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61화 (61/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61화

화산파의 의뢰(3)

장운의 말은 다소 과감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장운의 말대로라면 황금표국의 안내를 맡은 대유곤의 시비와 배치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였다.

그리고 평소 표행 건으로 사이가 소원하던 화산파가 이례적으로 황금표국을 호출한 이유도 납득이 되었다.

‘표행을 가장하여 가짜 비급을 줘버리고 미끼로 이용한다!’

화산파의 무공 비급서라고 하면 정파 무인들도 눈이 돌아갈 만큼 혹하는 물건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어떻게든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때마침 화산파 고수가 아니라 다소 만만해 보이는 황금표국 무인들이 지키고 있다면 툭툭 건드릴 확률이 농후했다.

모든 중원 무림인들의 시선이 황금표국의 표물에 쏠린 사이, 진짜 비급서는 아마도 화산파의 뛰어난 고수 혹은 빈객이나 그들의 지인들이 안전하게 모셔갈 것이 분명했다.

“……!!”

장운의 정확한 지적에 장천호는 물론이고, 아정도 이제야 답을 찾은 듯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장운의 추측은 너무나도 일리가 있던 것이다.

“정말로…… 위험하고 과감한 발언이군.”

예정천이 눈썹을 꿈틀대며 입을 열었다.

실제로 장운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화산파 측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무례한 짓을 한 것이 된다.

합의도 하지 않고 가짜 비급서를 주어 미끼 노릇을 시키려 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끼가 되면 어마어마한 희생이 따른다.

아무리 화산파와 첫 거래를 트고 싶어 하는 황금표국이라지만 미끼 노릇은 사양이었다.

“불쾌하셨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그저 황금표국의 표두로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을 뿐입니다.”

장운은 예정천을 향해 한 번 더 포권을 하며 예의를 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천의 눈은 이전 온화하고 순한 모습과는 달리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자네는 자네의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는가?”

심지어 그는 대화로도 장운을 압박하려 하고 있었다.

하나 장룡, 장건이라면 모를까.

장운은 그 정도로 압박감을 느낄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발생한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무명소졸(無名小卒)의 기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책임을 묻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여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도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는 결코 뒤로 밀리지 않았다.

화산파 장문인을 상대로 한 발짝 전진하였다.

“만약 표행을 떠나고 나서 본 표행에 화산파의 무공 비급서가 있다는 소문이 갑자기 유출되거나 알고 보니 우리가 맡은 비급서가 진품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뢰 대금을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로 치르겠다는 계약서를 쓰시겠습니까?”

척하면 척이었다.

장운은 필요 이상으로 발끈하는 예정천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말이 정답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정말로 장운의 오해나 기우였다면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말이다.

“…….”

결국 예정천과 다른 장로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계획했던 속셈을 그대로 간파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황금표국에게 표행을 맡긴 다음, 화산파의 무공 비급서가 표물이란 것을 일부러 소문낼 계획이었다.

물론 그 비급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이니 소란과 번거로움은 황금표국에게 던진 뒤 진짜는 소요자에게 은밀히 건네려 하였다.

표물을 빼앗기지 않고 완수한다면 미끼로서 제 역할을 했으니 그것 나름대로도 좋은 것이고, 만약 표물을 빼앗긴다면 황금표국에게 별도의 보상금을 요청하려 했던 것이다.

아주 악랄한 속셈이 아닐 수 없었다.

“예 대협, 먼저 제 막내아들 놈의 발칙한 말에 사과를 드립니다. 하나…… 강호무림은 얼마든지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법이지요. 먼저 사과를 드릴 테니 제 막내아들, 장운의 말대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어떠십니까?”

장천호 또한 실로 노련한 사람이었다.

예의와 실리를 동시에 취하려 들었다.

“그런, 그…….”

대 화산파의 장문인은 뭐라 대답할지 당황하고 말았다.

계약서를 다시 쓰자니 장운의 말대로 비열한 계획을 꾸몄노라 인정하는 꼴이 되고, 계약서를 다시 안 쓰자니 황금표국에게 표행만 맡긴 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진짜 비급서를 의뢰하는 것.

“좋소이다. 무조건 진품 비급서를 맡겼다는 계약서를 쓰겠소이다. 하나 본 파의 무공 비급서가 외부로 이동한다는 소문은 우리 화산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귀 표국에 말했기도 하고…… 그 비급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니.”

예정천과 화산파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진품 비급서를 맡기되 소문이 나는 것까지는 감당 못 한다며 단언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대신 진품 비급서를 맡겼으니 먼저 화산파 측에서 소문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비급서인진 모르겠지만 힘들게 찾은 무공 비급을 잃기 싫다면 함구할 것이 뻔했다.

더군다나 화산파의 모든 무학에 통달했다는 화산무학 소요자에게 진품 의뢰를 맡길 정도면 거의 확신했다는 뜻이었다.

어렵사리 복원한 무공 비급이니 구태여 소문을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길고 길었던 화산파 표행 의뢰는 정식으로 수락되었다.

* * *

“장문 사형, 저, 정말로 가짜가 아니라 진짜 비급서를 맡겼습니까?”

매화신검의 사제이자 화산파의 두뇌 노릇을 한다는 청풍지낭(淸風智囊) 장지유가 다가와 물었다.

사실 황금표행에게 가짜 비급서를 주어 미끼로 쓰고 추후 위약금이나 보상금까지 타 먹이려 했던 일련의 계획은 다 장지유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끄응, 어쩔 수 없었네.”

화산파뿐만 아니라 중원에서 이름이 높은 예정천이 한 줄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금령공자 장운이라고 했나?’

솔직히 처음에는 우습게 봤었다.

과거 절름발이로 유명했기에 대성해 봤자 딱 초일류까지, 그 이상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하찮게 보았는데 이게 웬걸?

“장운이란 놈의 눈치와 지혜가 보통이 아니더군.”

예정천은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만약 장운만 아니었더라면 장지유의 계획은 완벽하게 들어맞았을 것이고 진품으로 보이는 비급서를 소요자에게 전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편해졌을 테니까.

“설마…… 황금표국 측에서 곧바로 눈치챌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장지유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황금표국을 미끼로 삼는다는 계획은 모두 철회하지. 구태여 소문을 내었다간 정말로 빼앗길지도 모르니까.”

예정천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장지유의 계략대로 되었다면 걱정거리도 덜고 완벽했을 텐데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데…… 본파가 자천신공(自泉神功)을 되찾았다는 걸 냄새 맡은 이들이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시국에 장지유는 당황하며 말했다.

천하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비밀은 없는 법이다.

특히 장지유는 황금표국이 틀림없이 미끼가 될 줄 알고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냄새를 맡은 자들이 있었다.

‘자천신공에 대해 감을 잡은 것 같은 문파는…… 총 두 곳!’

특히 그중 한 곳의 우두머리는 예정천조차도 애먹일 만한 고수였던 것이다.

장지유의 걱정에 예정천은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헛! 자네는 금령검객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예?”

“금령검객 장천호가 그저 평범한 고수였다면 본 파와 종남파 사이에서 성세를 떨칠 것 같은가?”

예정천은 거듭 말을 이어나갔다.

“자천신공 비급서 진본을 맡긴 이유는 단 하나야. 금령검객 장천호를 믿기 때문이지.”

* * *

“으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정식 의뢰를 하였다는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황금표국 일행이 전원 화산에서 하산하던 중 장운이 중얼거렸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반골 응운곤이 다가와 물었다.

그가 볼 때 이번 표행은 하등 걸릴 것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고 보아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감이 좀 좋지 않아서요.”

장운 역시 뭐라 딱 잡아 말하기는 그랬지만 기분이 기묘했다.

무언가 찝찝한 기분 말이다.

“별일 있겠습니까? 이번 일은 그저 소요자 선배님을 찾는 데만 주력하면 될 것 같은데요?”

감우량도 다가와 말했다.

그래도 장운의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의 기분과는 별개로 표행은 시작되었고, 천하 오대명산이라는 태산이 위치한 산동성으로 향하는 머나먼 여정이 남아 있었다.

섬서성에서 산동성까지 가려면 방법은 두 가지였다.

산서성을 거치고 가거나 아니면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 하남을 거치고 가거나.

이에 표국 사람들은 십중팔구 하남성을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남성에는 구파일방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고 꼽히는 소림사(少林寺)가 자리했고 그에 따라 치안도 안전했기 때문이다.

“모든 표두들 및 수뇌부들은 집합하라!”

마침내 섬서에서 벗어나 하남과 산서를 선택해야 하는 그날 밤, 국주 장천호가 모든 표두들과 수뇌부들을 소집했다.

그의 부름에 장운을 비롯하여 모든 인물들이 달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섬서성을 벗어나 산서성으로 향할 것이니 각자 일행에게 고지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장천호는 두 가지 갈림길 중 놀랍게도 산서성을 선택하였다.

그가 산서성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소림사의 존재로 인해 하남성은 녹림이 유일하게 기를 뻗지 못하는 곳인 반면, 산서성은 구파일방에 속하는 대형 문파가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녹림과 장강수로채가 번영하는 곳이었다.

그 말인즉 녹림과 공생하는 표국에게 있어 오히려 산서성이 더 편하고 빠른 길이 된다는 소리였다.

“특히 산서성에는 우리 황금표국과 오랜 친분이 있는 명룡채(鳴龍埰)가 있다. 필시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장천호가 말했다.

명룡채라고 하면 최근 들어 왕래는 거의 없지만 과거 장천호의 아버지 시절부터 꾸준히 친분을 쌓아온 산채였다.

산서로 가는 표행도 적고 분타도 없다 보니 지금은 서신으로만 왕래를 하고 있었다.

‘과연 아버님이시다.’

장운은 보다 확실한 길을 가는 장천호의 노련한 운영에 감탄을 하며 그대로 따랐다.

실제로 장운은 과거 명표사로 이름을 날렸던 장천호를 따르며 많은 것을 배웠다.

표행은 여전히 순탄하였고 황금표국 이들이 섬서를 지나 산서성에 도착해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다 왔군.”

다정검 인천수는 산서 명룡산 너머로 보이는 횃불을 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노숙을 하느라 피로가 극에 달한 차에 산채를 보게 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명룡채라면 필시 성대한 환영을 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누구요?”

밤중에 산채로 많은 이들이 다가오자 명룡채의 모든 산적들은 완전히 무장을 하며 다가왔다.

그 일행 중에는 이미 안면이 있는 명룡부왕(鳴龍斧王) 지건악도 있었다.

이 지건악은 녹림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손꼽히는 실력자이자 녹림 내부에서도 조만간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유력자로 유명했다.

“황금표국의 금령검객 장천호요.”

장천호는 지건악을 발견하자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반가워하는 황금표국 일행과 별개로, 웬일인지 명룡채와 지건악의 얼굴은 차가워 보였다.

급기야는.

“명룡채! 전원 공격!”

경악스럽게도 지건악은 수하들을 향해 급습을 지시하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게 무슨 짓이오?!”

장천호조차 현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무리 자신의 대(代)에서 명룡채와 사이가 다소 소원하긴 했다지만, 과거의 인연을 봐서 일방적인 공격은 안 될 일이었다.

장천호의 외침에 지건악은 그를 상징하는 커다란 도끼 뒤편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젠 소원한 과거의 친구보다 화산파의 무공 비급서가 더 탐이 나거든.”

화산파의 장지유가 정보 유출을 우려했던 두 곳.

그중 한 곳이 바로 이 명룡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