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87화
증명하다(3)
장운이 먼저 다가와 정중히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종남파를 견제하고 대련을 떠나서 무림의 노선배이니 합당한 예우를 보인 것이다.
‘심지어 이 종남무객 천종도는 전생이었던 검신 장인랑 시절에도 아득히 배분이 높은 선배였다.’
그런 만큼 상황을 떠나 예의를 차리는 것이 당연했다.
“반갑구나. 내가 바로 천 모란다. 그래, 나를 찾았다지?”
천종도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했다.
천연덕스러우면서 친근하게 말을 꺼내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하여 종남파의 여러 무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워, 원래부터 아는 사이인가?’
오죽했으면 장운에게 종남 입구에서부터 앙심을 품고 있었던 중천검 축사곤은 의아한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심지어 혈연관계나 지인 사이가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였다.
당연히 두 사람은 아는 관계가 아니었으며 장운의 전생이었던 검신과도 아무 인연이 없었다.
“네 부득불 노선배님을 지목하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장운은 천종도를 향해 예의를 차리던 모습과는 달리 갑자기 돌변하여 종남의 무인들을 돌아보며 답하였다.
“종남의 고수 분들께서 표행을 맡기러 방문하시지는 않고 언제나 대련을 하러 오셨으니 제가 가야 할 때가 왔다고 믿었을 뿐입니다. 더불어…….”
장운은 차분히 몸을 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종남 분들께서도 제가 초절정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 겸사겸사 직접 증명하러 왔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야유 어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우! 네까짓 어린놈이 초절정은 무슨!”
“제법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일대종사급 무공 실력인 초절정의 경지가 가당키나 하는 소리냐?”
“내공이 강하다고 착각은 금물이다.”
그 야유를 쏟아내는 인물들 중에는 축사곤과 일대제자들은 물론, 심지어 중견급 고수들도 있었다.
장운은 이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화답하지 않았다.
“그러니 증명을 해 보이겠다는 겁니다. 이왕이면…… 종남에서 가장 어른이신 분께 말입니다.”
이에 천종도는 껄껄 웃어젖혔다.
“으허허허헛! 재밌구나, 재밌어. 너는 분명 천하를 삼킬 아이다.”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반쯤은 도발을 하러 온 장운조차도 당황할 정도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초절정의 영역에 도달했다면 이 늙은이를 상대할 자격은 충분하지. 아니, 인근에 이렇게 어린 초절정 고수가 있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요청을 해야겠지.”
내내 시골 할아버지처럼 순박해 보이던 천종도의 눈이 돌변하더니 곧바로 무인의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실 그동안 조금은 지겨웠다.’
곧 입적(入寂)을 준비하기 위해 종남산에 왔는데 이게 웬걸?
타고난 복이 커서 자신에게 주어진 천수(天壽)가 아직도 더 남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무림 은퇴를 번복하며 혼잡한 무림의 놀음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경치를 벗 삼아, 하루는 찻물의 맛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단언컨대 그것은 타고난 무인인 종남무객에게 있어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서글픈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장문인께서 싫어하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천종도는 많은 이들의 앞이니 태을검군 유진종에게 장문인 대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아이를 두고도 가만히 있기에 아직도 내 피가 너무나 뜨겁구나.”
그 말이면 족했다.
종남무객도 금령공자 장운과 대련을 원한다.
오오오오!
전혀 뜻밖의 말에 여러 의미를 가진 복합적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매우 의외라는 뜻과 더불어 천종도라는 최고 어른이 어린 장운과 붙게 되자 놀라고 만 것이다.
“장로님! 저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유진종과 다른 장로들도 한 번 더 만류하려 했지만 천종도의 뜻은 확고했다.
“그렇다면 우리 종남에 그와 비슷한 연배를 가진 이들 중, 장운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나?”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여태껏 황금표국이 그래왔듯 종남파 역시 찾아온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해주는 것.
그것뿐이리라.
“너는 검을 뽑아라.”
천종도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장문인이고 종남파고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애초에 그는 별호에 걸맞게 무객(武客), 무예를 찾아 언제나 떠돌아다니는 영원한 떠돌이였다.
스르릉!
장운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만천하에 초령검이 드러났다.
종남파 무인들은 그것이 천하의 명검임을 깨달았다.
만철야장이 황금표국에 있으니 당연하다 여긴 까닭이었다.
“오래된 선배라면 무릇 삼 초를 양보해야겠지만…… 이제 팔다리가 쑤시는 나이를 넘어 염라대왕이 부르는 나이라 어렵겠구나.”
장운이 검을 뽑자 천종도도 검을 뽑았다.
이제 더 이상 순박하고 온순해 보이는 시골의 촌부(村夫)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운의 초령검처럼 오래되었으나 매우 예리하게 잘 벼려진 명검(名劍)과 같은 한 무인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젊고 후학의 입장에서 마땅히 삼 초를 양보해야 하거늘, 그러지 못하는 점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십시오.”
장운은 마주 예의를 차렸다.
씨익!
히죽!
노소(老少)가 웃었다.
늙었든 젊었든 그들은 타고난 무인이자 검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조심하게.”
동시에 이들은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오늘의 승부가 어디까지나 대련이지 실전이나 비무가 아님을 명심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천종도는 먼저 조심하라는 친절한 경고를 남겼다.
파아아앗!
평생을 오로지 검만 잡아 온 노검수의 검이 빛을 발하였다.
-천하고고(天下孤高)!
그가 펼치는 검은 종남파,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대표적인 검법.
즉,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의 초식을 전개하였다.
삼십육개의 방위를 점하여 천하를 가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이 검법은 호쾌하면서도 웅장한 기운이 일품이었다.
검법에서 중시여기는 것, 쾌(快)와 중(重)의 묘리가 모두 담겨 있는 완벽에 가까운 검법이었다.
이와 같은 검법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좀처럼 단점이 없어 약점을 노릴 수 없다는 것.
채재쟁!
눈 깜짝할 사이에 공중에서 장운의 초령검과 천하삼십육검이 얽혔다.
여기서 장운이 조금 불리한 것이 아직 검신 장인랑과의 인과관계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하였기에 그의 진가인 혼원무극검법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은 강했다.
-금령가화(金靈加貨)!
장운에게 유리한 부분도 하나 존재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비무나 실전이었다면 추후 어떻게 되었든 혼원무극검법을 사용했을 테지만 대련 정도는 금령풍운검법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실제로 지금 펼치는 이 초식 역시 이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장운의 경지가 초절정에 도달한 이후에야 그 묘용(妙用)을 간파하였다.
파아아아앗!
초령검은 금빛의 강한 검강을 내뿜었다.
초절정에 도달했다는 제대로 된 증명은 내내 검강으로 싸운다는 점이리라.
우와아아아아!
대련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종남의 무인들은 감탄사를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장운이 보여주고 있는 검강은 얼치기 절정 고수들의 쥐어짜 낸 듯 무리한 검강이 아니라.
우우웅, 우웅!
거칠게 진동하며 강한 빛과 생명력을 과시하는 진정한 검강이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검강을 자유자재로 수족처럼 다루었다.
“허허허헛! 좋구나, 좋아.”
종남무객 천종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이 밝은 대보름달과도 같아 보일 정도였다.
“장로님께서는 뭐가 그리도 즐거우신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진종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장문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는데 지금 천종도는 종남산으로 복귀한 이후, 가장 즐거워하고 있으니 오죽 했을까?
-천하고결(天下高潔)!
천종도도 노장으로서 연륜을 보여주었다.
우우우웅!
그 역시 새파란 검강을 내뿜으며 장운의 황금빛 검강을 상대로 한 치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장안의 화제이자 젊은이들 사이 가장 강하다는 장운을 상대로 호호백발의 머리가 휘날리고 새하얀 수염이 흔들리자 그 모습만으로도 종남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종남의 검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종도가 그저 즐겁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운을 상대했을까?
천만의 말씀.
노고수의 행동에는 이유가 따랐다.
즉, 장운을 상대하며 혼탁해진 종남에게 경종을 울리며 동시에 크나큰 교훈을 내리고자 한 것이다.
“종남의 검은 고고해야 한다!”
채쟁!
천종도가 한마디 한마디 남길 때마다 공중에서 눈이 부시고 흡사 하늘을 부수어 별자리를 바꿔놓을 것만 같은 초절정 고수들의 검강이 뒤엉키고 있었다.
‘과연 종남 전성기 시절의 무인이시다.’
장운도 장운 나름대로 놀라는 중이었다.
상대는 전성기를 아득히 지나다 못해 은퇴하여 입적을 준비하는 노인이거늘 자신 못지않아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억, 헉!”
이 세상에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가진 이상,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 어느 천하제일인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법.
천종도 또한 나이를 속일 수는 없어 오래 지나지 않아 체력의 한계를 보였다.
아둔한 자들은 나이가 많으면 내공도 강하고 아는 것도 많으니 어린 자보다 더 강하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그것은 바보천치나 같은 발언이다.
무인에게도 엄연한 전성기는 존재한다.
내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공을 담는 그릇인 육신이기에 그렇다.
성인 남자 고수의 최고 전성기는 대개 삼십 대에서 사십 대 사이를 꼽으며 그 기간이 지나면 노화를 막을 길이 없어 서서히 꺾이는 것이다.
스윽!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천종도는 스스로 발걸음을 멈췄다.
이미 탈진에 가까운 지경이었다.
대련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약 반 각의 시각.
여기까지 버틴 것만 하더라도 용하였다.
“금령공자 장운이라고 하였나?”
천종도는 더 이상 장운의 검을 감당할 기력도, 체력도 없어 자연스레 검을 내렸다.
즉, 패배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이에 장운 역시 공격을 멈추고는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자네는 틀림없이 초절정 고수가 맞네. 더불어…… 이제 곧 자네의 시대가 열리게 될 걸세.”
이는 한 치의 과장도 없이 진심이었다.
‘이자는 전대 천하제일인인 검신 장인랑보다도, 전전대 천하제일인보다도 더 심지가 굳다.’
천종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누구나 다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장운은 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대급 천하제일인이 탄생하겠구나.”
천종도의 중얼거림에 종남의 많은 이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이 반응은 당연한 게 그가 종남산에 들어온 이후, 종남의 후학들에게조차 이런 후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장문인인 유진종을 비롯하여 여러 고수들이 평가를 바라면 그저 웃으며 자리를 회피하거나 진심 어린 독설을 하게 마련이었다.
이런 극찬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간 종남의 무례를 용서하시게.”
급기야 천종도는 까마득히 어린, 거의 증손자뻘인 장운을 향해 정중하면서도 진심을 듬뿍 담아 포권을 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