않은 사람의 피와 더불어 그 산의 토양과 가까운 성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끄덕!
무영신투로부터 신호가 왔다.
십중팔구 이들의 짓이란 뜻이었다.
“자, 그럼 당장 계약 대금을…….”
단비군은 신이 잔뜩 나서 등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모르는 채 연신 떠들고 있던 그때였다.
파앗!
순진해 보이던 장운이 어느새 돌변하여 단비군의 목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커, 커컥! 이, 이게 무슨…….”
순식간에 목줄이 잡힌 단비군은 켁켁 거리며 옴짝달싹 못 하였다.
더욱이 단비군의 무공 실력은 삼류 수준에 불과했기에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장운이 행동을 개시하자 금옥관의 일행들도 일제히 단비군의 수하들을 제압하였다.
그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수하들의 수혈을 짚었다.
“나는 황금표국의 금령공자 장운이다.”
장운이 정체를 밝히자마자.
“허억! 허어어억!”
단비군은 숨통이 막히는 것조차 잊은 채 소스라치게 놀라며 사지를 벌벌 떨기까지 했다.
도대체 그가 어찌 알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가슴이 관통당한 듯 놀랬으나 그는 닳고 닳은 상인답게 노련히 대처를 하였다.
“어억! 왜, 왜 우리에게…….”
우습지도 않은 조악한 연기를 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장운은 싸늘히 웃었다.
다 알고 왔는데 어디서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지.
“얼마 전 본 표국의 표물이 도둑맞고 표사들 모두가 죽었다. 하지만 생존자가 있었지. 대표두로부터 증언을 들은 결과, 말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상단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운의 말은 옳았다.
그는 철대종의 말을 들으며 구하기 힘든 명마를 모든 인원에게 제공할 정도면 마상단이 개입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그 거대한 표물을 매우 자연스럽고 의심받지 않게 이송할 수 있는 곳 또한 마상단뿐이다.”
말은 물론이오, 마차마저도 사고파는 마상단이라면 거대한 표물이 담긴 마차를 끌고 가도 의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장운의 추리는 실로 예리하였다.
“이 사천성에서 그러한 규모를 가진 전문 마상단은 단 두 곳이다. 서쪽의 한혈상단과 이곳, 적마방. 공교로운 점이 무엇인 줄 알아? 한혈상단은 말을 사겠다고 하는 손님을 거부하지도 않았고, 명마를 보여 달라고 하자 곧바로 구하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런 반면에 적마방은 맨 처음 말을 사겠다고 하였을 때 사정이 있어 장사를 하지 않는다며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결정적으로 장운이 명마 열 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불가능하다, 어렵다는 군소리 없이 수십 마리를 보여준 것만 해도 답이 나왔다.
무엇보다 무영신투의 확인까지 있었으니 이들이 분명했다.
“적마방 따위가 감히 본 표국을 홀로 건드릴 리 없다. 네놈들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