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89화
소탕하다(2)
“사천성에서 본 표국을 건드릴 수 있는 문파는 단 세 곳뿐입니다.”
장운의 말에 상수 노관이 손가락 세 개를 치켜세웠다.
사실 이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청성파와 아미파, 그리고 사천 당문입니다.”
노관의 말이 옳았다.
사천성은 땅덩어리가 큰 만큼 많은 문파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그중의 백미(白眉)를 꼽자면 당연히 이 세 문파가 될 것이다.
“아마 그 셋은 아닐 겁니다.”
한데 이게 웬걸?
노관의 말에 의외로 장운이 반박하였다.
“청성파와 아미파는 구파일방의 명문이며 거대한 방파이긴 해도 각각 도가와 불가의 성격이 강해 속세의 일에 잘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럼 사천 당문은 어떻습니까?”
사실 노관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문파 중 하나가 사천 당문이었다.
사천 당문 정도라면 이 정도 일을 꾸밀 수 있을뿐더러 정파이면서도 손속이 다소 우악하고 독공을 쓰기 때문에 과격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사천 당문이 자유분방해 보여도 의외로 체계가 잘 잡힌 곳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자존심은 대단한 편이지요. 애초에 당문의 짓이라면 그들은 구태여 정체를 감추지 않았을 겁니다.”
장운의 설득력 있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표물이 실종된 곳으로 가 봅시다.”
* * *
장건의 인도 아래 폭풍권 철대종과 표물이 사라진 사천성 인근으로 이동했다.
경로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표두들은 자신의 이동 방향과 거리를 늘 보고하고 있었기에 상시 기록이 되어 있었다.
“분명…… 여기쯤일 겁니다.”
장건이 며칠 사이 무척이나 수척해진 얼굴로 말했다.
사천성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밤낮없이 달리는 강행군도 강행군이거니와 이번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흐으음.”
장운이 직접 나서서 철대종 일행들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사천의 조그마한 산등성이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격한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다!’
애송이면 몰라도 비무와 실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운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부러진 나무들과 더불어 폭풍권 철대종 특유의 파괴적인 권기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긴 상태였다.
“십중팔구 철 대표두께서는 자신보다 강한 실력자와 대면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장운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들마저 볼 수 있었다.
철대종의 손속이 강력하다고 해도 자신보다 하수라면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싸우지 않았을 터.
이것은 분명 격렬히 저항한 흔적이리라.
“사천성에서 청성과 아미, 당문을 제외하고 철 대표두를 이길 수 있는 고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거대한 대형 표물을 모조리 삼킬 수 있는 곳! 범인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흔적이 발견되자 장운 일행은 희망을 가지며 거듭 추적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흔적은 쥐도 새도 모르게 끊어진 상태였다.
“이런!”
“이럴 수가!”
그 절망적인 상황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그러게 말이야.”
“그 거대한 표물이 어떻게 이리 사라질 수가 있지?”
대형 표행이라면 지긋지긋하게 다녀온 일행들이 의문을 표했다.
아직 애송이 표사인 일검일섬 두길준이라면 몰라도 이들 대부분은 대형 표행과 표물을 잘 알았다.
자그마한 보물을 훔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많은 물량의 재화를 훔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꿀꺽 집어삼킬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정말 녹림의 짓이 아닐까요? 산에서 흔적을 숨기고 대형 표물을 아무도 모르게 운반할 자들은 녹림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노련한 감우량 표두마저도 녹림을 재차 의심할 정도였다.
이에 장운도 혹할 뻔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영사춘 집사님. 혹시 추적이 가능하십니까?”
장운은 이럴 때를 대비하여 동행을 요청했던 장본인, 추영객 영사춘을 찾았다.
사실 이는 그의 진정한 정체, 무영신투 장유백임을 알기에 부탁한 것이다.
흔적을 숨기고 기척을 감추는 데 있어 최고의 인물이 바로 이 무영신투였다.
그 말은 곧 남의 흔적을 잘 찾아낼 수 있다는 뜻과 동일하였다.
“으음, 일단 해보겠네.”
무영신투는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가려야 하니 짐짓 어렵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실제로 어려운 것이긴 했다.
상대에게서 자신처럼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기 때문이다.
스윽!
기척이 끊긴 곳에 다가가 다시 한 차례 꼼꼼히 잘 펴보는 무영신투.
당연히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장운을 포함하여 초절정 고수와 절정 고수 여럿이 샅샅이 흔적을 찾았기에 눈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무영신투가 누구던가?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인 매우 특출난 장본인이 아닌가?
오히려 상대가 흔적을 지우는 데 매우 능하다는 것을 역으로 이용했다.
‘확실히 실력이 제법 있는 놈이군.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과 냄새는 완벽히 차단을 했다. 하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있지.’
숨길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피, 혈흔이었다.
피에는 주변에 찾아볼 수 없는 여러 성분들이 존재했고 물로 씻어내어도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스스슷!
무영신투는 그 점을 노렸다.
품 안에서 자신이 도둑으로서 현역 시절 들고 다녔던 무색, 무취의 가루를 뿌렸다.
이를 뿌리자 예리한 안목을 가진 무영신투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혈흔의 흔적이 보였다.
‘상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무영신투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기척을 숨긴 채 저를 따라오십시오.”
어쩌면 적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혈흔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덕!
무영신투의 말에 장운을 비롯하여 모든 인물들이 잔뜩 긴장한 채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기척은 숨겨도 긴장이나 떨림은 숨길 수 없었다.
‘과연 누구일까?’
장운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무영신투의 등만을 쫓은 지 대략 반 시진 정도 흘렀을까?
무영신투가 안내한 곳은 놀랍게도 그 산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동굴이었다.
이 산은 오지에다가 동굴도 매우 작고 보잘것없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곳으로 모르는 사람은 동굴이 아니라 그저 암벽의 틈 정도로 착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 두어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크기에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겠습니다.]
더 꾸물거릴 새가 없었다.
무영신투의 인도 아래 무공이 가장 강한 장운과 두길준, 노련한 감우량이 동굴에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동굴이 좁으니 외부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였다.
그렇게 네 사람이 나란히 동굴 내부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엇!”
맨 선두에서 추적을 하고 있던 무영신투의 비명이 들려왔다.
휘익!
무슨 일인가 하여 장운이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이럴 수가?!
“철 대표두님!”
놀랍게도 동굴 속에는 황금표국의 대표두, 폭풍권 철대종만이 피를 흘린 채 혼절한 상태였다.
철대종의 상태는 심각하여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하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제가 응급조치를 하겠습니다.”
감우량이 다가가 그에게 내공을 불어넣는 사이, 장운은 동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알고 보니 그 동굴은 황금표국 표사, 표두들이 잘 알고 있는 동굴로 가끔 물건을 숨겨두거나 비상시를 대비하여 사용하는 용도였다.
‘그렇구나. 철 대표두는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나 죽기 살기로 도망쳤을 테고 이 동굴에 들어와 간신히 기척을 감추어 살아남은 거로구나.’
장운은 이제야 전후 사정을 다 알 수 있었다.
동굴 내부에는 철대종을 제외한 남은 인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장운은 외부 인원들에게 시켜 이 근방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지시를 내린 다음.
“치료는 제가 한번 해보지요.”
열심히 내공을 불어넣는 감우량을 뒤로 하고 장운이 나섰다.
감우량보다는 장운의 내공이 더 진하고 압도적이니 그가 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리고 장운에게는 늘 지니고 다니는 여러 약초들이 존재하였다.
스르륵!
이런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몸에 좋은 환단을 철대종의 입으로 먹이고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천허심법(天許心法)!
질 좋은 약과 장운의 심후하면서 정순한 내공이 이어지니 얼음장 같이 금방 꺼져 버릴 것만 같은 철대종의 신체에서 온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컥! 커커컥!”
다 죽어가던 철대종은 이내 큰 기침을 하며 순식간에 굵은 선혈 뭉치를 여러 개 쏟아내었다.
그것만 보아도 그의 상태가 어떠하며 사경을 넘나들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대표두님!”
“정신이 드십니까?”
철대종의 주변으로 장운과 무영신투 등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가?
“으으, 으으으.”
철대종도 죽다 살아났기에 정신이 없었는지 당황을 하다가 장운과 영사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현실을 직시하고는 안도의 한숨은 깊은 탄식의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크흑, 저 말고는 다, 다 죽었습니다.”
본래 철대종은 견고한 사나이였다.
동료가 죽은 정도로 울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표국에서 대표두 자리에 오를 정도면 얼마나 많은 표사, 표두들의 죽음을 봐왔겠는가?
하나 자신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은 경우는 단언컨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그것도 표물을 뒤로한 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피부 위로 와닿자 비참함은 곧 서러움이 되어 눈물 방울로 변하였다.
“도대체 누가! 누가 그런 것입니까?”
철대종을 제외하고 다 죽었다는 말에 장운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장건 파벌이니 휘하이니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누구와 더 친한 것은 있어도 결국 황금표국에 속한 이상, 장천호의 정식 후계자인 장운의 사람들이자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당시 이 산을 넘는 도중, 갑자기 말을 탄 자들과 마차 여러 대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말을 탄 자들과 마차 여러 대?”
“네, 처음에는 인상도 좋고 붙임성이 좋길래 인근의 상인들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후미에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기습을 날렸습니다.”
철대종은 그날의 참혹한 상황이 떠오르는지 눈두덩이가 떨리고 있었다.
후미에 위치한 초절정 고수의 공격을 필두로 상인으로 위장하던 자들은 돌연 포악한 강도로 돌변하였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철대종은 그 일념하에 표물을 포기한 채 모두 도망가라고 일렀다.
하나 도주하던 도중, 뒤를 돌아보았을 때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것도 어느 무시무시한 절대 고수가 뒤를 쫓고 있었고 그의 맹공에 시달리다가 기지를 발휘하여 표두들이 알고 있는 이 비밀 동굴에 몸을 숨긴 것이다.
사실 철대종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도대체 그자들이 누굴까요?”
감우량이 장운에게 물었다.
장운이라고 하여 뾰족한 생각은 없었기에 잠시 주저하다가 철대종에게 물었다.
“그 상인으로 위장한 자들의 특이사항이 있었습니까?”
그 말에 철대종은 잠시 고민하더니 무언가 떠올렸다.
“아! 처음 상인으로 위장하였을 때 말을 잘 아는 표사, 도광한량(賭狂閑良) 조우승이 그러더군요. 저들이 끌고 온 말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명마(名馬)들이라고…….”
‘명마들이라…….’
명마는 생각보다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재화였다.
그런 것을 한 필도 아니고 모든 인원들이 다 명마를 타고 마차를 이끄는 말도 명마였다니 이건 분명 범인들이 가진 특이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옳거니. 이제 알겠구나.”
장운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