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64화
화산파의 의뢰(6)
장운과 장천호가 껴안은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노력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본능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정말…… 정말 수고 많았다.”
장천호는 사파십대고수 중 일인인 천악귀오 엽공천을 쓰러뜨렸다는 기쁨보다도 아들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멀쩡하였던 모습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입가에 피가 흐르고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였던 것이다.
“아닙니다. 서둘러 일행을 도와야 합니다.”
장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오문의 뛰어난 고수들과 사투를 벌이는 다정검 인천수를 비롯하여 황금표국 수뇌부들이 있었다.
장운과 장천호가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일등공신은 어쩌면 이들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장운 일행의 조도 마찬가지였다.
감우량 표두는 물론이고 동곽과 천세은은 절정 고수로서 무공이 약한 노관을 비롯하여 장건 일행마저 지키는 대범함을 선보였다.
“모두 멈추어라! 이제 전투는 끝났다!”
장천호는 내공을 담아 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엽공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엽공천은 이미 사망하였고 자연스레 의식은 없었다.
“맙소사!”
“문주님께서 어찌…….”
“사파 십대고수가 한낱 표국의 국주에게 패하다니…….”
이 결과를 하오문도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세간의 평가는 장천호가 더 강하다 평하고 있었지만 하오문도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문주가 더 강하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인질이 되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겼다!”
“명룡채도, 하오문도 물리쳤다!”
“지건악과 엽공천이 쓰러졌다!”
반면 황금표국 일행은 신이 난 상황이었다.
전원이 살아남은 장운의 조와는 달리 장룡과 장건, 특히 장건의 조는 궤멸 직전에서 이런 승전보를 들은 것이니 오죽했을까?
“너희들은 대장을 잃고 패배하였다. 끝까지 항전한다면 이 금령검객이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장천호는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잔챙이 수십 명 정도는 무섭지 않았다.
특히나 한 번 기세가 오른 황금표국은 진정으로 무서웠다.
장천호뿐만 아니라 다정검 인천수와 아정 집사, 갈천궁수 배진필과 폭풍권 철대종도 건재하였다.
약간씩 상처들은 입었지만 국주가 저토록 분전하고 하다못해 금령공자가 명룡부왕을 잡아내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국주님을 비롯하여 셋째 도련님도 이렇게 분전하는데 우리가 물러설 수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인천수는 물론이요, 그의 파벌이 아니었던 배진필과 철대종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중립을 고수하던 신묘수사 아정도 감격에 가득 찬 상태였다.
‘국주님도 국주님이지만…… 장운 도련님은 실로 대단하시다!’
단순히 무공 실력만 두고 보는 게 아니었다.
출발 전부터 화산파의 비열한 계획을 간파한 것도 그렇고, 이번 역전승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사람은 장운이라 본 것이다.
아정은 다짐했다.
이번 표행이 끝나면 장운 휘하에 가담하기로 말이다.
“우리 하오문도들은 퇴각하겠다!”
황금표국 여러 절정 고수의 발을 묶었던 하오호위대가 의견을 밝혔다.
본래 그들은 버티고 있다가 추가 병력을 지원받을 요량이었지만 문주가 사망하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의 총 책임자인 하오문주 엽공천이 사망함에 따라 기준의 계획은 모두 멈춘 상태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싸늘하게 식은 문주의 시신을 가져가는 일뿐이었다.
아니,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번 전투는 네놈들이 흉악한 계략을 꾸며 선제공격하였다. 추후 말을 꾸밀 수도 있으니…… 이 시신은 우리가 보관하겠다.”
신묘수사 아정이 나서서 그것을 가로막았다.
아정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오문은 정보를 다루는 만큼 나중에 황금표국 측에서 하오문주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살했다며 조작을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적어도 엽공천의 시신을 챙긴다면 그것을 반환받기 위해서라도 헛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우르르르!
결국 하오문도들은 애써 눈물을 삼키고 문주의 시신을 챙기지도 못한 채 퇴각하였다.
그러자 이제 남은 것은 명룡채의 산적들뿐이었다.
썰물 빠지듯 하오문 병력이 빠져나가자 홀로 황금표국 고수들을 마주해야 했던 산적들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들도 양심이 있다면 녹림의 일원으로서 황금표국에게 기습을 가한 걸 부끄러워해야 했다.
“부두목은 누구인가?”
장천호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부두목을 찾았다.
스윽!
그러자 누구 한 명이 쭈뼛대더니 곧바로 손을 들었다.
“제, 제가 부두목입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모두 지 채주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노, 녹림의 뜻은 물론이고 저희의 개인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치고는 용맹하게 싸웠지만 이는 추후에 추궁할 일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명룡채가 본 표국에 범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내 직접 녹림의 주인을 찾아 따지도록 하겠다.”
장천호의 일 처리는 실로 효율적이었다.
여기서 애꿎은 명룡채를 토벌하기보다 오늘 습격의 중심이었던 명룡부왕 지건악이 사망하였으니 실리를 취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녹림왕(綠林王)의 뜻이 아니라 지건악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말은 분명하다.’
녹림왕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벌일 작자가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게 어설프게 타인을 시켜 나서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끝장을 보는 자였다.
“그나저나…… 국주님! 현재 부상을 입은 자들이 많습니다.”
폭풍권 철대종이 다가와 보고를 하였다.
실제로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 조는 철대종이 지지하는 장건의 조였다.
장건의 조뿐만 아니라 무공을 거의 모르는 쟁자수 중에는 목숨을 잃거나 크나큰 부상을 입은 자들이 속출했다.
“으음.”
이에 장천호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태산이 있는 산동성까지 가려면 아직도 먼 길이 남았다.
사망자는 수습하되, 부상자를 이끌고 가면 늦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고민에 빠져 있던 그 순간이었다.
“국주님,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장운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나섰다.
* * *
장운이 제시한 방법은 다름 아닌 육로가 아니라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지금 녹림 소속인 명룡채와 한바탕 격전을 벌였으니 더 이상 녹림의 일원을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고, 또 육로로 가면 시간을 지체할 것이 뻔했다.
“산서수채를 이용하겠다는 뜻입니까? 저는 조금 걱정입니다.”
장운이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터로 향하자 신묘수사 아정이 의문을 표했다.
“국주님과 산서수채의 채주, 수중밀검 광표 채주께서 가까운 사이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인원이 워낙 많고 부상자까지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도움을 주진 않을 겁니다. 아니…… 그들은 우리의 위기를 핑계로 막대한 보상금을 달라고 요청할 것이 뻔하지요.”
아정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본디 산적이나 수적들은 표국의 금자를 빼먹으며 기생하는 족속들이었다.
그런 이상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엄청난 금자를 요구할 게 뻔했다.
아정의 말에 잔뜩 기대하였던 황금표국의 수뇌부들이 표정을 바꿔 실망하려는 그때였다.
스윽!
장운은 돌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광표 채주가 직접 그에게 건네주며 산서수채의 형제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했던 옥으로 만든 뿔소라, 즉 옥라였다.
“헉! 그, 그것은…….”
아정은 한눈에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본디 이 옥라는 수채에 하나 내지는 두 개 정도만 존재하는 물건으로 매우 귀한 귀빈이나 절친한 이들에게만 주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장천호조차 옥라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장운이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광표 채주께서는 이것을 제게 주며 혹시라도 산서성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주저 없이 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장운은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비록 만남은 짧았다고 하나 충분히 교류하였다.
아정이 장천호를 바라보니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장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옥라를 불었다.
뿌우우우우!
장운의 심후한 내공과 폐활량을 자랑하며 옥라의 소리는 나루터를 뚫고 저 멀리 황하의 강 줄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그 소리가 은근히 듣기 좋아 고향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략 일각이 흐를 무렵!
“보인다!”
“이럴 수가!”
“수적의 배가 분명해!”
“산서수채의 배다!”
경악스럽게도 옥라를 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산서수채의 일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범선과 함께였는데, 보기 힘든 큰 배가 보인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했다.
산서수채의 채주인 수중밀검 광표가 직접 등장했다는 뜻!
“여깁니다, 여기!”
장운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반겼다.
솔직히 말해 장운도 설마설마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장운 소협!”
광표는 장운을 발견하고 소리치다가, 이내 뒤에 있던 장천호를 발견하고는 살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부자(父子)들끼리 이렇게 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색이 마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기에 놀라움은 두 배였다.
“반갑소이다, 광 채주.”
장천호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기에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황금표국에 무슨 사정이 있나 봅니다.”
광표의 말에 이번에는 장운이 나섰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희를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장운이 부상자들과 사망자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광표의 예리한 눈매에 아정과 여타 수뇌부들은 잠시 긴장을 했다.
아무리 가깝다곤 하나 이들의 본질은 본디 도적들이다.
도적들은 빈틈을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찌르는 법.
실제로 명룡채의 채주였던 명룡부왕 지건악도 그러지 않았던가?
물론 광표는 그런 파렴치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수적 주제에 착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이라네. 자네에게 옥라를 준 것도 이런 때를 위해서 준 것이니. 그리고…….”
광표는 장운에 이어 장천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장 형께서도 계시니 옥라가 없더라도 도와드려야지.”
그것으로 수로행은 결정되었다.
산서성에서 산동성으로 가기까지 수로를 이용한다면 많은 시간과 물자가 절약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황금표국의 형제들을 돕지 않고!”
광표는 부상을 입은 자들에게는 치료를 해주었고 죽은 이들의 시신 처리마저도 도왔다.
게다가 이동하는 내내 운기조식을 할 수 있도록 호법을 서주었으며 황금표국 일행이 모두 회복되도록 비용마저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대략 오 일이 지날 무렵, 마침내 산동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맙소이다, 광 채주. 이 빚은 반드시 갚도록 하지요.”
이제 헤어질 때가 다가오자 장천호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인연을 맺은 시간은 명룡채가 더 길었으나 정작 어려울 때 도와주는 곳은 산서수채였던 것이다.
“빚은 없습니다. 장운 소협께서 옥라를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 산서수채와 외인이 아니니까요. 그 대신…….”
광표는 씨익 웃었다.
“산서성으로 표행 올 일이 있다면 육로보다 가급적 수로를 선택해 주십시오. 저렴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는 제대로 영업할 줄 아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