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화. 수니르 모터스 (1)
[(WST) 부산 K-팝 페스티벌, 성황리에 종료!]
K팝 스타들이 총출동한 부산 K-팝 페스티벌이 사흘간의 축제를 끝마치고,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막을 내렸다.
애니버스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뮤키즈, 루나틴즈, 지유, XLO, 스타라이트 등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참가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 것은 물론, 음반 및 굿즈샵, 전시회, 한국 콘텐츠 체험, 커버 댄스 경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함께 열려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중략)
이제 K-팝은 한국만의 노래가 아닌, 전세계인이 즐기는 노래가 됐다.
애니버스 박정웅 대표는 ‘향후 세계 주요 도시에서 K-팝 페스티벌을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해나가겠다’고 밝히며 팬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 * *
K-팝 페스티벌이 끝난 뒤.
일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돌아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나야 차타고 가면 그만이지만, 비행기 타고 장거리를 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트리시에게 물었다.
“설마 또 이코노미예요?”
“그럼요. 저희는 출장비가 빠듯해서 비즈니스 꿈도 못 꿔요.”
“오래 타면 힘들잖아요.”
“괜찮아요.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면 되니까요.”
부산은 미국 직항편이 없다.
때문에 올 때는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해서 왔다고 한다. 다행히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내 전용기를 타고 같이 가지.”
코리 덩컨의 제안에 트리시는 반색했다.
“그래도 돼요?”
“물론. 자리야 얼마든지 있으니. 그런데 LA로 가는 건데, 괜찮나?”
“그럼요!”
거기서 뉴욕행으로 비행기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적어도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에는 전용기의 안락한 좌석을 즐길 수 있다. 가면서 취재도 할 수 있을 테고.
난 다리안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다음 작품도 응원할게요.”
“고마워. 언제든 LA에 놀러와. 그때는 내가 대접할 테니.”
“예.”
에덴 크레이그는 나에게 말했다.
“덕분에 재밌게 놀았어요. 다음에 연락해도 되나요?”
“그럼요.”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나 잘생겼다.
이런 얼굴로 인생을 살면 어떤 느낌일지 좀 궁금하긴 하다.
제인 실버스틴은 나를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즐거웠어요. 루나틴즈 공연도 잘 봤구요.”
코리 덩컨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 내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하지.”
참고로 그의 헬스장에는 정말 친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트리시는 나에게 물었다.
“뉴욕에는 언제 올 거예요?”
“금방 갈게요.”
데이비드도 보고 싶고, 메기도 보고 싶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 * *
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세나와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돌아갈 때는 내가 운전했다.
며칠 동안 실컷 노느라 지쳤는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다들 잠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세나는 아예 입까지 벌린 채 자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차가 알아서 속도를 올리거나 줄이고 차선을 변하기 때문에 딱히 할 건 없다.
그저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만이다.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죄송해요, 오빠. 저도 모르게 잠들었나 봐요.”
소진이가 먼저 깬 모양이다.
“괜찮으니까, 더 자.”
“아니에요. 이제 깼어요.”
“재밌게 놀았어?”
“네. 너무 재밌었어요. 전부 오빠 덕분이에요.”
“뮤키즈 공연은 잘 봤고?”
“네네.”
이번 페스티벌에 여러 아이돌들이 참가했지만, 역시나 가장 인기가 있는 건 뮤키즈.
“그러고 보니 뮤키즈 연우 좋아한다고 했나?”
“네? 아, 아니에요. 별로 안 좋아해요.”
“응?”
세나가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 저기…….”
“응?”
“혹시 오빠는 좋아하…….”
소진이가 뭔가 말하려는데, 세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앗!”
“아씨, 깜짝이야. 왜 그래?”
세나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 나 방금 엄청 신기한 꿈 꿨어.”
“뭔데?”
“티슬라 만든 사람 있잖아.”
“알렌 에버하트?”
“응. 그 사람이 철창 안에서 글러브 끼고 다른 남자랑 싸우는 꿈이었어.”
“…….”
이게 대체 뭔 꿈이야?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
“그건 모르겠는데, 에버하트가 엄청 처맞고 있었어. 눈에 피멍 들고 쌍코피 줄줄 흘리며.”
“…….”
그러니까 누구한테?
그를 패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누군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처럼 너무 생생했어. 혹시 예지몽 같은 게 아닐까, 오빠?”
“……그게 말이 되니?”
세계 최고 부자가 케이지 안에서 싸울 일이 뭐가 있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세나는 나와 소진이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둘이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그러자 소진이가 재빨리 말했다.
“아! 그, 그게……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묻고 있었어.”
“노래 듣게?”
“으응.”
“그럼 우리 지유 언니 노래 듣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세나가 음악 틀자 지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지유의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 * *
난 선우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K-팝 페스티벌은 어땠어?”
“재밌었지. 너도 오지 그랬어?”
이번 K-팝 페스티벌에서 블록밸리, 나이트라이트, 판타지아 테일즈R은 체험관을 설치해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각종 이벤트를 벌였다.
“가긴 어디를 가. 게임 만들어야지.”
“…….”
얜 어째 회귀하기 전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스포츠 선수라면 회귀를 해도 경기를 뛰어야 하고, 개발자라면 회귀를 해도 개발을 해야 한다.
내가 투자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어쨌거나 K-팝 페스티벌이라는 큰 행사가 끝나고 나니,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 설에 집에 가냐?”
“아니. 집에 가봐야 잔소리나 듣겠지.”
“으음.”
남 얘기 같지 않다.
안 그래도 이번에 친구 아들이 결혼했다고, 어머니가 벼르고 있는 것 같은데.
“안 간다고 하면 집에서 뭐라고 할 거 아니야?”
“응. 그래서 그때 맞춰서 출장 일정을 잡아놨어.”
“…….”
이 새끼, 천잰데.
이런 방식으로 설날 이벤트를 건너뛰다니.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야?”
“알렌 에버하트.”
“그 형은 안 바쁘대?”
“그러게 말이야.”
티슬라와 스페이스Z를 포함해 다섯 개 기업의 CEO를 맡고 있다.
그 와중에 투윗도 올려야지, 키보드 배틀도 해야지…… 세상에 이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심심하면 나한테 전화를 하는 이유는 뭘까?
벨이 계속 울리기에 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근처에 온 김에 생각나서 전화해 봤어.]
“설마 한국이에요?”
[아니. 중국.]
“…….”
하긴,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정도면 근처라고 볼 수 있지.
“기사 봤어요. 베이징에 갔다면서요?”
[응.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전히 공기가 안 좋네. 이래서 어서 내연기관차를 퇴출해야 한다니까.]
글로벌 기업들이 탈중국을 하는 와중에도 티슬라는 반대로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그 이유는 중국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기 때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생산되고 판매된다.
게다가 전기차의 가장 중요한 부품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와 관련 원자재 역시 최대 생산국.
그런 만큼 티슬라 입장에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중국 판매량이 사상 최대라던데. 축하해요.”
[하하, 이제 시작이지. 전기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경쟁 역시 치열해지는 중이야. 경쟁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밀려나지.]
“최근 메이딩과 마이톤이 파산 신청했던데요. 중국 전기차 업체들 위기라는 얘기가 있던데.”
원래 자동차는 웬만한 기술력이 없이는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전기차로 넘어오며 얘기가 좀 달라졌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는 약 3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지만, 전기차의 부품은 그 10분의 1이 채 안 된다.
또한 부품들은 어느 정도 규격화됐고, 아예 플랫폼을 사서 파츠만 씌워서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뛰어들었고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고, 티슬라가 가격을 낮추는 등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견디지 못한 업체들이 파산을 선언했다.
[그게 중국 전기차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아. 어떻게 보면 중국 정부가 한번 정리에 나선 셈이지.]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들을 정리하고 살아남은 회사들을 더욱 키우겠다는 건가요?”
[맞아.]
실제로 중국의 BID는 티슬라를 제치고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했다.
물론 저가차 위주고 대당 금액이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금액으로 보면 티슬라가 압도적 1위지만.
* * *
난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에버하트의 방중 때문에 시끌시끌하군요.]
“이런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사람이네요.”
알렌 에버하트의 방문은 중국에서 엄청난 이슈였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그는 친중 행보를 보였고, 중국 정부는 그를 환대하며 이를 대내외에 적극 활용했다.
중국 포털 검색 순위는 그의 이름으로 도배가 됐고, 그가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가 뉴스를 장식했다.
반면, 미국 정치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몇몇 정치인들은 대놓고 그의 방중을 비난했고, 에버하트는 지지 않겠다는 투위터에 그들에 대한 조롱 글을 올리며 맞섰다.
세상에 이 정도로 관종인…… 아니, 영향력이 큰 기업인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외에 별다른 소식은 없나요?”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수니르 모터스가 파산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수니르 모터스요?”
[인도 수니르 그룹이 만든 전기차회사입니다.]
“아! 알아요.”
수니르 그룹은 한국으로 치면 유성그룹 같은 인도 최대 재벌그룹.
이 그룹의 회장은 아누팜 수니르.
티슬라 주가 반등 덕에 알렌 에버하트가 다시 1등으로 올라섰고, LVMH 회장은 2등으로 내려왔다.
그렇다면 3등은 누굴까?
바로 수니르 그룹 회장 아누팜 수니르다.
그만큼 거대한 기업인 것이다.
[조만간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아누팜 수니르의 얼굴조차 모르고, 수니르 그룹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도 기업은 한국과는 별로 상관없게 느껴지니까.
나 역시 알고 있는 인도 기업이라고 해봐야 채 열 곳이 안 된다. 하지만 수니르 그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잠깐.
이게 결국 어떻게 됐더라?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수니르 그룹이랑, 모터스 관련 자료 정리해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