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4화
용봉지회(龍鳳之會)가 열리다(3)
장운의 말에 머리가 개운해진 두길준.
고작 말 한마디를 들었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요동치던 두길준의 마음이 평온해졌을 뿐.
그 뒤로 그는 방황을 멈추었다.
정신이 집중되자 점점 더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으며 어느덧 하남성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자, 조금 쉬었다 갈까?”
장운이 말했다.
섬서를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으니 이제 객잔에 들러서 휴식도 취하고 무엇보다 수련을 거듭하느라 해진 두길준의 복장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표사의 길로 간 탓에 인적이 드물고 객잔이나 포목잔이 없는 곳이었기에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 큰 객잔이 있으니 거기로 가시죠.”
오랜 표행 생활로 인해 지리에 있어 도가 튼 감우량이 안내를 맡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남성 번화가로 들어가니 커다란 객잔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북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휘유~ 많기도 해라.”
“아무래도 용봉지회 시기이니만큼 방문객들이 많은가 봅니다.”
응운곤과 천세은이 복잡한 내부 광경을 보며 말했다.
보통 이런 시기에는 식사 자리를 구하거나 잠자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각 성마다 단골로 머무는 객잔이 있었고 객잔들 또한 표국이나 상단을 위해 여분의 잠자리는 남겨두게 마련이라 어려움은 없었다.
“도련님, 이야기가 다 끝났습니다. 들어가시죠.”
전뢰창 감우량 표두는 흡족한 얼굴로 객잔의 입구에 서서 일행들에게 손짓을 했다.
다행히 황금표국의 이름 덕분에 사전 예약하지 않아도 식사할 자리와 방을 구했던 것이다.
“간만에 야외 식사와 노숙이 아니라니. 설레는걸?”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객잔 내부에서 중요한 인물들만 받는다는 삼층으로 향하였다.
보통 대형 객잔은 중요 손님이나 매우 비싼 음식을 먹는 손님을 위하여 삼 층을 널널하게 비우곤 했다.
장운과 두길준까지 모두 올라가 착석을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푸핫! 푸하하핫!”
돌연 옆쪽 탁자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음?’
장운은 별생각 없이 있다가 고개를 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옆자리에는 푸른색 무복의 젊은이들이 회포를 풀고 있었다.
장운은 저들의 잘 닦여진 기도와 분위기로 보아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들로 보였다.
때마침 용봉지회가 열리는 시기라서 참가자들 일행이 아닐까 싶었다.
“이 낙양 객잔도 못 쓰겠군.”
“그러게 말이야. 어디 천민들이 드나드는 일 층이나 상인들이 드나드는 이 층도 아니고 삼 층까지 웬 거지가 올라오다니.”
“나는 개방의 고수가 올라오는 줄 알았다니까?!”
“으하하하핫!”
알고 보니 푸른 무복의 젊은이들은 두길준의 초라한 차림새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
화끈!
그들의 노골적인 비아냥에 두길준은 화를 내는 것조차 잊은 채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차라리 쌍욕을 하거나 발을 거는 시비를 걸었다면 시원하게 화를 내었을 텐데 초라한 행색과 부끄러운 차림을 지적하니 스스로 위축이 되는 두길준이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젊은 친구들이 술기운이 올라 하는 말이니.”
가난은 초라하고 불편한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진 두길준이 고개를 떨구자 그런 그를 감우량이 다독이며 일부러 시비를 거는 젊은이들과 떨어뜨려 놓았다.
낄낄낄!
뒤에서 자기들끼리 농을 나누는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길준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행색에 대해 계속 비웃는 것만 같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이고~ 황금표국의 대협분들이시군요. 늘 먹던 걸로 드릴까요?”
삼 층 협탁에서 대기하고 있자 지배인이 붙었다.
일 층, 이 층과는 달리 삼 층부터는 일반 점소이가 아니라 좀 더 높은 직급의 인원이 붙게 마련이었다.
감우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려던 찰나!
“아니, 여기서 제일 비싼 것을 주시오.”
장운은 그 지배인을 붙잡고 변경 요청을 하였다.
“네?”
낙양 객잔의 지배인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일행까지 놀라자 장운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고 또 오랜만에 객잔 방문인데…… 좋은 것을 먹고 싶어서 말이야. 준비해 주겠나?”
“아무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간만에 비싼 요리를 요청하는 손님에 지배인은 크게 기뻐하였다.
“여기 선금을 줄 테니 남은 은자는 가져가시게. 대신…… 이 친구가 입을 무복 하나만 사다주겠소?”
장운의 뛰어난 눈치와 일 처리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저 반대편 식탁에서 여전히 젊은 친구들이 두길준을 보며 비아냥대는 것을 느끼자 장운이 보란 듯이 가장 비싼 음식과 무복을 사오라 요청한 까닭이었다.
“우와~ 이렇게 많이! 알겠습니다!”
장운이 금자 두 덩이를 내밀자 지배인은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어차피 잡일이나 심부름 따위야 점소이를 시키면 그만이니까.
“든든히 먹고…… 위축되지 말길 바라오. 무인에게 있어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내실이 아니겠습니까?”
장운은 잔뜩 주눅이 든 두길준을 위로해 주었고 그 덕분에 그는 기운을 좀 차릴 수 있었다.
이제 간신히 조용하고도 편하게 밥을 먹는가 했더니 또 다른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황금표국?”
“표국 사람들이었어?”
삼 층 지배인의 맞이 인사를 듣고 장운 일행이 누구인지 알아채자 푸른 무복을 입은 자들이 또 한 번 호기심을 보였다.
특히 그들 중 단연코 중심의 상석을 차지하는 눈부신 무인 한 명이 있었는데, 굉장히 준수한 얼굴에 두텁고 위로 치솟은 눈썹의 쾌남이 입을 열었다.
“우리 조부님께서 말씀하시길 검의 길을 걷는 무인들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이 바로…… 섬서 황금표국의 국주인 금령검객 장천호 대협이라던데.”
스윽!
그러면서 슬쩍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 쾌남은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보아 술을 꽤나 걸친 게 분명했다.
무공 고수는 주독을 날려 버릴 수 있다고 하나 모처럼 회포를 푼 날이니 그럴 필요가 없던 것이다.
“혹시 당신은 그 금령검객의 아들인 금령공자 장운 소협이 아니오?”
그는 얼큰하게 취했던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전형적인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다운 몸놀림. 게다가…… 절정 이상의 고수가 분명하다.’
얼굴을 바라보니 두길준의 또래에 불과한데 무척 뛰어난 고수가 분명하였다.
“그렇소만…….”
장운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감하며 인정을 했다.
이 인정에는 맞으니까 조용히 물러가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오! 맞군, 맞아!”
대부분의 고수들은 장운의 별호를 들으면 물러서거나 뒤로 가게 마련이었다.
하나 안타깝게도 이자와 그 가문에 속한 이들은 예외였다.
“나는 남궁세가의 창천폭뢰(蒼天暴雷) 남궁벽이라고 하오. 괜찮다면 고명이 자자하신 금령공자의 실력을 좀 견식해 봐도 되겠소?”
남궁세가라는 말에 황금표국 일행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구파일방에 준하는 오대세가, 그중에서도 가장 위세가 대단하고 강한 전력을 가졌으며 정통의 명문 검파가 바로 이 남궁세가였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더군다나.
‘창천폭뢰 남궁벽이라면…… 남궁세가의 대공자!’
장운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남궁세가의 대공자이자 현 중원 무림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 검객이 바로 이 남궁벽이었던 것이다.
타고난 무골에 뛰어난 오성, 천부적인 승부감각은 남궁세가 역사상 손꼽히는 재목이라 여길 정도로 칭송받고 있는 창천폭괴 남궁벽.
하나 그에게는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별호에 사나울 폭(暴) 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성격이 무척이나 급하고 다혈질이라는 것.
그리고 술을 너무나 좋아하고 무척이나 감정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남궁세가에서는 일선에서 은퇴한 그의 조부와 몸이 아파 직위만 가주인 아비를 제외하고는 남궁벽을 조절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남궁세가의 분들이셨군. 안타깝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장운은 남궁벽의 실력이 궁금하였으나 정중히 사양의 뜻을 밝혔다.
왜냐하면 슬금슬금 시비를 걸어오는 남궁벽에게서 진한 술 냄새와 더불어 이미 취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취기를 내몰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싸워봤자 무의미하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가볍게 겨뤄주시오. 내 또 언제 표국 분들과 대면하겠소? 물건 나를 일도 없는데?”
“푸하하하핫!”
남궁벽과 남궁세가의 젊은 무인들은 얼큰하게 취했는지 급기야 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명문 정파에서 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했다.
무공을 값싸게 팔며 표사, 표두들 주제에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냐는 그런 생각.
그런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금령검객 장천호의 실력이 평가절하받고 있는데 남궁벽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정중히 말하지요. 남궁 소협께서도 꽤 취하셨고…… 또 지금 저희들은 의뢰인을 대상으로 호위 표행을 하고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리겠소이다.”
장운이 남궁벽의 시비를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장운과 그 일행들은 남궁세가의 젊은이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온 것이 아니다.
두길준의 안내와 호위를 맡은 이상, 그를 무탈하게 숭산 소림사까지 안내할 것이며 이것은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지 계약이 유효했다.
“거참, 굉장히 튕기시는군. 보아하니 별 중요한 의뢰인도 아닌 것 같은데…….”
남궁벽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애초에 누군가의 눈치를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눈치를 봐주며 주위 사람들이 오냐오냐했기에 이런 인성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부르르!
또한 두길준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무시가 이어지자 두길준도 이번에는 분노를 참지 못하였다.
“표사는 무공을 한낱 금자에 팔지 않소이까? 얼마요?”
“네?”
장운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전생 현생을 통틀어 이렇게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인물은 난생처음이었다.
“저 없어 보이는 의뢰인을 대신해서 내가 금령공자를 일시적으로 고용하지. 얼마를 주면 나와 겨뤄줄 생각이오?”
그 말에 장운보다도 오히려 두길준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 오만방자한 나귀 새끼가!”
그러지 않아도 초라한 행색을 지적할 때부터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계속해서 웃고 떠들며 급기야 옆에서 대놓고 지적을 하자 참고 참아왔던 두길준은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벌떡!
“어딜 감히 대공자님께!”
“이 표국 새끼들이 미쳤나?”
두길준이 폭발하자 남궁세가 젊은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런 장면을 원하고 기다려 왔던 것이다.
얼큰하게 술도 취했겠다, 마침 적당히 놀 만한 상대가 있으니 툭툭 건드리며 화를 돋우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벽은 대공자이기 이전에 차기 가주나 마찬가지였기에 서로 충성을 증명하려 들었다.
“뭐? 나귀 새끼? 하~ 참!”
남궁벽은 그런 일행들에게 손을 들어 제지한 다음 의외로 환하게 웃다가.
파아아앗!
이내 돌변하여 무시무시한 기세로 두길준을 향해 기습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기세에 모두가 놀란 그때였다.
-금령조화(金靈造化)!
마침내 장운이 초령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