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K-팝 페스티벌 (2)
뮤키즈는 빌보드 1위까지 한 남자 아이돌그룹.
처음 1위를 했을 때만 해도 그냥 우연인 줄 알았는데, 현재는 내는 곡마다 1위를 하는 중.
트리시가 말했다.
“기사를 쓰며 듣다 보니 노래 좋던데요.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알 것 같아요.”
“누가 제일 좋아요?”
“음. 아무래도 제논이죠.”
세나의 라이벌인가?
뭐, 같은 아이돌 좋아할 수도 있지.
“그래서 제논 굿즈를 잔뜩 산 거예요?”
트리시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부, 부탁받은 거예요.”
뮤키즈 다음으로 인기 있는 가수는 루나틴즈.
김범석과 같은 메이블 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자 아이돌로 중소 기획사로서는 신화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여기에는 김범석의 작사작곡과 프로듀싱 능력도 한몫했다.
“지유 인기도 엄청나던데요.”
아무래도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한국 뮤지션은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아이돌그룹이 주류다.
반면 솔로 가수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런데 지유는 세븐 라운드 덕에 전세계에 얼굴과 이름을 알렸고, 그 인기는 가수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덕분에 이번에 열리는 두 번의 콘서트는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매진됐다.
“이런 대규모 페스티벌을 개최하다니. 대단하네요.”
사실 쉽지는 않았다.
기획사별 이해관계에 개최 비용에.
이게 가능한 것은 역시나 컨티뉴 캐피탈의 영향력 덕분.
워낙 대규모 행사다 보니 대기업 스폰서도 붙었다.
유성전자, 화안에너지, DA은행 등등.
이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한 이유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트리시는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말했다.
“맨날 사무실에서 기사 쓰다가 외국 나오니 좋네요.”
부산 K-팝 페스티벌은 전세계과 관심을 가진 이벤트.
때문에 트리시뿐 아니라, 외신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리고 인플루언서와 에이튜버들 역시 몰려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WST도 한국에 지사 하나 내면 좋을 텐데.”
최근 엄청 유명해지긴 했지만 WST는 어디까지나 뉴욕의 지역 언론사.
그런 만큼 따로 한국어판을 발행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 치고는 하도 국내 언론이 많이 인용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돼서 나오는 느낌이지만.
“지사 만들면 주재원으로 올 생각 있어요?”
“뭐, 미루처럼 왔다갔다 하면 되죠.”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하니 좋다.
트리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요?”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도 온다는 얘기요.”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예? 진짜요?”
* * *
다리안 헤럴슨은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였고, 출연료 역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애니타 버몬트와의 이혼 소송으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몇 년 동안 스크린과 방송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다행히 소송에서 승소하며 가정폭력범이라는 누명을 벗는데 성공했지만, 할리우드 복귀는 힘들 거라 절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리버티가 작품성과 흥행성 양쪽에서 성공하며, 다리안 헤럴슨은 다시 최고의 스타 자리로 올라섰다.
그러자 그를 찾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파티와 행사 참석, CF 요청 등이 물 밀듯이 밀려들었다.
다리안 헤럴슨은 원래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고, 자신의 인기를 즐겼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확실히 깨달았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예전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는 대신,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잘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나?’
원한다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지만, 문득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K-팝 페스티벌 때문에 부산에 간다고 했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 보러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가려면 지금이 타이밍이다.
마음을 굳힌 다리안은 코리 덩컨에게 연락했다.
“한국 부산에서 K-팝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는 게 어때?”
그러자 코리 덩컨은 반색했다.
[어! 안 그래도 저도 그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지유가 콘서트 한다고 하니 제 전용기로 같이 가요.]
“좋아.”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지인들과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 * *
내일부터 시작될 K-팝 페스티벌을 앞두고 부산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기저기 팝업스토어와 홍보관이 들어서고, 노점들은 장사를 시작했다.
사전에 메뉴와 가격을 등록하도록 했고,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한만큼 우려했던 바가지요금은 없었다.
관광객들이 몰리며 길에서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서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이 거리를 걸었다.
다리안 헤럴슨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부산은 오랜만이네.”
“오신 적 있으세요?”
“예전에 국제 영화제 참석할 때 와봤었지.”
코리 덩컨은 옆에 있는 청년에게 물었다.
“어때 놀러 오니까, 좋지?”
얼떨결에 따라온 에런 크레이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좋네요.”
제인 실버스틴은 신난 표정이었다.
“전 한 번 와보고 싶었어요. 루나틴즈 콘서트도 보고 싶고.”
코리 덩컨이 물었다.
“루나틴즈 팬이야?”
“네. 뮤키즈도 좋아하고 루나틴즈도 좋아해요.”
“그래도 지유가 최고지.”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다.
아무리 할리우드 스타라고 해도 평범한 차림으로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기 미련.
옆에 지나가는 외국인이 알고 보니 할리우드 스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거리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앗! 저 사람 코리 덩컨 아이가?”
“뭔 헛소리고? 니 뭐 잘못 먹었나? 코리 덩컨이 여기에 왜…… 우와씨! 진짜네!”
“자, 잠깐, 오빠. 옆에 다리안 맞재? 리버티 주인공 맞재?”
“뭐지? 뒤에는 에런 크레이그인가?”
“이거 진짜가?”
길을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코리 덩컨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썼는데 어떻게 알았지?”
옆에 있던 에덴 크레이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2m 10센티쯤 되는 거대한 키에 웬만한 성인 남성 두 배는 되는 덩치.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다.
웬만한 체형이라면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건 도저히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코리 덩컨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다들 준비됐지?”
“어쩌시게요?”
“한국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주자고! 자, 에브리바디 스마일!”
네 사람은 몰려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 * *
[K-팝 페스티벌에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들!]
[스타들이 부산 거리에 뜬 사연은?]
[다리안 헤럴슨의 깜짝 등장에 팬들 환호!]
[코리 덩컨, ‘지유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방문’했고 말하며 지유에게 팬심 드러내…….]
[에덴 크레이그, ‘한국은 첫 방문. 환영해주신 부산 시민들에게 감사!]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은 할리우드에서도 손에 꼽히는 톱스타. 그리고 에덴 크레이그와 제인 실버스틴은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안 본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예고도 없이 부산 거리에 출몰하자 시민과 관광객들은 깜짝 놀랐다.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 출몰 실화냐?
-기사 보고 가짜뉴스인 줄 알았음.
-다 같이 돼지국밥 먹으며 인증샷 찍음.
-아! 저 집 그냥저냥인데. 진짜 맛집 소개해주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 사이에 껴서 사진 찍은 거 실화임?
-ㅋㅋㅋ 선글라스와 모자 쓴 코리 덩컨. 변장하면 안 걸릴 줄 알았다는 게 웃음 포인트.
-저 덩치면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듯 ㅎㅎ
-인터뷰 보니까 지유 콘서트 보러 왔다는데, 진짜 찐팬인 모양이네.
-에런 크레이그 너무 잘 생김ㅜㅜ
-에런과 같이 있는 여자는 누구야?
-제인 크리스틴이라는 배우임.
-둘이 같이 있는 거 보니 수상한데, 혹시 사귀는 건 아니겠지?
-다리안 헤럴슨은 어떻게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지?
-이 형 꽃길만 걸었으면~
* * *
난 다리안 일행을 만났다.
그의 옆에는 지난번 다리안의 저택에서 봤던 코리 덩컨과 미남미녀도 있었다. 에덴 크레이그와 제인 실버스틴이다.
난 반가워하며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다리안은 웃으며 말했다.
“K-팝 페스티벌이 열린다기에 궁금해서 놀러 왔어.”
“어! K-팝 좋아하세요?”
“한국 드라마 보다 보니 관심이 좀 생겨서 듣는 중이야.”
“미리 연락주시지. 깜짝 놀랐잖아요,”
코리 덩컨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지유 콘서트 보러 왔어.”
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남자인 내가 봐도 잘생긴 백인 청년이 앉아있었다.
“전 그냥 얘기하다가 끌려왔어요. 잠깐 전용기 구경시켜줄 테니 타보라고 하던 출발하던데요.”
“정말요?”
“운동할 때 바벨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아…….”
그건 필요하지.
코리 덩컨은 프로레슬러 시절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시간은 운동한다고 한다.
촬영장에도 항상 헬스 기구가 실린 전용 트레일러를 세워놓고, 호텔에서 머물 때는 헬스장부터 확인한다고 한다.
이 정도는 해야 이 정도 근육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방금 한 말은 농담이다.
매니저와 경호원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데려온 건 그만큼 친하다는 뜻이겠지.
제인 실버스틴은 나를 보며 말했다.
“또 만났네요. 반가워요.”
다시 봐도 미인이다.
이 정도 외모면 안 뜰 수가 없지.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코리 덩컨은 재빨리 말했다.
“지유 팬미팅 티켓 좀 구할 수 있나? 콘서트 티켓은 구했는데, 팬미팅 티켓은 못 구해서.”
제인 실버스틴도 말했다.
“루나틴즈 콘서트 볼 수 있을까요?”
애니버스에서는 예매시 이름을 등록하기 때문에 암표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바로 주최 측이니까.
“얼마든지요.”
* * *
호텔로 돌아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저녁을 먹고 와인 한잔하며 밀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넘었다.
피곤해서 씻고 잘지 자고 일어나서 씻을지 고민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보니 소진이다.
얘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어, 소진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진이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빠!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응?”
[지금 세나 싸움 났어요.]
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거기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