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화. 수니르 모터스 (5)
비상장 주식이라 해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정관리 소식이 나온 뒤, 수니르 모터스의 주가는 10분의 1로 폭락했고, 투자사들은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 소식이 알려지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소문에 따르면 컨티뉴 캐피탈은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한 수니르 모터스의 BW 중 워런트를 제외한 채권을 전부 인수했다.
거래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액면가의 30~40퍼센트 선을 예상했다.
샤크 매니지먼트의 CEO 마이클 프레스턴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 받으며 자료를 면밀하게 살폈다.
이번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샤크 매니지먼트 역시 거액을 물렸기 때문.
한때 그는 모든 투자를 성공시키며 불패의 명성을 자랑했고, 샤크 매니지먼트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
토머스 모터스를 시작으로 투자에 줄줄이 실패했다.
그중 가장 결정타는 바로 게임스타트 사태.
그로 인해 샤크 매니지먼트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보유 자산의 30퍼센트를 넘게 날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가 투자에 실패한 것들은 전부 컨티뉴 캐피탈과 관련이 있었다.
‘데이비드 록허트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원래 그는 데이비드 록허트를 샤크 매니지먼트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단지 공을 들이는 것을 넘어 약간의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데이비드는 컨티뉴 캐피탈로 가서 공동대표가 됐고, 지금은 월스트리트 최고의 투자자로 거듭났다.
그 일을 벌써 수백 번이나 후회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정확히 뭐가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컨티뉴 캐피탈이 수니르 모터스의 회생에 베팅했다는 것은 분명해.’
게임스타트 사태를 겪으며 그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건 바로 절대로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에 맞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수니르 모터스에 추가로 투자한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망하기 직전의 기업이 되살아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엄청나다.
‘이는 절호의 기회야!’
이런 생각을 한 게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 * *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 소식은 하락하던 수니르 그룹의 주가마저 밀어 올렸다.
아누팜 수니르 회장은 놀라서 바로 송 가즈키 회장에게 연락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송 가즈키 회장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BW를 컨티뉴 캐피탈에 매각한 게 사실입니까?”
[채권만 매각했을 뿐, 신주인수권은 여전히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분과 경영권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대규모 채권을 매각하는 일이면, 미리 상의를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연락을 안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
아누팜 수니르 회장은 그동안 계속해서 송 가즈키 회장의 연락을 피해왔다. 그런 만큼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물론 그냥 회사 메일로 보내도 됐겠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그럴 의무는 없었다.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인 만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누팜 수니르 회장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통화를 끝내고 나서 생각했다.
수니르 그룹은 인도 정부와 구제금융에 대해 협상 중이었다.
어느 정도 협상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데, 엄청난 변수가 생겨났다.
바로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변수가.
* * *
난 거래가 마무리되는 동안 도쿄의 JR블랙우드 호텔에서 머물렀다.
기왕 일본에 온 김에 호텔 컨시어지를 통해 주변의 유명하다는 맛집들을 예약했다.
돈이 있으면 어디에 있든 이처럼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래도 혼자 먹으니 왠지 좀 외롭다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심심함과 외로움은 어쩔 수 없구나.
음, 한세나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
난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무슨 헛생각을.
잠시 반성하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설인데 왜 집에 안 와?]
그러고 보니, 어느새 설이다.
“세나에게 들으셨겠지만, 회사 일 때문에 해외 출장 와있습니다.
[거기는 무슨 명절에도 일을 시켜? 다들 고향 안 간대?]
“음, 외국계 회사라서요.”
[외국계인 게 무슨 상관이야?]
“…….”
상관이 있다.
안타깝게도 음력설 문화가 아직 서양까지는 도착하지 못했으니까.
참고로 컨티뉴 캐피탈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염연한 미국 투자사.
[그래도 명절이고 친척들 다 왔는데, 너도 와야지.]
“다음에 갈게요.”
명절 아닐 때.
그리고 친척들 없을 때.
대리 효도를 시킬 수 있는 동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내가 집에 가야 했을 테니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고?]
“그럼요. 잘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안 하게 행동해야 걱정을 안 하지.]
“……네.”
어차피 뭘 해도 걱정하실 거면서.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은 분위기라 난 괜히 바쁜 척했다.
“아! 지금 중요한 전화가 들어와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밥 꼭 챙겨 먹고.]
“넵.”
통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정말로 전화가 걸려왔다.
난 스마트폰에 떠있는 이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이 형이 왜 전화 안 하나 했네.”
* * *
대부분의 신흥국들이 그러하듯 인도 역시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높게 정해놓았다.
때문에 인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직접 공장을 지어야 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이 워낙 빠르게 성장 중인 만큼, 기성 전기차 업체들 역시 이 시장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곳은 티슬라.
티슬라는 현재 인도에 메가팩토리 공장 건립 문제를 놓고, 조율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식을 접한 알렌 에버하트는 기가 막혔다.
‘컨티뉴 캐피탈이 수니르 모터스에 투자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
다른 사람이 똑같은 투자를 했다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루는 예외였다.
만만하거나 두렵다는 걸 넘어서, 아예 파악조차 되지 않는 존재니까.
오죽 답답해 회사에 쳐들어가다시피 해서 만나보기까지 했지만, 역시나 속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는 궁금증을 잘 못 참는 성격이다.
그래서 바로 당사자에게 전화해 물어보았다.
“수니르 모터스에 투자했다며? 설마 티슬라와 경쟁이라도 할 생각이야?”
[에이, 그럴 리가요. 그저 채권만 사들인 것뿐이에요.]
“정말이야?”
[네.]
알렌 에버하트는 그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BW나 CB가 아니라도, 협상 과정에서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거기 투자할 거면 나한테 미리 물어보지 그랬어? 나만큼 전기차 업체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어.”
[물어봤으면요?]
“하지 말라고 뜯어말렸겠지.”
[그럴까 봐 안 물어봤어요.]
“솔직히 걔네 차 엄청 구려. 내가 발로 만들어도 그것보단 잘 만들걸.”
[경쟁사라고 깎아내리는 거 아니에요?]
알렌 에버하트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딴 차를 만드는데, 티슬라의 경쟁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
그 말에 한미루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긴 하겠네요. 어느 회사도 티슬라처럼 차를 잘 만들지는 못하니까요.]
“아니까 다행이네.”
[역시 티슬라가 최고죠. 그래서 제가 투자한 것 아니겠어요?]
지난번 공매도 이후, 한미루는 러시펀드를 통해 티슬라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덕분에 티슬라는 주가가 두 배 넘게 올랐다.
그 말에 알렌 에버하트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설마 수니르 모터스 지분을 인수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그럼요. 수익만 내고 빠져나올 겁니다.]
“좋아. 그럼 오케이.”
한미루와의 통화를 끝낸 알렌 에버하트는 중얼거렸다.
“정말 그게 다일까? 이 친구는 왠지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 * *
컨티뉴 캐피탈은 인사이트 펀드 측이 보유하고 있던 수니르 모터스 채권 인수 절차에 들어갔다.
채권의 액면가는 160억 달러.
5년 만기에 금리는 4.5퍼센트.
신흥국인 인도는 기준금리가 높은 편이다. 때문에 인도 기업 회사채 중에는 10퍼센트가 넘어가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금리가 4.5퍼센트밖에 안 되는 건 BW이기 때문.
BW는 신주인수권이라는 워런트가 붙인 만큼, 일반 채권에 비해 낮은 금리로 발행된다.
워런트를 분리해 매수하는 가격은 액면가의 35퍼센트인 56억 달러.
금액을 송금하고 인수 절차가 끝나자,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컨티뉴 캐피탈이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인수한 사실은 이미 월스트리트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들 수니르 모터스가 망할 거라 생각했으나,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 소식이 알려진 뒤로는 회생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일반적으로 채권 투자는 만기까지 기다리거나, 중간에 가격이 오르면 매각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투자는 채권단 협상이라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한미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권 인수가 끝났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그래서 협상 가격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데이비드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인도 정부 측이 제시할 수 있는 건 40퍼센트가 한계일 겁니다.]
인사이트 펀드 역시 이를 알기에 35퍼센트 가격에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나머지는요?]
“부채 탕감과 주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할 겁니다.”
[40퍼센트에 협상을 한다고 해도 그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예. 분할상환과 만기연장을 요구할 테니까요. 그래도 채권단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채권과 주식 워런트를 다시 매각할 수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160억 달러의 5퍼센트면 이것만 해도 8억 달러다.
투자금이 56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약 15퍼센트에 달하는 수익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업이 살아날 경우지만.
데이비드는 분석 결과 충분히 자신했다.
그런데 한미루가 갑자기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생각해보니, 굳이 채권단 협상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채권은 정해진 날짜에 원금과 이자를 갚겠다는 약속이잖아요. 그러니 한 푼도 빠짐없이 다 받는 게 맞지 않겠어요?]
한참 후, 데이비드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