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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17화 (517/529)

517화. 에런 베이커 (7)

남궁석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사회보험개혁을 추진했다.

여야동률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구조개혁과 모수개혁을 함께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은 이제 국회 상정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남궁석은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임창식 대표가 국민 부담이 우려된다며 계속 법안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대 요청에 대해서는요?”

“지금은 힘들 것 같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혼자 남은 남궁석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콰앙!

“젠장!”

사회보험을 개혁하는 이유는 기금이 고갈되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

따라서 개혁의 방향은 당연히 돈을 더 내고 혜택을 줄이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국민 부담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국민 부담이 우려된다고 말하는 것은 하지 말자는 얘기를 돌려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처음부터 개혁안은 여야 합의로 추진했다.

그런데 정작 법안을 상정할 시점이 되자 여당이 먼저 발을 뺐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야당 역시 반대로 돌아섰다.

남궁석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꽤 오랜 기간 끊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실패한 건가?”

남궁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통령과는 더더욱.

대단한 리더십이나 정치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지해줄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하기보다는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바로 사회보험개혁이다.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언론은 ‘민생은 내팽개치고 개혁에만 매진하는 정부’라며 비난을 쏟아냈고, 지지율은 1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개혁에 모든 국정 동력이 빨려 들어가며, 상대적으로 다른 정책은 소홀해졌으니까. 그런 만큼 더더욱 이 개혁을 완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마저 실패하게 생겼으니.’

문득 이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물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했다.

‘기숙사만 아니었어도…….’

학생들 기숙사를 지어주겠다고 나섰다가 얼떨결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선됐으니 어쩔 수 없이 입법 활동을 했지만, 임기를 끝마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재선을 했고, 3선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문득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렸다.

‘그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하야한 대통령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혼자만의 실패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실패는 곧 국민들의 피해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마지막까지 의원들을 만나 설득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는데 방금 나갔던 비서실장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대, 대통령님. 잠깐 TV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비서실장은 설명 대신 TV를 틀었다.

에런 베이커의 인터뷰는 끝났지만, 실시간으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걸 본 남궁석은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 * *

[에런 베이커 충격 발언! 투자자들이여, 당장 한국을 떠나라!]

[사회보험개혁 부결시 증시 충격 불가피!]

[글로벌 투자자금 일제히 한국 떠나나?]

[BUY 코리아와 BYE 코리아의 갈림길에 선 한국]

사회보험개혁은 한국의 국가 정책.

에런 베이커가 다른 나라 정책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의 인터뷰는 전세계에 속보로 뉴스가 나갔고, 한국의 사회보험개혁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많은 나라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만큼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들은 출근하자마자 이에 대해 토론했다.

“어제 에런 베이커 인터뷰 봤어?”

“진짜 개혁을 하긴 해야 하는 건가?”

“기사보니까 이번에 개혁 못하면 진짜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생각해 봐. 남궁석 대통령이 무슨 득을 보겠다고 자기 임기까지 줄여가며 개혁을 추진하겠어?”

“그래도 월급에서 돈 더 빠져나가는 건 싫은데.”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어?”

현재로서는 부결 가능성이 더 큰 만큼 장이 열리자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일제히 2퍼센트 가량 하락했고, 투자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진짜 부결되면 외국인들 대탈주 하는 거 아님?

-이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고갈돼서 매년 7조씩 적자가 나고 있음. 건보료도 조만간 고갈돼서 세금 먹은 하마가 될 테고. 가만히 놔두면 10년 안에 수십조씩 세금 투입해야 할 판.

-그나마 국민연금 고갈은 뺐는데 이 정도. 나중에 국민연금 적자나기 시작하면 그땐 끝장임. 그래서 일본과 프랑스가 서둘러서 연금개혁한 거고.

-베이커 옹 말씀대로 이걸 그냥 두는 건 정치인들이 국민들 상대로 사기 치는 거나 다름없지.

-아ㅜㅜ 그전까지는 국민 갈등 일으킨다고 남궁석 졸라 욕했는데, 지금 보니 갈등을 안 일으키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었구나.

-수급자 더 늘어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개혁해야 한다.

-ㅋㅋㅋ 근데 안 할 거잖아~

-지금이라도 주식 다 팔고 나가야 하나?

-아, 안 돼, 내 주식ㅜ

-진정하자, 얘들아. 진정하자, 나 자신. 나는 지금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게 내 주식을 지키는 거라 생각하고 있어. 개혁안 부결은 주식 개떡락이야.

-유성전자 못 잃어! 대현차 못 잃어! 내 주식 못 잃어!

개혁안에 대해 이전까지만 해도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에런 베이커 인터뷰 이후 지지가 점차 높아졌다.

유명인이 한마디했다고 갑자기 반대가 찬성으로 돌아설 리 없다.

그럼에도 여론의 흐름이 바뀐 것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에런 베이커의 발언은 주식 시장뿐 아니라, 한국 정치권마저 뒤집어 놓았다.

“개혁안이 통과 안 되면, 한국을 떠나라니.”

“이대로 부결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러다가 진짜 증시 폭락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그래서 통과 시켜, 말아?”

정치인들이 다들 혼란스러워하는데, 이 상황에서 가장 난감해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우리국민당 임창식 대표다.

임창식은 한때 누구보다 대통령 자리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다.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압도적인 1등을 달렸고,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된 건 그가 아닌 남궁석이었다.

임창식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지?’

오죽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자신을 대통령직에서 밀어낸 것 같은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대통령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다음 대통령은 나야 나!’

다행히 다음 대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남궁석은 총선에 맞춰 임기를 단축하기로 했고, 대신 야당에게 사회보험개혁안을 지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임창식은 기꺼이 응했다.

그런데 막상 개혁을 추진하자, 예상보다 국민적 반발이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종합부동산세는 고가 주택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전세 사는 사람도 반발하고, 주식양도세는 큰 수익을 낸 투자자뿐 아니라 손실 본 투자자도 반발한다.

하물며 전국민이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건보료와 국민연금은 어떻겠는가?

한국보다 먼저 연금개혁을 실시한 프랑스에서는 폭동 수준의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고, 파리는 반쯤 마비 상태가 됐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이 직권으로 법을 통과시켰지만, 한국은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약 이대로 개혁안을 상정해 통과시킨다면,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임창식이 정책 추진에 있어서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정치적 유불리였다.

‘다음 대선을 생각해야 해.’

당연하게도 누구도 월급에서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법안 상정을 미루고, 다시 논의해서 현재 안보다 보험료를 조금이라도 내린다면?

이는 온전히 그의 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막판에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를 들며 재논의를 주장했고, 많은 사람이 그를 지지했다.

덕분에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런 베이커의 발언이 나가고 나자 여론이 바뀌었다.

찬반이 뒤바뀐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보험개혁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결되면 가결되는 대로, 부결되면 부결되는 대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임창식은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대체 에런 베이커가 왜 나선 건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이제까지 그래왔듯 ‘보이지 않는 손’이 또다시 작용해 자신을 밀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임창식은 망연자실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계속 찬성할 걸…….’

* * *

동호 선배는 증시를 보며 말했다.

“이야! 역시 베이커 옹이야. 이건 뭐 말 한마디에 시총 수십조가 날아가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만약 에런 베이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50년 넘게 세계 최고의 투자자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

특히 금융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발언은 시장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요.”

남궁석이 대통령이 되는 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이다. 사회보험개혁안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적자가 늘어나고 기금이 고갈되는 걸 지켜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뿐이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 * *

사회보험개혁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한국 국회에서 진행되는 이 표결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표결이 끝나자 국회의장은 결과를 말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사회보험개혁안, 찬성 132표, 반대 129표, 기관 27표로 가결!]

[공적연금 통합! 공무원, 교원 단체 거세게 반발!]

[청와대 대변인, ‘개혁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양대노총, 총파업 예고!]

국회 표결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남궁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막판에 여론이 돌아선 이유는 에런 베이커의 인터뷰 덕분.

그렇다면 어째서 평소 언론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에런 베이커가 SBC와 인터뷰를 했고, 어째서 그렇게 강경한 발언을 했을까?

남궁석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이뤄졌군.”

아마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뜻대로 움직인 셈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자신 역시 원했던 일이니까.

언젠가 마주보고 술 한잔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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