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9화 (9/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화

정식 표행(鏢行)에서 활약하다(1)

“으으으.”

“추워.”

“훌쩍!”

출발하기도 전에 장운을 비웃던 장건 파벌의 이급 표사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떨어지고 그들은 곧바로 낭패를 보고 말았다.

섬서성 인근을 지나가자마자 훌쩍 달라지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였고 인근 야산에 노숙을 하며 덜덜 떨고 있었다.

비교적 온화한 기후의 섬서와는 달리 서쪽으로 향할수록 날씨는 변덕을 부렸던 것이다.

치직, 치이이익!

비웃던 자들은 고생한 반면 비웃음을 샀던 장운은 반대로 호평을 받고 있었다.

장운은 너무나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급 표사들 사이에 모닥불을 피워주었다.

본디 불씨를 관리하는 소관은 쟁자수 중에서도 솜씨가 좋고 노련한 자가 맡는 임무였지만, 장운이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였고 그 결과는 지금 증명하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한 번이라도 숙영을 해본 자라면 불씨를 피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인지 잘 알 것이다.

특히나 바닥이 습하고 젖은 나뭇잎 사이에서 불꽃을 피우는 것은 노련한 쟁자수들조차 애먹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불씨를 일으키는 값비싼 화섭자(火攝子)를 험하게 다룰 수도 없고 일종의 요령이 필요한데, 장운의 실전 스승은 무려 상수 중의 상수, 노관이 아니던가?

“지금은 불꽃이 호기롭게 올라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습기에 잡아먹힐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외풍을 조심하고 태울 것을 부지런히 방비하셔야 합니다.”

장운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방심하여 얇은 모피 때문에 덜덜 떨고 있는 이급 표사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이런 허드렛일은 쟁자수의 몫이라고 해도 개인에게 필요한 물품은 본인 소관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 알겠네.”

이급 표사들은 잔뜩 기가 죽은 채로 대답을 하였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쟁자수들은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가끔 뭣도 모르는 표사들이 노련한 쟁자수들을 상대로 기싸움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운의 결과는 더더욱 통쾌했던 것이다.

“여보게, 장운이.”

“자네 자리는 우리가 마련하였네.”

“이곳으로 오게.”

황금표국의 국주 장천호가 직접 말하길 표행에 있어서 아무리 자신의 아들들이라고 해도 특별 대우 하지 말라고 엄격히 일렀기에 쟁자수들은 장운을 편하게 대하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막내급 쟁자수인 장운은 표사와 표두의 잠자리를 챙기느라 바빴고 그런 장운에게 다른 쟁자수들이 친절을 베풀었다.

“아니네.”

“자네를 비웃던 이급 표사들 기가 죽은 것 좀 보게.”

“쿡쿡, 어찌나 통쾌하던지.”

쟁자수들은 애써 입을 가리며 소리를 죽였다.

오늘 장운을 비웃던 자들은 하나 같이 쟁자수에게 홀대하던 이들이었는데 오늘 큰코다친 것이다.

“그나저나…… 자네를 다시 봤네.”

“맞아. 감숙성은 우리 황금표국이 표행을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 그쪽 기후를 아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야.”

“얼굴이나 나이는 매우 어린데 하는 짓은 상수 중의 상수로세.”

그들은 이윽고 장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닙니다. 이게 다 선배님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죠.”

장운은 표국의 말단인 쟁자수들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

차후 자신이 세력을 일으킬 때 유능한 인재가 필요할 것이고 그 유능한 인재는 비단 표사나 표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장운이 실제로 표행을 나서며 뼈저리게 느낀 것이 전투가 일어나거나 녹림도와 마주치지 않는 이상 표행에서 가장 바쁘고 일이 많은 이들은 바로 이 쟁자수들이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유능한 쟁자수들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인다면 경쟁력이 생길 터.

미래를 위해서라도 장운은 이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자네를 완전히 인정했다네.”

“맞아, 이번 표행은 적어도 쟁자수들의 텃세는 없어.”

“텃세는 무슨. 우리들이 장운에게 배워야 할 판인데.”

초반부터 모든 쟁자수들에게 인정을 받아버린 장운이었다.

비록 제대로 된 표행은 처음이어도 장운은 더 이상 겁이 나거나 두렵지 않았다.

특히 감숙성으로 가게 된 것도 장운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쪽 길목으로 들면 대설산으로 더 빨리 향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섬서를 완전히 떠나 감숙으로 들어선 대로에서 장운이 다시 한번 나섰다.

“으음? 이 길로?”

이에 표행에 있어 모든 판단을 결정 내리는 장본인인 표두 전뢰창 감우량이 약간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표두 정도 되면 중원 천지에 모르는 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감우량조차 모르는 길이 바로 장운이 가리킨 길이었다.

“네.”

반면 확신에 찬 장운의 표정.

“이 길로 가면 오히려 목적지인 난주로 향하는 거리가 더 길어질 터인데?”

일리 있는 말을 하는 감우량의 대답에 장운의 두 눈이 반짝였다.

“본 표국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대설산채를 거쳐서 난주로 향하는 것 아닌지요? 표국의 일원으로서 다른 성에 들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녹림도와 마주쳐야 하니 말입니다.”

장운의 대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표행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였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의 목적은 난주로 빨리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설산채를 들린 채로 난주에 향해야 하는 것이다!’

감우량은 놀란 눈치를 감추지 못하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황금표국이 감숙성에 왔는데 대설산채를 들리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면 당연히 대설산채와 채주는 서운한 마음을 품을 것이고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불필요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표국과 녹림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현 목표는 난주로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가 아니라 대설산채를 들리는 경로로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했다.

“대설산으로 빨리 가는 최단 거리는 바로 이 길입니다.”

전혀 흔들림없는 장운의 눈에 결국 표두인 감우량도 흔들리고 말았다.

사실 이는 장운에게 있어서도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표두가 둘째 형인 장건 휘하의 인물이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한낱 쟁자수인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어디 자네 말을 한번 믿어보도록 하지.”

감우량이 장운의 말을 들어준 것은 손해 볼 일이 없어서였다.

만약 이 길이 틀렸다면 장운에게 벌을 주어 기강을 바로 잡으면 될 것이고, 그의 말이 맞아 이득을 보았다면 새로운 길을 알게 된 셈이니 이는 표두인 자신의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쟁자수 따위가 어디 감히 표두님께 의견을 내?”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국주님의 핏줄이라고 해도 여긴 표국 내부가 아니라 표행 중이라고.”

“흥! 한번 잘난 체를 하더니 기가 살았군.”

장운의 말을 듣고 본래 경로가 아니라 다른 지름길로 향하면서 많은 비난들이 장운의 등 뒤로 쏟아졌다.

특히 본래의 여유롭고 고즈넉한 길이 아닌 다소 가파른 길이 나오며 눈총이 쏟아질 찰나!

“엇? 대, 대설산이다!”

“산채가 보인다!”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운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사실 황금표국이 아는 길은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이었고 장운이 제시한 길은 약간은 가파를지언정 직진하여 돌파하는 경로였기 때문이다.

스윽!

이 명확한 결과에 장운은 자신에게 비난을 가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

유구무언(有口無言).

비난을 가하던 입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장운은 더 이상 미천한 쟁자수가 아니었다.

표행을 주도하는 인물이자 활약을 하는 재인(才人)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장운 덕분에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대설산과 마주할 수 있었고, 예로부터 명산에는 호걸들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녹림도들이 존재했다.

“오오, 황금표국의 벗들이구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오셨소이다.”

통보한 날짜보다 대략 이틀에서 삼일이나 빠른 도착에 대설산채의 채주, 설왕도(雪王刀) 공칠은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하마터면 예기치 않은 적의 외침(外侵)인 줄 알고 날카롭게 대응할 뻔하였다.

“대설산의 호걸들이시로군. 오랜만입니다. 전뢰창 감우량입니다.”

감우량은 정중히 포권을 하며 예의를 표했다.

공칠과 감우량은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서로 조심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녹림의 산적들!’

두 우두머리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장운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운은 녹림과 만나는 것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과거 천하제일검 검신 시절, 뭣도 모르고 시비를 걸어오는 산적 몇몇을 털어버린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대설산채의 호걸들을 뵈었으니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감우량은 예의를 철저히 지키며 언제나 그러했듯 통행료를 준비했다.

표국과 녹림이 공생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라 걱정하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으하하핫! 확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채주인 공칠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통행료를 세어보지도 않고 가죽 주머니 채로 수하들에게 넘겼다.

“이렇게 일찍 당도하셨으니 우리 산채로 가서 따뜻하게 밤을 보내고 떠나시는 게 어떠실지요?”

문제가 일어나거나 싸움이 벌어지기는커녕 대설산채의 채주인 공칠은 친절을 베풀기까지 했다.

본래 대설산채는 녹림의 여러 산채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특히 설왕도 공칠의 무공 실력과 내공이 탁월해서 명문 정파의 제자 못지않기로 평판이 자자했다.

“으음.”

뜻하지 않은 제의에 감우량의 고민이 깊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표두님. 잠시 쉬어가시죠.”

“맞습니다. 솔직히…… 저희들이 너무 추워서 모피도 좀 얻고 오늘 하룻밤을 따스이 묵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급 표사들이 나서서 고민하던 감우량을 설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감숙성의 기후를 우습게 보고 방비를 대충하고 쟁자수들을 무시한 그들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었다.

그들의 말에 감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급 표사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포목점에 들러 모포를 사려고 하였다.’

이런 산채에서는 널리고 널린 것이 두꺼운 짐승들의 가죽 모피이니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표국 상부에서는 표두들에게 산채의 초청을 웬만하면 거절하지 말고 거절할 경우 열과 성을 다하여 예의를 차리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답은 정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세를 지도록 하죠.”

* * *

표사들과 산적들이 하나가 되어 술잔을 기울이며 멧돼지를 굽고 있었다.

비록 투박한 산채라고 해도 허허벌판에서 노숙을 하는 것보단 훨씬 더 나은 일이라 표국 사람들은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하, 모피와 가죽이 필요하셨구나.”

서로 술을 마시며 감우량은 사정을 설명하였고 채주 공칠은 산 사나이답게 호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채주! 여우 모피랑 두꺼운 모포 남은 거 좀 들고 오지!”

공칠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곧바로 물품을 준비하여 감우량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이거 너무 죄송스러워서…… 성대한 대접도 그러고 모피도 보통 가격이 아니니 제대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감우량은 자신과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닌 공칠이 인정을 베풀자 크게 감격하여 성의를 보이려고 하였다.

산적들에게 성의란 당연히 금자를 주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표행의 표두에게 주어지는 비상 금자를 일정 꺼내려는 순간!

“에헤이! 우리 대설산의 사나이들을 뭐로 보고 그러십니까?”

금자라면 환장하는 녹림의 산적들은 이상하게도 정색까지 하며 손을 내젓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희 대설산채의 성의입니다.”

급기야 부채주인 당랑겸(螳螂鎌) 묘산까지 손사래를 치며 채주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래도 이거 미안해서…….”

감우량은 전혀 예기치 않은 친절에 난감해하던 그때 공칠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금자를 그냥 받기는 좀 그렇고…… 내기를 하나 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