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27화 (527/529)

527화. 수니르 모터스 (4)

전기차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주행거리는 짧았고, 가격은 비쌌고, 충전 인프라는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전기차가 대세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여기에 투자한 이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티슬라 CEO 알렌 에버하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고, BID 지분 5퍼센트를 매수한 에런 베이커는 투자금의 약 30배를 벌어들였다.

인사이트 펀드는 세계 최대 벤처 캐피탈 펀드.

스타트업과 기술주에 주로 투자하는 만큼, 여기에 전기차가 빠질 수는 없었다.

송 가즈키 회장이 선택한 것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바로 인도였다.

인도는 기회의 땅이다.

인사이트 펀드는 일찌감치 인도 시장을 눈여겨보았고, 전략금융부문장에 인도인을 앉혀 인도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물류 벤처기업 딜리베리, 호텔 예약 플랫폼 유유, 전자결제업체 페이비엠, 카트플립 등등.

무려 100억 달러를 투자해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한때는 인도의 외국인 직접 투자금액의 10분의 1을 인사이트 펀드가 차지했을 정도다.

인도 시장에서 성공을 맛본 송 가즈키 회장은 더욱 투자를 늘렸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수니르 모터스.

인도 자동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고, 인도 정부 역시 더 늦기 전에 전기차 산업을 키울 생각이었다.

인사이트 펀드의 투자는 대규모 투자와 협력사를 필요로 하는 수니르 모터스의 요구와 정확히 맞아들었다.

소프트박스는 일본 최대 IT기업이고, 자율주행과 승차 공유 회사 등에 투자하고 있는 만큼 최적의 파트너였다.

인사이트 펀드는 초창기 지분에 투자했지만, 이후에는 BW를 매수했다.

수니르 모터스는 대규모 외화표시 BW를 발행했고, 인사이트 펀드는 160억 달러를 투자해 이를 사들였다.

수니르 모터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 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채권의 정해진 원금과 이자만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주식이든 채권이든 회사가 망하면 한 푼도 못 받는다는 것은 똑같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한 푼도 못 받는 건 아니다. 회사를 청산하며 남은 자산을 채권자에게 분배하니까.

하지만 BW는 여기서도 후순위인 데다가, 수니르 모터스는 현재 자산보다 부채가 큰 상황.

회사가 망하면 말 그대로 그냥 휴짓조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난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수니르 모터스 BW를 전량 매수하고 싶습니다.”

송 가즈키 회장은 나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걸 매수하려는 겁니까?”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수니르 모터스가 망할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멈칫했다.

현재로서는 누구도 수니르 모터스의 회생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 그런데 나는 회생을 택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입에서 나온 얘기인 만큼 쉽게 흘려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망하지 않는다면 제가 CB를 팔아야 할 이유는요?”

“어차피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상, 채권 가격을 다 받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회사채에 투자하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받거나, 그전에 회사가 망해 손실이 나거나.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우고, 기관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망한다고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니르 모터스는 수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전기차 기업.

망할 경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협력사들과 하청업체들까지 줄줄이 망한다.

한마디로 죽게 놔두기에는 너무 큰 것이다.

경제에 끼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지원해 기업을 살려내는 이유다.

“워런트는 매각이 불가능합니다.”

BW는 신주를 정해진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옵션이 붙은 채권.

그리고 이 옵션은 인사이트 펀드만이 행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적대세력이나 경쟁사가 지분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함.

“상관없습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오직 채권이니까요.”

송 가즈키 회장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수니르 모터스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겁니까?”

“네.”

어차피 인도 정부가 외국 기업에 넘어가도록 놔두지는 않을 테고.

“금액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오기 전 이미 생각해놓았지만, 난 고심하는 척하며 말했다.

“액면가의 30퍼센트는 어떻습니까?”

내 말에 송 가즈키 회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70퍼센트 손실을 보라는 겁니까?”

“채권단 협상이 시작되면, 인도 정부는 더한 요구를 할 텐데요.”

예를 들어 정부에서 1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채무가 10억 달러라면?

이 경우 돈을 지원해봐야 전부 빚잔치에 쓰이고, 기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투자자들의 손실을 세금으로 갚아주는 꼴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전 채권단과 협상을 벌인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원금과 이자를 다 받고 싶지만, 어차피 회사가 망하면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만큼, 어쩔 수 없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채무의 탕감과 함께 채권의 주식전환과 만기연장을 요구할 겁니다.”

한마디로 빚과 이자를 깎고, 돈 대신 주식으로 받으라고 하고, 정해진 날짜보다 한참 늦게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채무조정을 거치고, 구조조정과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한들 기업이 회생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회생한다 해도 돈이 언제 회수될지는 알 수 없겠죠. 그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겠습니까?”

인사이트 펀드의 규모는 무려 1,200억 달러.

이 정도 규모의 펀드는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하다.

그나마도 PIF가 투자를 안 해서 이 정도지, PIF가 투자를 했다면 규모는 두 배로 커졌을 것이다.

이 중 500억 달러를 소프트박스가 투자했고, 그 외에 여러 빅테크 기업들과 전세계 국부펀드가 투자했다.

모두가 믿고 투자한 것은 그만큼 큰 성공을 거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어떨까?

작년 손실액은 무려 520억 달러.

그동안 번 돈을 다 까먹은 것은 물론, 보유 현금을 거의 소진한 상태다.

스타트업이란 한 번 투자로 끝나는 일이 별로 없다. 성장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

스노우 크래시가 지금 위치로 오기까지, 거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수준으로 계속해서 돈을 쏟아부었다.

만약 내가 다른 투자로 돈을 벌지 못했다면, 진작 외부 투자를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분율이 크게 깎여나갔겠지.

이는 인사이트 펀드 역시 마찬가지.

기존에 투자한 스타트업들에 계속 투자를 해야 하지만, 현금이 바닥났고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죽하면 펀드 청산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송 가즈키 회장이 말했다.

“40퍼센트.”

“35퍼센트로 하시죠. 그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회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

난 송 가즈키 회장을 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에런 베이커와 비견될 정도로 세계적인 투자자로 손꼽혔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그를 따라 투자했다.

그런데 몇 번의 실패로 극심한 위기를 겪는 중이다.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 해도 모든 투자를 성공할 수는 없다.

투자를 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이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있느냐다.

그래야 바로 손절하고, 다음 투자를 할 수 있으니까.

실패한 투자에 계속 매달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지만…….

투자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게 말은 쉬워도,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손실 난 주식 하나 매도하는데도 손이 덜덜 떨리기 마련.

100억 달러의 손실을 확정 짓는다는 것은 손실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한쪽 손을 잘라내는 것과 비슷한 고통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 결정되시면 답변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송 가즈키 회장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멈칫했다.

“정말인가요?”

“예.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니까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웃습니까?”

그 물음에 난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아니,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100억 달러의 손실을 확정 짓는 일이다.

그걸 이렇게 단칼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대체 어떻게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더군요.”

“그건…….”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지닌 투자자다.

일본에서 누구보다 먼저 IT, AI, 스마트폰을 외쳤고, 다른 기업들이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안주하는 사이 계속해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들은 현실이 됐고, 한때 그는 일본 최고 부자 위치에 올라섰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투자자다.

그와 나의 차이는 단 하나뿐.

그러나 이걸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 * *

소프트박스를 나온 나는 바로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한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인수하기로 했어요. 본사로 계약서 들어갈 거예요.”

[결국 하셨군요.]

“나름 싸게 산 셈이죠.”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이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인도 정부와 협상을 해야죠.”

싸게 샀으니, 이제 남은 건 얼마나 비싸게 팔 수 있느냐다.

* * *

[수니르 모터스 법정관리]

[수니르 모터스, 회생 가능성은?]

[수니르 그룹,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수니르 모터스는 인도 최대의 전기차 회사.

인도 최대 재벌그룹인 수니르 그룹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데다가, 한때는 인도의 전기차 시장을 장악할 거라는 기대를 받던 회사인 만큼, 수많은 투자사들이 투자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인사이트 펀드가 무려 200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런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투자사들은 망연자실했다.

“제길! 대체 얼마나 부실하게 경영을 한 거야?”

“그동안 받은 투자금은 어디에 다 쓰고.”

“정부가 그렇게 밀어줬는데, 이 모양이라니.”

“제대로 된 기술이 있기는 한 건가?”

대체로 수니르 모터스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다들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시장을 뒤흔들었다.

“컨티뉴 캐피탈이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한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인수했다고?”

“잠깐만.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이번 기회에 수니르 모터스를 인수할 생각인 건가?”

“어쨌거나 회생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니야?”

컨티뉴 캐피탈은 이제까지 모든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들이 채권을 인수했다는 건 수니르 모터스가 망하지 않는다는 쪽에 베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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