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화. K-팝 페스티벌 (5)
[(DG아웃사이드 헬스 채널) 동네 헬스장에서 코리 덩컨이랑 운동한 썰 품]
안녕, 헬창 흉들.
나는 부산 사는 3년 차 헬린이야.
모두 알다시피 헬창은 헬스창고의 줄임말이야. 헬스창고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태클 ㄴㄴ.
원래 모태 찐따였는데, 몸 좋아지면 여자 친구 생긴다는 얘기 듣고 3년 동안 빡세게 운동했어.
그 결과 그냥 몸 좋은 찐따가 됨…….
그래도 근육 생기니까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받아서 좋더라.
지금 K-팝 페스티벌이다 뭐다 해서 동네 전체가 난리인데, 난 별로 관심 없음.
평소 한국 노래는 별로 안 듣고 주로 팝송을 듣기도 하고.
어차피 같이 놀러 갈 사람도 없어서 걍 집에서 뒹굴거리는데, 노느니 무게라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헬스장으로 향했음.
다들 놀러 갔는지 사람도 거의 없었음.
나 포함해서 여섯 명.
트레이너들도 놀러 갔는지, 짬 안 되는 신입 한 명만 나와 있고.
아무튼 가슴이랑 어깨 조지려고 준비하는데, 문이 열리며 외국인 두 명이 들어옴.
무슨 중세 유럽 귀족 같이 생긴 꽃미남이랑 프로레슬러 같은 남자였음.
와! 근데 진짜 덩치가 미쳤음.
뻥 안 까고 어깨가 문에 끼고 머리가 천장에 닿겠더라.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거대했음. 같은 인간이 맞나 싶더라. 혹시 제우스가 타이탄족 다 안 죽여서 아직 남아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꽃미남은 누군지 잘 몰라도, 이 형이 누군지는 바로 알아봤지.
코리 덩컨이었음.
…….
…….
…….
ㅅㅂ 코리 덩컨이라고!
더 플랜터 코리 덩컨!!!
와! 지금 쓰면서도 손발이 덜덜 떨림.
K-팝 페스티벌 때문에 부산에 왔다는 거 기사로 봤는데, 설마 동네 헬스장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내 소원이 코리 덩컨에게 하트 어택 한 번 맞는 거였음. ㅋㅋ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더라.
영어로 뭐라고 얘기하는데, 대충 들어보니 일일 운동권 끊을 수 있냐고 하는 것 같았음.
트레이너도 졸라 놀랐는지 코리 덩컨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하잇! 하잇! 암쏘 하잇!’ 이 지랄하는데…… 이 새끼 일본인인 줄.
정말로 운동하러 왔는지 바로 무게 치기 시작.
원판 몽땅 가져다가 바벨 양쪽에 끼워 놓고 데드리프트하는데…… 우와!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됨.
그냥 무조건 직관해야 함.
원판 하나씩 넣고 들어 올릴 때마다 근육이랑 얼굴이 터져나갈 것 같은데, 보고 있는 내가 다 찌릿찌릿함.
왜 사람들이 역도 경기 같은 거 보러 가는지 알 것 같더라.
나중에 300킬로까지 올리니까, 다들 박수 치고 환호하고 난리 났음.
나도 되도 않는 영어로 ‘유 아 베스트! 리얼 업맨!’ 막 이랬음.
본인 운동 루틴 끝낸 다음, 안에 있는 회원들 자세 잡아줌.
옆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며 팔 붙잡아주는데, 감격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여친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오늘 이날을 위해 그동안 운동을 했던가 싶기도 하고 ㅜㅜ
운동 끝난 뒤에 단백질 먹어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치킨 콜?’이라고 물어보니 좋다고 함.
여기 헬스장 1층에 치킨집 있는데 졸라 맛있거든.
자기가 쏘겠다고 하면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 1인 2닭 시킴.
근데 치킨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또 운동시킴…….
두 팀으로 나눠서 버피, 런지, 스쿼트 챌린지 등등 입에서 단내 날 때까지 굴림.
원래 여기 취식 금지고 프로틴바만 먹어도 바닥에 흘린다며 졸라 뭐라고 하는데, 트레이너가 먼저 뛰어가서 치킨 받아오더라.
앉은 자리에서 다 같이 처묵처묵함.
코리 덩컨이 코리아 치킨 졸라 맛있다고 엄지 치켜드는데, 이게 국뽕인가 싶더라.
[(충격!) K-치킨의 황홀한 맛에 코리 덩컨이 눈물을 흘리고, 에덴 머시기가 무릎을 꿇은 사연은!]
……뭐 이런 거???
집에 돌아와서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음.
음……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졸라 뻥 같네. ㅎㅎ
형들 안 믿을 것 같아서 인증샷이랑 동영상 같이 올림.
이 글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베스트로 올라갔고, 이내 기사로도 쏟아졌다.
글 밑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어! 나도 저 헬스장 다니는데.
-아악! 나 어제 하체 해서 오늘 안 나갔는데 ㅜㅜ
-남들 다 놀 때 혼자 운동하러 간 찐따가 승자!
-코리 덩컨과 운동하다니! 개부럽다 ㅅㅂ
-아! 코리 형한테 더블드롭 킥 얻어맞고 싶다~ 하악하악!
-사진 보니 근육 미쳤네. 저 정도는 돼야 언더가드 모델을 할 수 있는 거구나.
-3대 500 이하 언더가드 입는 형들 반성하자~
-그런데 업맨이 무슨 뜻이야? 해석이 안 되는데.
-설마 상남자?
-엌ㅋㅋㅋㅋ
-그런데 옆에 있는 에덴 크레이그는 표정이 왜 저래? 억지로 끌려왔나?
-할리우드 대표 꽃미남 배우인데, 헬창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음 ㅎㅎ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와! 근데 진짜 존나 잘생겼다!
-아니, 에덴 크레이그랑 같이 사진을 찍어야 소개팅 같은 데 나가서 자랑이라도 하지. 여자들이 에덴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헬창이라 거기까지 머리가 안 돌아감~
-이 새끼 팝송 듣는다고 하는 거 보니, 왠지 ‘아이즈 오브 타이거’만 백만 번쯤 들었을 것 같다 ㅎㅎㅎ
-에덴 크레이그는 그저 코리 덩컨의 바벨 셔틀일 뿐!
* * *
팝업스토어로 들어선 MFW 매장은 엄청난 흥행이었다.
대기표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건물 입구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민아름은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서 바로 처리했고, 성윤아 역시 드림페이 이벤트를 직접 점검했다.
내 옆에 앉은 동호 선배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죽겠다.”
“뭐가 그렇게 바빠요?”
“말도 마. 시장만 만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만나자는 정치인들이 뭐 그리 많은지.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등등. 아예 근처 군수들까지도 와서 만나자고 하더라.”
“…….”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장이 이 정도다.
동호 선배는 슬쩍 말했다.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이 너 만나러 왔다며? 소개는 언제 해줄 거야?”
“관심 있어요?”
“물론. 그런데 제인 실버스틴 예쁘냐?”
“…….”
민아름에게 이를까?
동호 선배는 또다시 약속이 있다며 일어났고, 난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이 호텔이 연예인들 숙소다 보니, 오가는 아이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보고 있으니, 다들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아이돌 데뷔 연령은 점점 어려지는 추세라서 중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애들을 보니, 기특하다는 마음이 든다.
참고로 나 역시 저 나이 땐 게임 랭킹 올리느라 열심히 살았다.
다이아몬드 승급 못 한 게 아직도 한이다. 승급해서 강선우를 잘근잘근 밟아줬어야 했는데.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니,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거나 몰래 핸드폰을 하며 웃음 짓는 아이들이 보였다.
지유 말에 따르면 몰래 연애하는 아이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하긴, 한창 나이 대의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모여 있으니, 연애 감정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겠지.
아무리 바빠도 다들 할 건 하며 사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어! 한미루 선배님!”
여기서 나를 선배라고 부를 사람은…….
고개를 돌려서 봤더니 지유……가 아닌, 데이나였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안녕. 잘 지냈어?”
“네.”
데이나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설마 여기서 만나 뵐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콘서트 때문에 온 거야?”
“네.”
그녀의 옆에는 다른 멤버들도 함께였다.
나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언니한테 얘기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데이나는 좀 더 얘기하고 멤버들도 하나하나 소개해주고 싶어 했지만, 스케줄이 있어서 바로 가봐야 했다.
애들이 가고 나자 트리시가 다가왔다.
“누구예요?”
“라벤더베리요.”
“아! 그 루머 사건이요?”
“네.”
당시 그녀 역시 관련 기사를 썼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다.
“헤에, 열심히 활동 중인 모양이네요.”
“그럼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로 인해 잘된 사람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취재는 잘되고 있어요?”
“네. 조회수도 엄청 잘 나오고 있어요.”
그녀는 열심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조회수가 잘 나와야 나중에 또 출장 보내준다며…….
이 얘기를 들으니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알 것 같다.
트리시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성윤아가 다가왔다.
“여기 있었네요.”
그러다가 트리시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누구예요?”
그러고 보니 둘이 만나는 건 처음인가?
낸 재빨리 서로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WST 기자 트리시 오코너예요. 그리고 이쪽은 성윤아라고 드림페이를 출시한 드림파이낸셜 대표예요.”
트리시와 성윤아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 반가워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도요.”
둘은 인사를 나눴다.
“안 그래도 인터뷰 요청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저를요?”
“네. 미루에게도 몇 번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미루 씨랑 친한가 보네요.”
“네. 처음 미루 씨가 미국 왔을 때 우연히 만나서 친해졌어요. 성 대표님은요?”
“저는 미루 씨랑 회사 동기예요. 함께 입사해서 함께 일했어요. 드림 파이낸셜도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로 설립된 거니, 지금도 함께 일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 오코너 버거랑 비슷하네요. 오코너 버거도 컨티뉴 캐피탈 투자로 설립됐으니까요.”
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친해지다니.
* * *
난 다시 세나와 친구들을 만났다.
그 이유는 지유의 콘서트를 보기 위함.
나를 만난 애들은 깜짝 놀랐다.
“앗!”
“아앗!”
그 이유는 나와 함께 있는 외국인들 때문.
“다들 누군지 알지?”
다리안 헤럴슨, 코리 덩컨, 에덴 크레이그, 제인 실버스틴.
영화관에서나 보던 할리우드 스타들을 눈앞에서 본 세나와 친구들은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다.
잠시 후, 세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에덴 크레이그다! 에덴 크레이그 맞지, 오빠?”
그새 배웠는지, 에덴 크레이그는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른 애들도 한마디씩 했다.
“우와! 너무 잘 생겼어요.”
“엄청 멋있어요.”
나이는 스물넷에 키는 180센티가 살짝 안 된다.
그럼에도 얼굴이 워낙 작아서 넘사벽 비율을 자랑한다. 갈색 곱슬머리에 새하얀 피부. 왠지 슬퍼 보이는 촉촉한 터키색 눈동자.
하긴, 남자인 내가 봐도 잘생겼으니, 여자들이 보기에는 오죽하겠는가?
코리 덩컨은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 괜히 팔에 힘을 주며 포즈를 잡아보았지만……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된 근육 따위는 잘생긴 얼굴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기 마련.
“역시 남자는 얼굴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소진이가 나에게 말했다.
“제, 제 눈에는 오빠가 더 멋있어요.”
“……응?”
“지, 진짜예요!”
그러자 세나가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렌즈 안 꼈어?”
“…….”
나도 아니까 그만해.
세나는 스마트폰을 나에게 넘기며 에덴 크레이그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빠, 우리 사진 좀 찍어줘!”
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리안 헤럴슨과도 인사를 나누고, 코리 덩컨의 양쪽 팔에 한 명씩 매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지유를 보기 위해 콘서트장으로 들어갔다.
조명이 켜지며 지유가 무대 위에 나타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난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인종들이 한 목소리로 지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 글로벌 스타구나.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끼와 재능이 많은 아이니까.
난 한 명의 팬으로서 즐겁게 공연을 관람했다.
* * *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난 동호 선배, 민아름, 성윤아, 트리시, 그리고 허민웅과 함께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룸에 모여서 식사를 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지켜보았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뭘요. 미루가 가장 고생했죠.”
다들 각자 어딘가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있겠지.
“저거 형이 쏘는 거야. 알지?”
“알아요.”
대체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아예 그냥 본인 이름과 얼굴을 불꽃으로 터트리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