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59화
화산파의 의뢰(1)
장천호는 장운의 말에 다시 한번 몸을 격정적으로 떨며 감격하고 있었다.
장룡과 장건, 그리고 두 대모도 장운의 왼쪽 다리만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이제야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나.”
장천호는 장운의 어깨를 한차례 두드렸다.
감동의 격동이 천천히 사그라들 무렵.
“네 다리가 나았다고 구태여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일주일 뒤, 화산파가 의뢰하는 대형 표행을 하기 위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장천호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사실 이 화산파 표행은 올 초부터 조율하고 있던 건인데 마침내 날이 정해진 것이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오오, 드디어!”
그 말에 장운 때문에 기가 눌려 있던 장룡과 장건조차 놀라서 재차 물었다.
올겨울쯤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 더 시기가 빨랐던 것이다.
“그래. 매화신검(梅花神劍) 예정천 대협께서 직접 호출하셨다.”
매화신검이라는 말에 장운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에서 검으로 가장 유명한 고수 다섯을 꼽으라 한다면 반드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이 매화신검 예정천이었다.
섬서제일미 화산지화(華山之花) 예진설의 아비이자 초절정 고수인 그는 과거 검신과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사실 오늘 가족 모임을 급하게 주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네?”
또 한 번 의외의 말을 꺼내는 장천호.
“이번 화산파와의 표행은 우리 황금표국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주 귀하고 어려운 표행인 만큼, 나는 너희 셋을 모두 데려갈 생각이다.”
장운은 그의 말을 들으며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직감했다.
그것은 장룡과 장건도 마찬가지였다.
아비인 장천호가 세 아들을 모두 데리고 표행을 떠난다?
그 말인즉…….
“이번 화산파가 의뢰한 표행에서 두각을 드러내거나 가장 큰 공을 세우는 아들에게…… 내년에 있을 정식 후계자 선정에서 커다란 점수를 주도록 하마.”
후계자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허업!”
“……!!”
아니나 다를까?
아비의 말에 장룡과 장건은 물론, 두 대모도 놀라며 각자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너희 셋은 각자 열에서 스물 정도 최정예 일행을 꾸려 일주일 뒤 도열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장천호의 말에 장운을 포함한 세 아들이 일제히 외쳤다.
“넵!”
그리고 그들 뒤 대모들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세 아들에게 각자 최정예의 일행을 구성해서 오라고 하였다.
이는 경쟁이자 대결이나 다름이 없는 것.
장룡과 장건은 외가가 다들 대단하니 최대한 외가의 힘을 이용할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불리한 것은 바로 장운이라 할 수 있었다.
“너희 셋에게 있어 가장 공평한 경쟁이자…… 또 성장의 기회이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만약 후계 경쟁이라는 명목 아래 표행을 방해하거나 그르치는 일이 있다면 표국에서 축출을 할 테니 명심하거라!”
이에 다시 한번 아들들은 대답했지만 장룡과 장건은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현재 장운의 대활약 탓에 후계 경쟁에서 뒤처져 있었다.
이번 화산파 표행은 그들에게 있어 역전의 기회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두고 보자, 장운!’
‘후계 자리는 반드시 내 것이 될 테다.’
장룡과 장건은 이를 갈았다.
과연 그들은 반등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 * *
너무나 짧았던 일주일이 다시 흐르고, 황금표국의 세 아들은 제각각 병력을 구성을 완성하여 표국 본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모인 인물은 바로 금령공자 장운이었다.
장운은 지난번 철기맹 표행 때처럼 감우량, 응운곤, 천세은, 노관을 비롯하여 광룡쌍장 동곽까지 모두 동원하였다.
‘두 형께서 힘을 많이 주었군.’
이에 질세라 둘째인 장건의 일행도 초호화였다.
하나같이 뛰어난 표두들과 표사들은 물론이요, 그의 외가인 만광전장으로부터 초일류급 실력을 가진 호위무사 둘까지 대동하였다.
만광전장이 호위무사 둘을 빌려준 이유는 바로 서유화의 입김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았다.’
장건은 그 나름대로 진지했다.
그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세 사람 중 자신이 가장 불리하며 공적이 적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나 이번 표행에서 맹활약을 떨친다면, 그리고 자신의 외가인 만광전장이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역전하는 일도 꿈은 아니리라 관망했다.
“오오!”
세 아들 중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인 장룡이 일행과 함께 본관에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앞서 장운과 장건 일행도 제법 화려했지만 상대적으로 무명(無名)인 반면 장룡 일행은 달랐다.
“풍검문의 무인들!”
“그것도 전원 초일류의 무인들이다!”
일행을 데리고 오는 장룡의 얼굴에는 한 줄기 자부심이 보였다.
사람들의 말처럼 장룡은 무려 풍검문의 무인들을 대거 데리고 온 것이다.
이 또한 그의 어머니인 조소윤의 입김이 닿은 게 분명했다.
“으음, 하나같이 대단들 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 모습에 감우량과 노관이 주춤하였지만 장운은 내심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 형보다 자신의 일행이 더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오히려 우리 일행의 전력이 가장 강할 것이다. 저들은 일류, 초일류 고수는 많지만 절정 고수에 도달한 자는 하나도 없다.’
반면 장운 일행은 본인을 포함하여 천세은, 광룡쌍장 동곽까지 있으니 더 볼 것도 없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아직 장운과 천세은이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 왔느냐?”
마지막으로 이번 표행에 있어 핵심적인 인물이자 국주인 장천호까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뒤에는 부국주라고까지 불리는 실력자, 다정검 인천수와 둘째 집사인 신묘수사(神妙秀士) 아정이 있었다.
또한 둘째 대표두인 갈천궁수 배진필과 다섯째인 폭풍권 철대종이 포함되었다.
장천호를 포함하여 이 다섯이라면 어지간한 소문파 정도는 간단히 부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네, 아버님!”
장천호가 모습을 보이자 세 아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쳤다.
거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다들 들떠 보이는 것이 눈에 역력했다.
오직 단 한 사람.
장운을 제외하곤 말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화산파의 장문인인 예정천 대협을 만나러 화산으로 간다. 가서 표물과 더불어 의뢰 내용에 대해 들을 것이다. 다들 준비가 되었는가?”
장천호는 소싯적에 중원 최고의 명표사로 유명했다.
출발하기 전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넵!”
후계 자리를 건 경쟁이란 것도 잊은 채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 표행은 화산파에서 본 표국에게 맡기는 첫 번째 정식 의뢰이며 표행이 잘 풀릴 경우…… 서로 좋은 사이가 되어 종남파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표행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
다름 아닌 화산과 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숨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섬서의 패자는 화산과 종남, 더 상세하게 따지자면 화산이 성세가 큰 상황이었고 그에 비해 황금표국은 삼인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일인자와 친분을 맺는 것은 매우 지대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터.
“그럼 출발한다!”
그렇게 황금표국의 대운을 건 이동이 시작되었다.
* * *
장천호와 황금표국 일행이 화산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섬서를 진동시키는 초절정 고수, 금령검객 장천호와 더불어 내로라하는 황금표국 고수들이 집합했으니 누가 감히 건들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산파에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입구에서 화산파 일대제자 무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누구십니까?”
황금표국의 일행을 보고 말한 것은 화산파의 일대제자이자 뛰어난 후기지수로 손에 꼽힌다는 낙화검협(落花劍俠) 대유곤이었다.
일대제자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검객인 그는 평소 도도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오늘 모인 이들이 화산파 측에서 초청한 황금표국의 인물인 것을 잘 알지만 일부러 물으며 자신보다 한참 대선배인 금령검객 장천호와 독대하려 든 것이다.
이 대유곤이라는 자는 평소에도 명문 정파가 아니면 말을 잘 섞지 않으며 사람을 차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몰라서 묻는 것이오, 아니면 알면서도 묻는 것이오?”
대유곤의 말에 먼저 나서는 자가 있었다.
그는 당연히 장운이었다.
흠칫!
장운이 갑자기 나서자 놀란 것은 허를 찔린 대유곤이 아니라 오히려 두 형이었다. 두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천호와 황금표국의 수뇌부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공교롭게도 이 대유곤이라는 자는 장룡과 비슷한 또래였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장운의 말에 대유곤 또한 유쾌하지 않았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 황금표국이 오늘 귀 화산파에 방문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대도 알고 우리도 잘 아는 바요. 더욱이 본 표국의 국주님께서 직접 행차하셨으니 당장 달려와서 정중히 포권을 해도 모자랄 판에, 뭐? ‘누구십니까’?”
장운이 화를 내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이었다.
실제로 대유곤은 황금표국을 상대로 특유의 견제와 무시를 하고 있었다.
황금표국이 섬서성의 삼인자라고 해도 그래 봐야 표국이라며 비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작금이었다.
이에 장룡과 장건은 몰라도 전생의 경험으로 인하여 눈치가 빠른 장운이 나선 것이었다.
“그, 그건…….”
아니나 다를까?
정곡을 제대로 찔리자 대유곤은 크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고 말았다.
“우리가 누군지 알면서도 물었다면 귀하는 위아래도 모르는 무례한 사람이고, 모르면서 물었다면 천하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일 것이오. 다시 묻겠소이다.”
장운은 직설적이었고 거침없었으며 받은 만큼 돌려주는 인물이었다.
“귀하는 무례한 사람이오, 아니면 멍청한 사람이오?”
아울러 장운이 이토록 나서는 것에는 다 계산이 있었다.
장천호는 황금표국을 나서는 순간부터 경쟁이자 차기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하였다.
장운이 대유곤에게 맞불을 놓은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황금표국은 내가 물려받게 될 곳이다.’
그곳을 우습게 보는 것은 화산은 물론이요, 구파일방과 무림맹, 사흑천도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이이익! 어디서 내게!”
결국 대유곤은 폭발하며 자신의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스윽!
그가 전투태세를 취하자 장운도 역시 검은색 천으로 감긴 초령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화산파 일대제자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대유곤은 마침 잘 걸렸다는 듯이 살기에 내공을 담아 장운을 노려보았지만.
‘어어? 내가 왜 이러지?’
도리어 장운의 살기와 내공으로 인해 점점 위축이 되고 심장이 빨리 뛰어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은 대유곤 쪽이었다.
장운은 이미 절정 고수며 특히 내공 부분에서는 초절정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물며 아직 초일류 수준에 불과한 대유곤이 내공 대결로 승산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장운의 완승이었으며, 나아가 장천호와 수뇌부들 앞에서 엄청난 점수를 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