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4화
다시 태어난 장운(2)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의 뜻은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글공부를 한다는 뜻이었지만 장운은 조금 달랐다.
“쟁자수(爭子手)는 흔히 알려져 있기로 짐을 옮기는 짐꾼 혹은 잡부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아니 될 말입니다. 쟁자수야말로 표행에 있어서 일원을 이루는 최소의 단위이자 시작점인 것입니다. 주로 하는 일은 호송과 관련된 모든 것이며…….”
노련한 쟁자수, 상수 노관의 지도 아래 아침에는 쟁자수와 표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공부했으며,
-천허심법(天許心法)!
야밤에 혼자 있을 때는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그렇게 몰두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장운의 천허심법 성취는 일성을 이루게 되었다.
혹자는 고작 일성이 뭐냐고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무공에 눈을 뜬 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류 고수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이것은 보통의 빠르기가 아니었다.
불세출의 천재 무골이라고 불린 검신 장인랑도 무공에 입문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 이류 고수에 도달하였다.
아무리 좋은 스승에 한 번 걸어본 길이라고 해도 이 속도는 경악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또한 세간 사람들은 이류 수준을 무시하는데, 일반적인 표사들의 무공 수준이 이류인 것을 미루어 본다면 장족의 발전인 것이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장운은 육성으로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 환골탈태까지는 먼 거리가 남았어도 다시 살아나 무공을 익히는 것만 해도 그에게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련님. 간단한 밀어내기 표행이 있사옵니다. 참가해 보시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상수 노관이 다가와 제안을 하였다.
이 밀어내기 표행은 다름이 아니라, 표국 본국에 있는 물류를 조금 멀리 떨어진 후방 창고로 이동시키는 매우 간단한 표행이었다.
녹림의 길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어서 표두가 붙지 않고 짐을 옆으로 밀어낸다고 하여 붙은 별칭이 바로 이 밀어내기 표행이었다.
‘본래는 이 밀어내기 표행도 아무나 보내진 않지만…….’
노관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놀랍게도 자신의 윗선에서 셋째 공자 장운에게 밀어내기 표행을 가도 좋다고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밀어내기 표행은 분명 후방 창고로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거나 재화를 적재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맞습니다. 본래 표행에는 무조건 최종 책임자, 표두가 붙는 법인데 이 밀어내기 표행은 표두 대신 세 명의 표사만이 붙을 뿐입니다.”
노관의 차분한 설명에 제대로 된 표행이 아닌 것에 대하여 약간의 실망도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해보겠습니다.”
장운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았다.
아니,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동시에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잘하면 내게 조금 더 중한 표행이 주어질 것이다.’
실망하여 일을 대충대충 하기보다는 실전의 기회에 감사하기로 판단했다.
“좋습니다. 표행은 오후에 바로 출발한다고 하니 준비하시지요.”
노관의 말에 장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장운에게 있어서 첫 실전인 것이다.
과연 그는 이 기본적인 표행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 * *
“네에? 셋째 공자님이요?”
이번 밀어내기 표행의 세 표사 중 가장 연차가 오래된 대력도(大力刀) 호준은 난처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거 오랜만에 편한 표행 좀 다녀오나 했더니…… 설마 절름발이 이놈이 붙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표국 내부에서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절름발이 셋째 공자가 드디어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라 다시 국주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는 소문 말이다.
“스읍, 아무리 밀어내기 표행이라도 이건 좀…….”
호준이 난색을 표하자 특별히 장운과 동행하기로 한 노관이 보증을 섰다.
“걱정 말게나. 셋째 도련님께서 대우받으려고 나선 것은 아니네. 그저 다른 쟁자수들과 동일한 대우를 해주면 되니. 맞지요, 도련님?”
사실 노관이 따라나서는 것도 일종의 특혜였지만 첫 표행이니만큼 노관이 나서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표행 때는 편하게 장운이라고 부르십시오.”
장운은 오히려 한술을 더 떠서 파격적인 말까지 하였다.
“아니, 저어…….”
표사 대력도 호준을 비롯하여 다른 두 표사는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간만에 표두도 없고 날로 먹는 표행에 기뻐했는데 이런 혹덩이가 붙을 줄이야.
“어서 서두르지. 섬서성 후방 창고라고 해도 남측 끝에 있으니 서둘러 움직여야 해가 지기 전에 다녀올 수 있다네.”
수십 년 동안 황금표국에 이바지한 탓에 상수 노관의 위치는 일반 표사들보다 높았고 표두보다는 낮았다.
노관의 재촉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호준은 승낙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매우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어차피 장운은 쟁자수들과 함께하게 될 것이고, 표행은 오래 걸려봐야 반나절에 불과했다.
‘그래, 이 표행은 금방 끝나니.’
딱히 오랫동안 마주칠 일도 없겠다, 빨리 다녀오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대력도 호준 표사의 인도 아래 장운은 대망의 첫 표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표행은 황금표국 본국에 쌓여 있는 기와나 자잘한 금속들을 후방 창고로 이동시키는 간단한 업무였다.
“그러니…… 거리는 짧아도 짐을 나르는 무게는 상당히 무거운데…….”
“도련님, 아니, 장운 쟁자수가 할 수 있을까?”
“흠흠, 그러게 말이야.”
출발하자마자 쟁자수들의 텃세가 시작되었다.
언뜻 보면 그냥 건수를 잡아 시비를 거는 것 같아도, 이것은 쟁자수 수업 때와 확연히 다른 경우였다.
이번 표행은 금속과 철재들이 많아 제법 무거웠고 쟁자수가 1인분을 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무게는 다른 사람들이 떠안게 된다.
즉, 다리가 불편한 장운이 이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한다면, 고스란히 다른 쟁자수들이 해야 하기에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못 들 것처럼 보입니까?”
이에 장운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었다.
그 모습에 노관은 짐을 드느냐 들 수 없느냐 결과에 상관없이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장운 도련님께서…… 너무나 달라지셨다.’
과거의 장운 같았으면 이런 분위기가 되자마자 우울해지며 얼굴이 시뻘게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한데 지금 장운의 모습을 좀 보라.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여유가 넘치지 않은가?
여유는 무릇 자신감에서 나오는 법.
‘보여주지.’
장운은 아직도 약간 발을 절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천허심법(天許心法)!
그에게는 천허심법으로 인하여 이류 고수 수준에 달하는 내기가 존재했다.
장운은 그 내공을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무거운 짐을 들었다.
스윽!
그것도 양손에 가득 들어 1인분의 몫이 아니라 2인분, 3인분의 몫을 해내었다.
우와아아!
그 장사와 같은 모습에 쟁자수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한 기질을 자랑하는 쟁자수들조차 신입 때는 제대로 짐을 들지 못해 낑낑대거나 고전을 하곤 했다.
제아무리 힘 좀 쓴다고 해도 힘을 쓰는 것과 짐을 잘 드는 것은 요령과 관련된 것이기에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늘 저 때문에 표행 출발 시간이 지연되었으니 남은 몫도 제가 옮기겠습니다.”
달라진 장운은 정중하되 절대로 얕볼 수 없는 기품을 보였다.
넋이 빠져 경악하고 있는 쟁자수들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무거운 짐마저 모조리 마차로 옮겼다.
이것은 타고난 장사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저 샌님 같던 도련님이 달라졌는걸?”
그 모습에 표두를 대신하여 선 세 명의 표사도 놀란 눈치였다.
대력도 호준을 제외한 나머지 두 표사는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흥, 그래봤자 건강해진 수준이지.”
반면 호준은 심드렁했다.
그의 실력은 표사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며 일류 진입을 앞두었을뿐더러, 대력도라는 별호답게 강한 힘으로 유명했기에 저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여긴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의 한낱 유흥 아니겠어? 대충대충 가자고.”
호준은 흥미 없다는 듯이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표행에 집중하였다.
* * *
녹림의 지름길도 이용하지 않아 산적도, 전투도 없는 평온하고도 지루한 표행.
그것이 지금 장운이 겪고 있는 표행이었다.
“생각과 달리 지루하지요? 한데…… 표행은 본래 지루해야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 없이 안전히 끝나야 하니까요.”
노관은 다른 쟁자수들에게서 인정받는 장운을 바라보며 뿌듯했던지 스승의 심정으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장운이 말하자,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다네.”
“맞아. 우리 쟁자수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지.”
“그래도 표행이 완료되고 나면 뿌듯한 것은 표두나 우리 쟁자수들이나 매한가지 아니겠어?”
완고한 쟁자수들은 마침내 마음을 열어 장운을 일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쟁자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를 절면서도 솔선수범하는 장운의 모습에 그가 다시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아, 드디어 셋째 도련님께서 철이 들었구나.
모두가 다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돌이켜 보건대 첫째나 둘째 도련님이 쟁자수의 가장 낮은 말단 업무부터 배웠던 적이 있던가?
다들 국주인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표두 노릇부터 하곤 하였다.
그에 비해 장운은 아직 그들보다 무공 실력이 부족할지언정 쟁자수 업무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현장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기특하고 예뻐 보인 것이다.
“정지! 곧 목적지에 도착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밀어내기 표행은 마무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장운이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활약한 탓에 밀어내기 표행은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나 섬서 후방 창고에 바로 도착하였다.
“자, 이제 다시 마차에 있던 짐을 창고 내부로 적재하면 된다네.”
다른 쟁자수들의 지시에 장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짐을 든 순간.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고요하고 지루하던 표행이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휘말린 것은 다름 아닌 장운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쓸모없는 하급 금속이나 철재를 옮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금자가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장운의 말에 쟁자수들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에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맞아. 금자라니. 금자나 비단 같이 뛰어난 값어치를 지닌 것은 밀어내기 표행 목록에 없을뿐더러 절대로 끼어서도 안 되지.”
그렇게 그냥 지나가려던 분위기인데도 장운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상하다. 진짜로 금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인데…….”
장운은 전생에 많은 경험을 한 무림인이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할 만한 많은 금괴와 금자를 손에 넣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금괴끼리 부딪치며 내는 특유의 금속성 소리를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호준 표사!”
장운의 말에 노련한 상수 노관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하고는 책임 표사인 호준을 불렀다.
본래는 표두가 책임지고 나서서 확인하는 것이 관례지만, 표두가 없을 때는 쟁자수 책임자와 책임 표사가 나란히 확인을 해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콰직!
평온하고 나른한 모습으로 잠자코 있던 대력도 호준이 돌연 도를 빼어 들더니 돌연 기습하여 자신을 제외한 두 표사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억!”
“끄억!”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공격이기도 했고 두 사람 모두 호준보다 하수였기에 꼼짝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냥 못 본 척 지나쳤어야지 말이야. 사람이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되겠어?”
호준이 살심 어린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