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5화
용봉지회(龍鳳之會)가 열리다(4)
장운은 마침내 출수를 하였다.
그의 초령검이 향하는 곳은 남궁벽 쪽이 아니었다.
의외로 남궁벽과 두길준의 사이에 슬쩍 초령검을 끼워 넣는 게 아닌가?
하수들은 왜 허공에 검을 늘어놓냐고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채앵!
어느새 공중에서 남궁벽의 검과 두길준의 쾌검이 서로를 공격하려던 찰나에 초령검이 끼어들어 두 사람의 공격을 상쇄해 버린 것이다.
“어어엇?!”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세가의 젊은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놀라는 요점은 총 두 가지였다.
세가 젊은 고수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고 위력적인 남궁벽의 공격에 장운이 반응한 것도 놀라운데 두길준이 어느새 검을 뽑아 눈부신 쾌검으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장운이 중간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방심하고 잔뜩 취한 남궁벽이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이 모든 결과를 예측하고 중간의 공간에 초령검을 끼워넣은 장운의 통찰력이었다.
“이, 이……!”
장내의 상황에 남궁벽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성이 자자한 금령공자 장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더럽고 초라한 놈은 도대체 누구길래…… 이토록 검이 빠른 것인가?’
쾌검으로 유명한 여러 문파를 떠올렸지만 눈앞의 두길준과 이어지지 않았다.
“진정하시오. 용봉지회는 아직이오.”
장운은 남궁벽 공격 따위는 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잔뜩 흥분하여 쾌검의 일검을 선보인 두길준을 진정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두길준도 흥분하여 결국 폭발해 버린 것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다.
‘정신 수양이 부족했어. 또 참지 못하고…….’
그만 도발에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역시 경험이 부족하기에 보이는 젊은이들의 습성이었다.
끄덕!
두길준은 장운의 조언을 받아들여 남궁벽과 남궁세가 사람들은 무시한 채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느새 기립하여 전투 준비를 마친 감우량과 응운곤, 천세은의 뒤로 가서 차분히 호흡을 골랐다.
“자자,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떻소?”
아직까지 장운의 초령검에 남궁벽에 검이 맞붙어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감우량이 노련하게 손뼉을 쳤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잘 끼어든 노련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어중이떠중이 같았으면 잘못을 인정하거나 상대가 만만치 않음에 굴복했겠지만 이 남궁세가의 대공자, 창천폭뢰 남궁벽은 달랐다.
“이런 무림의 잡놈들이 감히!”
결국 그는 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몸이 아픈 남궁세가 가주인 그의 아비는 요양 중이고 그의 조부는 무림 은퇴를 했기에 남궁세가 내부에서 오냐오냐 떠받들어진 남궁벽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감히 내 검을 막아?’
객잔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두길준의 쾌검과 장운의 통찰력에 감탄을 보내고 있을 때 남궁벽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추후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어 명문 정파의 중심 일원으로 무림을 이끌어나갈 자신이 한낱 표국의 표두와 이름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무인에게 검이 막히자 머리끝까지 화가 폭발한 것이다.
-벽천뇌기(碧天雷氣)!
급기야 남궁세가에서 높은 수준의 검법으로 평가받는 창천벽뢰검법(蒼天碧雷劍法)의 초식마저 분사하였다.
이미 술에 취해 있기도 했고 자신보다 못한 자들, 이름이 없는 자들에게는 개망나니나 다름이 없는 그는 친선 비무라고 하기에는 매우 살기 넘치는 일검을 뻗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그 검로를 보며 장운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인내심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그저 술에 취한 애송이가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시비를 건다고만 느꼈다.
하나 거듭할수록 계속 선을 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장운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의뢰인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명분이.
-금령일운(金靈一雲)!
장운 역시 참지 않고 초령검에 금빛의 검기를 휘두르며 길게 내뻗었다.
채재재재쟁!
객잔 내부에서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푸른 검기와 황금표국을 상징하는 황금빛의 검기가 서로 몇 번이고 뒤엉켰다.
두 검기의 대결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 금방 드러나게 되었다.
주르륵!
놀랍게도 남궁벽의 검기 위력이 모자라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게 아닌가?
“으으으, 이놈!”
전혀 예기치 않은 장면에 남궁벽을 비롯하여 남궁세가의 인원들은 펄쩍 뛰며 경악하였다.
아무리 남궁벽이 취해도 그렇지, 그가 누구던가?
남궁세가의 대공자이자 화산파의 일검매향(一劍梅香) 예천관과 더불어 차기 검신 재목으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은 두 쌍룡(雙龍)이 아니던가?
섬서 금령공자의 위세가 대단한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표사, 표두 수준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남궁벽을 일순이나마 밀어내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경고하겠소. 계속 살기를 드러낸 채 공격을 감행한다면…….”
장운은 대 남궁세가의 대공자를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본 표행을 방해한다고 판단, 어쩔 수 없이 손을 쓰도록 하겠소이다.”
스윽!
그렇게 말하며 초령검을 앞세워 남궁벽을 겨냥하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남궁세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조차 말문을 잃을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르르륵!
장운의 선언에 남궁벽이 뭐라고 반박을 하려던 순간에 경악스럽게도.
“피?!”
“대공자님께서 출혈을 보이신다!”
“믿을 수 없어!”
검을 쥔 남궁벽의 손에는 굵은 선혈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남궁벽도 놀란 상태였다.
손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아귀 안쪽이 살짝 찢어져 있던 것이다.
조금 전 장운과 나눈 일검에서 뒤로 밀리다 못해 피를 보였다는 것인데 이는 곧 하나를 의미했다.
‘설마…… 내가 한낱 표국 표두 놈에게 졌단 말인가?’
아무리 취하고 상황이 좋지 않았어도 실전은 실전이었고 승부는 승부였다.
실전 승부의 세계에서 조건이나 상황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결과만 보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어떤 악조건이든 간에 밀렸다는 것은 패배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감히 이놈들이!”
“대공자님을 해하려 들다니!”
피가 보이자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장운을 향해 둘러싸며 협박을 하려했지만.
우웅, 우우우웅!
장운은 초령검에 눈부신 검강을 선보이며 차분하고도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한 번만 더 시비를 걸거나 우리를 방해할 경우, 그대로 목을 치도록 하겠다.”
검강은 오로지 절정 상급에 도달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승의 상징이었다.
남궁벽마저도 최근에 들어서야 간신히 검강을 조금이나마 다루는 수준이었는데 장운은 너무나 손쉽게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의 내공 수준 차이가 극명히 갈렸기에 그런 것이었다.
“…….”
장운이 검강까지 보이니 더 이상 떠들어대거나 덤벼대는 인물은 없었다.
아무리 젊고 앞뒤 분간하지 않으며 술에 취했다고 해도 검강을 쓰는 인물에게 덤벼들 만용은 없었다.
“조용해서 좋군.”
장운은 검강 하나만으로 장내 정리에 성공하였다.
상황이 일순 역전되자 어찌나 통쾌하던지 화를 삭이고 있던 두길준은 물론이오, 황금표국 인원들 모두가 내심 환호하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실컷 시비를 걸고도 검강과 장운이 두려워 덤비지 못하는 남궁세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여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두 집단의 희비(喜悲)가 극명히 갈리는 순간이었다.
“금령공자 장운. 두고 봐라. 내가 몸이 멀쩡할 때 만나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훗날 복수를 도모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험난한 강호무림에서 나중에, 몸이 멀쩡할 때라는 가정은 한낱 쓸모없는 것이지. 창천폭뢰 남궁벽.”
장운은 실력으로도 입심으로도 그를 완전히 밟아주었다.
“진짜 실전이라면 귀하는 내 검에 열두 번도 더 죽었소.”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강호무림에 있어 예외나 가정은 없는 법이고 정말로 실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비가 붙었다면 취한 남궁벽은 초령검에 목을 잃었을 테니까.
부들부들!
사실 남궁벽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크나큰 치욕을 느끼면서도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흥이 식었는지 발걸음을 돌릴 뿐이었다.
“돌아가지.”
그것으로 남궁세가 젊은 후기지수들의 회포 푸는 자리는 중단이 되고 말았다.
남궁벽을 비롯하여 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물러가자 감우량은 이제 한숨 돌렸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후우, 하필이면 술에 취한 남궁세가 골칫덩이를 만날 줄이야.”
운명이나 우연치고는 참으로 얄궂은 순간이었다.
더욱이 남궁벽은 하늘이 내린 재능과 더불어 개차반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자리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저자의 재능만큼은 진짜지요.”
장운은 멀어져가는 남궁벽을 바라보았다.
이전 화산파에서 보았던 일검매향 예천관과 견주어도 남궁벽의 재능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 타고난 근골만 다지자면 오히려 기골이 장대한 남궁벽이 우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은 결국 더 높은 성취를 달성할 인물로 예천관을 꼽았다.
아무리 근골이 타고났고 무골이 어쩌고 해도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작자는 한계에 직면하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워낙 인성이 대단하니 나중에라도 시비를 걸어올 게 분명합니다.”
장운은 그렇게 말하며 두길준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두길준은 조금 전 화를 참지 못하고 사달을 일으킨 것에 일조했기에 사과를 표했다.
“아니오. 의뢰인이 화를 내지 않았다면 오히려 내가 냈을 것 같소.”
실제로 두길준이 대신해서 폭발하는 바람에 중재하느라 차분함을 유지하였지, 장운 본래 성격대로 나갔다면 남궁벽은 지금쯤 어디가 부러져 용봉지회에 참가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아무튼, 용봉지회에 출전할 경우, 남궁벽을 조심하시오. 저자는 분명 비무장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손을 써올 부류니까.”
장운이 말했다.
전생과 현생을 비롯하여 저런 작자들을 많이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식사를 보낸 장운 일행은 하남성 초입에서 다시 숭산 소림사로 향하는 여정을 떠났다.
장운 일행이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혹시라도 남궁세가와 또 한 번 얽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장운이 남궁벽이 두려워 그런 것은 아니다.
‘내 본분은 표두이고 표행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것보다 표행 완수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설령 소림사로 가는 자리에서 남궁벽과 다시 만난다고 해도 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회를 선택할 테니 말이다.
한참을 달린 끝에 장운 일행은 마침내 이번 용봉지회가 열리는 장소, 숭산의 소림사에 도착할 수 있었고.
“두 소협, 이로써 표행은 완벽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본 표국은 분명히 안전하고 쾌적하게 의뢰인을 용봉지회까지 도착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차적으로 표행이 끝나자 두길준은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따지고 보면 표행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불과합니다. 지금부터 두 소협께서 용봉지회에 활약을 해야 저희들이 대금을 받을 수 있겠지요?”
장운의 말에 두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자신을 의심하거나 자격지심에 찌든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모습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장운 소협께서 약속을 지켰으니 이번에는 제가 약속을 지킬 차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